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54화
154화. 어린 독지가들(1)
특정한 인물 하나를 천재로, 혹은 전체에서 가장 튀는 존재로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으로는 어떤 게 가장 좋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쉬운 건, 그 특정 인물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바보로 만들면 된다.
이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에 자주 쓰이는 기법으로 특정 인물 말고는 캐릭터성을 잃지만, 반대로 그 특정 캐릭터는 크게 부각이 된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장대호를 제외한 국가대표팀이 결국은 누구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여자대표팀에서는 두 개나 나왔는데, 남자부는 가장 어린 장대호를 제외하고 기존 대표 선수들이 모조리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대표팀의 금을 저지한 선수는 대부분이 일본 선수들이었다.
그 결과, 주변이 바보가 되고 다른 하나가 특출난 천재로 인식되는 기법이 저도 모르게 완성이 되고 말았다.
세계선수권은 이전 아시안 게임의 영향으로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출국 전에도 필승의 각오를 다지고 나갔는데, 성적은 결코 좋지 못했다. 아니, 사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새로운 천재 장대호의 등장도 있었고, 은과 동도 어느 정도는 땄기 때문에 분명 나쁘지 않은 성과였는데도 또 일본 선수들에게 발목이 잡힌 게 문제가 됐다.
안호진은 이번에도 신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준결승에서 만난 두 사람의 시합은 시종일관 미야모토 신지의 우세였다. 아시안 게임의 악몽이 되풀이하고 싶었던 것처럼 신지는 이번에도 안호진을 가지고 놀았다. 절반 하나로 인한 우세승이었지만 경기는 시종일관 신지의 페이스였고, 안호진은 경기 30초 전에 아예 시합을 포기했다.
하지만.
신지는 안호진을 던지지 않았다.
그냥 잡고만 있었고,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렇게 신지를 시작으로 또 탈탈 털렸다. 총 네 개의 체급에서 일본에게 졌고, 오직 장대호만 일본 선수를 잡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자연스럽게 다시금 비난의 화살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비난의 화살은 황금세대에게 향하지 않았다.
날아가긴 했다. 날아가긴 했는데, 언론의 포화를 맞고 상심해 결국 유도계를 떠나 그들을 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황금세대는 선수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4월까지 선수 등록을 하지 않으면 아예 올 한 해 시합을 뛰지도 못한다.
3월부터 대회가 열리니 보통은 기간이 오픈되면 거의 모든 선수들이 등록한다. 괜히 늦장 부리다가 못하게 되면 그것만큼 선수에게 치명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수 등록을 하지 않은 건, 유도를 포기했다는 뜻으로도 간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방송에서도 모두 하차했다.
더 런닝에서 하차했고, 프로젝트 아이돌 준비도 동결, 영화 촬영도 동결, 다른 둘은 들어온 시나리오 전부를 폐기했다는 소식이 조심스럽게 나돌았다. 연희고 재학생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새벽, 오후 운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반 학생처럼 평범하게 학원까지 다니며 수업에 집중하고 있단 얘기가 돌았다.
실제로 학원에 등록한 것도 맞았다.
그리고 자체 평가를 통해 성적을 좀 더 끌어올렸다는 것까지. 세세하진 않지만, 연희고 황금세대에 대한 정보는 재학생을 통해 SNS에 충분히 퍼져 있었다. 그걸로 그들이 은퇴했다는 사실은 기정사실이 됐다.
그러니…… 분노가 섞인 비난의 화살이 어디로 가겠나.
유도협회? 당연히 날아갔다.
거긴 이미 게시판부터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아시안 게임 때는 이성을 잃어서 못 보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협회가 의도적으로 당시 여론에 대해 침묵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의견은 작년 체전 때 전기정 교수가 했던 발언과 맞물려 거대한 불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덩치를 키운 분노의 불길이 유도협회와 언론을 맹폭격했다.
그걸 지켜보는 처지에서 감상평을 내놓으라면…… 솔직히 어이가 없고 웃겼다.
유도.
일본에서 태어난 이 유술이 스포츠가 되고,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고 나서도 솔직히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크지 않았다.
축구나 야구, 배구 등 구기 종목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게 유도라는 종목의 인지도였고, 그래도 한 번씩 관심이 타오를 때가 있다면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이 전부였다.
그 외엔 평소에 관심조차 없는 종목.
유도?
그거 막 바닥에 던지는 거?
일반인에게 물어보면 딱 저 정도의 대답이 나올 그런 종목일 거다. 그 종목에 종사하는 선수 중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는 사람이 열에 한둘 정도 될까? 그 정도일 거다. 그나마 방송에 나오는 사람 몇 명이 전부일 거고. 그런 종목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종목 때문에 네티즌들이 화가 매우, 많이 나셨다.
지영은 그걸 보며 참……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좋기도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 감정의 근원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감정은 아마도, 앞으로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그런 불편함에서 눈을 돌렸다.
이 모든 게 강한결이 노렸던 거고, 그것대로 아주 훌륭하게 진행 중이었으니 괜히 자신이 나서서 초를 쳐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켜보고 있기 참 힘드네. 넌 안 그러냐, 지영아?”
그때 툭 던진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나오는 대답.
“기분 참 뭣 같긴 하지.”
애초에 이런 반응을 노렸긴 했지만, 정말 딱 이렇게 따라주는 여론을 보며 지영은 정말 형용하기 힘든 불쾌한 감정과 제대로 일이 풀리고 있기에 찾아온 안도감에 기분이 참 별로였다.
서울로 가는 차 안.
지영은 그냥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상황은 강한결이 의도한 대로 정확히 흘러가는 중이었다. 활활 잘도 타면서.
여기에 이제 기름을 끼얹으면 되는데, 그건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스탠바이 사인은 이미 나와 있고, 액션 사인만 떨어지면 이제 포털 사이트에 슬쩍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는 진짜 지금까지 일어난 것보다 더 큰 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 예상이 됐다.
기대?
글쎄.
기대심보다는 그냥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어 자유롭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조심한다고 양유진을 못 본 지도 벌써 몇 달이나 흘러서 그런 마음이 더욱 컸다.
한 시간쯤 더 달려 서울 회사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내려 위로 올라가자 다들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영이나 황금세대는 담담했는데 오히려 회사 직원분들이 비장하기도 하고, 또 어딘지 흥분한 것 같기도 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쪽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이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드디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지금에 다다랐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았다.
세계선수권이 끝나고 사실 바로 터뜨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노린 것 같아서 일주일간 여유를 줄 생각에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디데이였다.
기사는 가장 믿을 만한 지인으로부터 나갈 터였다.
그럼 그 기자가 누굴까?
지잉, 지잉.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지영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는 이선영이라고 떠 있었고, 이름이 뜨자마자 지영은 장세리 선배님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다부지게 끄덕여 줬다.
“네, 누나.”
-시간 다 됐는데, 어떻게? 포문을 열어도 될까나?
이선영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포문이라.
‘뭐 딱히 틀린 단어는 아니지.’
이 기사가 쏘아지는 순간 이제 언론을 향한 거대한 포격전이 시작될 테니까.
그 결과, 황금세대를 공격한 쪽은 넝마가 될 거고, 그와는 반대로 황금세대의 인지도는 어마어마하게 솟구치게 될 것이다.
“네, 부탁드려요.”
-오케이. 네가 물살까지 잘 조절해 줄게. 이번 건은. 괜찮지?
“그럼요. 부탁드려요. 누나.”
-후후, 그래. 중간중간 보고 할게. 그리고 반응은 한 10분 후면 바로 나올 거야. 그럼, 시작한다?
“네.”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고, 10분.
이선영의 말처럼 대번에 MBS발 기사는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회사 전체의 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MBS에서 터진 하나의 기사.
제목은 안타까운 ‘어린 독지가들. 연희고 황금세대.’란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연희고 황금세대, 혹은 연희고 아이돌로 불리는 고3 어린 학생들이 어렵게 운동하는 유망주들을 후원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연희 스포츠.
강한결의 어머니가 대표이사지만, 실질적인 회사 대표는 강한결과 강지영으로, 후원에 필요한 자본금 자체를 전부 두 사람이 냈다는 얘기도 들어 있었다.
이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쳤네, 진짜…….
-와, 후속 기사 올라오는 거 봤는데, 진심 돌았다. 돌았어 ㄷㄷ
-연희 스포츠 들어가 보니 벌써 후원하는 애들이 40명이더라…….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쟤네가 뭔 돈이 있어서 이렇게 많은 애들을 후원하냐?
-그러게. 이제 고작 고등학생인데?
-후속 기사 또 떴다. 자본 출처는 밝힐 수 없다는데? 그럼 애초에 얘들 금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는 됐나 본데? 어디 중소기업 하는 거 아니냐?
-ㄴㄴ. 강한결은 몰라도 강지영은 아버지 안 계시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채소 파신다. 그걸로 후원? 어림도 없지.
-그럼 돈이 어디서 났는데? 보니까 지분이 둘이 거의 90%라며. 솔직히 그 나이에 그 정도의 돈을 버는 게 말이나 됨?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하냐? 이제 고작 고3인 애들이 재단 만들어서 힘들게 운동하는 애들 후원하는 게 더 중요하지?
-ㅇㅇ 논점은 그쪽이 아니지. 왜 또 물 흐리냐 이 새끼들아?
-아니, 궁금한 거 말도 못 하냐?
-어. 넌 안 돼. 내가 다른 기사들 봤는데 거기서도 교묘히 조작질하더라 너? 이전 기사 파보니까 애들 쓰레기로 몰아가고? 너 언론사 새끼지?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저런 좋은 일 하는 애들이 은퇴한 거야. 개 쓰레기야.
-ㅇㅇ 저 새끼 맞네. 기사마다 들어가서 아주 물타기 진짜 개쩔게 하네. 그리고 조작질하려면 최소한 아이디는 좀 바꿔가면서 하던가. 성의도 더럽게 없어, 개 쓰레기 새끼.
-기레기란 말도 아깝다. 아까워.
-맞아. 멀쩡한 기러기는 뭔 죄야?
걸렸다.
자본에 대한 궁금증으로 물타기를 시도하던 미증유의 세력이 증발하자 댓글은 다시금 정상으로 돌아갔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운동하고, 공부하고, 연기나 춤 노래 연습하고, 거기에 다시 공부 복습하고. 이것도 진짜 미친 스케줄인데 거기에 후원 재단 일까지……. 이 애들은 진짜 대단하단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와…….
-맞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아이들의 노력보다 저 마음이 너무 곱고 예뻐 보이네요. 보통 돈이 많으면 그것 때문에 건방지거나 거만해질 수도 있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재단 일까지 스스로 했다니……. 정말 기사 읽으면서 가슴이 얼마나 먹먹하던지…….
-윗분 말씀에 진짜 공감해요. 저희 애가 운동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정말 운동 잘하는 남매가 있는데, 걔들이 부모님이 안 계셔서 항상 힘들게 운동하거든요?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해서 먹는 것도 가만 보면 부실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연희 스포츠? 거기서 후원받아서 장비도 새 걸로 바꾸고, 먹는 것도 지원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와 정말 좋은 일 하는 곳이구나 했는데 거기가 저 애들이 하는 곳이었네요.
-연희 스포츠에 등록된 애들은 홈페이지 가면 다 볼 수 있어요. 정말 잘하는 애들이고, 조금만 알아봐도 편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 보통 이렇게 집안이 힘든 애들이더라고요. 그런 애들을 찾아서 후원해 준다는 게 진짜 발품도 엄청나게 팔아야 하는 거라서 쉽지 않을 텐데, 애들 너무나 멋지네요.
-그런데 이런 애들한테…… 정말 기자들 너무하네요.
-기자 아니죠, 그런 것들은. 그냥 쓰레기임.
-솔직히 연희고 애들이 잘못한 것도 없지 않나요? 그냥 짜놓은 계획대로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던 건데…….
-없죠. 쟤들이 뭔 잘못이 있겠어요.
-협회도 개새끼들이고, 몇몇 언론사 그 새끼들은 더 개새끼들이고…….
-그럼 이제라도 다시 복귀해도 되지 않나요?
-그러면 좋은데 애들이 상처를 너무 받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하긴, 그렇게 물어뜯었으니.
-성진아 ㅠㅠ
-에휴…….
-하아…….
됐다.
여론이, 의도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