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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71화 (17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71화

171화. 새롭게 뜨는 별, 신성(新星)(6)

지구전.

일거에 승패를 겨루는 결전을 피하고, 전쟁이나 전투를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작전 또는 전투.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지구전의 정의다.

보통은 시간을 끌거나, 적을 견제해 지치게 하는 게 목적일 때도 있다.

뭐 이런 뜻이다.

그동안 이우진은 지영에게 아주 다양한 전략을 들고 맞섰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크게 효과를 보진 못했다. 전부 지영에게 간파당했고, 깨져나갔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전략도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영은 사실 이우진이 따로 전략을 준비하진 않았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좀 마음을 놓았었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아주 재미난 전략을 준비했다.

물론, 이게 곤란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역으로 이우진, 이걸로 괜찮겠어? 진짜?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지구전은, 결국엔 시합 운용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런데 시합 운용은 지영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지금 맞불을 놓은 거다.

하지만 지영은 경시하지 않았다.

새파랗게 빛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명료한 이우진의 눈빛을 보니 각오가 서도 제대로 섰단 느낌이 확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선수는 위험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합에 임하고 있다는 느낌이 정말 확실하게 느껴졌다.

짜릿한 기분.

그게 지영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그래서인지, 덕분에 지영의 집중력도 최고조로 올라갔다.

맛테!

심판의 그쳐 사인에 잡기를 놓고 자리에 서자 바로 지도가 들어왔다.

꾸벅, 이우진은 버릇처럼 그런 심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지영은 심판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2회전에 들어왔던 심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심판에게는 그 어떤 예의도 차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것 때문에 불리한 판정을 한다? 그럼 그건 그것대로 인정이긴 했다.

‘결승전이 생중계 중인데도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일반인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도를 좀 아는 시청자들은 보면 대번에 알 거다. 심판의 판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리고 그런 의심을 사는 순간, 저 심판은 끝이라고 봐도 좋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곽상은을 지원했던 심판이니 머리는 제법 돌아갈 거고, 그런 걸 모르지는 않을 거다.

하지메!

그만 생각하라는 것처럼 시합이 재개됐다.

이우진이 다시 접근했다.

지구전을 전략으로 택한 만큼 조금도 조급하지 않은 상태로 천천히, 느긋하게 다가왔다. 지영도 그런 이우진의 전략에 맞춰 똑같이 움직였다. 이렇게 되면 결승전치고는 루즈해진다. 지루한 유도 경기만큼 재미없는 경기도 드물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스윽, 슥.

서로 잡기 싸움 없이 이번에도 가슴 깃과 어깨 깃을 잡았다.

서로 잡고, 그냥 조금씩 설렁설렁 움직이는 정도이다 보니 오히려 긴장감이 배가 됐다. 신기하게도 이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관중들도 크게 환호하거나 하지 않아 분위기 전체가 고요해졌다.

폭풍 전의 고요함.

그래, 마치 폭풍전야를 떠올리게 했다.

얼마나 조용하면, 조금 떨어진 해설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툭.

그때 이우진이 깃을 한번 손목으로만 툭 쳐서 올렸다.

그러자 마치 조건반사처럼 지영의 자세가 낮아졌다.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손목을 채는 순간 지영의 자세가 낮아지자 이우진의 표정에 아주 미미한 변화가 생겼다. 가만히 서 있다가 깜짝 기술로 한 번에 팍! 하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영의 반사신경은 정말 좋았다.

임대성 코치가 전문가를 모셔 와 다 같이 테스트를 해봤는데, 지영은 황금세대 전체 중에서도 가장 좋은 걸로 나왔다.

따지자면, 운동선수 전체에서도 거의 상위 1% 안쪽에 들어갔다. 고가의 장비로 더욱 정밀하게 재는 테스트를 했다면 아마 그 이상도 가능할 거라고 그 전문가가 말해주기도 했다.

일반적인 장비를 이용한 테스트로는 거의 한계치.

그게 지영의 반사신경이었다.

그리고 그 반사신경이 지영의 카운터 중심이기도 했다.

기술에 반응하는 속도가 빨라야, 제대로 카운터를 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지영의 반사신경에 이우진은 표정엔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럼 좀 전의 채기가 전략에 있단 소린데.’

제법, 다양한 전략을 짜온 이우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영은 전략이 하나도 없었다. 이우진을 만만히 봐서 전략을 짜지 않은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어서였다. 그 어떤 스타일에도 대응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

특별한 전략을 준비하기보다는, 그냥 자기 자신을 믿고 경기에 임해왔다.

오늘도 다를 건 없었다.

주의해야 하는 상대, 기술 등은 머리에 전부 넣었지만, 선수에 맞춰 맞춤 전략을 들고 오진 않았다.

이는 결승전도 마찬가지고, 이우진이라고 변할 건 없었다.

잠시 뒤, 다시 그쳐. 바로 지도를 줄 줄 알았는데, 심판은 어쩐 일로 서자마자 다시 지도 없이 시합을 시작시켰다. 이건 좀 의외였지만, 지영은 다시 이우진에게 집중했다.

이우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내가 만약 이우진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할까?’

뭐가, 어떤 게 베스트일까?

생각하자, 생각해라, 강지영.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사고회로를 가속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이우진이 내릴 선택이 뭘지 감이 딱 잡혔다.

‘선공, 혹은 강공!’

먼저 잡고, 무조건 기술을 건다.

그래서 지영이 기술을 방어하게 만든 다음 다시 지구전.

이렇게 되면?

반칙은 반드시 지영에게만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특히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저 심판이라면 무조건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선공.’

답은 하나고, 선택지도 하나였다.

그래서 지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선택지를 골라, 정답을 향해 나아갔다. 역시나 기세가 변했다. 그게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알려주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더더욱 망설임이 없이 나아갔다.

홱!

뻗어오는 손을 쳐내고는 빠르게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러곤 양손을 같이 뻗어 어깨, 그리고 가슴 깃을 잡았다. 툭! 투둑! 하지만 역시 이우진은 공세로 나올 생각이었는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깨 깃은 잡히게 뒀어도, 가슴 깃은 주지 않았다. 잡는 순간 양손으로 감아 뒤로 물러나며 아래로 두 번에 걸쳐 뜯어냈고, 어깨 깃 또한 그대로 양손을 이용해 뜯어냈다.

순식간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붙었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감각이 최고조로 확장됐다.

지영은 이번에도 먼저 접근했다.

방어유도가 베이스다.

그래서 이우진은 지영의 공격 유도를 많이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지영이 공격적으로도 게임을 플레이할 줄 안다는 것만 알지, 실제로는 많이 겪어본 적이 없었다. 연습 때도 당연히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영이 다시 손을 뻗어 어깨 깃을 잡자,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나려 했다.

상대가 짧게 점프하듯 엇박자로 들어오면 그걸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그걸 노렸다.

흠칫 놀라 순간 몸을 뺄 때, 지영은 그대로 모두걸기를 후렸다. 아니, 이번엔 거의 쳤다. 왼 발바닥으로 정확하게 이우진의 오른 발목을 그가 물러난 만큼 쫓아가 쳤다. 그러자 맞은 발목이 앞으로 밀려나면서 중심이 일순간 흔들렸다.

‘한 번 더?’

이어서 공격할까? 하던 지영은 이우진의 눈빛을 보는 순간 멈췄다. 눈빛을 보는 순간 순간적으로 소름이 쪽 돋았다. 뭔가를 노리는 눈빛. 중심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또렷하게 빛나는 눈빛.

지영은 도복을 놓고 바로 물러났다.

뭔가 있었다. 물러서는 순간 떠오른 아쉬운 눈빛을 보니 더더욱 그래 보였다.

‘뭐가 있었지?’

저 자세에서 들어올 수 있는 기술이 뭐가 있었을까?

분명 자세는 무너졌는데. 도복도 제대로 잡지 못했는데.

그런 생각은 자세를 회복한 이우진이 바로 공격적으로 붙는 바람에 바로 흩어졌다.

이우진은 가슴과 소매 깃을 동시에 노려왔다.

지영이 가슴 깃을 그냥 주자, 바로 반대쪽 깃을 잡았는데, 소매가 아니라 가슴 깃 하단이었다. 지영이 박병훈과 했을 때 잡았던 곳.

그리고 업어치기.

마치 잠수함이 가라앉듯이 스윽 주저앉으며 들어와, 몸을 부드럽게 회전시키는 업어치기. 이우진의 주특기였다. 비스듬한 각도에서 안으로 깊숙이 파 들어오는 업어치기는. 하지만 지영은 이미 이우진이 손목을 채는 순간 반응하고 있었다.

턱!

옆으로 빠진 다음 몸으로 밀려는 이우진의 어깨에 다리를 대고 단단히 버텼다. 그걸로도 부족하다 싶어서 팔로 이우진의 어깨를 잡아 찍어 눌렀다. 업어치기에 안 넘어가는 제일 좋은 방법은 상대의 등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이다.

말아업어치기를 빼면 모든 업어치기는 그런 식으로, 방어가 가능하다.

맛테!

잠시 그렇게 서 있자,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자리로 돌아가던 지영은 이상하게도 심판의 눈빛에서 내적 갈등이 생겼다는 걸 봐버렸다.

‘지도 주고 싶은가 보네.’

분명 한차례씩 기술을 주고받았다.

지영의 기술은 단순 모두걸기였지만 걸리기는 제대로 걸려서 이우진의 하체가 일순간 무너졌을 정도였다. 이는 확실한 포인트였다. 그다음은 이우진이 업어치기를 했고. 따지자면 동수였다. 그러니 지도를 줄 각 자체가 없었다.

작정하고 미친 짓을 한다면 줄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간 자신도 만만치 않게 손해를 볼 테니 그러진 않을 거다. 그리고 역시, 심판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바로 시합을 시작시켰다.

물렁물렁한 경기는 이제 끝났다.

지영은 시작과 동시에 자세를 바로 낮췄다. 이우진이 상당히 앞으로 나와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메! 소리에 맞춰 이우진이 거의 튀어나오듯이 다가왔다. 지영은 이런 이우진의 공세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비 유도 스타일이라, 이런 공세는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가슴 깃을 잡음과 동시에 안뒤축. 아주 빤하지만, 유도에서 중심 깨는데 최고인 아주 기본적인 잡기에 이은 발기술.

지영은 아예 안뒤축에 맞아주지 않았다.

슬쩍 발을 뺀 다음 언제나 잡는 어깨를 먼저 잡았다. 그러곤 다시 모두걸기를 때렸다.

툭!

이번에는 예상했는지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모두걸기로 뭘 하려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시선 뺏기 용이었다.

지영의 신형이 그 상태에서 뒤로 홱 돌았다.

오른발이 뒤로 돌아 강하게 매트를 찍었고, 반대로 왼발을 쭉 뻗어 이우진의 허벅지를 받쳤다.

그러곤 이우진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강하게 차올렸다.

파앙!

이우진의 몸이 지영의 발이 받쳐 있다가, 차올리는 힘에 붕 떠올랐다. 하지만 소매도 안 잡은 상태에서 찬 허리후리기라 넘어갈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중심을 무너뜨리고, 이우진을 정신없게 만드는 게 목적이기도 했다.

넘어가면 땡큐긴 한데, 그럴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몸이 떴지만 역시 이우진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지영도 이미 자세를 회복하곤, 스텝 밟아 이우진에게 접근했다.

등 깊게 손을 넣어 꽉 잡고는 좀 전과는 역으로 돌아나가며 발목받치기를 걸었다.

툭! 가볍게 건 것 같지만 몸이 끌려가는 와중에 건 모두걸기다. 이건 돌부리에 걸려서 중심이 앞으로, 혹은 옆으로 무너지는 거랑 비슷했다.

홱!

그러나 이걸로도 넘기는 건 애매해서 옆으로 틀어서 그냥 던지듯이 뿌려버렸더니 이우진은 몸을 빙글! 춤을 추듯 돌아서 잽싸게 피해 나갔다. 그러곤 다시 지영을 향해 봤을 때, 이미 지영은 또 바로 앞에 있었다.

지구전?

괜찮은 전략이었다.

60 결승전처럼, 막판에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었을 테지만, 지영은 바보처럼 그걸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이우진은 많이 늘었다.

진짜 칼을 갈았다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짜 제대로 실력을 끌어올려 나왔다.

하지만 칼을 갈고 나온 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수개월 동안 도복을 입지 못해, 창문이 없는 독방에 갇힌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던 지영이었다.

그래서 선수촌에서 오랜만에 도복 운동을 했을 때, 커다란 해방감을 느껴 저도 모르게 오버페이스로 달렸을, 그랬을 정도였다.

‘그 긴 시간 동안, 이를 갈면서 인내한 건…… 너뿐만이 아니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지영은 눈을 빛내며 왼팔을 다시 뻗어 이우진의 등 뒤를 잡았다. 그러자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려는 이우진. 하지만 늦었다. 뒷걸음질보다, 앞으로 뛰는 게 당연히 더 빠르다.

그것도 몇 배나.

지영은 상체를 뒤트는 이우진의 뒤로 붙어서, 그대로 흔히 뒤까기나, 뒤치기라 부르는 기술 포지션을 잡았다. 그리고 뒤로 젖히기 무섭게 이우진은 발을 빼냈다.

그리고…… 빠진 발 사이로 지영의 머리가 쏙 들어갔다.

연결, 어깨로 메치기.

지영의 왼발이 갈고리처럼 빠져나가는 이우진의 발목 위를 걸었고, 그 순간 지영은 최대한 몸을 밀착시킨 다음 브릿지로, 허리를 강하게 튕겼다. 이우진은 그걸 버텼다.

버텼지만…….

이미 제대로 말렸다.

그리고 자세는 지영에게 더없이 유리했고.

홰액!

파앙……!

스프링처럼 튕겨 돌아간 이우진의 몸이 매트에 떨어졌고, 그는 다급하게 심판을 바라봤다. 그런 이우진의 시선에 한숨을 길게 내쉰 심판은 눈을 감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잇…… 폰!

차마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온 한판 선언.

그 선언에 이우진은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푹 숙였고, 지영은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숙인 이우진을 잠시 바라봤다.

부르르.

몸을 떨며 패배에 몸서리치는 이우진을 잠시 보던 지영은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멈추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토닥, 토닥.

미안하진 않았다.

다만, 위로해 주고는 싶었다.

‘회귀 전, 본래는 너의 역사였을 자리에 내가 섰으니까.’

그런 마음에서 나온 위로였다.

아시아 선수권.

그랜드 슬램을 향한 첫 단추가, 정확한 자리에 꿰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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