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74화
174화. 아시아 선수권(1)
부도칸.
한국어로 하면 무도관.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에 있는 일본무도관을 말하며, 이 무도관은 단순한 체육관이 아니었다.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일본에선 아주 중요한 체육관이었다.
본래는 64년 도쿄 올림픽 유도 경기를 위해 지어졌지만 이후 음악, 레슬링 등, 일본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이 무도관이었다.
일본 스포츠에 빠질 수 없는 게 두 개가 있는데, 그 하나가 바로 고시엔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무도관이었다.
일본 청춘 스포츠에 빠질 수 없는 심장부 역할을 하는 곳.
그게 바로 무도관이었다.
개최지가 중간에 일본으로 바뀌었는데, 아시아 선수권 유도 경기를 일본은 이 무도관으로 정했다.
“여기서 대회를 한다는 건, 다시 한번 무도관 참사를 재현하겠다는 뜻이다.”
전기정 감독은 몸을 다 풀고, 관중석에 선수들을 앉혀 놓고는 굳은 얼굴로 이곳에서 대회가 열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무도관 참사.
도쿄 올림픽을 말함이다.
반대로 일본은 부도칸의 영광이라는 말을 썼다.
일본이 도쿄 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이 정말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강지영.”
“네?”
전기정 감독은 굳은 얼굴로 지영을 불렀다.
“너를 잡겠다고 일본은 신지 대신, 오노 쇼헤이를 내보냈다. 알고 있지?”
“네.”
진짜다.
기량이 물이 올랐을 신지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부도칸에서 금메달을 딴 오노 쇼헤이가 참가했다. 사실 이런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미야모토 신지는 일본 유도의 미래라 불리는 신성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영에게 두 번이나 패배했다.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세계 청소년 선수권. 이렇게 두 대회에서 지영을 만나 연장 접전 끝에 결국 패배했다. 즉, 일본의 미래가 지영에게 두 번이나 꺾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신지를 빼고, 오노 쇼헤이를 내보냈다.
이렇게 하면 일본이 얻는 건 두 가지다.
오노 쇼헤이가 지영을 이기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거고, 만약 진다면 일본의 미래는 아직 나서지 않았다! 이렇게 자기합리화할 셈이었다.
그리고 이건 비단, 지영뿐만이 아니었다.
“이성진, 너도 마찬가지다. 기무라 히로 대신 아베 히후미가 나왔어. 나머지 체급도 전부 마찬가지고. 세계 청소년에 나왔던 일본의 유망주들 대신, 전부 이전 국가대표들이 나왔지.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 거다.”
“…….”
실제로 일본은 여자팀을 제외하면 전원 도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내보냈다.
이는 유망주들을 보호하는 한편, 반대로 노련미로 한국의 유망주들을 상대하겠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더해 패배해도 둘러댈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은 채.
이는 갑작스러운 행보였다.
대진표 추첨 직전 선수가 변했기 때문에 그전에 아시안 게임, 세계 선수권에 나온 선수들에 맞춰 연구했던 건 쓸모가 없어졌다. 좋게 말하면 머리를 잘 쓴 거고, 나쁘게 말하면 참 일본다운 약아빠진 전략이었다.
“괜찮습니다.”
“응?”
지영의 말에 말을 이어가려다가, 멈추는 전기정 교수.
“오노 쇼헤이.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왜?”
“신지야 붙어 봤고, 두 번 다 제가 전적에서는 앞섭니다. 하지만 오노 쇼헤이는 안 붙어봤거든요. 시합 보면 제가 딱 좋아하는 도사 유도 스타일이라서…… 저도 신지처럼 굴어보려고요.”
“……오노 쇼헤이 만만치 않아. 알고 있지?”
“네, 물론입니다.”
그저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올림픽 2연패를 했겠나.
오노 쇼헤이는 분명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유도를 잘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맞았다. 역대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올림픽 2연패라는 업적을 세운 선수의 실력이 절대 그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영은 신지의 불참이 결정되고, 오노 쇼헤이와 맞대결이 2회전에 성사됐을 때 그의 경기 영상을 철저하게 파헤쳤다. 다행인 점은 그가 활동한 시간이 길어서 경기 영상이 정말 넘치도록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걸 토대로 지영은 오노를 연구했고, 아주 냉정하게 승패를 점칠 수 있게 됐다.
도사 유도.
지영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아주 시건방진 유도.
하지만 그런 시건방짐도 실력이 더해지면 ‘멋’으로 변한다. 오노 쇼헤이는 멋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지영은 자신 있었다.
‘일본 유도의 심장에서, 일본 유도의 영웅을 깨부순다.’
그리고 그걸, 전 세계에 보여줄 생각이었다.
지영은 유도를 하면서 처음으로, 승리라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다.
“좋아, 그런 자신감. 다들, 지영이랑 같은 마음이지?”
네!
짧고 굵은, 전의 넘치는 그 대답에 전기정 감독과 그의 옆으로 주르륵 선 열 명의 코치들이 자부심 넘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열 명의 코치. 이들 때문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거의 전담으로 붙어서 코칭을 해주는데, 그 강도가 얼마나 센지 체력 좋은 연희고는 물론 선수들 전원이 매일 훈련으로 녹초가 됐다.
‘주짓수 선수들까지 동원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지…….’
현대 격투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브라질리언 유술, 주짓수. 이 주짓수 고수들을 선수촌으로 초빙했다. 그런 다음 상체 조르기와 꺾기만 허용하는 선에서 오전 내내 굳히기 연습을 했다.
이때는 지영도 죽는 줄 알았다.
안자이 히카리와 했을 때도 느꼈지만 굳히기 고수들은 진짜로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아니, 까다로운 정도를 넘어서 어느 정도 실력 차이가 나면 뭔 짓을 해도 막는 게 쉽지 않았다.
지영은 일단 5분 굳히기 연습에서, 체중이 자신과 비슷한 여자 고수와 붙었는데도 거의 밀렸다. 남자 선수와 붙으면 아예 답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제법 버틸 수 있는 경지까지 왔다.
그게 딱 일주일 전이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훈련을 마친 뒤, 이곳 무도관으로 왔다.
지영은 개인적으로, 다른 선수는 몰라도 자신만큼은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컨디션과 의지까지, 전부 다.
거기에 국가대표로 나선 첫 대회라는 것까지 합쳐지니 지금 상태는 정말 완벽했다.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으로 팽배한 상태. 지영은 빨리 내일이 왔으면 했다. 내일은 남자 경량급, 여자 중량급 경기가 펼쳐진다.
지영은 당연히 경량급이라 오늘 계체를 하고, 내일 시합이다.
올림픽이라면 하루 한 체급씩 하겠지만 아시아 선수권이라 8일이나 시간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딱 이틀 만에 모든 시합은 끝난다.
“좋아. 그간 쌓아온 실력, 내일과 모레 모두 쏟아내고 가자.”
네!
그걸로 짧은 미팅은 끝.
이따가 숙소에서 다시 미팅이 있겠지만 이미 충분히 하고 왔기 때문에 가볍게 몸 상태를 점검하는 정도에서 끝날 것이다.
5시 반.
각국의 선수들이 속속 들어왔다.
대만, 중국, 홍콩, 동남아 국가의 선수들이 속속 들어왔고, 지영은 선수증을 목에 걸고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야.”
“네, 수원 선배.”
60을 선발전에 우승한 정수원의 부름에 지영은 골반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그를 돌아봤다. 정수원은 처음엔 황금세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영과 친구들이 그 혹독한 훈련을 전부 소화해 내는 걸 보고는 마음을 연 선배였다.
굉장히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다리에 쥐가 나거나 하면 가장 먼저 달려와서 풀어주고, 테이핑 같은 것도 정교하게 잘 감아주고, 묵묵히 황금세대를 챙겨줬던 선배였다.
“중국 애들 조심해.”
“중국이요?”
“응. 이번에 나오는 애들, 시합 진짜 더럽게 하기로 유명한 애들만 왔더라.”
“아, 감사합니다. 조심할게요.”
“다치지 말고.”
“넵.”
정수원의 말에 지영은 그냥 고마운 마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첫판이 중국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리시신.
도쿄 올림픽, 세계 선수권에 전부 나왔던 선수였다.
그러나 대회 입상은 없었고, 이전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3위를 한 게 전부였다. 그 선수에 대한 정보는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오노 쇼헤이를 워낙 집중적으로 보긴 했지만, 지영은 다른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유도는 의외의 선수에게, 정말 의외의 일격을 당해 한판으로 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오롯이 실력으로만 승부가 나지 않는 경기.
그렇게 되면, 아예 되돌릴 수 없는 경기였다.
축구처럼 의외의 일격을 먹어서 한 골을 빼앗겨도 시간이 90분이나 있지만, 유도는 한 방이다. 일격을 당해 절반을 빼앗겨도 남은 시간은 전부 통틀어 4분이 전부다. 한판이면 아예 기회조차 없고.
그러니 아무리 실력이 별로인 선수라고 해도, 충분히 조심해야 했다.
6시가 다 되어갈 때쯤, 일본 선수들이 입장했다.
여자부 선수들이 먼저 들어오고, 남자 선수들이 그 뒤에 들어왔는데 제일 뒤에 어슬렁어슬렁, 팔자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오는 오노 쇼헤이가 보였다.
일본 유도의 영웅.
오노 쇼헤이.
올림픽 2연패라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세운 선수.
세계 대회도 많이 우승했지만, 그냥 올림픽 2연패 하나면 이 선수의 실력이 어떤지 짐작 가능했다.
그런 오노 쇼헤이는 들어오자마자 정확히 지영을 바라봤다.
그런데 눈빛이 어찌나 깔보는 마음이 가득한지, 지영은 그 눈빛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자 눈매를 꿈틀거리는데, 그때 지영은 도로 고개를 돌렸다.
6시 정각, 계체가 시작됐다.
지영은 깔끔하게 72, 50으로 통과했고, 정수원과 이성진도 안정적으로 계체에 통과했다. 이어진 여자부 선수들도 전부 통과했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자마자 지영은 시합 모드에 들어섰다.
그 이후로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지영은 몸이 달았다.
‘이런 건 또 체전 이후 오랜만이네…….’
회귀 직후,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체전 당일이 되었을 때 지영은 이런 기분을 느꼈었다. 매트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멀어져야 했었기 때문에 지영은 유도란 스포츠가 간절했었다. 그래서 코치 생활까지 했지만, 지영은 코치로는 그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갈증이, 회귀 직후 체전에서 폭발했었다.
그런데 지금 딱, 그런 갈증이 느껴지는 상태였다. 이 갈증은 오로지 시합으로밖에 풀리지 가 않아서 더욱 애가 탔다.
그런 애타는 마음으로 겨우 잠이 들었고, 날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시합은 10시부터.
9시에 도착해 지영은 빡세게 몸을 풀었다.
“더! 더 빨리!”
“훅! 후욱!”
지영은 전기정 감독이 직접 잡았다.
부딪치기 30개씩 10세트. 굉장히 빠르게 10세트를 하고 나자 땀복 안으로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굵은 구슬땀이 질끈 모아서 묶은 머리카락의 옆으로 주르륵 흘렀다. 그 모습은 시합장의 열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굉장히 영화 같았다.
어디선가 각코이…… 하는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지영은 조금도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기술 부딪치기를 끝내고 곧바로 체력 운동이 이어졌다.
이 모든 게 다시 숨을 트이게 하는 과정이었다. 정말 너무 힘든 순간이지만 그래도 이걸 견뎌내야 첫판에 숨이 막혀 골골거리는 걸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40분 가까이 몸을 풀자 숨이 완전히 트였다.
“몸들 다 풀었지?”
“네!”
“강지영. 어제 단언했지? 오노 박살 낼 거라고.”
“네.”
“믿는다. 너 두 번째 경기로 오늘 흐름이 결정된다고 보면 돼. 자신 있지? 없어도 있어야 한다. 질 것 같아도 이겨야 하고. 네가 한 말 지켜, 꼭.”
“네.”
그럼, 물론이다.
이성진을 포함한 정수원, 그리고 여자팀 선배들이 일본과 붙으려면 적어도 준결승까진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지영만 2회전에 일본과 붙는 대진이었다. 원래도 거의 모든 종목에서 라이벌 관계이긴 했지만 몇 번의 대회로 인해 한국은 독이 바짝 올라온 상태였다.
“일본도 많이 준비했을 거다. 전략분석은 우리보다도 경험도 많고, 더 나으니까. 그래서 너희들 분석도 전부 끝나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도 분석했고, 준비 많이 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자. 알았지?”
“네!”
“좋아. 각자 대기실로 가고, 수원이랑 승희는 첫 게임 준비하자.”
짧은 미팅이 끝나고 지영은 대기실로 이동했다.
다시 대기시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지영은 원래는 쉴 때도 친구의 경기를 전부 확인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진행요원의 부름이 길고 길었던 시간의 끝을 고해줬다.
만원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절반 이상은 찬 적진으로의 입장은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그리고, 쿠웅!
경기 시작 40초.
지영은 적진에서 일단 먼저 오성홍기부터 빗당겨치기로 꺾어, 매트에 꽂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