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69화
169화. 새롭게 뜨는 별, 신성(新星)(4)
준결승이 시작되기 전, 인터넷은 이미 뜨거웠다.
반년 가까이 쉰 연희고가 과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얼마만큼의 실력을 거둘 것인지, 이는 기사로도 많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대 속에서 열린 선발전은, 좀 충격적이었다.
-와, 전원 준결 진출, 미쳤네. 진짜.
-반년 쉬었다고 하지 않음? 반년 도복 안 입었는데, 저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거임?
-불가능하죠. 어떤 운동선수가 반년이나 쉬고 정상 컨디션을 유지해요? 공부도 반년 쉬어보세요. 머리가 돌아가나.
-그런데 쟤들은 가능한 거 같은데? 솔직히 저건 운동 몰래 했다고 본다. 그게 아니라면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거다.
-기자들이 그렇게 들러붙어 있었는데? 말도 안 되죠 ㅋㅋ
-맞아요. 그런데 쟤들은 말도 안 되는 걸 예전부터 해오던 애들이었잖아요. 운동, 공부, 방송, 아 이젠 설명하기도 지겹네……. 얘넨 진짜 뭐지?
-이성진 들어옴.
-이성진 파이팅!
-누나가 격하게 애정해! ㅠㅠ
-……이거 아이돌 방송이었나?
-조심, 이성진 누나 팬 개많음.
-시작한다.
-오 신지혁 절반.
-역시 정상급 애들한테는 힘든…….
-절반 만회.
-한판 아님?
-ㄴㄴ약하게 들어감.
채팅이 죽죽 이어지다가, 이성진이 절반 합쳐서 한판을 따내자 그렇게 쉬고도 결승 가네? 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임효중까지 결승 진출을 확정 짓고 나자, 확 변해버렸다.
-이건 진짜 인정이다…….
-전원 결승 진출 ㅋㅋㅋㅋ
-와 미친 새끼들……. 놀았다며! 근데 뭔 현역 애들을 가지고 놀아!
-진짜 재능이란 게, 무섭긴 무섭네요. 다른 선수들은 쟤들 쉴 때 피나게 연습했을 텐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네요.
-그러니까요. 진짜 쟤들 보면서 현역들 자괴감 오지게 올 듯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게 재능인데. 쟤들이 무슨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불법은 쟤들한테 다른 사람들이 저질렀죠. 그리고 쟤네는 그 불법을 이겨내고 저 자리에 서 있는 거고.
-이쯤 되면 나이는 어리지만, 그냥 존경할만함.
-맞음. 우리 엄마 이성진 가족사 방송 보고 안타깝다고 발 동동 구르고 그러셨는데, 이젠 나한테 이성진의 반만 좀 해보라고 구박함. 동갑인데 씨…… ㅠㅠ
-……윗분 애도여ㅠㅠ
-나도……. 울 누나가 맨날 갈굼 강한결의 반만 하라고.
-내 여친은 나한테 재들의 반만 생겼으면…… 이러던데.
-그건 불가능임.
-X발…….
이쪽 분위기도, 뭔가 숙연해졌다.
천재란 게 무엇인지, 그걸 지켜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채팅을 치는 사람 중엔 사실 운동선수도 많았다.
종목이 다른 선수도 있었고, 선발전에 나오지 않은. 혹은 못한 유도선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솔직히 욕하고 싶었다. 연희고 황금세대가 보여주는 눈부신 천재성이, 너무나 질투 났기 때문이었다.
노력?
일단 엘리트 체육 코스를 밟기 시작하면 기본적인 노력은 아주 당연하게 들어간다. 최소한 정규 훈련 시간만 버텨내도, 그 자체가 노력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플러스알파를 하는 건 이제 훈련 외 시간에 가능하고, 그 부분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시청자 중엔 딱 기본만 한 선수도 있고, 기본 이상을 한 선수도 있었다.
기본만 한 선수는 철없는 질투지만, 기본 이상을 해왔던 선수들에겐 진한 허탈함이 찾아갔다.
노력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 정상.
정상에 선 선수는 언제나 자신에게 등만 보여줬다. 아무리 손을 뻗어봐도 등에 닿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멀어져 갔다.
안 닿는다.
범인의 재능에 아무리 노력을 더 해도 천재의 영역에는 도무지 도달할 수 없었다.
그걸 깨닫게 된 거다.
그런 깨달음에 이은 자괴감이, 익명이 보장되는 공간에 한을 풀어놓게 했다.
-천재는 반년을 쉬던, 일 년을 쉬던 그냥 천재라는 거구나. 하하하. 나 하루 운동 10시간씩 했는데…….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빼고 다 운동만 했는데, 10년을 그렇게 투자했는데 내 최고 성적은 전국대회 3위가 전분데…….
-아, 형님. 그만하세요…….
-네, 그만하세요. ㅠㅠ
-그냥 쟤네는 종이 다른…….
-근데 쟤네는 그렇게 쉬고도, 두어 달 운동으로 몸 풀고 결승까지 가네. 하하하. 아, 세상 진짜 너무하네. 내 10년은 진짜…… 너무 보잘것없잖아. 하…….
-형님 그만!
-그만그만!
-쟤네는 그냥 종이 다른 겁니다! 형님도 충분히 잘하셨어요!
한 운동선수의 회한 섞인 채팅에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글을 막았다. 그리고 위로했다. 고생했다. 잘했다. 당신의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렇게 그 선수를 위로했다. 그 위로가 먹혔는지, 아니면 자괴감, 후회로 범벅이 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이상 비슷한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천재.
빛나는 재능을 가진 극소수의 존재에게만 붙는 칭호.
그 칭호에 누군가는 환호하지만, 또 누군가는 좌절하고 절망했다.
억지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채팅창은 이내 숙연해졌다.
이 채팅창에 모인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분위기였고, 패자전이 시작됐다.
* * *
패자부활전.
4강까지 올라온 선수들에게 진 선수들이 다시 경기를 해 4강에서 진 선수들과 시합을 한다. 그러곤 거기서 다시 승자 패자를 나눠 3위부터 쭈욱 줄을 세우기 위한 경기를 펼친다. 그렇게 패자전이 전부 끝나면, 그 이후 이제 결승전이 시작된다.
그러니 그때까지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 시간은 다시, 쉬는 시간이었다.
“차라리 준결까지 다 하고 점심시간을 주지, 어중간하게 시간이 붕 뜨네.”
이성진의 투덜거림에 다들 고개를 그러게나 말이다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엔 시합 운용을 좀 잘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이성진의 말처럼 준결승까지 전부 끝내고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 바로 패자전을 치르고 결승을 했으면 이렇게 어중간하지는 않았을 거다.
한 번 몸을 움직였다가 쉬고, 다시 움직였다가 또 쉬고 하다 보면 당연히 진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예열되었다가 꺼지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지치는데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차라리 이럴 땐 그냥 버스에 가서 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관람하는 것도 공부고 훈련이다. 언제가 다시 만나게 될 선수들이니, 실제 시합 장면을 머릿속에 넣어놓는 건 절대 나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지영과 친구들은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며 패자부활전을 지켜봤다.
이미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서 대충 시합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었다. 선발전에서 순위권 입상은 못 해도, 그의 준하는 성적을 거두는 것 자체가 ‘성적’이고 ‘경력’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성적, 경험이 대학교에 올라갈 때, 대학교에서 실업팀이나 상무, 무궁화체육단에 갈 때, 실업팀은 연봉이나, 선수 생활 지속을 바랄 때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패자전이라고 해도, 다들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치열했다.
보는 맛이 있다.
딱 그 정도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부도 됐다.
선수들의 다양한 기술, 지영도 와! 할 정도로 변칙적인 기술에, 타이밍까지. 다 할 줄은 알지만 어떤 순간에 걸어야 더 효과적인지 밖에서 지켜보니 머릿속에 딱딱 들어왔다. 물론 머릿속에 들어와도 그 순간적인 타이밍에 기술을 거는 건 또 다른 영역이라 고된 훈련이 필요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일단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합을 한참 관전했다.
“슬슬 몸 풀자.”
그러다 보니 몸을 풀 시간이 됐다.
임대성 코치의 말에 지영은 일어나서 이성진과 잡고 부딪치기를 시작했다. 임효중은 강한결과, 황석은 임대성 코치가 직접 맞아줬다.
빠르게 30개씩 1세트.
그걸 번갈아 가며 5세트 정도를 하자 평온하던 육체가 열기를 조금씩 뿜어내기 시작했다. 다시 발기술로 고관절을 풀어주고, 연결 기술로 땀을 냈다. 그다음은 호흡을 재차 터뜨리기 위한 팔벌려뛰기, 버피 테스트 순으로 이어졌다.
30분을 그렇게 쉼 없이 달리자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이때가 정말 힘들다.
인터벌을 뛸 때도 힘들지만, 몸을 예열시키는 과정에서 호흡이 트이게 하려면 단시간 내에 빡세게 굴러야 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지만, 이렇게 하고 난 다음 시합에 들어가면 호흡이 터지지 않아 찾아오는 곤란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뭐가 곤란하냐고? 숨이 터지지 않고 시합에 들어가면, 그때 시합 중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땐 진짜 지옥을 맛보게 된다.
시합이 너무 하기 싫어지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고, 그런 생각이 경기 내내 계속해서 든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 시합을 포기하는 선수도 있었다.
예전에 호흡 터뜨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대충 몸을 풀고 나갔다가, 지영도 정말 시합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꼭 지영은 경기 전에, 이렇게 몸을 빡세게 풀었다.
그렇게 몸을 풀고 10분쯤 지나 패자전이 끝났다.
승자와 패자들이 오늘의 경기를 끝내고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금일 선발전 마지막 결승전은 10분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10분 뒤, 결승 시작.
딱 좋다.
끓어올랐던 열기가 적당히 가셨을 때쯤이니까.
10분은 금방 지나갔고, 60경기가 시작됐다.
두 선수 다 실업팀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둘 다, 현 국가대표 1, 2선발이기도 했다.
선수촌 붙박이들.
아니, 선수촌의 지박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둘은 아주 오랜 시간 60체급을 서로 양분해 나눠 먹었다. 아시안 게임, 올림픽도 서로 번갈아 가며 한 번씩 나갔다. 그러니 아시아 선수권이나 세계 선수권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런 라이벌이자, 친구인 둘의 시합은 고요했다.
워낙에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어떤 타이밍에 기술이 들어오고, 어떤 타이밍에 잡기 싸움을 걸어오는지, 이런 것들을 전부 알고 있어서였다.
그러니 두 선수는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1분이 지났을 때 지도를 하나씩 받았고, 다시 1분이 지났을 때 하나씩 더 쌓였다. 이제 한 번만 삐끗하면 반칙패로 끝.
둘은 등 뒤에 낭떠러지를 만들었다.
백척간두? 그런 표현이 맞을까? 아, 차라리 배수진이 나을 것 같았다. 물러나면 익사하는, 그런 배수진 말이다.
지도가 두 개씩 쌓였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기는 초반의 루즈함은 사라지고, 굉장히 다이내믹해졌다.
둘은 왜 자신이 국가대표인지를, 아주 확실하게 선보였다.
기술, 체력.
센스까지. 한 세대를 풍미했던 두 정상급 선수의 시합을 관중들은 각자의 성향에 맞춰 응원했다.
그렇게 한참 열띤 응원이 이어지고, 경기는 점수 없이 끝났다.
그리고 시작된 연장.
손에 땀이 쥐어지는 경기는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경량급이고, 체력 또한 최정상급이라 연장전 5분이 지났는데도 두 선수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 경기는 시작되면, 끝이 난다.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도 있지만, 유도에 무승부란 있을 수 없었다.
옛날, 연장 없이 동점에서 5분이 지나면 하얀 깃발을 들어 올렸던 시절에도 무승부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주심과 부심 둘, 깃발을 들어 올리는 심판이 셋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패자가 되어야만 끝난다.
쿠웅!
그리고 역시, 연장 8분경 승패가 갈렸다.
“으아아아!”
일어나 포효하는 백색 도복. 현 국가대표 1선발.
짝짝짝!
포효하는 승자에게는 박수가 돌아갔다. 그 박수는 패자에게는 위로의 박수가 되었다.
그렇게 한 경기가 끝나고, 이성진이 들어갔다.
66 현직 국대 안방현.
그런 안방현에게 도전하는 이성진.
이우진과 붙는 지영을 제외한, 오늘 친구들은 모두 도전자였다.
선수 입장.
와아아아!
전 경기와는 차원이 다른 환호성.
그런 환호성 소리와 함께 입장해서 경기를 시작한 이성진은, 그 환호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쿠웅……! 소매 끝만 말아쥐고 소매꽂이를 파고 들어가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오며 굴러, 고작 10초 만에 안방현을 돌려버렸다.
잇폰!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아예 뭔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인지도 못 한 채 주저앉아 있는 안방현. 그런 안방현의 뒤를 돌며 이성진은 셀레브레이션을 차분하게 펼쳤다. 자신을 응원해 준 관중에게 손가락으로 콕콕 찍으면서.
피식.
“너도 넌데, 쟤도 진짜 대단하다.”
옆에 서 있던 이우진의 말에 지영은 그냥 웃고 말았다.
이성진은 이겼다.
그러니 이제 국가대표였다.
이성진이 환하게 웃는 낯으로 나왔고, 지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짝!
그 손을 마주쳐준 지영은 후! 단단히 빛나는 눈빛으로 매트 위로 올랐다. 전 경기에서 이성진이 국가대표가 되어 아시아 선수권 티켓을 거머쥐었다면, 이번에는 자신 차례였다.
그런 각오로 이우진과 마주 선 지영의 눈빛은 오늘 하루 중 가장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