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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08화 (20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08화

208화. 가노컵(2)

안자이 히카리에게 전화가 온 건 가노컵 공문을 받고 이틀 후였다.

야간 훈련이 끝나고 온 전화. 친구들과 함께 식당 근처 카페에 있던 지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가노컵에 어떻게 된 건지, 이유를 알게 됐다.

일본 유도계는 지영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오노 쇼헤이.

일본의 유도 영웅을 무도관에서 반칙패로 침묵시켰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이 굴욕을 설욕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영이 드라마를 이용하자는 걸로 의견이 이어졌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안자이 히카리의 모친과 미야모토 신지의 부친이 협회 사람이라 직접 들었다고 했다.

지영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는 기색을 보이자 옆에 있던 신지가 전화를 받아서 더 확실하게 얘기해 줬다.

-그러니까 널 노린 게 맞아. 확실해. 드라마가 끝나고 폼이 올라오지 않은 네가, 선발전에서 1등을 하는 순간 곧장 결정된 거야. 물론 우리는 이미 한참 전부터 몸을 만들고 있었고. 그리고 몇몇 나라도 이미 언질 받았을걸?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신지의 말에 지영은 정말 궁금해서 그렇게 되물었다.

그렇게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시합하다 보면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여태까지 일본이 계속 이겼었고, 이번에 우리가 한 번 이긴 거야. 그런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내가 특별하게 물 먹인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야? 너 일본유도협회 물 먹였잖아?

신지의 말에 지영은 응? 내가? 하는 표정이 됐다.

그러자 같이 듣고 있던 친구들이 사오리, 하고 답을 줬다. 그 대답에 지영은 단번에 이해했다.

“아, 아아…….”

이시카와 사오리가 있었다.

지금은 귀화 문제를 거의 해결해서, 한국에 들어와 수술받고 열심히 재활 중이었다. 안자이 히카리의 뒤를 잇는 대형 천재. 그게 이시카와 사오리에게 붙어 다니던 수식어였다. 그런 사오리에게 일본 국민은, 테러에 가까운 짓을 벌였다.

그래, 자국의 유도 영웅을 메친 지영이 미울 수는 있다. 아니, 밉겠지. 유도 천재라 불리고 있던 선수를 뺏겼으니까, 미웠을 거다.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신지. 그게 내 잘못이야?”

-……아니지. 멍청한 것들 잘못이지.

“그렇지. 그 사람들 잘못이지.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그 사람들 잘못이잖아? 그런데 왜 그것 때문에 나를 미워해?”

-설마 그렇더라도 지영 네가 사오리를 귀화시킬 줄 몰랐으니까.

신지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오리가 원하기도 했던 거야. 협회는 제대로 알아봤대? 사오리의 부상, 그거 선배들 탓이라고 했어. 이게 믿겨? 질투 때문에 십자인대 재건 수술을 받을 정도로 애가 다친 거야. 그런 애한테, 테러에 가까운 댓글로 모욕하고 조롱했어. 힘들게 운동하는 그 애한테 그렇게 모질 게 대했으면 안 됐던 거지. 그때 사오리는 이미 유도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었고.”

이건 사오리에게 직접 들은 얘기니까, 사실일 거다.

이에 대한 증거도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문제가 될 시 터뜨리려고 이선영의 품에 들어가 대기 중이기도 했다.

-알아, 나도. 근데 그게 누구의 잘못이든 지영, 그들이 인정할 거로 생각해? 한국은 그래? 한국도 안 그럴 것 같은데?

신지의 역공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높이 앉은 사람이 책임을 회피하고 남 탓하는 거? 그건 단순히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는 절대로 아니었다. 당장 지영만 해도 아시안 게임 대패의 문제를 직접 떠안았어야 했었다. 협회에서 나서줘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 화살이 이쪽으로 죄다 날아들었다. 협회는 그걸 방관했었고. 왜? 대패의 책임 중 상당 부분이 황금세대에게로 날아가니 얼씨구나 하고 외면했던 거였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금 하는 건 어차피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일본은 종주국의 지위를 이용해 세계대회에서도 이렇게 수작질을 벌인다는 점이었다.

-지영. 일본유도협회는 이런 일로 이번에 너를 겨냥해서 이런 판을 벌였어. 실제로 지금 더 높은 곳에서는 너를 시합에 내보내라고 말이 오갔을 거야.

꿈틀.

이건 또 뭔 소리지?

“신지. 그 얘기 좀 자세히 해줄 수 있을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발언이었기에 듣고만 있던 강한결이 나섰다. 처음에 스피커 폰에 대해 얘기를 해놔서, 따로 사과는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야. 이렇게 부끄러운 수작을 부렸는데 지영이 네가 나오지 않아봐. 그럼 다 쓸데없는 짓이 되잖아. 그러니까 윗선에서 말을 맞춘 거지. 너는 꼭 출전시키라고.

“확실한 얘기지?”

-자랑은 아닌데, 우리 아버지가 좀 높은 위치에 계셔. 히카리 어머니도 마찬가지고. 두 분에게 들은 거니 확실할 거야.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지영이나 너희들은 한국유도협회에서 싫어하지 않아?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지.”

강한결의 씁쓸한 말에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걸 어디 신경 쓰겠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텐데. 우리나, 그쪽이나.

“그렇지. 고마워, 신지.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해줘도 괜찮아?”

강한결의 질문에 신지는 뿌득, 이를 갈았다.

얼마나 세게 갈았는지 바다 건너 있을 미야모토 신지의 기분이 어떤지 바로 짐작 가능했다.

-나는 비겁한 놈이 아니야, 한결.

“……그런 뜻은 아니었어.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후우, 아니야. 내가 예민하게 군 거지. 일단, 원래 이 대회에 나가기로 한 건 나였어. 나한테 준비하라고 했지. 하지만 거절했어. 나는 지영과 이런 방식으로 시합하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이번 대회에 나가지 않아.

미야모토 신지의 말에 듣고 있던 지영이나, 강한결이나, 친구들의 얼굴에 똑같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스포츠맨십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말 가지기 힘든 스포츠맨십이었다.

기본이지만, 스포츠 그 자체보다 승부에 집착하는 선수는 웬만해서는 가지기 힘들었다.

승부에 집착하는 건 결코 나쁜 게 아니었다.

스포츠 자체가 승부를 겨루는 게 기본인데, 여기에 승리욕이 없어서 양보하고 또 양보한다? 그건 반대로 스포츠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신지처럼 실력과 승리욕을 동시에, 아주 훌륭하고 확실한 상황에 부리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이길 수 있지만, 이기는 것 자체가 남의 차려준 밥상이라면?

떠 먹여주기 위해 뒤에서 수작을 부렸다면?

그리고 그걸 내가 알고 있다면?

거절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건 선수다. 하지만 선수가 그 결정권을 쓰는 건 매우 드물었다. 보통은 감독이나 코치가 나가자. 나가지 말자. 하고 정해주기 때문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신지의 결정은 멋있었다.

누군가는 치기 어리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며 고개를 젓겠지만, 당사자들이 들었을 때 신지의 결정은 정말 멋있었다.

심지어 지영이 신지에게 선전포고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감정이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신지는 오히려 이런 걸 지영에게 얘기해주고 있었다.

-지영.

“듣고 있어.”

-나는 네가 이 대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른들의 욕심과 시기, 질투에. 네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지의 말에 지영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 감정이 느껴지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곤 이미 내놨던 답을 해줬다.

“고맙다. 걱정해 줘서. 하지만 이번 대회는 나갈 거야.”

-왜? 어째서? 아직 드라마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폼도 안 올라왔잖아? 저번에 시합하는 걸 보니까 엄청 무거워 보이던데. 그리고 지금도 아직 고만고만할 거고.

“시합을 봤어?”

-……우연히 한국에 갈 일이 있었거든.

피식.

우연히는 무슨.

알고 있으니까, 보고 싶어서 왔겠지.

하지만 지영은 그걸 얘기해 굳이 신지를 자극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은 좋은 소식을 전해줬고, 그리고 고마운 얘기도 해준 친구다. 라이벌이고, 친구. 유도에 관한 고집, 자존심. 신념 등이 자신과 조금은 맞지 않을 뿐이지 그 외적으로는 정말 괜찮은 친구였다.

-그러니 시합은 나오지 마. 비겁한 사람들의 욕심과 질투에 휘말릴 필요는 없잖아.

신지의 말은 고마웠다.

“걱정 고마워. 그런데 신지. 이미 난 시합에 나가기로 마음먹었어.”

-뭐? 대체 왜?

“이거 한 번 피한다고, 계속 피해지겠어? 다음 대회는, 그럼 또 다음 대회는?”

-…….

“신지. 이건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 게 아니야. 애초에 시합을 주관하는 쪽에서 물고 늘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그래서 차라리 정면으로 부딪치겠다? 무모해도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피할 방법이 없으니까.”

-…….

그래, 피할 방법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양 협회의 높은 분들이 의견을 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협회 측에서 그렇게 나오면 지영은 솔직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지영이 이름이 높아졌다고 해도, 작정하고 협회에서 물 먹이면 당할 수밖에 없단 소리였다. 지영은 그래서 차라리, 어떤 수작이든 겁먹지 않고 대놓고 깨부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나중에 그냥 아, 쟤는 뭘 해도 안 먹히겠다. 이런 마음이 생겨 그냥 자유롭게 둘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지영은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미안하다, 진짜.

“신지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이걸 꾸민 어른들의 문제지. 이걸로 신지 너한테 악감정은 하나도 안 가지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지영, 소이치 상은 쉽지 않을 거야. 준비 단단히 해.

“하하, 당연하지. 그런데 괜찮아? 그렇게 대놓고 응원해도?”

-그럼, 괜찮지. 나랑 붙을 때까지, 누구한테도 지지 마. 난 그거면 충분해.

역시, 이런 쪽으로는 멋짐이 폭발하는 신지였다.

-선수권에서 보자, 지영.

“그래, 고마워. 이런 것도 다 알려주고.”

-고맙기는. 비겁한 협회는 무너져야 해.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칙쇼…….

“하하…….”

신지의 짜증에 지영은 그냥 웃고 말았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대회다.

한국 말고는 이미 참가 신청이 빠바박 다 들어와서, 전부 끝나 있었다. 급하게 대회를 준비한 만큼, 서류를 준비할 시간에 여유를 준다며 뻐기긴 했지만, 그 자체로 비겁한 짓이었다. 한국팀은 아직 서류를 내지도 못했다.

전기정 감독이 협회와 맞붙으며 이렇게는 애들 시합 못 내보낸다고 버티고 있긴 한데, 협회는 완강했다. 대체 뭘 주고받은 건지 모르겠는데, 무조건 대회에 내보내라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결국 신지가 했던 말이 맞는 셈이다.

-그럼 준비 잘하고, 시합장에서 보자.

“그래, 고마워, 신지.”

감사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은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라마도 그렇고, 유도도 그렇고, 정말이지 이런…… 사람 참 피곤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난다. 그에 대한 짜증이 분명 지영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어, 지영은 그 짜증도 눌러 참았다.

“괜찮아?”

강한결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우리가 뭐 이런 일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닌데. 이젠 익숙해졌어.”

“괜찮은 척하기는. 어떻게 할래? 일단 이거 감독님한테 말씀드리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강한결의 판단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지영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나 때문에 선배들까지 힘들게 시합에 나갈 필요는 없으니까. 아, 진짜 죄송하네.”

지영은 이게 제일 화가 나고, 짜증 났다.

가노컵이 작은 대회였다면 이러지도 않았을 거다. 분명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회였다. 세계선수권에 버금가는 선수진이 참가하는 대회기도 했다. 그런 대회를 자신 때문에 이렇게 망치게 됐다.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훈련이야 매일같이 하던 거니까 그렇다 쳐도, 문제는 감량이었다.

고작 일주일 안에 컨디션을 유지한 채 감량에 들어가야 한다. 이게 쉬울까? 절대, 절대로 쉽지 않았다.

감량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몸을 제대로 만든 다음에 시작해야 하는 게 감량이었다.

지영 하나 때문에, 다른 선배들까지 전부 그렇게 엉망진창 체중을 빼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감독님한테 말씀드리는 것도 드리는 거지만, 선배들한테도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시합에 나갈 선배들이다. 영문도 모르고 그냥 일본 또 치사하게 나오네! 이러는 것보다는 그래도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대회 스케줄이 잡힌 건지, 알 필요는 있었다.

‘모르고 맞는 매만큼 기분이 더러운 것도 없으니까.’

지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떠나 있었더니, 유도계가 자신을 노리는 적으로 변해 있었다.

드라마 속 ‘후’는 게임도 안 되는, 무서운 현실의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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