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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83화 (18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83화

183화. 아시아 선수권(10)

목깃, 그리고 가슴 깃.

이 양쪽을 잡히고 목이 제압당한 상태라면 할 수 있는 게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선수들의 악력이 워낙에 좋아서 이렇게까지 잡히면 깃을 뜯어내는 것 자체도 쉽지 않고, 뜯어낸다고 해도 기다리는 건 반칙이다. 그걸 경험 많은 아브라함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경험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걸 선택해야 한다.

사력을 다해 뜯어내든가, 아니면 그대로 자세를 낮추고 반칙을 받든가.

지영은 제대로 잡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았다. 힘이 어마어마하게 좋은 선수라 뜯어내려면 뜯어낼 수 있겠지만 가슴 깃 하나 뜯어낸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목깃은 뜯어내기도 쉽지 않다.

그럼 아브라함이 어떤 선택을 할까?

지영은 발기술 모션을 몇 번 넣으면서 상대의 선택을 기다렸다. 절반은 먼저 딴 상황에 잡기까지 이렇게 유리하게 잡으면 뭘 어떻게 해도 본인이 유리하다는 걸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기다렸다.

무리하게 기술도 걸지 않고, 모션으로만 상대에게 겁을 주면서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맛테!

심판이 맛테를 외쳤다는 것 자체가 아브라함의 선택이었다. 그냥 자세를 딱 낮추고 기다렸다는 것 자체가 그냥 반칙을 받겠단 선택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도!

역시 아브라함에게 지도가 들어갔다.

이걸로 지영은 훨씬 더 유리한 포지션을 잡았다.

‘반칙 하나 더.’

지영은 바로 전략을 정했다.

어차피 절반도 먼저 땄고, 상대가 지도도 먼저 받았다. 하나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지만 하나만 더 들어가게 하면 아브라함을 정말 벼랑 끝에 세울 수 있다.

“지영아! 차분하게! 자세 낮추고!”

“…….”

지영은 김재정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전담 코치고, 훈련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신과 함께한 김재정은 스태프 중에서 지영의 스타일과 체력, 기술 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전기정 교수가 모든 면을 따지면 압도적으로 낫지만, 강지영이란 선수 하나만 봤을 땐 김재정 코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해줄 수 있는 코칭은 아주 기본적인 코칭이었다.

워낙 지영이 시합을 잘 풀어가고 있어서 코칭할 게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 주문했다. 지영은 그런 김재정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아브라함을 바라봤다.

아브라함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가 조급한 마음을 참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하지메 사인에 맞춰 아브라함은 바로 공세로 나왔다. 어깨를 말고, 마치 스모선수처럼 진군해왔다. 힘은 지영이 확실히 아래다.

지영이 체급에서 아무리 힘이 좋다고 한들, 피지컬에서 키워낼 수 있는 근력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한계치는 지영의 신장에서 걸렸다. 여기서 근력을 더 키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연히 민첩성이 떨어지고, 나아가 체중이 늘어 감량할 때 지금보다도 더한 지옥을 맛봐야 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지영은 민첩성, 근력, 순발력, 반응속도 등등을 생각해 지영의 신장에서, 본인의 스타일에서 가장 이상적인 피지컬을 완성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니었다.

신장은 지영보다 좀 더 작은데, 그는 민첩성, 순발력 등을 포기하고 근력을 거의 최대치까지 키웠다.

거기에 타고난 피지컬까지 합쳐지니, 힘은 도저히 지영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올 걸 예상하고 선수촌에서 한 훈련도 있었다.

바로, 밀어내기.

예능에서도 종종 나오는 게임이다.

그 게임은 실제로 한 공간에서 중심을 잡고 자신보다 힘이 센 상대를 받는 법을 훈련하기엔 아주 그만이었다.

지영은 연희고 중 가장 힘이 좋은 황석과도 했었고, 황석보다도 힘이 좋은 괴물 장대호와도 밀어내기 훈련을 했었다.

이 훈련은 목적이 분명해서 무작정 밀어내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스모처럼 그냥 밀어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유도를 하는 거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지영은 유도, 힘이 좋은 황석이나 장대호는 지영을 압박해서 기술에 걸리지 않고 내보내는 게 목적인 훈련이었다.

옛날 방식이지만, 그것만큼 확실한 훈련도 없었다.

지영은 왼발에 중심축을 두고, 자신의 주변 반경 1m 정도를 밀어내기 원으로 설정했다. 그러곤 아브라함의 저돌적인 돌진을 중심에서 좌, 우로 움직이며 막아냈다. 아브라함은 힘은 좋지만, 잡기 싸움은 약했다.

아마 힘으로 잡고 싶은 대로 잡기 전까지는 다 뜯어냈을 테니 굳이 잡기 싸움이 필요하진 않았을 거다.

그래서 제대로 겪어보니 잡기 싸움은 영 어색하고, 어설펐다. 그렇게 어설프다 보니 지영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잡기 한다고 손만 뻗으면, 그건 그냥 스모지. 잡기 싸움이 아니라.’

지영은 여유롭게 중심축을 이동시키며 모두걸기, 발목받치기로 응수했다. 그러자 중심이 앞으로 쏠려 몇 번이나 고꾸라질 뻔한 아브라함. 그는 결국 몇 번 더 시도하더니 힘으로 밀고 나오는 걸 포기하곤 지영의 가슴 깃을 얌전히 잡았다. 그래서 지영도 어깨 깃을 잡았다. 그리고 업어치기.

지영의 업어치기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업어치기다.

하지만 소매 깃도 제대로 못 잡았기 때문에 업어치기보단, 그냥 무릎 꿇기로 끝났다. 그리고 이건 명백히 실수였다.

맛테!

판정이 칼 같은 오늘 주심은 이걸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시도!

위장 공격이다.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철퍽 주저앉듯 업었으니, 위장이 들어갈 만도 했다. 절반을 뺏기고, 이제는 지도 두 개. 벼랑 끝이다. 지영은 자세를 더 낮췄다. 남은 시간은 2분. 아브라함은 체력이 떨어지지 않은 지금 승부를 분명 보려 할 게 분명했다.

하지메!

역시 시작과 동시에 공격.

지영은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밀고 자세를 낮추고 허리를 감아오는 손을 받아서, 그대로 업어버렸다.

힘을 이용한 깔끔한 카운터.

텅!

한팔업어치기였다.

잇폰!

볼 것도 없이 한판이었다.

지영은 대자로 뻗은 아브라함의 위에서 내려와, 숨을 후! 내쉬었다. 와아아! 도복을 고치려고 띠를 푸는 순간에서야 열렬히 울리고 있던 환호가 들렸다. 거의 사방이 고요한데, 한쪽에서만 들리는 환호.

지영은 그쪽을 잠시 돌아봤다.

타향 땅에 살면서 온갖 설움을 겪었을 어르신들이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모든 기반이 이곳에 있어 불가능한 어르신들. 늘그막 노년에 이곳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와, 태극기 흔들며 자신의 승리를 기뻐해 주시는 분들을 보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다시 앞으로 돌아서 도복을 전부 고치고, 승자 선언을 받고 악수를 한 뒤 나가면서 지영은 한국에 있는 분들도 저분들처럼 좋아해 줄까?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김재정이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잘했다! 잘했어!”

김재정은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김재정의 모습에서, 저 멀리서 방방 뛰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지영은 한국 유도가 그간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깨달았다.

한국 유도는, 올림픽 몇 번 전까지만 해도 최고였다.

체급을 미친 듯이 휩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금은동 하나씩은 반드시 따갔었다. 그래서 아시아의 맹주, 패자라고 불렸었다.

그러나 그런 타이틀을 빼앗기고 지금까지, 한국 유도는 일본에게 정말 압도되어 있었다. 아니, 말 그대로 압살이었다.

도쿄 올림픽의 성적이, 그 모든 걸 말해줬다.

아시안 게임, 그리고 세계 선수권에서도 일본은 한국을 완전히 압도했다.

하지만 오늘, 떠오르는 신성들이란 평가를 받는 연희고 황금세대가 완벽하게 일본을 꺾었다. 그리고 여자부 한일전에서도 이겼고, 일본도 금메달이 세 개지만, 한국도 세 개였다. 그리고 그 세 개의 금메달 전부 일본을 꺾고 거머쥔 거니, 방방 뛸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그런 김재정 코치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마주 안아 다독여줬다.

그러곤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전기정 교수에게 갔다. 전기정 교수는 그냥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렇게 될 게 당연했다는 것처럼,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지영의 어깨를 그냥 토닥이는 걸로 수고했단 말을 대신했다. 그 위로를 받은 지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고생했다. 도복 갈아입고, 시상식 준비하자.”

“네.”

지영은 황석이 준 백색 도복으로 갈아입고, 시상식을 준비했다.

도복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관중은 이미 절반이나 빠져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미야모토 신지가 내려와 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안자이 히카리도 있었다.

그녀에게 눈인사하고, 신지와 마주 서자 친구들이 뒤에 섰다.

“오랜만이네?”

우승 축하해가 아니라, 오랜만?

지영은 신지가 우승을 축하해 줄 마음이 없다는 걸 대번에 깨달았다.

“그러게. 잘 지냈지?”

“그럼. 나야 잘 지냈지. 난 네가 드라마 찍길래 유도 그만둔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그럴 일 없어. 유도에도 목표가 있으니까.”

“그래? 무슨 목표인데?”

“그랜드 슬램.”

“…….”

그랜드 슬램이란 말에 신지의 눈매가 대번에 꿈틀거렸다.

지영이 그걸 이루겠다는 말은 자신을 다음 대회에서도 꺾겠다는 말이었으니까 자존심 강한 신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깝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랜드 슬램을 정말 쉽게 말하네?”

“글쎄.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캐릭터가 변했는데?”

신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여기서 선전포고를 날려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지금 해놓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신지. 넌 선을 너무 넘었어.”

“선? 무슨 선?”

“예시예종이 정해놓은 선.”

“……뭐야, 내가 뭘 잘못했다는 얘기야?”

신지의 인상이 찌푸려지자, 지영은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도전적으로 노려보는 신지. 좋은 관계이긴 했다. 그래도 라이벌이었으니까. 라이벌이 있다는 건, 실력을 올려주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신지와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야나기 선수들이 왔을 때도 가이드를 해줬을 만큼, 그만큼 분명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했지. 적어도 시합 중에 상대를 가지고 노는 짓만큼은 하지 말았어야지.”

“……안호진?”

“그래. 실력이 월등했으면, 그냥 그대로 이겼으면 돼. 그럼 서로 깔끔한 거지.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스포츠의 명제가 적용될 테니. 그런데 넌 어땠지? 수백, 수천만이 보는 중에 너는 상대를 가지고 놀았어. 그걸로 한 선수의 인격을 박살 냈지.”

“…….”

지영의 말에 신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이는 그의 마인드 자체와 위배 되는 얘기였다. 지영이 본 미야모토 신지는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선수 취급도 하지 않는 부류였다. 아니,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말이 맞았다.

“그리고 거기서 끝냈어야지. 세계 선수권에서도 그랬지? 그걸로 한 선수의 정신이 죽었어.”

안호진은 두 번이나 미야모토 신지와 붙었고, 그 결과 정신이 완전히 죽었다.

어떤 것 때문에 그렇게 죽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발단 자체를 신지가 제공했다는 것은 무조건 사실이었다.

“너도 오늘, 쇼헤이 상에게 내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한 거 아냐?”

신지는 그렇게 되물었지만,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전략이었고. 무도관에 일본 유도 영웅의 반칙패를 선사할. 가지고 논 게 아니지. 호진 선배의 복수를 생각한 건 맞지만, 굴욕을 주려고 한 의도도 있긴 했지만, 너처럼 가지고 놀진 않았어.”

같은 말이다.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궤변이기도 했다.

그걸 지영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자신이 신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세계인의 앞에서 안호진 선배가 당한 수모.

그건 확실히 갚아줄 생각이었다.

“좋아. 축하해 주려고 내려왔는데. 선전포고만 들어버렸네. 다음 대회가…… 세계 선수권이지? 그때 보자.”

신지는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려 사라졌다.

안자이 히카리는 그런 신지와 지영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신지를 쫓아갔다.

“선전포고 제대론데?”

친구들의 말에, 지영은 그냥 피식 웃었다.

지영은 자신이 이런 게, 시합의 열기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신지를 보자마자 공격적인 언사가 나갔다.

“뭐, 어차피 겪고 가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렇긴 하지. 열 좀 내려. 이제 시상식인데. 기분 좋게 웃어야 사진도 잘 찍힌다?”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그냥 웃고는, 저 멀리서 종종 달려오는 진행요원을 향해 걸어갔다. 물론 이성진도 함께였다. 잠시 후, 지영은 그랜드 슬램에 필요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그런 지영의 모습은 한국에 대서특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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