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79화 (17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79화

179화. 아시아 선수권(6)

유도는 생각대로 시합을 풀어나가는 게 참 힘든 종목이었다. 아니,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내가 생각했던 것대로 게임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감독의 역량, 선수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상대 또한 같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전략이나 전술을 잘 짜도, 선수의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반대로 카운터를 맞고 지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상대가 아예 더 뛰어나서 지는 경우도 있었다. 기록을 재는 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종목이 그랬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 걸 그대로 풀어나가는 선수나 감독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나중에는 명장, 혹은 위대한 선수로 추앙받았다.

유도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당장 한국 선수단의 감독인 전기정 교수가 그랬고, 심판을 보고 있는 다무라 료코 또한 그랬다. 본인의 생각대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력자들. 지금 지영이 그랬다.

한국 유도계에서, 지영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경기를 보면 이런 말들을 했다.

[경기하는 거 보면, 풀어나가는 게 참 기똥차다.]

특히 그중에서 반칙 관리 능력은 적어도 한국 유도계에서는 최상위급이었다. 애초에 사장된 방어 유도를 꺼내 장착했을 때부터 지영이 가장 신경 쓴 게 반칙 관리였다. 방어적으로 유도를 하다가 먼저 지도를 2개 받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 방어 유도는 아예 꺼낼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철저하게 반칙을 받는 타이밍을 죽여 왔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에는 자신이 먼저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습과 경험, 실전으로 완성된 게, 지금 지영의 유도였다.

쿠아트는 급했다.

아시아 선수권이지만 그래도 메이저 대회였다.

급으로 따지면 세계 선수권 아래의 대회였다. 그러니 이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질 수는 없었다. 지금은 8강, 한 판만 더 이기면 4강이다. 거기서 한 판 더 이기면 결승전이고, 져도 은메달이었다.

개인 최고 커리어를 달성하게 되는 거다.

거기에 이 체급의 최강자인 오노 쇼헤이가 떨어졌다. 대이변. 오노 쇼헤이가 진 경기를 발목 테이핑을 하느라 보지 못했던 쿠아트는 그가 방심해서, 혹은 운이 없어서 떨어졌을 거로 생각했다.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 선수가 실력으로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오노 쇼헤이를 실력으로 이겼을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잘하면 결승전까지 올라가고, 우승도 노려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반대편 시드에 있는 선수들의 면면이 다 자신이 국제대회에서 한 번씩은 이겨봤던 상대들이기에 더욱 기대감이 컸다.

우승.

은퇴 전 마지막 대회에서, 비록 아시아 선수권이지만 우승을 하고, 그리고 물러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히 그런 기회를 만들어준 한국 선수가 고마웠다.

같은 팀 스태프가 유도 선수지만, 배우도 한다고 했을 때는 그의 드라마를 꼭 챙겨보리라 다짐했다. 우승 기회를 챙겨줬으니 고작 드라마 한 편 정도는 당연히 봐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사인을 해달라는 말까지 했었다.

“이익……!”

그러나 그런 생각이,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힘은 분명 자신이 위인데, 상대는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반칙을 두 개나 받은 상태였다.

왜?

분명 평소 한국 선수를 만나면 쓰는 전략대로 했는데?

분명 그렇게 했는데 왜 반칙을 내가 두 개나 받았지? 그런 의문은 하지메! 소리에 사라졌다. 반칙이 두 개라는 건, 지금처럼 하다간 반칙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뭘 더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였다.

그는 본인의 기술이 한국 선수나, 일본 선수들처럼 정교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체급에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갖췄고, 그걸 통해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을 즐겨 사용했다.

그 정도로 힘을 갖춘 자신인데.

‘왜 밀리지 않지?’

분명 제대로 압박해서 밀고 있는데, 왜 계속 중간이지? 그런 의문 때문에 좀 더 힘을 강하게 써서 상대를 압박하는 순간, 몸이 빙글 돌았다.

쿠웅!

어? 하는 순간 상대의 얼굴이 아니라 갑자기 천장이 보였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통증이 천장이 보이는 이유를 깨닫게 해줬다.

빗당겨치기…….

상대를 계속해서 압박해 들어갔는데, 이 선수는 그걸 받아서 자신을 빗당겨치기로 돌려버렸다. 순간적으로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허.”

어이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그리고 국가대표가 되고 이런 시합은 처음이었다. 방심한 것도 아니었다. 평소 하던 것처럼, 시합 전 코치가 단단히 주의 준 것처럼 제대로 경기에 임했다. 본인도 천금 같은 기회를 방심으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아 정신을 분명 제대로 차렸다.

그 결과가 이거다.

그러니 승복하기로 했다.

일어나서 도복을 고쳐 입고, 승자 선언 뒤 악수를 할 때, 쿠아트는 진심으로 상대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한국의 어린 선수는 시원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를 받아준 뒤, 퇴장했다. 바우르잔 쿠아트는 경기장에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퇴장하는 순간까지도 한 가지를 깨닫지 못했다.

오늘 자신이, 가슴 깃 잡기 반칙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패자전이 시작될 때까지 그는 깨닫지 못했다.

* * *

4강이다.

아시아 선수권 4강에 안착한 지영은 역시 자기 생각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바우르잔 쿠아트는 역시 자신을 잡기로 몰아붙이려고 했다. 그리고 지영이 처음에 먼저 지도를 먹인 뒤, 경기를 잘 풀고 나가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엔 조급하게 밀고 오다가 빈틈을 허용했다.

3회전에서도 승패가 갈린 건 역시 잡기였다.

하지만 상대는 지영이 잡기 싸움 자체를 별로 안 한다는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배운 대로 어디를 잡히든 그냥 뜯어낸 건데, 그게 패착이 됐던 거다.

기술이 좋은 한국이나 일본 선수들에겐 절대 제대로 잡혀주지 마라.

이게 아예 습관화되어 있어서, 지영은 그걸 역이용해 시합을 쉽게 풀어나갔다. 지영은 이걸 준결승, 결승에서도 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준결승 상대는 뉴질랜드 선수였다. 아시아 선수권이지만 오세아니아권 선수도 같이 나오기 때문에 뉴질랜드를 포함한 몇몇 나라도 참가한 게 이번 대회였다. 4강까지 올라온 선수는 뉴질랜드의 드릭 사몬 선수였다. 나이는 이제 20살. 매우 젊은 선수로, 아까 시합하는 걸 봤는데 잡기에 집중하는 선수였다.

8강전에서 잡기 때문에 반칙 2개를 받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유리한 포지션만 고집하는 선수.

이런 스타일이면 지영이 상대하기 솔직히 편했다. 일단 자신이 잡기를 받아주지 않는 것에서, 그가 가장 잘하는 장점 하나는 지우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패자전이 한 게임씩 진행되고, 4강에 오른 정수원 선배의 시합이 시작됐다.

“정수원 파이팅!”

이성진의 응원에 정수원은 입장하려다 말고 이쪽을 보더니, 엄지를 들어 올렸다. 정수원의 4강은 일본 선수였다.

타카토 나오히사.

리우 올림픽 동메달, 도쿄 올림픽 금메달을 딴 현 세계랭킹 1위. 일본은 거의 모든 체급에서 세대교체를 감행했지만, 아직 -60만큼은 그의 뒤를 이을 선수가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타카토 나오히사와 정수원의 전적인, 전패였다.

3전, 전패.

세 번의 대회에서 전부 나오히사는 정수원을 꺾었고, 정수원은 자신의 천적인 나오히사를 이번 대회에서 또 만났다.

“지영아. 수원 선배 이길 수 있을까?”

다음 경기를 대기 중인 이성진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주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수원은 타카토 나오히사의 한 수 아래였다. 아니, 잘 봐줘야 한 수지 거둔 성적만을 본다면 두 수 아래로 봐야 했다.

아시안 게임 동메달, 세계 선수권 은메달이 전부인 정수원과 올림픽 금 하나, 은 하나를 딴 나오히사의 실력은 딱 메달의 급만큼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됐다.

메달이 실력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이 정도 차이가 난다면 잣대가 될 수도 있었다.

“아…….”

와자리!

시합 시작 1분.

정수원이 나오히사에게 어깨로 메치기 절반을 빼앗겼다. 막는다고 막았는데도 나오히사는 뒤로 빠지려는 정수원에게 덧걸이를 걸어 그대로 뒤로 찍어 눌러 절반을 땄다. 그리고 그렇게 빼앗긴 절반은, 다시 3분이 지나도록 정수원은 만회할 수 없었다. 결국 4분이 지나고, 정수원은 패자가 되어 나왔다.

그러곤 지영과 이성진을 지나쳐 그대로 퇴장했다.

지영은 그런 정수원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제게 패자의 모습이었다. 승자는 여유롭게 퇴장하고, 패자는 고개를 숙인 채 퇴장하는, 냉정하다 못해 비정한 세계.

‘난 대체 이런 세계가 뭐가 좋다고 이러고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성진의 입장으로 바로 사라졌다.

“성진아.”

“응?”

“지면 죽는다.”

“흐흐, 미쳤냐? 지면 얼마나 또 놀림 받으려고.”

“안 놀려. 지면 지는 거지. 놀리긴 왜 놀려?”

“됐거든. 됐고, 내 패배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하나면 족해. 이제 더 이상 지는 건 싫다.”

“그래. 그 말 꼭 지켜라.”

“당연하지! 간다.”

이성진이 보무도 당당하게 경기장에 입장했다.

이번 이성진의 상대도 일본 선수였다.

아베 히후미.

역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무도관 참사를 빚어낸 주인공 한 명이었다.

물론 아베 히후미와 안방현이 결승전에서 만나지 않았지만, 일본이 무도관에서 맺은 결실 자체가, 대한민국 유도계에는 대참사나 마찬가지였다. 아베 히후미는 그런 결실 중 하나였고. 그런 아베 히후미와 이성진이 무도관에서 만났다.

지영은 손목과 발목, 관절을 풀어주면서 막 시작되는 이성진의 경기에 집중했다.

아베 히후미의 신장은 168.

반대로 이성진의 신장은 177에서 178이다. 일단 신장 차이가 엄청나게 났다. 이는 장단점이 극명했다. 아베 히후미에겐 이성진이 워낙 크니 업어치기 하기 딱 좋을 거다. 하지만 반대로 팔다리 길이가 압도적으로 길어서, 한 번만 제대로 잡혀도 아베 히후미는 반드시 한 방에 날아갈 가능성이 있었다.

피지컬 자체도 아베 히후미보다 이성진이 위였다.

애초에 이성진은 단순히 키만 큰 선수가 아니었다.

보통 키가 크면 근력이 부족하고, 중심이 너무 높아서 잘 넘어간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건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그 맞는 말이, 이성진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그런 결함이 있었다면, 애초에 세계급 선수인 안방현에게 이기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메!

시합이 시작됐다.

이성진은 자세를 최대한 낮췄다.

그러곤 지영처럼 어깨를 쭉 내주다시피 한 채로 아베 히후미와 잡기 싸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영처럼 어깨를 아예 내주진 않았다.

가슴 안쪽은 잡게 해주되, 자신은 밖에서 아베의 가슴 깃을 잡았다.

이렇게 되면 둘 다 업어치기 선수이니 아베가 당연히 유리하다. 안에서 팔꿈치를 넣는 게 밖에서 넣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이성진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안쪽을 내주고 밖으로 잡은 이유는?

당연히 노리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금세대는 기술 연구 시간에 노림수를 짤 때, 그걸 전부 공유하는 편이었다. 공유하지 않아도 받아주다 보면 아, 얘가 뭘 노리는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지영은 보통 이성진과 파트너를 하기에 이성진이 아베 히후미 저격 기술로 뭘 연구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말아업어치기.”

홱!

벼락처럼 회전하며 아베의 옆구리를 어깨에 걸었다. 정확히는 어깨에서도 뒤쪽이다. 아베의 허벅지, 옆구리의 살짝 뒤쪽에 본인의 어깨 뒷면을 걸었다. 그게 제대로 걸리자 그대로 일어서면서 앞으로 굴러버렸다.

두둑! 뚜두둑!

콰앙!

마치 철을 꼬아 만든 밧줄이 끊기는 것처럼, 사력을 다해 버티던 아베가 반원을 그리며 홱 돌아 그대로 매트에 내려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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