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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98화 (19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98화

198화. 나의 무사님(12)

힘들다.

근 2주를 주말도 없이 빡빡하게 달렸더니, 지영도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꼈다. 양유진과 보기로 한 토요일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촬영이 있었는데, 두 번째 신이 끝나고 나자 컨디션이 맛이 갔다는 이상징후가 올라왔다.

기침이 나왔는데 목이 살짝 따끔거렸던 거다.

몸살감기 초기 증상.

자고 일어나서, 그리고 매번 운동 전에 자기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게 일상인 지영이라 대번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바로 임은진을 찾았다.

“누나.”

“응? 응, 지영아.”

스케줄표를 보고 있던 임은진이 바로 지영의 말에 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저 몸살 기운 있는 것 같은데요?”

“어? 그래? 언제부터?”

“좀 전부터요. 아무래도 복장이 좀 가볍다 보니, 첫 신 촬영하면서 온 것 같아요.”

“아 그래? 어떡할래? 내가 가서 말할 테니까 병원부터 갈까?”

“음…….”

고민이 된다.

다음 신은 곧 시작이다. 좀 딜레이가 돼도 30분 뒤다.

여기서 지영이 빠지면, 결국 스케줄은 또 딜레이가 된다는 뜻이다. 지영은 자기 몸을 끔찍이 생각하지만, 반대로 자신 때문에 일정이 틀어지는 것도 또 끔찍이 싫어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던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간단한 신이니까 하고 갈게요.”

“그래, 그러자. 그럼. 그래도 일단 약부터 먹자.”

“어, 약 있어요?”

“그럼, 있지. 다 챙겨 다니지.”

심지어 꺼내준 약은 처방을 받은 약이었다.

“이런 걸 챙겨 다니세요?”

“혹시 모르니 내가 병원 가서 처방받아 사놓는 거야. 지영이 너 약물 알레르기도 없다고 했지?”

“네, 그런 건 없어요.”

“그럼 먹어도 될 거야. 지금 줄까?”

“네, 먹고 잠깐 쉬게 지금 주세요.”

지영은 임은진이 챙겨 준 약을 먹고, 가방에서 담요를 꺼냈다. 양유진이 사준 담요였다. 항상 쓰는 메신저 곰돌이 캐릭터가 파이팅! 하는 그림이 그려진, 추울지 모르니까 챙겨 다니라고 해서 매번 챙겨 다니고 있었다.

그걸 오늘 처음 꺼낸 지영이었다.

그렇게 담요까지 꺼내 패딩 안으로 두른 지영은 가만히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나의 무사님은 스케줄도 스케줄이지만, 작품 내용 때문에 야외 촬영이 많았다. 특히 이연과 지영은 거의 야외 촬영이었다.

제국에서 쫓겨나고, 이족 부락을 돌며 하나로 뭉치게 한 다음, 이어지는 건 제국과 밀고 당기는 전쟁이다.

그러니 스튜디오 촬영은 거의 없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해도, 과거 회상 신 정도라 몇 신 되지도 않았다. 이는 사전에 충분히 고지받았다.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던 지영이었다.

‘반성해야겠네, 내가 얕봐도 너무 얕봤어…….’

자신의 체력을 맹신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 맹신을 지금 지영은 좀 후회했다. 유도 체력과 달리는 체력은 다르다고들 흔히 말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일단 기본 베이스가 되어주고,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달리는 체력 그 자체와 경기 체력이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대표팀이야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기에 체력훈련을 어마어마하게 하지만, 중등, 고등부 같은 경우는 감독의 성향에 따라 새벽 운동보다 도복 운동에 훨씬 더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연희고는 딱 중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실제 촬영 체력과 운동 체력은 다른 것 같았다.

그 단적인 예가 이연이었다. 걸그룹 출신이라 체력도 나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운동한 지영보다는 체력이 좋을 수는 없을 텐데 그녀는 아직도 생생했다.

그것만 봐도 서로 체력을 쓰는 게 다른 건 확실했다.

지영은 눈을 감고 잠시 잠을 청했다.

아니, 자연스럽게 눈이 감아졌다.

몸도 따뜻하고, 약 기운이 올라오자 찾아온 졸음이었다.

그렇게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난 지영은 NG 세 번과 함께 오케이 사인을 받고, 오늘 촬영을 마쳤다. 빨리 약을 먹어 그런지 컨디션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오늘 오후와 내일까지, 휴가였다.

* * *

그래도 지영은 병원에 들러서 약과 주사를 맞고, 링크장으로 바로 이동했다. 점심은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있으니 가볍게 햄버거 하나로 때웠다. 오랜만에 먹는 햄버거가 너무 맛있어서 다 먹고 입맛을 다시다 보니 링크장에 도착했다.

“몸 이상하면 바로 전화해야 한다? 아무리 데이트도 데이트지만, 그래도 넌 한 작품의 주연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네, 누나.”

임은진의 걱정 섞인 충고에 고개를 끄덕인 지영은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링크장으로 들어가자, 저 끝에서 곽현정 선배님이 보였고, 그녀의 앞으로 유려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양지원도 보였다.

양지원.

그녀는 이제 대한민국의 넘버원 피겨 선수가 됐다. 뒤늦게 자격을 얻어 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뛰지 못했지만, 다음 동계올림픽인 26년 밀라노 대회는 큰 이변이 없으면 참가가 확실시된 상태였다.

왜 확실시되냐고?

그녀는 지금 세계랭킹 3위다.

그마저도 뒤늦게 세계 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에 랭킹이 낮은 거지, 그녀는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부터 지금까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세계 선수권으로 시작해 사 대륙권, 그리고 그랜드 파이널까지 전부 금메달을 목에 걸어 피겨 여신의 후계자 자리를 확실히 점 찍었다.

올해 그녀는 자잘한 대회는 전부 쳐내고, 딱 메이저 대회만 출전한다.

피겨의 피자도 모르는 지영이 봤을 때도 진짜 타고나긴 했다. 요즘에 키가 좀 더 컸는데, 그 부분에 대한 조정을 거치는 중이라 들었다. 그런데 키가 더 커져서 그런지, 동작 자체가 굉장히 시원시원했다.

날카롭고, 예리한 느낌도 있었다.

차가운 빙판의 여신.

이게 요즘 양지원을 수식하는 문장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연습을 링크장 밖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로, 간절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양지원의 언니인 양유진이었다. 지영의 마음을 첫 만남에 빼앗아 간 사람. 그런 사람을 잠시 보다가 지영은 폰을 꺼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아들! 오늘 촬영은 잘했니?

“네, 엄마. 점심은 드셨어요?”

-지금 막 먹고 좀 쉬고 있어.

늦은 점심이다.

하지만 요즘 너무 바빠서 결국 직원을 한 명 충원했을 정도라, 이 시간에 점심을 챙겨 드시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럼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그럼 괜찮지? 호호.

“엄마. 엄마는 일찍 결혼한 거, 후회한 적 없으세요?”

-결혼? 엄마 결혼?

“네.”

-음…… 없어. 엄마가 결혼하고 아쉬웠던 순간이 딱 하나 있는데, 네 아빠 살아생전에 딸을 못 낳은 게 그렇게 아쉬워.

“아…….”

예전에도 잠깐잠깐 했던 적이 있었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딸이랑 손잡고 다니는 엄마들이 부럽긴 했었다고. 그래서 딸을 낳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그때쯤에 가세가 기울어서 둘째를 가질 여력이 없어 포기했는데, 그게 조금은 아쉽다고.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긴 했다.

“그럼 일찍 결혼한 거는요? 엄마 한창때 결혼하셨잖아요.”

-그것도 후회는 안 하지. 그때 네 아빠 만나서 결혼하지 않았으면, 지영이 너를 못 낳았을 수도 있는데?

“……그것도 그러네요?”

-후후, 사람 일 모르는 거잖니. 요즘 말로는 인생은 타이밍이다. 그런 말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는 그 시절에, 네 아빠를 만나서 너를 낳은 걸 조금도 후회 안 해.

“…….”

이런 말을 물어보는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아주 민감하지만, 사실 이 나이의 지영이 꺼내기 힘든 이유가. 그러나 지영은 몸은 스물도 안 됐지만, 정신은 이제 서른이다.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를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그래서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물어볼 순 있었다.

“엄마.”

-응?

“제가 나이 스무 살에, 결혼한다고 하면 엄마는 허락해 줄 거예요?”

-어? 유진이랑 결혼하려고?

“아니요. 그냥 허락에 관한 것만 물어보는 거예요.”

-어…….

당황하셨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지영의 나이는 이제 19살이다.

아직 고3.

아니, 고작 고3이다.

그런 아들이 결혼 허락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지영 본인이나 자신의 정신연령을 30쯤으로 생각하지,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지영은 애였다. 아무리 어른스럽게 움직이고 행동해도 고3이라는 나이는 어른스럽구나.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을 나이였다.

그래서 오히려 지영은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가족을 생각하는 지영이라, 어머니의 허락은 필수였다.

-유진이도 좋다고 했니?

“하하, 아니요. 아직 말도 안 꺼냈어요.”

-그럼 할 생각은 있다는 얘기네?

“네, 좋은 사람이에요.”

그 말에 어머니가 호호, 유진이 좋은 애지. 하고 동의하는 대답이 건너왔다.

처음엔 어머니를 좀 불편해한 양유진이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그럴 거다. 아무리 강단이 있는 여자나 남자도 애인의 부모님과 마주하는 건 긴장되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벌써 몇 번이나 충주에 내려와서 어머니와 함께 점심, 저녁을 먹었다.

지영이 선수촌에서 고된 훈련으로 일요일에 피곤해서 뻗어 있으면, 양유진은 어머니와 함께 데이트도 나가고 그랬다. 이게 드라마 촬영 전, 지영이 선수촌에서 있을 때 개선된 관계였다.

-아들. 엄마는 유진이라면 찬성이야. 너 유진이한테 들은 적 없지?

“네? 뭘요?”

-너보다 유진이가 엄마한테 더 자주 연락해. 하루에 두세 번은 꼬박꼬박해. 점심 드셔야죠. 저녁 드셔야죠. 어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하면서.

“어, 진짜요?”

이런 얘기는 당연히 들은 적이 없었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한 건 알지만, 이렇게 자주 연락하는 줄은 정말 몰랐던 지영이었다.

-그럼? 엄마가 왜 거짓말을 하겠니? 오늘도 엄마 점심 먹기 전에 연락이 왔었어. 너 만난다고 좋아하던데? 정말 오랜만에 본다고. 맛있는 거 사주고 싶대. 너 목소리 지쳐 보인다고. 그러면서 뭘 못 먹는지, 뭘 잘 먹는지, 뭘 먹으면 안 되는지 물어보더라. 호호.

“…….”

몰랐다.

양유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보고 싶다고 하고, 외롭고 서운해하면서도 지영을 챙기고, 그리고 어머니도 자기보다 더 챙겨주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엄마가 언제고 한번 너한테 얘기하려고 하긴 했어. 좋은 애니까 아무리 내 아들이지만, 절대 상처 주면 안 된다고. 그런데 우리 아들, 보니까 벌써 상처 좀 준 것 같던데? 가끔이지만 서운해하는 티가 났거든.

“…….”

지영의 말문이 턱, 닫혔다.

저 끝에서 조마조마한 얼굴로 양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동생의 쇼트 연기를 보고 있는 양유진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들?

“……네.”

-후후, 놀랐지?

“네, 후아. 하나도 몰랐어요. 요즘 못 봐서 서운한 건 어제 통화하면서 바로 알았는데. 엄마한테 그렇게 잘하고 있는지도, 그전부터 저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것도, 하나도 몰랐어요.”

-그럼 이제 알았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니?

아들의 편이 아니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머니도 생각보다 칼 같으신데, 지금은 연인 사이의 문제에 잘못한 사람을 꾸짖고, 잘한 사람을 옹호하는 사람의 입장에 계셨다. 그래서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잘해야죠.”

-그럼, 잘해야지. 그래도 아들이 결혼 얘기를 꺼낸 걸 보니, 마음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엄마는 한시름 놓았어. 이대로 헤어져서, 우리 유진이랑 연락 못 하면 어쩌나 좀 걱정했거든.

“벌써 우리 유진이네요?”

-그럼? 엄마는 유진이한테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좋은 시엄마가 되어주고 싶어.

“…….”

-물론, 지금 당장은 좀 그렇고. 너희 둘이 좀 더 세상을 알게 되면? 그때.

“하하, 저도 지금은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다행이다. 엄마는 그래도 이제 마음이 좀 놓이네. 좋은 사람을 아들이 놓칠까 봐 걱정했는데.

그 말에, 지영은 그냥 잔잔히 웃고 말았다.

역시 어머니.

지영은 어머니한테 전화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확신이 섰다.

저 사람과 평생 함께 가려면, 남들과는 다르게 가야 한다는 확신이.

“그런 걱정 이제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지영은 좀 늦게 그렇게 대답한 뒤에, 동생의 연기가 끝나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발견하곤 손을 흔드는 양유진에게, 마주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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