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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89화 (18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89화

189화. 나의 무사님(3)

지영의 한마디에 분위기는 대번에 가라앉았다.

필모라고 해봐야 고작 예인으로 살어리랏다의 비중 높은 조연 역할 하나밖에 없는 신인배우가, 대놓고 제작발표회 불참을 선언했다.

그것도 감독과 작가 앞에서.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야 얼추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숨을 쉬는 것 정도로 감상을 내놓았지만, 아마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이 자식 미친 거 아냐? 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제작발표회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은 아니었지만, 요즘은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먼저 화제 몰이의 선봉장으로 세우는 게 대본리딩과 제작발표회였다. 이 두 행사를 통해 일단 화제성을 키우는 건 요즘 트렌드였다.

예인으로 살어리랏다도 그랬다.

그 드라마도 대본 리딩과 제작발표회 등으로 화제성을 끌어모았다. 당시 지영은 제작발표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때는 주연을 포함해, 제작발표회에 나갈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주인공.

맡은 배역이 무려 남자 주연이다.

정은정 작가가 지영을 두고 캐릭터를 만든 만큼, 지영의 참석은 사실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미안하지만, 정말 죄송하지만, 지영은 자신의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이는 어제저녁에, 친구들과 얘기 끝에 정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의견은 장세리 선배님도 충분히 이해해 주셨다.

“음, 곤란하군요. 그건.”

이상익은 역시, 곤란하단 말로 심기를 내비쳤다.

주연배우가 제작발표회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이 정도로 반응한 것도 사실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죄송합니다.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 전원이 언론 앞에 서지 않기로 정해서요.”

“배우는 언론에 노출되어야 하는 직업입니다. 그건 알고 계시는 겁니까?”

차분한 어조로 되물어오는 이상익 감독.

질책하는 게 아니라, 진짜 혹시 모르나? 하는 심정인 것 같았다. 지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의 언론이 없었다면 지영은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거다.

외모를 이용해 언론에 타서 유명세를 끌어낸다.

사실 이게 첫 번째 스텝이었다.

그다음은 쉬웠다. 연희고 아이돌 자체가 워낙 재능과 외모, 인성 자체가 장난 아니었기 때문에 팬은 자연스레 늘어났다. 그리고 그럴수록 연희고 아이돌을 원하는 곳이 많아졌다. 예인으로 살어리랏다가 그랬고, 나의 무사님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언론을 이용했으면서, 언론을 이제는 배척한다?

‘상관없지. 어차피 서로 이용한 거니까.’

언론이 설마 연희고 아이돌이 너무 좋아서 그랬을까?

전혀 아니다.

언론이 연희고 아이돌을 다룬 건, 지영과 친구들이 기삿거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조회 수가 나올 법한 기사의 소재로 다룬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래서 하지도 않은 말로, 있지도 않은 일로 지영과 친구들을 공격했다.

그것도 정도를, 선을 아예 넘어서 공격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그런다라……. 헛. 이거 참.”

어이가 없어서 웃는 이상익 감독에게, 지영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뭐, 근데 그럴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어제 입국했을 때 기자들 앞에 서지 않은 걸 보고요.”

이상익은 그렇게 말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지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작가님.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정은정 작가에게 이상익이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제 대본이 촬영만 된다면, 다른 건 다 괜찮아요.”

“하하, 하긴. 우리 작가님은 그런 성격이셨지. 좋습니다. 작가님도 이렇게 얘기하니 제작발표회는 불참하는 걸로 합시다. 하지만 대본리딩은 안 됩니다. 그것만큼은 저도 양보 못 해요.”

이상익 감독의 말에 지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날은 세상이 두 쪽이 나도 꼭 참석할게요.”

“하하, 세상이 두 쪽 나면 드라마도 날아갈 텐데요, 뭘.”

뼈가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어서, 지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작발표회 문제가 해결되자, 미팅은 빠르게 진행됐다.

리딩은 이번 주 토요일이고, 제작발표회는 다음 주다. 그리고 촬영 스타트. 애초에 일정을 정해서 왔기 때문에 딱히 오래 걸릴 미팅이 아니었다. 그렇게 미팅이 끝나자 이상익은 그제야 사무적인 웃음을 벗어던졌다.

신기하게, 지영은 바뀐 그의 표정을 보고 그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지영 씨.”

“네, 감독님.”

부르는 것도 부드러워졌다.

“물으나 마나 한 질문 같겠지만, 혹시 액션은 자신 있습니까?”

액션?

당연하다…….

“아마 연기보다 액션이 더 나을 거예요. 투기 종목 선수들은 거의 모든 투기에 재능을 보이니까요.”

“오, 그렇습니까?”

“네.”

거짓말이 아니었다.

보통 투기 종목 선수들은, 몸을 써서 운동하는 다른 종목에는 확실히 재능을 보였다. 태권도, 복싱, 레슬링 등등, 몸을 쓴다는 재능은 거의 비슷해서 솔직히 큰 차이가 없었다. 구기 종목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확 달라지지만, 그래도 투기 종목 한정으로는 확실히 일반인의 기준은 아득히 넘어선다.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지영 씨는 액션팀과 합을 맞춘 시간이 적어서 좀 걱정했는데, 지영 씨 말처럼 되면 크게 문제는 없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말에 가서 계속 훈련받을 예정이에요.”

“오, 그래 주면 감사하죠. 하하. 참, 그런데 액션팀에서 유도 기술을 접목해 보자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음…….”

유도 기술을?

칼과 방패, 창을 들고 싸우는 사극에서 유도 기술은 쓰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 같았다. 안 그래도 액션신이 많다고 해서 틈틈이 살펴보긴 했었다. 그 유명한 아저씨부터 시작해서 액션으로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를 봤고, 자연스럽게 유도는 안 될까? 그런 생각이 들어 따로 찾아봤었다.

실제로 주인공에게 유도 선수 출신 특전사 설정을 넣은 드라마가 있긴 있었다.

그리고 액션을 살펴보고, 실망했었다.

합은 둘째 치고.

‘아예 어울리지 않았어.’

1 대 1 같은 경우라면 몰라도, 1대 다수의 대결에서 유도는 솔직히 어울리지 않았다. 유도 기술의 특성상 상대를 잡아야 하는데, 그 순간 우르르 달려들면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합을 맞추다 보니, 흐름이 뚝뚝 끊겼다.

전문 액션 배우를 썼는데도 그렇게 합이 어그러지는 걸 보면 지영이 한다고 해서 딱히 좋은 장면을 만들지는 못할 거다.

그게 지영의 생각이었다.

지영은 이런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아마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유도 기술 특성상, 상대를 잡고 바로 넘긴다고 해도 몇 초의 시간이 지나거든요. 그리고 넘어졌을 때는 아예 무방비일 거고요.”

“흠, 그렇기도 하겠네요.”

넘어져 있는데 창이나 칼을 찔러 넣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유도 기술은 아예 접목하지 않는 게 나았다.

드라마에 관해 좀 더 얘기를 나누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이상익 감독은 지영에게 이것저것 많이도 질문했다. 배우를 좀 더 많이 알고 드라마에 들어가는 게 그의 스타일이라는 걸 이연에게 중간에 들어서 지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표정이 참 풍부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훌륭한 MC면서, 훌륭한 청취자였다.

“그럼 시합 나갈 때마다 매번 10㎏ 가까이 감량을 하는 겁니까?”

“네, 제 평체가 80이 조금 넘거든요. 그럼 보통 7㎏에서 8㎏ 정도는 감량해요.”

“80이요? 겉으로는 매우 늘씬해 보이는데, 많이 나가네요? 그걸 매번 대회마다? 안 힘들어요?”

“힘들긴 한데, 이제 익숙해요.”

아니,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감량이었다.

특히 마지막 2㎏ 정도 남겨놨을 땐, 진짜 천하의 지영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목표한 바가 그곳에 있어서 언제나 이 악물고 하는 게 감량이었다. 이런 얘기를 솔직히 하지 않은 건, 그냥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서였다.

1시간 반 가까이 이어진 저녁 식사 후, 지영은 수정된 대본을 한 아름 받아 다시 청주로 내려갔다.

청주로 내려가면서, 지영은 솔직히 피곤함을 느꼈다.

강행군이었다.

아시아 선수권을 준비하고, 그리고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드라마 미팅으로 이어지는 건, 확실히 강행군이었다. 아무리 지영이 철저하게 체력 관리를 한다지만,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피곤해?”

“네, 조금요.”

“그럼 눈 좀 붙여. 도착하면 깨워줄게.”

“네, 죄송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눈을 감는 순간 지영은 거의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깐 잔 것 같은데 임은진이 깨워 눈을 떠보니 벌써 숙소 앞이었다. 임은진이 떠나고, 숙소로 올라온 지영은 길게 하품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좀 늦은 시간이라서 친구들은 다들 자는 것 같았다.

끼익.

하지만 아직 안 자는 친구가 있었다.

황석이었다.

“안 잤어?”

“응, 시나리오 좀 보느라.”

“어때? 괜찮은 거 있어?”

“음…….”

고민하는 걸 보니, 확 와닿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있는데 고르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불을 켠 지영은 소파에 앉았다.

“왜 뭔데? 무슨 일인데?”

“잠깐만.”

다시 방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앞에 와 앉는 황석. 손에는 세 개의 대본이 들려 있었다. 역시 고르지 못한 것 같았다.

“못 고른 거야?”

“응. 이 세 개가 제일 재밌는데, 다 똑같이 재밌어.”

“음…… 잠깐 볼게.”

“…….”

우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석.

지영은 피곤했지만 황석에게 이 길을 권한 것 자체가 자신이라서, 일단 같이 고민해 주기로 했다. 어차피 최종 결정은 황석이 하겠지만…….

‘그래도 의견은 내줄 수 있으니까.’

시나리오는 다행히 그리 길지 않았다.

지영은 황석이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가자 첫 번째 시나리오를 들었다.

가제: 버림받은 짐승들.

가제라고는 하지만, 일단 제목부터 굉장히 강렬하다.

내용은 간추리면, 폭력조직의 킬러로 키워졌다가 정체가 노출돼 버려진 자들과, 그 킬러들을 잡으려는 형사들의 얘기였다.

장르는, 액션 스릴러.

황석이 형사 역할을 맡더라도 이건 좀…….

‘너무 무거워.’

피가 난무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단 느낌이 진하게 들었다.

예쁘고 멋있는 역할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연희고 아이돌이란 이미지와, 어린 독지가 이미지를 훼손할 것 같은 작품은 거르는 게 낫다는 게 지영이나, 다른 친구들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걸 황석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고민한다는 건, 작품 자체가 마음에 든다는 뜻일 거다. 그래서 세 개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거고. 일단 더 대화를 해봐야 알 것 같았다.

두 번째 작품은 드라마였다.

이번엔 연예계를 그린 작품이었다.

제목: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는 죽었다.

이것도 제목이 참 강렬했다.

죽었다. 이런 단어는 거부감이 있어서 드라마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로 알고 있었다.

‘차라리 없었다가 나을 텐데.’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는 없었다.

이런 제목이면 좀 더 느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넘겼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예인으로 살어리랏다와 느낌이 매우 흡사하단 점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를 갈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했다는 뜻을 품은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었다.

연예계.

그 화려함에 속아 불나방처럼 달려들지만, 결국에는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그러니 예인과 비슷했다.

지영은 황석이 이 작품에서 맡을 역을 알 것 같았다.

매니저.

연예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들.

작품에 들어가면 연기는 배우가 하지만, 작품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든 걸 책임지는 게 바로 매니저였다. 황석은 극 중, 분명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될 거다. 이 작품에 들어간다면 말이다.

마지막 시나리오 하나.

“지영아!”

“응?”

“라면 먹을래?”

“라면…… 콜!”

좋지.

이 시간에 라면은 언제나 옳다.

다만 알면서도 근 몇 주는 감량 때문에 먹지 못했을 뿐……. 황석이 라면을 끓이느라 부산대는 소리를 들으며 지영은 시나리오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제목: 베터런(Veteran) 2.

연출: 오승완.

극본: 오승완.

“…….”

지영은 시선을 들어 주방을 바라봤다.

대체, 쟤는 뭘 고민한 걸까?

이 셋 중에서, 왜 하나를 고르지 못했던 걸까?

황석의 뒤통수를 가만히 노려본 지영은, 결국 라면을 끓여 가져올 때까지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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