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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10화 (21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10화

210화. 가노컵(4)

지영이 막 계체를 통과한 그 시간, MBS 이선영 기자 단독 기사 하나가 조용히 올라갔다. 그리고 조용히 올라간 게 무색하게, 곧장 화제가 됐다.

일본유도협회의 말도 안 되는 대회 스케줄을 꼬집는 기사였다. 거절해도 되는 대회. 아니, 거절해야만 하는 대회인데도 한국 유도협회 측에서 참가하라는 압박을 받았으며, 결국 일주일 안에 무리한 감량을 한 뒤 대회에 참가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그래, 사람들이 아주 물어뜯기 좋은 기사였다.

일본.

협회.

부정 청탁 등등이 가미된.

아주 자극적인 기사였다.

그래서 각종 커뮤니티에선 오늘은 이거닷! 하는 느낌으로 화르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또 강지영이네?

-걔가 친 사고냐? 한국일본 양쪽에서 친 사고지?

-아니, 상식적으로 대회 10일 전에 공문을 보낸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리고 그런 대회에 나가라고 한 우리나라 협회는 또 뭐고?

-ㅋㅋㅋ 우리 협회 삽질하는 거 처음 봄?

-이건 삽질의 영역을 넘어선 거지. 누가 봐도 일본 협회랑 같이 우리나라 선수 물 먹으려고 한 짓인데.

-맞음. 가노컵이 큰 대회긴 해도, 꼭 참가해야 하는 대회는 아님. 메이저에서 좀 떨어지는 대회니까.

-실제로 아시아 선수권이랑 위상이 비슷하지만 그건 일본 애들이나 그런 거고. 우린 아시안 게임을 더 쳐주죠.

-그런데 왜 나가라고 한 거임?

-딱 보면 모르겠어요? 황금세대가 활동으로 바빴다가, 이제 막 선수촌에 들어와서 몸 만드니까 지금이 기회라고 본 거죠. 원래 가노컵 내년 2월이었어요. 그걸 두 달 앞당겨서, 애들 폼 올라오기 전에 조지려고 한 거예요.

-우리나라 협회는 애들 가서 죽으라고 나가라고 압박한 거고?

-그게 아니라면 솔직히 막았어야죠. 협회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회는 막아줘야 하는데, 협회에서 나가라고 등 떠민 거예요. 애들 죽으라고.

역시, 네티즌들은 예리하다.

정황만 보고도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안목쯤은 당연히 장착하고 있었다.

-와, 진짜 너무하네…….

-들어보니까 이번에 새로 선출된 회장 라인에서 그런 거라던데. 냄새 심하게 나지 않음?

-근데 그것 말고도, 이걸 IJF에서 용인해 줘요? 대회허가는 세계유도협회에서 하지 않나요?

누군가의 진지한 의문은.

한 문장으로 설명이 끝나버렸다.

-일본이 유도 종주국입니다.

아…….

이어서 나오는 탄식.

다른 것도 아니고 종주국이다.

-스포츠에서 종주국이랑 개최국이 가지는 힘은 진짜 무시 못 하지…….

-ㅇㅇ 인정. 우리나라도 솔직히 이전 대회들 보면 버프 좀 받았음…….

-맞아요. 그리고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임. 얘들 치졸한 게 어디 한두 번임? 런던 때도 진짜 미친 짓을 했던 애들인데.

-판정 번복?

-ㅇㅇ 그건 진짜 소름이었지…….

-도쿄 때도 판정 좀 심했어요.

-울프 아론? 걔도 시합 진짜 더럽게 하던데 고작 반칙 하나 줬음.

-일본이 유도에는 진심으로 치졸하고 더러워지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분명히 수작을 부렸을 겁니다.

-수작 부린 건 다 알죠. 아는데, 나는 솔직히 궁금한 게…… 왜 수작을 부렸나, 이거임. 이건 평소랑 너무 다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국제사회에서도 욕 퍼대기로 처먹을 이런 짓을 대체 왜 했는가. 그게 궁금함.

-맞아요. 왜 이런 미친 짓을 한 거지? 이거 나중에 진짜 징계감인데?

-퍽이나 징계를…….

-그냥 관련자 몇 꼬리 자르고 말겠죠 ㅋㅋ 어디 한두 번 보나요?

-그러니까, 어찌 되었건 누군 피해를 보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피해를 감수하고 이런 짓을 저질렀나 그게 궁금한 거임.

-누구 아는 사람 없나? 이런 건 현역들이 잘 아는데. 여기 현역 없음?

대화가 이어짐에 따라, 일본이 왜 이런 미친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문도 당연히 나왔고 이 의문도 그리 오래지 않아 풀렸다.

-선수단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들었는데요.

-오! 현역 등판!

-하하, 현역은 아니고요.

-괜찮음! 현역 아니어도 됨! 상황만 알려주면 그냥 다 되는 거!

-아 좀! 조용해라! 말 자르지 말고!

-왜 나한테 그러냐? 고맙다고 인사도 못 함?

-아 거!

-하하. 친구한테 들은 얘기 풀게요. 안 그래도 기사 나고, 선수촌에 파트너로 들어간 친구한테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말하기를.

-말하기를?

아 이런 쌍쌍바가…….

가벼운 해프닝 뒤에, 이윽고 이유가 떴다.

-일본 협회가, 강지영 선수를 벼르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지영 선수 드라마 끝나고, 선수촌에 입촌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번 일 벌인 거라고.

-강지영?

-아니, 강지영이 여기서 왜 나와? 이런 미친 짓을 고작 강지영 선수 하나 잡겠다고 벌였다고?

-고작은 아니지. 그래도 강지영인데. 일본 유도의 영웅에게 반칙패란 비수를 무도관에서 꽂아버린 앤데. 그것만 봐도 일단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선수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한데요? 이해 안 가는 구석이 너무 많음.

강지영 죽이기?

그렇다고 쳐도, 이건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일본 선수가 어디 지영한테만 깨졌나? 황금세대와 괴물 장대호까지. 전원 일본 선수를 박살을 내버렸다. 그런데 그중에서 딱 강지영 하나? 그러니 이건 설득력이 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가 아닌, 다수의 의견이 그랬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터. 이 이유도 금방 밝혀졌다.

-이 기사 보고 와라. 좀 전에 강지영 전담 기자 이선영이가 올린 후속 기사인데, 아마도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한 네티즌이 올린, 이선영 발 후속 기사의 링크.

그 기사를 보고 온 사람들은 그제야 왜, 일본유도협회가 강지영이란 선수 개인에게 이를 가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아 이러면 이해가 되지.

-이 사건 이거, 아시아 선수권 끝나고 바로 있었던 사건 아님? 나 본 것 같긴 한데?

-맞을 거예요. 예인으로 유명해져서, 강지영 선수가 시합 끝나고 사인회도 열고 그랬는데 나중에 그게 문제가 돼서, 일본 네티즌들이 저 사오리란 애 테러한 사건임.

-ㅇㅇ 이거 심각했었음. 실제로 막 가족 학교나 병원까지 찾아가고 그랬던 걸로 암. 심지어 사오리? 얘 동생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생임.

-미친 새끼들이네.

-ㅇㅇ미친 새끼들임 진짜.

-그런데 그렇게 테러당했던 애가 알고 봤더니 유도 천재였고, 그 애를 강지영이 귀화시켰다?

-지문으로 읽으면 그 정도가 전부이긴 한데,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할 듯? 귀화가 쉬운 문제도 아니고.

-그래도 팩트는 결국 강지영이 이시카와 사오리? 그러니까 지금은 한국 이름 강유진을 귀화시켰고, 그것 때문에 일본 협회가 강지영한테 이를 갈고 있다. 뭐 이런 말이잖아?

-맞아요. 딱 그거 ㅋㅋ 아 진짜 치졸한 새끼들 ㅋㅋ

-치졸한 것도 치졸한 건데, 얘는 진짜 대단하다. 행보 하나하나가 진짜 범상치 않지 않냐? 아니, 다른 나라 에이스를 귀화시키는 게 말이 되냐?

-ㅇㅇ 인정……. 다른 애들도 대단한 건 맞는데, 쟤는 진짜 뭔가 있음. 더 특별한 느낌이 팍팍 남.

-특별하긴 하죠; 그냥 얘 행보만 봐도 특별하잖아요 ㅋㅋ 외모도 그렇고!

-아 요즘 우리 지영이 미모 진짜 물올랐던데…….

-이 사진 보면 그런 생각 안 들걸요?

이어서 다시 올라온 링크.

그 링크를 타고 가면, 날이 바짝 선 황금세대의 사진이 나왔다.

-꺄악! 뭐예요? 이 사진? 우리 지영이 왜 이래!

-아까 1시간 전에 일본 쪽에서 올라온 기사임. 계체 끝나고.

-흐잉! 우리 지영이 피부 왜 저랩! 눈 너무 퀭하잖아!

-감량 끝난 직후 사진임. 다행히 통과는 했고.

-와 씨…… 독기 봐. 빡친 게 그냥 느껴진다.

-건드리면 진짜 아구창 날려버릴 듯 ㅋㅋㅋㅋ

-다들 진짜 힘들어 보이긴 하네요……. 이것만 봐도, 일본의 의도는 제대로 성공한 것 같아요.

-성공했죠. 일주일 안에 적어도 6-7㎏씩은 뺐을 테니까요. 아마 컨디션 개판 됐을걸요?

-하여간 진짜 치사한 섬나라 원숭이 새끼들…….

-기왕 나간 거, 아예 시원시원하게 다 박살 냈으면 좋겠네요!

-맞음. 파이팅! 다 발라버려라!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 이미 인터넷은 화르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일본 커뮤니티 쪽도 마찬가지였다. 더러운 조센징 하는 욕은 기본으로 깔린 글들이 황금세대 사진 아래 도배되고 있었다.

과열된 분위기.

일본 네티즌은 일본 협회가 잘했다고 칭찬하고 있었고, 한국 네티즌들은 한국 유도협회에 친일파! 매국노! 역적 등등의 욕을 때려 박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지시고, 행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협회는 침묵했다.

그저, 포기할 수 없는 대회다. 포기하기엔 아까운 대회다.

그래서 참가를 지시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딱 한 번 한 게 끝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대응이었다.

뭔가 있다.

이것들, 뭔가 있구나.

이런 느낌이 강하게 났다.

하지만 그런 냄새를 맡았다고 해도 당장 시합에 도움을 줄 법은 없었다.

당장 시합은 내일이고.

한밤이 지나면 바로 시합이니까.

그래서 그냥, 열심히 응원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대신, 응원 분위기는 아주…… 죽여줬다.

가노컵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 * *

한국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을 무렵,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완전히 적이 되어 있었다.

일단 공항에 들어섰을 때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호텔에서 하루 쉬고, 다음 날 오전에 몸을 풀고, 오후에 계체하러 갔을 때까지만 해도, 조용했다. 그러나 계체를 하고 나온 순간 달라졌다. 거의 백여 명의 기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체육관 앞에 나와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나오는 순간 카메라 세례를 그냥…… 사정없이 터뜨렸다.

예의라고는 진짜, 개뿔도 없는 더러운 행동이었다.

지영은 반사적으로 내일 시합을 뛰는 선배들을 막아섰다. 지영이 막자, 이성진과 정수원도, 내일 시합 뛰는 여자팀 선수들을 보호했다. 그리고 여자팀 선수들은 같이 온 스태프들을 보호했다.

전기정 감독이 굳은 얼굴로 앞에 나서서 말했다.

“뭡니까? 인터뷰는 분명 사전에 거절했을 텐데요?”

감독의 말을 통역이 돌려 얘기하는 순간, 가장 앞에 있던 기자가 대뜸, 전기정 감독을 무시하고 지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타국의 유망주를 빼가는 건 매우 예의가 없는 행동입니다. 이는 산업스파이와도 비슷한 잘못을 한 건데, 그래놓고 이렇게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온 저의가 궁금합니다.”

통역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하지만 지영은 분명히 스파이란 단어를 확인했다. 일본 특유의 늘어지는 영단어였지만, 분명 들었다.

“그대로 통역해 주세요.”

“아…… 네.”

재일교포 2세의 통역사는 결국 있는 그대로 전달해 줬고, 모두의 얼굴에 기가 막힌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이제는 선배들도 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고, 능력이 되는 지영이 고통받고 상처받는, 이시카와 사오리를 위해 지영은 귀화라는 방법을 선택했고, 추진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뒀다간 진짜 미친놈들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지영은 그 일에 분명 책임을 느꼈고, 그래서 결국 이시카와 사오리는 잊고 지냈던 ‘강유진’이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럼, 왜 이시카와 사오리가 강유진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됐을까?

그걸 일본 기자들이 모를까?

지영은 여기 앞에 모인 기자 중에 그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거로 생각했다. 그걸 알 텐데도 지영을 스파이 취급했다.

“뭐, 자기들 유망주를 내가 데리고 귀화했으니, 스파이 짓을 한 건 맞나?”

지영이 씩 웃으며 조용히, 기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지영에게 이성진이 뜨악했고, 다른 선수들도 깜짝 놀라 지영을 돌아봤다. 그런 모습에 또 카메라 불빛이 퍼버벙! 아마 이 사진으로 엄청난 소설이 쓰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보다 멀리서 천천히 퍼지게 될 것이다.

한국도, 일본도 아닌 아주 멀리.

이선영의 인맥을 이용했고, 늦은 저녁부터 시작될 거다.

지영은 이후 침묵했다.

전기정 감독과 나중에 느긋이 나온 일본유도협회의 안내를 받아 다시 호텔로 도착했고, 하루가 돌았다. 지영은 자고 있을 무렵, 저 멀리 바다 건너편, 이전에 지영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찾아왔던 기자가 이선영에게서 받은 정보를 조용히 터뜨렸다.

[이시카와 사오리 테러 사건.]

[일본이 버린, 일본 여자유도의 미래.]

[이시카와 사오리는 왜 강유진이 되었나.]

[일본 이지메의 도를 넘은 행태는, 테러라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아침이 왔을 때, 그래도 깨어있는 일본의 몇몇 언론사가 내놓은 헤드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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