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63화
163화. 추락한 에이스(4)
지영은 정은정, 이연 등과 만나 나의 무사님 출연을 결정했다.
정확한 계약이 오간 건 아니지만, 이제 연출이 붙으면 제대로 제작에 돌입할 게 분명했다. 그런 모든 문제는 임은진에게 맡겨뒀고, 지영은 결정과 동시에 7월, 선발전 준비를 시작했다.
국가대표 3차 선발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이후 첫 대회다.
그러니 공식적인 대회는 체전 이후, 반년이 넘도록 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정도를 넘어서서, 몇 달은 아예 쉬기까지 했다.
몰래 운동한 친구들도 있지만, 추궁해보니 횟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폼을 다시 끌어올려야 했다.
운동선수의 몸은 역시 솔직했다.
선수촌에서 그렇게 날아다녔던 건 역시 오랜만에 도복을 입었다는 고양감과 함께 올라온 아드레날린 때문이었고, 며칠이 지나자 이전에는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직 싱싱한 육체에다가, 워낙 회복 프로그램이 좋아서 금방 복구는 했지만 이후, 전체적으로 실력이 조금씩은 하향했다는 걸 깨달았다.
미쳐 날뛰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그건 몸이 마치 약을 한 것처럼 날뛴 거라서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느긋하면서도, 철저하게 임대성 코치가 짠 프로그램으로 이전의 몸으로 복구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재활 프로그램과 비슷했는데, 3주에 걸쳐 진행된 프로그램으로 지영을 비롯한 연희고 황금세대는 이전의 기량을 확실하게 되찾았다.
그다음은 체력이었다.
새벽 운동에 투자한 시간도 많이 빼앗겨서 전체적으로 체력도 떨어졌다. 근지구력만큼이나 중요한 게 체력이라서, 학교 측과 합의하에 새벽, 오전으로 체력운동을 감행했다.
그렇게 다시 몇 주가 순식간에 흘렀다.
떨어진 기량을 완전히 복구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지만 그래도 이전의 기량을 완벽하게 되찾았다.
기량을 되찾고 다시 도복 운동에 집중, 그러다 보니 6월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7월 초에 있을 선발전을 앞두고, 지영과 친구들은 정말 빡세게 훈련에 임했다. 이미 오랫동안 쉬었던 전적이 있어서 진짜 피 터지게 훈련에 임했다. 그때까지 모든 방송 활동은 올스톱이다. 이성진의 더 런닝 복귀도 시합 이후로 결정됐고, 임효중과 강한결의 데뷔도 뒤로 밀렸다. 원래는 그냥 했을 테지만 갑작스럽게 아시아 선수권 일정이 변하고, 선발전 일정과 출전권 확보 규정이 변하면서 황금세대 전체의 스케줄 또한 재조정이 됐다.
아시아 선수권.
한국 유도선수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거머쥐어야 하는 대회. 이 대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임은진을 비롯한 엔터 팀이 정말 발바닥이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고,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제작진 측에는 매우 실례지만 나이는 어려도 워낙에 연희고 아이돌 자체가 뜨거운 감자다 보니 다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찾아온 7월.
선발전은 서울에서 열렸다.
모두에게 익숙한 장충체육관.
과연 복귀한 황금세대는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의구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대회가 시작됐다.
오전 8시.
이른 아침인데도 관중석에 제법 많은 관중이 찼다. 게다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다. 주말이라서 학생까지 상당히 많이 와 있었다.
“와 오늘 사람 엄청 많네.”
“봐라, 다 여자다, 여자.”
“황금세대 걔들 보러 온 거겠지?”
“그럼 널 보러 왔겠냐?”
한체대 선수들이 몸을 풀면서 나누는 대화가 지영의 귀에도 들어왔지만, 지영은 덤덤했다. 힐끔거리면서 자신과 친구들을 동물원의 원숭이나 코끼리 보듯 하는 시선에도 그냥 덤덤했다.
“연예인이나 그냥 하지, 뭐 좋은 거 있다고 유도까지 하는지 하.”
“냅둬라. 관심병 말기라서 어쩔 수 없다니까.”
“하긴, 관심병 아니면 그 지랄을 떨 리가 없지. 개X끼들.”
“야, 들린다, 들려.”
“들리면 뭐 어쩔 건데.”
“괜히 또 상처받았다고 은퇴한다고 지랄 떨면 어떡하게? 너 그 욕 받아먹을 수 있겠냐?”
“하라 그래. X신 새끼들.”
적의가 아주, 확실하게 넘쳐났다.
지영은 그런 말에도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딱 보니까 욕을 하는 선수는 지영이 첫판을 이기고, 올라가면 붙는 선수였다. 지영은 흔히 똥통이라 하는 시드라서, 상대는 1회전은 부전승이라 할 수 있었다.
“지영아.”
같이 몸을 풀던 이성진의 부름에 지영은 시선을 돌리곤 싸늘하게 웃었다.
“괜찮아. 이따 시합에서 갚아주면 되니까.”
“나도 알아. 그런데 너 눈빛이 살벌해.”
“아 그랬어?”
몰랐네…….
조심한다고 했는데 눈빛은 역시 그리 좋지 않았나 보다. 지영은 뺨을 몇 대 때려서 정신을 되찾고는,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몸을 풀었다. 웅성웅성, 연희고가 몸을 풀기 시작하자 대번에 관중석에서 반응이 왔다.
강지영 파이팅!
성진아 누나 왔다!
열렬하진 않지만, 간헐적으로 터지는 응원.
그 반응에 몸을 풀던 선수들이 움찔하더니, 이내 관중석을 돌아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유도 경기에서는 아마 이런 적이 처음일 거다.
보통 학부모나 팀 동료의 응원은 있어도, 이렇게 일반인이 찾아와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그걸로도 모자라 특정 선수들에게만 응원을 보내는 모습은 아마 모든 선수가 처음일 거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
그러니 매우 얼떨떨한 표정들이었다.
반대로 응원을 받자, 신기하게도 지영은 차 있던 독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했다.
‘같이 운동하는 선수들은 우리를 욕하는데…….’
오히려 같은 편이어야 할 선수들에게는 미움받고, 반대로 일면식도 없는 팬들에게는 사랑받으니 뭔가 마음이 이상했다.
그런 마음속에서 시작된 선발전.
첫 게임은 지영이었다.
똥통 시드라서, 가장 먼저 시합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지영이 입장하자 팬들이 바로 반응했다.
강지영 파이팅!
서건 잘해라!
지영의 이름도 부르고, 지영이 맡았던 배역인 서건의 이름도 부르고.
중구난방, 가지각색의 응원이었지만 그 응원은 지영에게 확실한 힘이 됐다. 지영은 건너편에 선 상대를 응시했다.
박종선.
실업팀 선수였다.
한체대를 졸업하고 수원시청에 들어간 선수다.
‘수원시청이면, 강팀이지.’
예전부터 강한 선수들을 많이 보유했던 수원시청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박종선의 실력을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질린 기색.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응원 때문은 아닌 것 같고, 하얗게 질린 표정이나 경직된 몸으로 보아 체중감량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컨디션이 나락으로 처박혀 있는 상태 같았다.
‘신장은 나보다 조금 작고, 업어치기 선수.’
이미 박종선에 대한 정보는 철저하게 확인했다.
임대성 코치는 박종선은 물론, 지영이 결승까지 가면서 붙을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어떻게든 구해줬다. 물론 지영뿐만이 아니라 이성진부터 황석까지, 체급별로 전부 구해서 줬다.
전형적인 업어치기 선수.
박종선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딱 그랬다.
심판이 입장하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안내 방송이 나갔다.
대회 시작을 선언하고, 네 경기장에서 동시에 시합이 시작됐다.
하지메!
심판의 외침에 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박종선은 그래도 시합이 시작되자 표정을 수습하고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눈빛으로 앞으로 나왔다.
시작은 잡기 싸움이다.
하지만 지영은 어깨를 비스듬히 내주면서 잡기 싸움을 포기했다. 그러자 박종선의 눈빛에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이미 강지영의 스타일이야 유도에 종사하는 이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잡기를 포기하고, 조금 불리한 자세로 잡고 시작하는 방어 형, 카운터 유도.
이걸 모르는 선수는 없었다.
특히 -73을 뛰는 선수라면 더더욱.
박종선도 그걸 아니까 지영의 의도 대로 가슴 깃을 잡기가 곤란했다. 지영의 경기는 인터넷에만 쳐봐도 십수 개는 나오고, 그 시합을 몇 개만 찾아봐도 이런 식으로 경기가 흘러가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먼저 내주고, 뒤늦게 잡는다.
그다음 본격적인 시합의 시작.
여기까지 보면 서로 불리할 건 없었다.
오히려 업어치기 선수가 더 좋았다. 자신은 가슴 깃을 잡았고, 상대는 애매한 어깨 깃을 잡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유리하게 잡고도 지영을 이긴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박종선은 가슴 깃을 잡았다.
그리고 툭!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깃을 털었다. 지영이 어깨 깃도 못 잡게 하기 위한 빠른 털기였지만 지영은 이미 빠르게 한 발자국 더 치고 나가며 어깨 깃을 잡았다. 정확히는 날개뼈 바로 위다. 그곳을 손가락 네 개로 말아쥔 다음 자세를 살짝 숙이자 박종선은 다시 한번 강하게 어깨를 털었다.
지영의 손을 털어내고 싶은 기색의 몸부림이었지만, 지영의 악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 포지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도복을 놓치지 않는 거라서, 중학교 시절부터 단련한 악력은 적어도 한 체급 위 선수의 털어내기 정도는 깨끗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두어 번 털어냈는데도 지영이 미동도 없자, 박종선은 결국 포기하고 소매 싸움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업어치기 선수한테 가슴 깃을 내주고, 소매 깃도 내주는 건 나 던져주세요. 하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자신이 잡으면 잡았지, 절대 소매 깃은 주지 않았다.
툭!
손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서로의 소매 깃을 잡으려는 싸움이 이어졌고, 한참 동안 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맛테!
당연하게도 심판이 그쳐를 선언하고, 바로 지도를 하나씩 줬다.
그리고 다시 하지메.
똑같이 가슴 깃을 내주고 지영은 어깨 깃을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지영이 팔을 뻗어오는 타이밍을 노려 벼락처럼 들어오는 안 뒤축. 73도 경량급이라 진짜 빠르긴 빨랐다.
하지만 지영이 안뒤축을 치고 싶게 발을 앞으로 뒀던 이유는, 그 자체로 미끼였다.
아주, 아주 먹음직스러운 미끼. 손기술, 발기술을 주력으로 연마한 선수들이 보면 치고 싶어 환장하는 자세.
거의 본능이었을 거다.
이런 상황에 치라고 죽어라 연습했었으니까, 지영의 오른발이 왼발보다 앞으로 나오자 본능적으로 어깨를 털며 안뒤축을 때렸을 거다.
지영이 즐겨 던지는 미끼를 저도 모르게 물었으니, 어쩌겠나.
카운터에 터져야지.
퍼억!
안뒤축을 치는 발을 오른발을 슬쩍 점프하듯 뛰어 피한 다음, 강하게 치는 모두걸기.
이우진도 날아갔던 카운터다.
박종선의 몸이 붕 떠서, 바닥에 뚝 떨어졌다.
어깨를 잡은 손으로 강하게 기울이기를 넣었지만 역시 제대로 잡은 상태가 아니라서 박종선은 그 상태에서 몸을 비틀어 겨우 등짝으로 뚝 떨어지는 건 면했다.
하지만 제대로 걸린 기술이었다.
와자리!
맛테!
심판의 절반 신호에 지영은 도복을 놓고 자리로 가서 섰다.
와아아!
시합이 끝났는지 알고 환호성이 들렸지만, 지영은 긴장을 풀지 않고 다시 박종선에게 집중했다.
아직 시합은 끝나지 않았고, 절반은 언제고 뒤집힐 수 있으니 긴장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메!
다시 시작된 경기.
시간은 2분 30초 정도 남았다.
지영이 가장 좋아하는 스코어와 시간이다.
상대를 천천히 요리할 수 있는.
절반이란 점수로,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고, 종내에는 조급하게 만들어 무모하게 기술을 걸게 만드는 상황이, 딱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지영의 특기는 카운터지만, 또 다른 특기가 있다면 바로 시합 운용이었다.
점수가 없이 동점의 상황에서도 지영은 절대로 불리한 포지션으로 몰리지 않았다. 한 번 기술을 받으면, 반대로 기술을 걸어 반칙을 받을 만한 상황 자체를 없애버렸다.
방어유도의 핵심 중 하나가 반칙 관리이기 때문이고, 지영은 이쪽으로는 거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런 지영에게 박종선은 1분 정도가 남자, 결국 무모하게 기술을 걸어왔다.
억지로 잡아끌어서, 업어치기.
소매도 못 잡았으니 할 수 있는 건 말아업어치기뿐이었고, 그조차도 제대로 걸지 못했다. 엉성하게 들어간 기술.
엉성하게 들어간 기술은, 아주 높은 확률로 되치기를 당한다.
지금 지영이, 상대를 바짝 붙인 다음 그대로 찍어 눌러서 카운터를 건 것처럼.
쿵!
잇폰!
한판이다.
비록 그렇게 멋이 없는 기술이었지만 한판은 한판.
깔끔한 1회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