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58화
158화. 어린 독지가들(5)
어린 독지가 기사가 나가고,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연희고 황금세대에게 엄청난 인터뷰 문의가 쏟아졌다.
예전에도 적지 않은 인터뷰 제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한국도 한국인데, 이 기사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공영 언론의 해외 토픽에 소개되면서 해외에서도 인터뷰 제안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사립 명문 연희고등학교 홈페이지는 마비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연희 스포츠는 물론 비즈 인터내셔널까지, 홈페이지가 정상 복구가 거의 힘들 지경이었다.
연희고 아이돌을 향한 어마어마한 관심.
좋은 일이었다.
애초에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벌인 판이었으니 가장 이상적이고, 최고로 잘 나온 게 맞지만, 그 관심도가 너무 크니 이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특히 교문 앞에 서성이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얼떨떨한 걸 넘어 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시작한 후원이다.
결과적으로야 실제로 후원을 받은 친구들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각자 성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더욱 화제성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정을 찍은 게, 엊그제 캐나다에서 열린 피겨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양지원의 인터뷰였다.
작년부터 나가기 시작해, 시즌 중반부터 탄력을 받아 입상권에 든 양지원은 기어코 시즌 막바지인 지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에게 아주 근소한 차이로 밀렸기 때문에 그녀에게 거는 기대는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그런 그녀를 인터뷰하던 기자가 그녀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에 연희 스포츠의 마크가 붙어 있는 걸 보고는 소속을 물어봤고, 그녀는 연희 스포츠에 소속이 되어 있음을 밝혔다. 사실 연희 스포츠 후원자 명단에 양지원만 빼놨었다.
그녀가 괜히 구설수에 올라가는 게 싫었던 강한결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어린 독지가 기사가 나가고, 양지원은 스스로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그에 대한 반향은 다시 엄청났다. 언제부터 후원받았냐는 말에 양지원은 작년 비시즌부터 받았다고 대답했고, 연희 스포츠의 후원으로 피겨복, 스케이트, 새 프로그램 안무비 등을 지원받아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걸 전부 밝혔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나간 기사 때문에 또 난리가 났다.
현재 연희 스포츠 측에서 후원하는 유망주들은 전부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는, 그래도 재능이 있단 소리를 듣는 선수였다. 하지만 연희고 황금세대 급에 비벼볼 만한 선수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양지원은 아니었다.
피겨여왕 이후로 처음 나온, 세계급 유망주.
첫 세계대회부터 입상하기 시작한, 이제야 날개를 활짝 펴고 날기 시작한 천재.
양지원은 외모도 외모인지라 인기가 엄청났다.
그런 양지원의 스토리가 어린 독지가로 이미 커다랗게 타오르는 중인 연희고 황금세대의 가치를 더욱더 크게 증폭시켜 버렸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기자들이 연희고 정문으로 몰려들었다.
아예 파라솔을 치고 죽치는 이들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며칠째 그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이제는 좀 다른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영은 아직도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이 그리 들지 않는 상태였다.
기자, 모든 기자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는 박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면 되니까. 하지만 지영이 믿지 않는 건, 자신이 한 대답이 그대로 올라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겪어봤다.
몇몇 군소 언론이지만 이것들은 지영을 이용했다.
조회 수를 올리려는 의도로 지영의 대답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당시 상황에 맞추어 써먹었다. 그때 지영은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면 다른 친구들의 인터뷰는 막지 않을 생각이지만, 자신은 이제 앞으로 그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고생한다고 해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없는 사람 취급.
지영은 딱 그렇게 정했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이 역시 문제였다.
같은 반 학생, 학교 선생님, 경비실 직원분들을 귀찮게 하는 기자들이 있었고, 이는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한다는 걸 지영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이 인터뷰하지 않으면 우린 떠나지 않겠다는 퍼포먼스를 저렇게 보여주는 기자들에게 지영은 조금의 도움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전처럼 인터뷰도 안 해준다고 지랄을 떠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좀 괜찮긴 했지만, 학교 전체를 귀찮게 하는 중이라 대책을 마련하긴 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짐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졌다.”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웨이트를 했다.
트랙을 달리고 싶었는데 기자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웨이트 후 저녁을 먹은 뒤, 1층 코치실에 모였다.
조영우와 권지호, 주성호까지 전부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강한결이 대표로 꾸벅 고개를 숙이자 임대성 코치는 피식 웃었다.
“네가 잘못한 게 뭐 있겠냐. 그리고 이건, 지영이가 시작한 거잖아?”
씩 웃으며 임대성 코치가 한 말에 지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다니까? 이런 게 또 너희들 매력이니까. 그보다 이제 어떡할 거냐. 좀 전에도 교무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너무 전화가 많이 와서 죽겠다고 어떻게 해결 좀 해달라더라.”
“……그 정도로 많이 온대요?”
“업무 전화를 선생님들 개인 휴대폰으로 전부 해야 할 정도라고 하더라. 전화는 아예 코드선 뽑아버렸고.”
“…….”
이런…….
예상을 못 했던 건 아니었다.
지영과 친구들이 아예 인터뷰하지 않으니 아예 연락할 방도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라는 사유지를 넘어가려니, 학교 앞 경비실이 너무 단단했다. 이런 문제를 예상이라도 했는지 전문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었고, 보통 학교와는 다르게 전문가들이 경비실에 상주하며 막고 있으니 월담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리고 기자 몇 명이 실제로 담을 넘었다가, 사유지 침법으로 연희 재단에게 직접적인 고소를 당한 이후 간 크게 월담하는 기자는 없었다.
그럼 포기?
그 포기를 못 해서, 아예 교문 밖에 자리를 깔아버렸다.
그리고 학교를 한없이 귀찮게 하고 있었고.
“보통 이쯤 되면 질려서라도 인터뷰를 해주긴 할 건데. 너희들은 그럴 생각 전혀 없지?”
모두 침묵했다.
침묵은 긍정이고, 인터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는 연희 스포츠, 그리고 비즈 인터내셔널과도 이미 충분히 협의가 된 얘기였다. 그 어떤 인터뷰, 취재도 허락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는 것. 그렇게 이미 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독자적인 행보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독자적인 행보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는 강한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으니, 그의 다짐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힐끔 본 강한결의 눈빛에서 그런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임대성 코치의 말이 재차 이어졌다.
“그럼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이게 언제까지 갈지 예상이 안 되네. 그때까지 계속 귀찮게 할 건데 괜찮겠어?”
임대성 코치의 말에, 강한결이 결국 조금은 수정된 방안을 내놓았다.
“그 정도는 저 기자들도 감수해야죠. 그리고 조금 생각해 봤는데, 좀 더 애태우다가 한국 말고 외국 언론 쪽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떨까 생각 중이긴 해요.”
“외국? 좀 전에는 안 한다며.”
“한국만요. 그쪽은…… 지영이 이용한 벌 받아야죠.”
강한결은 딱 찍어서 지영을 언급했다.
그 말에 지영은 강한결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반발이 더 심해질 수도 있을 텐데. 괜찮겠어?”
지영은 일단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강한결은 피식 웃고는 지영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 어차피 욕먹는 거 익숙하잖아? 인터뷰할 생각은 없긴 한데, 이대로는 학교 측이 너무 힘들어서 안 돼. 뭘 하긴 해야 해.”
“그래서 국내 언론사는 무시하고 외국만?”
“응. 그러면 우리 뜻도 어느 정도는 세우고, 우리한테 있는 궁금증도 알려줄 수 있으니까 하고 나면 어느 정도는 풀리겠지.”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지영에게 강한결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너한테 하라고는 안 할게. 이 인터뷰는 나만. 코치님. 저만 나서서 인터뷰하는 걸로 할게요. 친구들은 빼고.”
“너 혼자? 이 일을 벌인 게 지영이랑 같이 벌인 건데, 너만 나간다고 궁금증이 다 해소되겠어?”
“그렇긴 한데, 그것도 말만 잘 맞추면 돼요. 그리고 솔직히 한 명이라도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강한결의 말에 임대성 코치를 포함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외국계 언론사는 그런 마음을 별로 품지 않을 거다. 왜냐면 그들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이 상황 자체가 불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며칠째 가지 않고 이러는 걸 보면 아마도 황금세대에게 일어난 일은 알고 있는 것 같았고, 그리고 그만큼 궁금한 것 같았다.
세계를 뒤져봐도 없던 행보다.
유도계 쪽에서나 주목할 만한 천재들이었다가, 이번에 어린 독지가 기사가 나가면서 일반인들의 관심도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세계는 아직도 K-Pop 열풍이 부는 중이었다.
드라마도, 영화도, 음악도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라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연예계 활동을 하고,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후원 재단을 운영 한다고 하니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취재하려고 왔는데 웬걸?
워낙 당한 게 많아서 얘들이 소통의 문을 걸어 잠갔네?
그게 불만인 기자들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이해하고 기다리는 기자도 있을 거고.
중요한 건, 아직 가지 않았다는 것.
인터뷰를 모조리 차단하고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기다리고 있다는 것.
중요한 건 이 부분이었다.
지영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강한결을 향해 말했다.
“나도 같이 나갈게. 후원 재단 운영이 제일 궁금할 텐데 너 혼자 나가는 건 좀 그래. 같이 나가자.”
“괜찮겠어?”
“응.”
강한결이 나서서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말로는 리더니까 당연히 할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영은 강한결이 모든 부담을 짊어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한결은 지영의 의견은 받아들였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냥 나서지 않는 게 좋다며 딱 선을 그었다.
“이 일을 시작한 건 우리 둘이니까, 우리가 책임질게.”
“와, 말 넘나 서운…….”
이성진의 장난스러운 말을 피식 웃는 걸로 넘긴 강한결이 다시 임대성 코치를 바라봤다.
“코치님. 이렇게 해도 될까요?”
“그래. 그렇게 정했으면 해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해 준 임대성 코치는 기자 문제는 그렇게 정리하고, 다른 말을 꺼냈다.
“얘들아. 그간 답답했지? 도복도 못 입고.”
“……조금요?”
이성진의 대답에, 임대성이 조금? 하고 되물었더니 친구는 아니요! 많이 답답했습니다! 하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리고 후배들한테도 너무 미안하고요.”
이성진이 후배들을 돌아보며 말하자 조영우를 포함한 세 후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연희고 유도부입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그래도 우리 마음은 그런 게 아니란다.”
이성진이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처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영도 당연히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작년 강한결의 계획이 시작된 이후, 후배들은 따로 충북체고나 청석고 쪽으로 보내 훈련을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팀이라는 이유로 후배들은 그걸 거절했다.
어린 마음의 의리지만, 그걸 꺾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도 연희고 유도부고, 그 책임을 같이 짊어질 필요가 있다는 조영우의 말에 강한결도 한숨과 함께 딱딱한 저 친구를 설득하긴 힘들겠구나 싶어 고개를 저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후배들도 지영이나 친구들처럼 여태껏 도복을 입지 않았었다.
그게 고맙고, 미안했다.
‘얘들도 길을 열어줘야겠어.’
다부진 표정의 후배들.
다행히 후배들의 외모도 괜찮았다.
다른 재능은 좀 살펴봐야겠지만, 그래도 체격과 외모, 인성은 이미 검증이 됐다. 공부도 그렇지만 유도 실력도 벌써 전국대회 입상권에서 놀 정도니, 부족하긴 해도 비슷한 길을 걷는 친구들이었다.
그런 후배들의 길도 책임져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이건 예전에도 생각했던 건데, 이번에 제대로 마음을 먹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임대성 코치가 좀 전에 왜 그런 말을 했는가였다.
“인터뷰 끝나면, 바로 도복 입자.”
“어, 진짜요?”
“그래, 슬슬 준비해야지. 아시아 선수권 도전하려면.”
“우와! 코치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너희들 의견대로 따라가는 건데. 그래서 도복 입으면 어디서 훈련할까 고민 좀 해봤는데…… 딱 한 군데가 떠오르더라.”
“어디요?”
이성진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임대성 코치가 씩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선수촌.”
딱 그 한마디.
진짜 그 한마디에 지영을 포함한 연희고 유도부 전원의 눈빛이 확!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