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21화
221화. 가노컵(15)
이튿날은 이변이 많이 생겼다.
아! 아아!
안타까운 탄성이 그리 멀지 않은 일본 측 중계석에서 울렸다. 일본 아나운서들의 탄성이 울린 이유는 졌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100 헤비급 간판이, 러시아 2선발 선수에게 시원하게 하늘을 날았다.
어찌나 시원하게 날던지, 체한 속이 빵 뚫릴 정도로 시원했다.
하지만 일본은 속이 꽉 막힌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영아. 천벌이라는 게 있긴 있나 보다.”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 말이 웃겨서가 아니라 천벌이란 단어가 정말 딱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아시아 선수권부터 시작해서 정말 너무 많은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아니, 그 이전인 도쿄 올림픽부터였다.
그래도 도쿄 올림픽 때는 은근히 판정을 유리하게 가져갔는데, 지금은 아주 대놓고 장난질을 쳤다. 특히 작년 아시아 선수권 이후, 강유진 테러 사건 이후 일본은 아예 작정한 것처럼 굴었다.
우리가 욕이란 욕은 다 먹어도, 너 하나만큼은 조진다!
하는 생각으로 지영에게 덤벼들었었다. 하지만 유도가 가진 기본적인 룰을 파괴하진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 수작은 수작으로만 끝났고, 어차피 이렇게까지 했는데 더 심하면 뭐 어떠랴!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 건지 대놓고 패악질을 부리다가 도나키 후나와 지오반니의 경기 때문에 미국팀 코치 브라이언 오셔가 부린 난동에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갔다.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니, 호랑이란 표현은 너무 거창하다.
‘이빨 빠진 원숭이?’
아, 맞다.
일본 개코원숭이. 이빨 빠진 일본 개코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런 개코원숭이의 삽질에, 선수들만 죽어나갔다. 유도에도 기세라는 게 있다. 지영이 이성진을 선봉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먼저 시합에 나가는 사람은 분위기를, 흐름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팀이다.
학교 소속으로 나와도 팀이 있고, 국제 대회 나와도 당연히 팀이 있다. 후자의 경우엔 당연히 국가대표끼리 팀이다. 올림픽처럼 하루에 한 체급씩 하는 게 아니라면. 아니, 올림픽처럼 하루 한 게임만 해도 전날 팀의 성적이 다음날 시합을 뛰는 선수의 경기력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전날 경기 결과도 그럴 건데, 당일은 어떻겠는가.
게다가 모두가 야유를 보낼 정도의 말도 안 되는 판정이 나오고 그러면, 선수들의 사기는 진짜 바닥으로 떨어진다.
일본이 그랬다.
말도 안 되는 판정.
도나키 후나의 기권.
브라이언 오셔의 난동.
이런 것들이 맞물려서 일본 선수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래서 이길 선수한테도, 울상을 지은 채 질질 끌려다녔다. +100이 그랬고, 이번에도 나와 황석과 맞대결을 예고했던 울프도 그랬다.
질질.
질질 끌려다니다가 모두걸기 한판패.
SNS에 황석과 맞붙기를 바란다며,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고 어젯밤에 설레발을 쳤던 울프는 그렇게 2회전에 탈락했다.
한국은?
일본이 떨어졌으니까 한국은 반대로 쭉쭉 올라갔으면 좋겠지만, 세상일은 역시 그렇게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반대로 한국팀이 잘 올라갔으면 일본에게 제대로 더 큰 엿을 먹일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여자부는 둘이 떨어졌고, 장대호가 떨어졌다.
천재라 불리던 장대호가. 괴물 장대호가 시원하게 하늘을 나는 장면을 보면서 지영은 그런 세상의 이치를 절실히 깨달았다.
장대호.
괴물이란 칭호가 장대호에게 붙은 이유는 그가 갖춘 피지컬 때문이었다. 울프 아론처럼, 장대호는 윗대에 흑인의 피가 섞여 있었다. 피부색으로는 완벽한 한국인이고, 외형적으로도 완벽한 한국인이지만 그의 피에는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갖춘 흑인의 DNA도 같이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몇 대에 걸쳐 누적됐다가 폭발한 피지컬이었다.
한 대를 건너뛰고 피지컬이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딱 장대호였단 소리다. 대표팀에 소집되고, 당연히 지영은 장대호와도 잡아봤다.
‘괴물…….’
진짜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친구였다.
무지막지함, 그 이상. 장대호는 근력과 순발력, 유연성, 지구력까지 모든 걸 갖췄다. 체중이 120㎏인데 100m를 지영과 비슷한 속도로 뛰었다. 심지어 400m 인터벌도 10바퀴 이상 경량급과 같이 뛰었다.
보통 마백이나 플백들이 한두 바퀴 뛰고 나면 퍽! 퍼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체력이었다.
그래서 헤비급이 가진 기술의 한계가 장대호에게는 없었다.
시합을 지영처럼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이끌고 나갈 수도 있고, 방어적으로 나가다가 카운터를 치기도 했다. 반대로 공세로 끌고 가서 정신없이 상대를 털기도 했다.
지영이나 지영의 친구들 외모 때문에 훨씬 더 조명이 되어 있어서 그렇지, 재능과 실력으로 따지면 장대호도 진짜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친구였다.
‘아니, 최소 동급…….’
적어도, 정말 적게 잡아도 자신이나 친구들과 동급이었다.
그런 장대호가 하늘을 날았다. 지영이 보니까 방심한 건 아니었다. 그냥 제대로 걸렸다. 한순간 생긴 빈틈을 브라질의 라파엘 실바가 놓치지 않았을 뿐이었다.
시원하게 뜬 몸.
콰앙!
시원하게 떨어진 몸.
당연히 잇폰이었다.
장대호의 패배에 아…… 하고 한국 응원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장대호가 질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장대호의 패배에,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겠지.’
장대호가 못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라파엘 실바가 무지막지한 실력자인 게 아니다. 이건 두 사람의 경기를 지켜본 관계자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거다.
무지막지한.
‘상대성 차이.’
라파엘 실바와의 상성이 극악이었다.
그냥 가끔 이런 관계가 나올 때가 있었다. 아까 브라이언 오셔가 폭발하는 원인이 되었던 도나키 후나와 지오반니처럼 말이다. 그쪽도 세계랭킹은 도나키 후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오반니는 반대로 아예 100에서 올라오면 찾는 게 빠를 정도로 순위가 낮았다.
랭킹이 전부는 아니지만, 성적 자체는 두 선수의 실력 차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자체는 될 수 있었다.
그 지표대로 보면 도나키 후나가 압도적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지오반니의 압승이었다. 이건 그냥 상성의 차이였다. 도나키 후나의 스타일이, 지오반니에겐 너무나 맛좋은 먹이였던 거다.
장대호가 그랬다.
장대호의 스타일이, 라파엘 실바에겐 맛 좋은 먹이였다.
‘분명 나도 있을 거야.’
지영은 그걸 상기했다.
아직까지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정말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스타일을 갖춘 선수가 분명 세계 어딘가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없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이기적이었다. 당장 세계에는, 조금만 삐끗해도 자신을 한바퀴 시원하게 돌릴 미야모토 신지가 존재했으니까. 그러니 분명 자신의 저격수도 어딘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그렇게 장대호는 떨어졌다.
그 또한 이변의 한 편에 이름을 올렸고, 시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8강전.
임효중이 입장했다.
“임효중 파이팅!”
“효중아 잘해! 파이팅!”
꺄아아! 효중 상!
어제의 극우 단체도 없겠다, 소녀 팬들이 단숨에 경기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아이돌급의 인기가 아니라, 진짜 아이돌급의 인기를 구가하는 임효중의 상대는 몰레이 사이드, 세계랭킹 6위의 몽골 선수였다.
힘 유도의 진수.
몽골 선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타고난 피지컬을 이용한 유도를 하는데, 몰레이 사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소매꽂이와 허벅다리를 같이 차면서 잡기도 잘하고, 체력도 더럽게 좋은 올라운더 플레이어였다.
그래서 상대하기 지극히 까다롭다는 평가가 대부분인 선수기도 했다.
하지메!
심판의 시작 사인에 맞붙는 두 선수.
임효중은 전형적인 허벅다리 선수였다. 어떤 각도에서도,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허벅다리를 차 넣는다. 상대의 바깥쪽 허벅지에 발을 걸어 넘기는 허리후리기보다도, 가랑이 사이로 차올리는 허벅다리 하나만 갈고닦은 게 임효중이었다.
이성진이 업어치기란 한 우물만 팠다면, 임효중은 그 옆에서 허벅다리란 우물만 팠다.
그래서 둘은 지영이나 강한결, 황석과는 스타일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현대 유도에서는 한 우물만 파서는 성공하기 힘들었다. 워낙에 변칙이란 것 자체가 막혀 있다 보니까, 방어할 곳이 한가지로 정리가 끝나버리면, 그걸 막으면 게임의 승패가 너무 쉽게 갈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즘 유도는 다 요구했다.
잡기도 잘하고, 업어치기도 잘하고, 허리기술도 잘하고, 발기술도 잘하고, 체력도 좋아야 하고, 경기 운용도 잘해야 하는.
애초에 그런 스타일로 변하도록 세계 유도는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이 변화는 특히, 허리 아래를 잡는 걸 반칙패로 바꾸고 나서부터 어마어마하게 가속했고, 지금의 현대 유도 스타일의 뼈대를 금방 맞춰버렸다. 지영이 카운터라는 복잡한 걸 장착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컸다.
어느 하나만 특출나서는, 어차피 정상에 서기 힘들다.
그러니 상대의 기술 ‘전체’를 받아서 카운터를 치겠다. 안 와? 그럼 또 곤란하니까 안 오는 상대에게 반칙을 먹이는 운용을 길렀다. 지영의 유도 스타일은 이렇듯, 복잡했다. 이건 지영뿐만이 아니라 황석도, 강한결도, 그리고 다른 유도 선수들 전체가 비슷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하는 유도니까 당연히 복잡하다.
그러나 이성진이나 임효중은 지극히 심플한 유도였다. 잡는다. 찬다. 이게 불가능하면 지는 거고, 이걸 해내면 이기는 유도였다.
‘막히면 지고, 먹히면 이긴다.’
애초에 이게 임효중과 이성진이 한 우물만 판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지금까지 두 사람을 최정상에서 군림하게 해줬다.
그럼 그 군림이 언제까지 갈까?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파앙!
어깨 깃만 잡고 있던 임효중이, 벼락처럼 찍어서 허벅다리를 찼다. 업어치기도 그렇지만 허벅다리 후리기 같은 기술은 제대로 잡고 있어야 그 위력이 발휘된다. 말아업어치기 종류가 있는 업어치기는 그나마 조금 변수가 있는 편이지만, 허벅다리는 제대로 넘기려면 최소한 양 손으로 상대의 깃 어딘가를 잡고는 있어야 했다. 아니면 후리기로 상대를 띄울 수는 있어도 기울이기가 안 돼서 그대로 바닥에 콩, 하고 내려서기 때문이었다.
허벅다리 후리기든, 허리후리기든, 걸기든, 밭다리든, 핵심은 기울이기였다.
아니, 유도의 기술 전체가 핵심은 거의 기울이기에 있었다.
모두걸기도, 안다리도, 안뒤축도, 기울이고 지읏고, 이게 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갈랐다.
그런데 임효중은 어깨 깃만 잡고 찼다.
이 경우는 그냥 공갈용 기술로 끝났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붕 떴던 몰레이 사이드가 바닥에 내려섰을 때, 임효중은 짧게 타탁! 안쪽으로 스텝을 밟고 들어 가 거리를 좁혔다. 그러곤 몰레이 사이드가 빠져나가기도 전에 가슴 깃을 잡고 그대로…… 시원하게 뻥! 다시 한번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정확하게는 허벅다리 후리기 이후, 붕 뜬 몸에다가 다시 빠르게 허리후리기를 쳤다.
“와…….”
지영은 그런 임효중의 연계 기술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놀라웠다.
상대를 일단 들어 올려 짧은 틈이나마 방어를 무너뜨린 다음, 자신은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하기 전에 거리는 좁혀 놓은 다음, 착지한 상대의 도복을 잡고, 이번엔 제대로 허벅다리를 다시 찬다?
만화에서나 나오는 기술이다.
“지영아. 언제부터 쟤 입 유도였어?”
“……그러게 말이다.”
입으로 하는 유도.
말이 쉽지 임효중이 지금 보인 건, 솔직히 지영도 자신 없었다. 애초에 저걸 노렸다는 것 자체가 더 미쳤다. 임효중의 힘은 동 체급에서 아주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몽골의 몰레이 사이드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그런 몰레이 사이드가 임효중의 허리기술을 막기 위해 힘으로 버티면, 임효중은 확실히 안으로 파고들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걸 본인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걸 깨기 위한 전략으로 저런 만화 같은 기술을 준비했다.
‘미친놈…….’
절레절레.
지영은 자신도 자신이지만, 친구들은 더한 괴물이란 생각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지영을 뒷자리에 앉아 있던 선배 몇몇이, 지는 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임효중을 시작으로 다시금 시작된 레이스.
잠시 뒤, 강한결이 들어섰다.
등장한 강한결의 건너편엔 세계랭킹 1위, 유럽은 물론 세계를 휩쓸고 있는 그루지야의 베카우리 라샤가 서 있었다.
유럽의 천재와 동양의 천재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