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67화
167화. 새롭게 뜨는 별, 신성(新星)(2)
전에 선수촌에서 이성진은 신지혁을 두 판이나 던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연습이다.
서로 간의 실력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던 연습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절대적인 기준치가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신지혁은 그 체급에선 이성진만큼이나 천재 소리를 듣는 선수였다.
그래서 둘의 시합은 시작부터 불이 붙었다.
쿵!
와자리!
먼저 점수를 딴 건 신지혁이었다.
제대로 잡고 들어간 허리후리기로 절반을 먼저 땄다. 이성진은 끝까지 버텼지만 마치 감아치기로 말아 버려서 끝에 몸이 뒤집혔고, 지영이 보기에도 절반은 나올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성진은 방심하지 않았고, 오늘 컨디션이 최고라고 했다.
그러니 분명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거라 믿었다.
2분이 지났다.
신지혁이 이성진보단 실력이 위인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때쯤 이성진이 전매특허인 업어치기를 제대로 걸었다. 신지혁의 신장이 작다 보니 자세를 낮추지 않고, 그대로 무릎만 살짝 굳혀 서서, 말아업어치기를 걸었다. 빗당겨치기 자세에서 나온 말아업어치기다. 다리를 쭉 집어넣으면서 몸을 돌려, 순간적으로 건.
신지혁은 설마 이렇게 자세를 깔아서 업어치기를 들어올 줄은 몰랐는지 방어가 늦었다.
그러나 체구가 이성진보다는 작은 만큼, 자세를 완전히 낮춰 방어에 들어갔지만, 이성진은 거기까지 예상했는지 그대로 앞으로 쭉 굴렀다.
그에, 버티기는 해도 뿌리치지는 못한 신지혁의 몸이 같이 끌려갔다.
지영은 그걸 보며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걸렸다.”
베스트는 그 자세에서 그대로 뽑아내는 거였지만 신장 차이로 인해 그건 물 건너갔으니, 차선책으로 선택한 연결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제법 좋았다.
제대로 걸렸다.
쭉 끌려간 몸이 구렁이 꿀렁거리며 담을 넘는 것처럼 이성진의 등을 타고 돌아갔다.
탄력은 하나도 없지만, 유도는 넘기면 장땡인 경기다.
데구르르, 같이 한 바퀴를 굴러갔을 때 지영은 곧장 심판을 바라봤다.
심판은 눈매를 찡그리고 있었다.
애매하다는 뜻이었다.
‘절반이냐, 한판이냐. 그걸 고민하는 거겠지.’
절반은 무조건 받을 상황이었다.
뒤에서 끌어안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굴러간 거라 이건 무조건 점수였다. 다만 탄력 없이 느릿하게 굴렀기 때문에 이걸 한판을 줘야 할지, 절반을 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무조건, 그래야 했다.
심판은 결심을 내렸는지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위로 쭉 뻗는 게 아닌, 어깨에서 더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옆길로 샜다.
“아…….”
아쉬웠다.
조금만 더 크게 넘어갔어도 한판인데.
하지만 지영은 심판이 그래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성진이 이제 감을 잡았으니, 더욱 마음이 놓였다.
맛테!
짧은 굳히기 뒤에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고, 이성진은 일어나서 도복을 고쳤다.
와아아!
성진이 잘한다!
한판! 한판!
이성진의 팬이 보내는 열렬한 환호성과 응원에 귀가 먹먹했다. 하도 여러 사람이 응원하다 보니 응집된 함성이 체육관 전체를 울렸다. 상대의 기가 팍 꺾일 정도의 응원이었다. 이는 관심받기 좋아하는 이성진에게는 힘을, 그리고 그런 이성진을 상대 중인 신지혁에게는 불편함을 선사할 것이다.
하지메!
재개되는 경기.
신지혁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이성진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기에서 눌리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지영이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기세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진짜 한도 끝도 없이 밀리게 된다.
유도에서 기세는 정말 중요한 항목이라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 신지혁과 백중세로 이어지는 경기.
결국 4분이 지나도록 승부는 나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했지만 둘 다 점수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서로 반칙도 받지 않았다. 반칙을 받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쉴 틈 없이 서로 공격했다는 것.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이 쥐어지는 경기였다.
쿵!
그사이, 3경기장에는 황석이 막 들어섰다. 앞선 경기를 펼쳐야 하는 강한결은 상대 선수의 기권으로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강한결의 상대는 8강에서 부상을 입었다. 이기고 있는 상태에서 당한 부상이라 겨우겨우 점수를 지켜 승리했지만, 준결승을 치를 정도로 회복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강한결은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90 한 경기, -100 한 경기가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이성진보다 한참 늦게 들어간 황석. 그런 황석에게는 결승전에 진출한 강한결이 사이드로 붙었다. 임대성 코치는 아직 이성진에게 붙어 있어서였다.
황석이 경기를 시작하고, 이성진도 짧은 휴식 뒤에 연장전에 들어섰다.
쿵, 쿵, 쿵쿵!
두 친구의 준결승 경기에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어디다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막 드는…….
쿵!
와아아!
“어!”
시작과 동시에 잡지도 않고 들어간 낚시걸이가 제대로 먹혔다.
신지혁은 기합과 함께 막 잡기 싸움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고, 그래서 먹혔다. 제대로 들어간 기술에 신지혁이 급히 몸을 틀었지만, 트는 것보다 매트에 등이 먼저 닿았다. 여지가 없는 점수다.
와자리.
잇폰!
절반, 절반, 합쳐서 한판.
이성진의 결승 진출이었다.
후!
짝! 짜악!
이성진의 경기가 끝나자, 지영은 뺨을 몇 차례 스스로 때렸다.
시합 관전은 끝.
이제는 자신이 들어갈 차례라 정신을 차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뺌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이 정신을 일깨웠고, 지영은 단번에 시합 모드로 들어갔다.
짝!
“파이팅.”
“응.”
스쳐 가며 손뼉을 마주친 이성진의 짧은 말에 지영도 짧게 대답하고는 매트 위로 올라갔다.
슥, 스윽.
긴장으로 인해 찬 땀을 매트에 닦아내고, 제자리 점프로 몸을 예열시켰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강지영! 강지영! 하고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고개를 돌려서 보고 싶었지만, 지영은 그러지 않았다.
앞에 박병훈이 차분한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지영의 경기를 전부 지켜봤을 거고, 분명 쉽지 않을 거라고 느꼈는데도 겁먹거나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그건 곧 상대도 베스트 컨디션이고, 멘탈도 엄청 단단하다는 뜻.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선수였다.
잠시 뒤 심판이 입장했고, 지영은 후우…… 길게 심호흡을 했다.
두 게임.
이제 두 게임 남았다.
아시아 선수권까지 남은 경기는 고작 두 게임이니, 여기서 절대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연희고 아이돌을 응원해 주려고 이렇게 많은 팬이 왔으니, 결코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연예인님! 파이팅!”
그때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
체전 때처럼 응원을 뚫고 귀에 단박에 박히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심판이 입장하라는 사인을 보냈기 때문에 지영은 살며시 웃을 뿐,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인사, 입장, 다시 인사, 한 걸음 앞으로.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합 준비가 전부 끝났고, 지영은 그사이 필승의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이긴다.’
심판이 양 선수를 한차례 바라보고는,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힘차게 하지메!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하!”
“악!”
짧게 기합을 넣은 후 지영은 적당히 거리가 좁혀지자 어깨를 스륵 내렸다. 지영이 특유의 자세에서 어깨, 등, 혹은 가슴 깃을 먼저 잡으라는 신호를 보내자 박병훈은 표정의 변화 없이 과감하게 등 깃을 잡았다.
지영은 그와 거의 동시에 그 아래로 상대의 깃을 잡았다.
홰액!
깃을 잡는 순간, 왼발이 쭉 들어오며 골반을 틀어넣는 박병훈.
‘찍어 허벅다리…….’
왼발의 발목 각도가 앞으로 반대로 돌아가는 걸 지영은 순간적으로 포착했고, 그걸로 박병훈이 무슨 기술을 걸 건지를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빈손으로 매트를 짚으며 자세를 낮췄다.
허벅다리를 가랑이 사이로 상대를 띄워 차 뒤집거나, 허벅다리 안쪽에 걸어 들어 올려 상대를 던지는 기술이다. 그러니 중심이 뜨면 기술에 걸려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먼저 상체를 숙여, 자세를 바짝 낮췄다.
알긴 알았지만, 워낙 순식간에 찍어 차와서 카운터를 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탐색전조차 없이 곧바로 전력을 다해 공격해 들어올 줄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지영의 방어에 박병훈은 기술을 걸려다가, 도로 빠져나갔다. 아무리 봐도 차올릴 공간이 부족하고 지영이 자세조차 낮춘 상태라 되치기에 당할까 봐 기술을 끝까지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대신, 빠지는 사이 어느새 남는 손으로 가슴 깃을 잡더니 그대로 돌아 나와 지영의 머리를 잡기로 잡아 조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지영은 예상했다.
지영은 박병훈이 돌아 나오는 순간 소매 깃을 위에서 아래로, 쭉 밀어서 뜯어냈다. 그러곤 쫓아가면서 그대로 모두걸기를 쓸었다.
퍽!
붕!
와자리!
노리고 찬 건 아니었다.
그냥 손을 뜯어냈는데 그걸 버텨서, 그냥 그대로 쫓아 들어가며 쓸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쓸렸다. 그래서 몸이 붕 떴다가 옆으로 뚝 떨어졌다. 결과는 절반. 지영은 절반 선언과 동시에 바로 굳히기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박병훈은 이미 단단히 방어를 끝낸 상태라 그냥 일어났다.
맛테!
와아아!
지영이 점수를 따자 환호성이 들려왔다.
후우.
지영은 순간의 격돌로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하고는 박병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박병훈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절반 하나 뺏기는 것쯤은 당연히 예상했다는 것처럼. 지영은 그 모습에서 이 선수가 멘탈이 진짜 대단한 선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절반을 빼앗기면 어떻게든 표정의 변화가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이는 지영도 그랬다.
실수면 실수, 제대로 걸린 거면 그 이유를 떠올리기 때문에 변화는 미세하더라도 반드시 일어나는데, 이 선수는 그런 게 없었다. 아니, 어떻게?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지영은 문득 이 선수가 기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맛테!
심판의 시작 신호에 맞춰 다시금 앞으로 나오는 박병훈.
그는 지영이 다시 어깨를 숙이자 전과 똑같이 등 깃을 잡았다. 그러곤 툭, 지영이 미처 잡기 전에 빠르게 챘다.
‘이 틈을 알아차렸어?’
이 선수, 좀 대단하다.
지영이 이렇게 깃을 주고도 잡기에서 밀리지 않는 이유는 동체시력에 있었다. 상대가 손을 뻗는 위치를 보고, 거의 교차하듯이 마주 손을 뻗어 거의 비슷하게 상대의 깃을 잡았다. 그런 게 가능한 이유는 말했듯이 동체시력이었다.
정확히 파악하고, 그 아래로 슬그머니 팔을 뻗어야 비슷하게 잡을 수 있게 도움이 되는 건 눈으로 뻗어오는 팔을 확실하게 파악해야만 했다. 그러니 이런 지영의 잡기 전략을 막으려면, 한 박자는 무조건 빨라야 했다. 최소로 잡아도 반 박자고. 그래야 지영이 잡기 전에 먼저 잡아끄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박병훈은 지금 그걸 해냈다.
딱 한 번 보고 파악해 낸 건지, 아니면 지영의 시합 영상을 돌려보면서 파악한 것 같았다.
아직 두 번째 잡기지만, 지영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조심해야겠다,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절대 안 되는 상황임을 지영은 확신했다. 꽈악! 박병훈은 역시나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반 박자, 한 박자 빠르게 먼저 잡고 끌어 지영의 가슴 깃을 잡음과 동시에 머리를 제대로 조여왔다.
제대로 잡혔다.
이런 상태에서 괜히 무리해서 힘으로 풀려 다가는, 그 힘을 이용한 기술에 제대로 걸릴 수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반칙을 받을 각오로 딱 기술만 방어했다.
‘여기서 걸 수 있는 기술은…….’
등 깃과 가슴 깃을 잡았으니 허벅다리와 허리후리기를 비롯한 허리기술 일체와 돌면서 안다리와 안뒤축과 같은 발기술, 그리고 쭉 앞으로 나가며 찍는 밭다리. 이 정도다. 스탭을 교차해 오른쪽, 왼쪽 자세로 완전히 빗겨 선 채 지영은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허벅다리다.
박병훈의 주특기 중 하나인 허…….
홰액!
퍽!
역시나 허벅다리다.
자세를 낮추고 허리에 힘을 빡 줬지만, 상대의 다리가 허벅다리 안쪽을 차올리는 순간…… 지영의 몸은 그 힘에 저항했지만,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이 붕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