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72화
172화. 새롭게 뜨는 별, 신성(新星)(7)
선발전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배영우는 그 막바지에도, 목이 쉬었음에도 뜨거운 진행을 이어갔다.
“강한결 선수!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네! 지금 절반으로 이기고 있거든요? 30초 뒤엔 강한결 선수의 승리가 확정됩니다! 이홍성 선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 업어치기! 아! 아아! 강한결 선수 되치기! 되치기이!”
“한판! 아, 한판이 나오네요.”
“강한결 한판! 시합 종료 20초 남기고 한판승을 거둡니다!”
“축하합니다. 강한결 선수!”
“자, 이제 금일 국가대표 유도 3차 선발전! 두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배영우의 멘트가 이어질 때쯤, 인터넷은 가히 폭발하고 있었다.
-ㄷㄷ……. 이제 황석 하나 남은 거?
-ㅇㅇ…… 이성진 한판, 강지영 한판, 임효중 30초 만에 허리후리기 한판, 강한결 되치기 한판…… 이제 황석만 남음.
-와 미쳤네, 진심…….
-솔직히 아직도 난 안 믿긴다. 몇 달이나 쉬고 이런 성적을 낸다는 게…….
-진짜 어디서 운동한 거 아님?
-그러니까, 이 정도면 그냥 얘들 미워서 음모론 던지는 게 아니라 합당한 의심 아님?
-……인정.
불신이 가득했다.
불붙었던 채팅창은 한 운동선수의 고백으로 숙연해졌었고, 이어지는 연희고의 경기력에 침묵하기까지 했었다.
재능.
노력.
스포츠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두 가지 조건.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전부 합쳐져야지만 정상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재능만으로 정상에 서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받는 상실감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캡틴도, 피겨 여제도, 재능보단 노력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운동에 종사해 본 사람들은 안다.
절대로 노력만으로는 두 선수만큼의 업적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은 노력은, 그 무엇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비정하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노력에 포장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포장이 한 꺼풀 벗겨졌다. 노력이 곁들여지지 않았음에도, 오로지 재능만으로 쉬지 않고 매일 노력한 선수들을, 심지어 재능도 있는 선수들을 압도하는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은 노력보단, 재능이 먼저구나란 사실을 깨달았다.
분위기는 그래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황금세대의 압도적인 기량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내보이고 있기에 더더욱, 박수받아 마땅했다. 오랫동안 이유 없이 욕먹었고, 그래서 은퇴를 선택했다가 이제 돌아왔으니 위로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너무 압도적인 기량이, 실력이 그 세 가지를 못 하게 막았다.
좀, 무섭다는 느낌?
같은 인간이 아닌 뭔 외계인을 보는 기분? 그들이 느끼는 기분은 그랬다. 같은 인간이란 동질감이 사라져서, 경외 시 하고 싶은 기분?
무섭고, 두려운 느낌.
그러나 또 한편으론 존경스러운 마음도 드는.
부럽고 질투도 나지만, 너무 상식 밖에 있어서, 엄두도 안 나는 기분.
그런 느낌은 뒤이어 들어간 황석이 백드롭으로 한판을 따내자, 절정에 달했다.
-미쳤네, X발…….
그 말이, 선발전을 설명하는 한 줄 평이 되었다.
* * *
시합은 끝났다.
+100 결승전이 끝남과 동시에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한 기사의 타이틀은 이런 느낌이었다.
-연희고, 전원 선발전 1위!
-6개월의 공백을 깨고, 선발전 전원 1위!
-연희고 황금세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다!
-그들은 천재로 불렸던 이유가 있었다.
-한동네에서 태어난 다섯 명의 천재들!
주르륵 올라오는 기사를 클릭한 사람들은 유도에 관심이 없음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놀라웠다. 연희고에 대한 얘기는 이제는 전 국민이 아는 아주 유명한 얘기였고, 선발전이 시작한 이전까지는 논란이 잠든 상태였다.
하지만 선발전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모두 1위를 하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없던 화제가 되살아났고, 거기에 어린 독지가 화제까지 합쳐져 다시금 화제성에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니, 불을 피우는 게 아니라 그냥 다시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 연희고를 원하는 곳이 많아졌다.
안 그래도 많은데, 회사와 스포츠 쪽으로 오는 문의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우리 지영이, 인터뷰 한번 어떻게 안 될까?
“또요?”
-응, 인터뷰 따 오라고 난리인데, 너희 공식 채널 다 막아놨잖아.
“아, 누나. 저희 앞으로 인터뷰 같은 거 안 하기로 했어요.”
-진짜? 누나랑 하는 건데도?
이선영의 말에 지영은 속으로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선영은 무시하기 참 힘든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받은 도움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누나, 일단 제가 애들이랑 얘기 좀 하고 말씀드릴게요. 괜찮죠?”
-그럼, 괜찮지. 모쪼록 어린 독지가님. 부디 좋은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주십사…….
“끊을게요.”
뚝.
전화를 끊은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락이 정말 많이 왔다. 이선영을 포함해 이연, 임윤옥 선생님 등 연예계 있는 분들도 많이 연락해 왔고, 얼마 안 되는 지영의 학교 친구들도 축하한다며 연락을 줬다. 일일이 다 답장은 못 했지만, 그중에서는 받아야 할 연락도 있었는데, 이선영의 연락이 그랬다.
하지만 인터뷰.
곤란했다.
황금세대. 혹은 연희고 아이돌이라 불리는 자신들은 앞으로 그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는, 지영과 지영의 친구들이 매체에 보내는 단호한 의지였다.
‘징벌적인 의미도 있지.’
그들은 연희고를 무너뜨리려고 수작을 부렸고, 결과적으로 그 수작은 실패했다. 성공한 것 같았지만 어린 독지가 기사가 나가며 대차게 깨져버렸다. 모든 건 강한결이 그린 큰 그림이었고, 그 그림에 언론과 만나는 일은 해외 언론사 한 번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인터뷰는 메이저 대회 출전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친구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누나 미안해요란 메시지를 이선영에게 보내 곤 폰을 내려놨다. 방안은 조용했다. 지금 시간은 11시쯤, 친구들은 다들 방에 있었다. 야식을 시켜 먹을까 했지만, 다들 저녁을 많이 먹어 야식은 패스하고 각자 방에 틀어박혔다.
국가대표.
한시적이긴 하지만, 국가대표의 증거인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시합은 다음 달이고, 그때까지만 달게 되는 태극마크지만, 요게 이상한 감정을 선사했다.
“국가대표라…….”
아직 태극마크가 박힌 도복을 받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협회에서 발표한 대로라면 이제 곧, 도복을 받게 될 거다. 그리고 선수촌에 입촌해 당분간 대표팀 훈련을 하게 될 거다. 그게 곧 국가대표라는 증거. 대한민국의 대표라는 증거. 그 증거를 손에 넣었다.
큰 이변이 없다면 말이다.
그게 지영에게 신기한 감정을 선사했다.
지영은 이 기분을 잠시 만끽했다. 오늘이 지나면 사라질 기분이기도 해서, 시간은 지금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영은 노트북을 열었다.
그러곤 대회 전에 미리 받아놨던 영상을 틀었다.
도쿄 올림픽을 포함한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의 73 체급 경기 영상이었다. 지영은 이 영상을 대회 전에 준비해놨었지만, 그때는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이번 선발전에서 탈락하게 되면 당장은 쓸모가 없는 영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시아 선수권 출전이 확정됐으니, 아시아권 선수들의 스타일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영상이었다.
안호진.
세계 선수권과 도쿄 올림픽은 전부 안호진이 뛰었다.
지영은 경기 영상을 보면서, 특히 도쿄 올림픽 경기 영상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지영은 이 영상을 정말 오랜만에 본다.
회귀 후 시간으로 그해 여름에 도쿄 올림픽이 열렸었다.
그러나 지영은 체전 때 사고로 아주 오랫동안 유도를 끊고 살았고, 당연히 기억도 많이 희미해졌다. 회귀한 직후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대회에서 직접 경기를 뛰고, 보긴 했지만, 도쿄 올림픽과 자신들이 뛰었던 경기는 느낌이 달랐다.
“이거, 카운터네.”
첫판, 두 번째 판을 본 지영은 확신에 찬 어조로 중얼거렸다.
안호진은 결승까지 갔다. 하지만 매 경기를 정말 너무 힘들게 했다. 모든 경기를 연장까지 갔고, 결승전도 연장전 접전 끝에 패배했다.
그 경기를 지켜본 지영은 상대들이 안호진에게 카운터 전략을 들고나왔고, 그게 전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잡기. 잡지 못하니까 아무것도 못 했어.”
1, 2회전은 물론 준결승까지.
안호진은 이기긴 다 이겼다. 하지만 그건 주특기인 업어치기가 아니라 연장전 중 힘이 빠진 틈을 노려 안뒤축, 안다리 같은 발기술로 결승에 올랐다. 상대가 업어치기를 미치도록 방어하니 결국엔 발기술로 승부를 본 거다.
이 같은 카운터에 안호진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래도 기본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현 일본의 유도 영웅 중 한 명인 오노 쇼헤이는 넘지 못했다.
지영이 결승전을 보면서 느낀 점은, 안호진이 제대로 한 번만 잡았다면 안호진의 승리였다는 점이다.
반대로 오노 쇼헤이는 안호진에게 한 번도 제대로 잡혀주지 않았다.
안호진의 주특기는 업어치기다. 업어치기는 최소한 소매 깃 정도는 제대로 잡아야 했다. 이성진이 오늘 안방현을 상대로 보여준 깜짝 업어치기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오노 쇼헤이는 잡기에서 우위를 잡았다. 소매도 주지 않았고, 가슴은 더더욱 주지 않았다. 업어치기가 주특기인 안호진에게 소매나 가슴 깃을 제대로 주면 업어치기에 날아갈 수 있음을 알고, 그거 하나만 죽도록 경계했다.
시건방진 도사 유도를 하는 오노 쇼헤이인데도, 안호진이 소매나 가슴 깃을 잡으면 그걸 뿌리치려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사력을 다했을 정도였다.
“반칙을 받는 한이 있어도 깃은 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라…….”
재밌게도 안호진과 했던 선수들 전원이 다 똑같은 전략을 들고나왔다.
안호진은 반대로 그 어떤 전략도 세우지 않았고.
“아니, 세우지 않은 게 아니라 세우지 못한 거겠지.”
답이 없는 카운터 전략이었다.
그렇다고 안호진에게 지금 당장 허리 기술로 승부를 보라고 하지도 못했을 테니, 더욱 답이 없었다.
세계 선수권도 똑같았다.
체력과 힘, 그리고 잡기로만 승부를 보는 전략이다. 안호진은 그나마 이번 대회에서는 전략을 좀 세웠다. 발기술을 죽도록 연마한 거다. 특히 한 깃만 잡았을 때, 끊어내기 전에 아주 순간적으로 따라 들어가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양쪽 안뒤축을 카운터로 들고나왔다.
그리고 그 카운터가 제법 잘 먹혀 결승까지 연장 접전 없이 진출했고, 신지에게 패배했다.
아시안 게임도 같았다.
지금 다시 보니 신지는 철저하게 잡기를 막는 걸 첫 번째로 삼았다. 기술은 그다음이었고.
입맛이 썼다.
회귀 전엔 그냥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을 했지, 따로 세계 대회까지 살펴보고 그러진 않았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이 착실히 올라가는 동안,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한국 유도는 세계에서 처절하게 털리고 있었다.
지영은 내친김에 다른 체급도 살펴봤다.
전부, 대동소이했다. 아니, 거의 똑같았다.
잡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국 유도.
반면 잡지 못하게 한 다음 자기 페이스로 끌고 와 한국 유도를 잡는 세계 유도.
욱신거리는 몸으로 새벽 늦게까지 영상을 확인한 지영은, 몸보다 마음이 더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밀리고 있었구나…….”
효자라는 타이틀도 빼앗긴 채, 아등바등 연명하고 있었구나.
그 속에서도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는 선배들이 있었구나. 안호진 선배가 왜 그렇게 지쳤는지 지영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안호진에 대한 좋지 않던 감정이,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선배, 제가 복수해 줄게요.’
세계 유도에 대한, 진한 복수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늦은 새벽.
지영은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다른 네 개의 방에서도, 같은 다짐과 각오가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