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91화
191화. 나의 무사님(5)
사실, 원래는 이선영에게 이시카와 사오리에 관한 문제를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할 생각은 있었다.
앞으로 드라마에 들어가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질 거고, 그러다 보면 이시카와 사오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문제는 그때 그 영상통화가 시발점이 됐다는 것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을 짓는, 책임을 짓고 드라마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임은진을 통해 그녀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실제로 어제는 이시카와 사오리,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화상으로 대화도 나눴다.
그쪽은 사오리, 양친이 나오셨고 지영은 장세리 대표님과 김지영 대표님, 그리고 지영과 임은진이 함께 했다.
귀화.
이건 솔직히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사오리는 몰라도, 유리코만 해도 한국에는 큰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냥 문학이 좋은 소녀였다. 한국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아이였다. 친구들도 전부 그곳에 있고, 한국어는 아예 할 줄도 몰랐다.
그런 유리코도 유리코지만, 문제는 부모님이다.
교포 2세끼리 만나서 가정을 꾸렸고, 그 슬하에 태어난 게 사오리와 유리코 두 자매였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는데, 부모님들의 상황이 문제였다. 이시카와 진과 이시카와 나나코, 이 둘은 한국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다행히 교포 2세라 한국어를 어렵지 않게 구사는 하지만, 생활 터전은 그래도 일본이었다.
사오리와 유리코가 독립할 때까지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두 사람이 한국으로 오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사오리가 SNS에 올린 도복과 지영의 사인, 그리고 영상통화 사진은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지영이 들어가 봤는데, 욕이 가득했다. 특히 재일교포 3세라는 게 밝혀지면서 조센징이라는 단어는 10개의 댓글 중 최소 8개에는 달려 있었다.
쉽게 가라앉지 않을 문제였다.
이 문제 때문에 유리코는 결국 학교도 쉬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이 사실이 알려져 이지메를 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 문제가 가라앉는다고 해도, 일본의 특성상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럼 사오리의 유도 생활은 앞으로 지난하게 어려워질 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상 대화였고, 다행히 두 분은 직장과 터전 문제만 자리 잡을 때까지 해결이 되면 귀화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결정은 당연히 유도소녀이자 천재, 신성으로 불리는 이시카와 사오리 때문이었다.
지영은 천재라고 불리는 이시카와 사오리의 시합 영상을 구해서 봤었다. 그리고 전일본 대회에서 1회전부터 결승까지 한판을 돌리는 영상을 보고는, 천재라고 인정했다.
‘여자 유도가 아니야. 남자 유도에 가까웠어.’
남자와 여자의 유도는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축구나 농구, 배구를 보더라도 남자부 경기와 여자부 경기는 같은 룰 속에서 시합하지만, 양상은 조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남자부는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다면 여자부 경기는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친다. 남자부가 시원시원하다면, 여자부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묘미가 있다는 소리다.
유도도 그랬다.
남자부는 시원시원한 느낌이 강하다면, 여자부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다.
보편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사오리는 남자처럼 시합했다.
기술, 잡기, 경기 운용까지.
자세야 거의 대동소이한데, 그래도 남자란 느낌이 났다. 보이시한 매력 때문인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애초에 그냥, 타고난 재능이 여자의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지영은 안자이 히카리를 봤다.
‘그녀도 그랬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말 남자처럼 시합하는 느낌이 났다.
그런데 이시카와 사오리가 그랬다. 타고난 천재의 재능이 또래를 압도하고 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이시카와 사오리가, 한국으로 귀화하면?
아마 여자 유도의 신성으로 곧장 떠오를 거다. 적어도 지영이 봤을 때 사오리는 지금 한국에 던져 놓으면 생태계 교란종 등급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정말 컸다. 물론, 지금처럼 기량이 상승한다면 말이다.
어쨌든 이런 사오리의 재능을 썩히고 싶지 않은 부모님은 귀화에 긍정적이었다.
그럼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닌가?
맞다.
그대로 진행만 된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사오리의 앞길에 좀 더 곱고 단단한 비단을 깔아주고 싶었다. 자신 때문에 밝게 웃긴 하다만, 그래도 전부 감추지 못한 슬픔과 아픔을 엿봤기 때문에 지영은 그녀를 끝까지 챙겨주고 싶었다.
그게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라 느끼고 있었다.
만약 그 아이가 그냥 순수 일본인이라고 했었어도, 그래도 지영은 끝까지 챙겼을 거다. 그래서 이선영을 보자마자, 그녀를 위해 더 깔아줄 수 있는 비단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이시카와 사오리의 프로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선영을 보며 지영은 좀 미안했다.
자기가 인터뷰를 해주지 않아 시달렸다고 했는데, 이런 일을 부탁하게 돼서였다.
“이시카와 사오리? 누군데 얘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영은, 담담하게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던 그녀가 하,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 귀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도복에다가 사인을 해줬던 아이가 SNS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테러당해서, 그 가족을 전부 귀화 추진한다는 거잖아?”
“네, 간추리면 그렇죠.”
“근데 내용이 많네?”
“그건 일본 흥신소에서 사오리 가족에 대한 문제를 조사한 거래요. 좀 봐봐요. 기가 막히니까.”
“그래? 어디 보자…….”
이내 다시 서류에 집중하는 이선영.
일본의 흥신소는 매우 잘되어 있는 편이다. 그리고 능력도 정말 좋다. 심지어 인기도 좋다. 오죽하면 매해 흥신소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나오겠나. 정확히는 사립 탐정? 그런 직업이란 것 같은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남 뒷조사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점이었다.
임은진은 예전에 일본에서 활동할 때 그쪽 지인들을 중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겼고, 고작 4일 만에 이 정도 정보를 보냈다. 지영이 그중 기가 막힌다고 했던 사유는, 재일교포가 받는 서러움이었다.
사오리의 아버지 이시카와 진은 좋은 대학을 나왔다. 무려, 일본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그래서 당연히 좋은 회사에 들어갔고, 일도 정말 잘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 직급으로는 그냥 과장이었다. 왜? 재일교포 2세이기 때문에 진급에서 계속 밀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신문에도 날 정도로 대단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전력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그냥 특별상여금? 그런 것만 받고 인사고과에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시카와 진은 회사에서 만년 과장이라 불렸다.
이는 이시카와 진이 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능력이 좋으면 뭐 하나, 임원 진급 자체가 막혀 있는 상황인데. 외국인 임원은 가능해도, 한국인 임원은 불가능하다는 회사 기조가 그런 건데.
그리고 진과 결혼하면서 사에지마 나나코에서 이시카와 나나코가 된 두 자매의 모친도 재일교포라 학창 시절 정말 많은 이지메를 당했었다.
그런 얘기들이, 저 종이에 담겨 있었다.
서서히 찌푸려지는 이선영의 미간. 내용이 정말 별로니, 저렇게 찌푸려지는 것도 당연했다. 지영도 저걸 읽을 때는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을 정도였다.
차별.
저 안에 담긴 이시카와 가족의 일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차별이었다.
이선영이 이시카와 가족사를 내려놨다.
“이야, 사오리가 올림픽 금메달만 따면, 이건 이 자체로 아주 훌륭한 시나리오가 되겠다.”
이선영의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하하, 웃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 이런 스토리에 또 환장하잖아? 크, 일본에서 받은 차별로 인해 한국 귀화! 그런 일본을 올림픽 결승전에서 만나 한판승! 짜릿하지? 거기에 가족사까지 살짝 들어가면 이건 천만은 반드시 나오겠다.”
“사오리가 금메달 따면, 제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제작해야겠는데요?”
“오! 그럼 그때 나도 투자 좀 할게. 후후. 그래서 내가 해줘야 할 게…… 이 스토리를 잘 포장해서 기사로 내는 일?”
“네, 귀화가 정해지면요.”
귀화하고 싶다고 무작정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쪽에서 도우면 일반인이 하는 것보단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긴 하다. 아무래도 지원이 재단 차원에서 들어갈 테니, 확실히 수월하긴 할 것이다.
“유도협회는 안 나서지?”
“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나선 일이에요.”
“어? 개인적으로?”
“네. 친구들도 다 알고 있긴 한데,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거거든요. 이시카와 사오리의 후견인도 제가 할 생각이고.”
“……후견인까지? 너 이제 고3인데?”
“고3은 후견인 되지 말란 소리 있나요? 나이로 문제가 되면 뭐 좀 나중에 해도 되고요. 그때까진 연희 스포츠 통해서 하면 되니까.”
“책임을 지겠다. 그런 거지?”
“네.”
당연하다.
애초에 이 문제는 자신이 팬서비스를 굳이 해줘서 일어난 일이었다.
유도복에 해준 사인도 사인이지만, 영상통화가 특히 문제가 됐다. 사오리는 그 영상통화를 저장했고, 거기서 짧은 부분을 잘라서 올렸다.
지영의 얼굴이 나오고, 사오리가 지영을 확인하곤 어쩔 줄 몰라 하는, 정말 수줍어하는 그 장면과 지영이 수술 잘 받고, 재활도 잘 받고, 훌륭한 유도선수가 되라는 덕담을 해준 영상을 올렸는데 이 두 개가 가장 큰 문제가 됐다. 두 번째 영상에서 사오리가 감격해 울었던 모습이 특히…… 제일 문제가 됐다.
일본의 유도 영웅에게 반칙패란 수모를 안기며 무도의 성지인 무도관에서 꺾어버린 지영은 사실상 일본인의 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이 사태의 절반은, 그날 사인을 해주면서 영상통화를 걸어 달라고 한 자신에게도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그 사람들이고.’
사오리를 욕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도 지영은 이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진짜 이런 얘기를 너랑 할 때면, 매번 놀라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네? 뭐 당연한 얘기잖아요. 제 책임이 적어도 절반은 되는데.”
“야, 보통은 그런 생각 안 하거든?”
“해요.”
아마도.
적어도 자기 주변에 네 명쯤은 분명히 있었다.
“그래, 뭐 놀라워도, 웃기게도 또 놀랍지도 않네. 어린 독지가로 사는 넌데. 뭐가 또 놀랍겠어. 그럼 나는 이 기사로 이 아이가 한국에서 귀화할 때 환영받게 해주면 되는 거지?”
“네. 가족사는 조금 숨겼다가, 일본 쪽에서 막 뭐라고 하면 써먹으시고요.”
“그 정도야 내가 조절하지. 인터뷰를 좀 하고 나면 충분히 좋은 기사 나오겠다. 와, 오랜만에 일다운 일 좀 하겠네.”
“어? 서울 와서 여태 놀았어요?”
“뭐만 하려고 하면 또 사고 친다고 난리들이어서. 좀 조용히 지냈지. 요즘엔 너한테 인터뷰 좀 따라고 해서 이런저런 핑계 대고 도망만 다녔고.”
“하하…… 죄송해요. 도와주지는 못하고 이런 부탁만 해서.”
지영의 말에 이선영은 피식 웃었다.
“작년에 코인으로 충분히 값은 충분히 치렀거든?”
“에이,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저나, 누나나.”
“뭐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너희들 사정은 잘 알잖아. 그러니 내가 도와주지 못할망정, 귀찮게는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이런 기사, 나 좋아해. 후후. 오랜만에 사람 냄새 기사 쓸 수 있어서 설레기도 하고.”
다행이다.
이렇게 말해줘서.
솔직히 저번에도 인터뷰를 거절해서 좀 미안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니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나중에, 나중에 저희 인터뷰 같은 거 다시 시작하면 꼭 누나랑 단독으로 할게요.”
“너 그 말, 약속이다?”
“넵, 약속입니다. 손가락 걸까요?”
“어, 해. 이건 남겨야지.”
찰칵. 찰칵. 찰칵!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고, 복사까지 하는 걸 찍고 나서야 폰을 내려놓는 이선영이었다.
이선영이 합류해 주자, 준비는 거의 끝나갔다.
‘이제 남은 건 일자리와 집인데…….’
그건 연희 스포츠 재단에 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이시카와 진.
무려, 동경대를 졸업한 이시카와 진은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에 한국어까지 할 줄 아시는 엄청난 언어 스펙의 소유자였다. 일본 억양이 강하겠지만 그거야 차차 고쳐가면 되는 거고, 한국어가 되니 이곳에서 정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언어 말고도, 이시카와 진의 업무능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그러니 처음에는 좀 방황해도,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인 나나코 씨도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되시는 분이다 보니, 괜찮을 거다.
아이들 학교는 연희 초중고가 있으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숙소는 연희 스포츠 재단에서 당연히 해결할 수 있고.
이게 해결되면, 정말 마지막으로 남은 건 귀화 의사다. 거의 9부 능선에 왔지만 그걸 넘어서서 하겠다는 확언이 있어야만 추진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거절하면 지금까지 이선영과 나눈 대화가 모두 물거품이 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영은 그 결정도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선영과 만나고 이틀 뒤인 주말에 이시카와 가족은 한국으로 귀화를 결정했고, 지영은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마음에 짐을 던 지영은 나의 무사님에, 온전히 집중했다.
그 뒤로 시간은 공평하게 흘렀지만, 지영에겐 체감상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리딩 날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