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82화
182화. 아시아 선수권(9)
“어, 강지영 선수 갑자기 물러납니다. 왜 저러죠?”
배영우의 말에 조인선 교수는 그 모습을 잠시 보더니, 이내 알아차렸는지 바로 그 말을 받았다.
“표정이랑 제스처를 봐서는 아무래도 상대 아브라함 선수에게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냄새요?”
“네. 유도 경기는 일단 시합 중에 상대 선수를 상해할 수 있는, 혹은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들어가야 해요. 반지, 목걸이 등이 거기에 들어가죠.”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냄새도 문제가 됩니까?”
“네. 악취가 나면 집중이 깨지잖아요? 그래서 향수도 뿌리면 안 됩니다.”
“아, 그렇군요. 아, 냄새가 맞나 봅니다. 강지영 선수와 잠시 대화를 나눈 로델리 주심이 아브라함 선수에게 다가가 냄새를 확인하고는 뒤로 물러나네요. 음,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죠?”
“보통은 반칙패인데, 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잘 안 나오나 보죠?”
“네. 옛날이었으면 몰라도 요즘엔 샤워 도구가 워낙에 잘 나오잖아요? 그러니 이런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아니, 적어도 제가 선수 생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경우예요.”
“호, 그렇군요. 반칙패. 그럼 강지영 선수 우승이 확실히 되겠네요?”
“그럴 겁니다. 그런데, 음…… 좀 찜찜하겠죠?”
“하하, 그렇긴 하겠네요. 자, 심판이 어떤 판정을 내릴지,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강지영 선수가 시원하게 한판으로 우승을 거둬줬으면 하는데, 이런 제 욕심대로 되면, 아무래도 제가 욕을 많이 먹을 테니 반칙패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아주 많은 룰 개정이 있었던 유도다.
20년대부터 2023년인 지금까지 룰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어떤 때는 선수 친화적으로, 또 어떤 때는 선수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룰이 계속 변했다. 20년대 초반에 변한 룰 중에는 시합 중에 토하면, 그대로 반칙패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냄새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나 기타 여러 나라는 샤워 도구가 잘 나와서, 몸에서 악취가 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20년대에도 피죤을 써서 도복에 향기가 날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 선수들에게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이고, 다른 나라는 달랐다.
당장 바다 건너 있는 두 나라만 해도 달랐다. 일본도 샤워 문화가 잘 발달 되어 있어서 한국과 다를 게 없었지만, 중국은 달랐다. 샤워 문화가 보급이 되지 않아 도복은 물론, 안에 입은 티셔츠에서도 냄새가 났었다.
그 냄새는, 암내라고 하는 냄새의 종류였다.
그런 냄새가, 여자 선수에게서도 났었다. 그러나 냄새에 대한 룰의 입법으로 훈련 때는 몰라도 대회 때는 웬만하면 다 제대로 준비 해오기 시작했다.
고생고생해서 나오는 대회인데, 도복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반칙패를 당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그래서 요즘은, 아니, 적어도 10년도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23년인 오늘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아, 심판이 강지영 선수와 뭔가 상의를 하는 것 같네요.”
“음, 이런 경우도 드문데, 오늘 경기 참 재밌네요.”
“네, 드문가요?”
“네, 심판이 판정을 내릴 때는 보통 밖에 부심과 상의하거든요. 그런데 선수와 지금 상의를 하잖아요? 이런 경우도 저는 지금 처음 봐요.”
“오,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그럼 무슨 상의를 하는 중일까요?”
“음, 제 생각엔 아마도…….”
“아, 시합 속행됩니다! 반칙패 없이 경기! 시작합니다!”
“경기를 재개하자고, 강지영 선수가 건의한 게 아닐까 싶네요.”
“어! 아! 그럴 수 있겠네요! 페어플레이 정신! 강지영 선수 멋있습니다!”
“후후, 역시 아직, 애네요.”
조인선 교수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 * *
지영이 물러나자, 심판은 바로 맛테! 그쳐를 선언했다.
그러곤 곧장 다가와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도복에서 냄새가 납니다.”
“냄새? 악취?”
“…….”
확인차 묻는 말에 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더니, 심판은 곧장 아브라함에게 가서 코를 댔다.
킁킁, 킁킁.
그러곤 자기가 맡아봐도 냄새가 좀 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억울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리며 항의했다. 익숙한 냄새면 아마 자신도 몰랐던 것 같았다.
그러나 냄새가 나는 건 나는 거다.
지영은 이렇게 두면, 게임이 잘하면 반칙패로 끝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건 내키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반칙패 승.
나쁘지 않았다.
그런 경우는 수두룩하게 나오니까.
그러나 지영은 이번에 그렇게 우승하고 싶진 않았다. 다른 대회였으면 어떻게 이기든지 별로 신경 쓰지 않겠는데, 이번엔 달랐다.
지영은 오늘,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유도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대회에 나오기 전에도 황금세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었다. 그래도 어린 독지가 사건으로 무작정 욕하는 기사는 90% 정도 감소했지만, 경기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의문이란 의심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다.
과연, 룰을 바꿔서 이 아이들에게 아시아 게임이란 메이저 대회에 기회를 주는 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한 기사도 당연히 있었고. 지영은 인터넷을 하진 않았지만, 남들이 얘기해주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 의문을 씻은 듯이 날려버리려면, 경기력으로 증명하는 것밖엔 없었다.
그런데 반칙패로 승리하면? 오노 쇼헤이를 잡았지만, 유도는 끝날 때까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정말 어려운 스포츠다. 그래서 반칙패로 금메달을 거머쥐면 경기력에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어 다닐 건데, 그건 싫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기사 자체가 나오는 게 귀찮았다.
그래서, 경기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누구도 자기의 경기력에 의문을 품지 못하게,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음?”
부심과 얘기 중이던 주심이 지영을 돌아봤다.
“경기할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지영이 다시 영어로 괜찮다고 하자, 주심은 지영의 말을 이해했는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주심은 곧장 부심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러곤 다시 시합 준비.
미련하다고?
‘미련한 건 맞지. 맞는데…….’
그래도 제대로 시합으로 끝내고 싶었다.
그랜드 슬램의 첫 단추를 반칙패로 꿰기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메!
시합이 시작됐다.
그러자 고맙다는 표정으로 아브라함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지영은 그 의미를 알아서 가볍게 툭 쳐주고는, 자세를 잡았다.
시합이 다시 시작됐다.
지영은 평소처럼 어깨를 쭉 내렸다.
그러자 특이한 자세에도 아브라함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손을 뻗어 지영의 등 깃을 잡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지영은 손을 아래로 넣어 마찬가지로 등 깃을 잡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역시 냄새가 훅 풍겼다.
암내는 아니다.
이상한 향수를 뿌린 것 같진 않았다. 이건 몸이 아니라, 도복 자체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였다. 지영은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쉬며 냄새를 참았다. 이런 경우에는 나중에 호흡 자체에 문제가 생기겠지만, 지영은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참을 수 있으니, 이제 시합에 집중하는 지영.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힘이…… 장사였다. 등을 잡은 손에서, 아귀에서 엄청난 힘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엎어져 있는 상대를 허리에 껴 뽑아 한판을 던질 정도의 괴력.
지영은 그 힘이 너무 확실히 느껴져서 지영은 일단 거리를 좀 두기로 했다. 똑같이 잡아서는 힘에서 너무 불리하단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등을 잡았던 손을 슬쩍 놓고 가슴 깃을 잡은 다음, 단단히 받쳐서 밀었다. 그러자 거의 옆구리끼리 맞붙어 있던 거리가 단번에 벌어졌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거리는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힘 정도면 이 거리를 좁힐 힘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다. 일단 간을 보겠다는 것처럼 설렁설렁 움직였다.
하지만 지영은 그렇게 물렁물렁하게 시합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훅!
손목을 툭 채 올리면서 그대로 말아업어치기.
이성진이 보여줬던 기가 막힌 말아업어치기 정도는 아니지만, 지영도 업어치기는 확실한 테크니션이었다. 그런 갑작스러운 기술에 아브라함의 몸이 빙글 돌아갔다.
힘이 좋은 선수들의 최대 약점은?
그 힘의 중심이 한 번 꺾이면, 걷잡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영은 아예 어깨 사이로 빠져나와, 제대로 몸을 말았고, 아브라함은 처음은 탐색전을 하려고 잠시 방심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영이 빙글 돌아 자세를 잡을 때까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차이가, 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갈랐다.
홰액!
쿠웅!
제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너무 제대로 떨어졌다. 완전히 빙글 말려 오는 느낌이 들어서 강하게 챘는데, 완전히 빙글 돌아서 거의 엎어지듯이 떨어졌다. 지영은 반사적으로 심판을 올려봤고, 아브라함도 심판을 올려봤다. 심판은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들긴 들어 올렸다.
와자리!
절반.
자기가 봤을 땐 거의 엎어지듯이 떨어진 것 같은데 허벅지나 어깨 면이 닿긴 닿은 것 같았다. 절반 사인이 나는 순간 아브라함이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앉아 있던 지영을 밀어 굳히기로 들어갔고, 지영은 곧장 누워서 굳히기 방어에 들어갔다.
손이 올라와 허벅지 안쪽을 잡더니 그대로 찍어 눌렀다.
힘이 워낙에 좋아서 그런지 잡힌 다리가 그대로 매트로 눌렸다. 하지만 지영은 다른 발로 상대의 골반에 막았다.
지영이 가진 최대의 약점.
서서는 다 잘하는데, 굳히기 실력은 서서 할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지영의 굳히기 실력은 조르기, 꺾기 스페셜리스트들에 비해서는 거의 어린애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선수촌에서 훈련한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주짓수 고수들과 오전 내내 굳히기 훈련을 했었다.
그 시간은 지영의 약점을 보완하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 훈련 기간 동안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상대가 위로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상대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로 상대의 골반부터 하체 라인을 밀어서 아예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게 최고였다.
이게 지영이 한 달간 가장 중점을 두고 훈련한 굳히기였다.
지영은 엉덩이만 매트에 닿은 상태에서 상체는 세워 V자로 만들었다. 그러곤 발로 아브라함의 전진을 막았다. 오래 막을 필요도 없었다. 10초에서 20초 사이. 딱 이 정도만 상대가 못 올라오게 막으면 심판은 보통 그쳐를 선언한다.
지영이 10초를 막아내고, 15초쯤 지나자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아브라함이 일어나는 순간 다시 냄새가 훅 피어났지만, 짧은 접전으로 몸이 제대로 열이 올라 아드레날린이 피어나기 시작해 처음보다는 확실히 괜찮아졌다.
하지메!
재차 이어지는 시합.
이미 절반을 빼앗긴 아브라함은 역시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자세를 한껏 낮추고 아주 신중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잡기 싸움. 평범하게 잡고는 이길 수 없겠다는 걸 알았는지 역시 한국 선수들이 상대로 하는 잡기 싸움을 걸어왔다.
‘지긋지긋하게 본 경기…….’
중동, 중앙아시아 권 선수들, 유럽 쪽 선수들은 물론 같은 아시아권 선수들까지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 기술 유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잡기에 죽어라 공을 들였다.
지영이 뻗는 손을 쳐내고, 지영이 어깨를 잡아도 쳐내고, 가슴 깃을 잡으려고 해도 쳐내고, 아브라함은 계속 지영의 손을 짧게 쳐냈다. 심판을 등지고 끊고 있어서 곧장 지도를 주긴 그런 상태.
“후우.”
지영은 그런 아브라함의 행동에 잠시 숨을 내뱉고는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급할 건 없었다.
절반을 먼저 따면, 상대가 어떤 전략을 들고나오든 여유가 생긴다.
잡기 싸움?
걸어오면 받아준다.
지영은 굳이 잡기 싸움을 안 하는 것뿐이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상대가 굳이 지는 상황에 잡기 싸움을 건다?
‘받아주지.’
잡기 싸움에도, 분명히 승자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지영은 그 싸움에서도, 철저하게 아브라함을 꺾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지영은 기습적으로 가슴 깃을 잡으면서 안뒤축을 툭 쳤다. 그러곤 흔들리는 상대를 반대쪽으로 잡고, 왼쪽에서 오른쪽 자세로 전환하며 목깃을 잡고, 그대로 숨통을 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