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53화
153화.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5)
시작은 방송가였다.
당시 식당에 있던 사람은 배우, 스태프 포함 50여 명 정도였다.
그리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강한결과 통화 당시 지영이 은퇴를 거론했던 걸 전부 들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영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은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지영이 긍정하는 모습까지 전부 봤다.
그리고 고작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은퇴란 기사가 나왔다.
사실 준비가 좀 필요했었는데, 지영은 강제로 은퇴 수순을 밟게 됐다.
일요일.
더욱 촘촘하게 계획을 짰다.
벌려놓은 일들이 있어서 그걸 수습해야 했는데, 그 부분에서 약간의 마찰이 생겼다.
투자자인 강한결이야 괜찮았지만 내년 데뷔 예정으로 연습 중이던 임효중은 따로 그쪽 사장님과 길게 상의를 해야 했다. 어차피 내년이고, 몇 달만 늦추어달란 말에 난색을 보인 거다. 그래서 연희 스포츠는 그쪽에도 투자를 감행했고, 불만을 잠재웠다.
그렇게 은퇴 준비가 끝났고, 연희고 아이돌은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시작은, 가족과 주변 지인에게는 사실을 알리고 철저히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는 일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
“네, 괜찮아요. 어머니도 혹시 모르니까, 몇 달만 가게 쉬시는 게 어때요?”
-거래하던 곳이 있어서 힘들어. 엄마는 알아서 잘 견뎌낼 테니까 아들은 아들 일 해. 엄마 걱정하지 말고.
역시, 어머니는 일을 놓을 생각이 없으셨다.
아무리 자신이 설득해 봐야 어머니는 마음을 접지 않으실 게 분명해서, 지영은 그냥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 저번처럼 숨기지 마시고.”
-그래 알겠어. 꼭 그렇게 할게.
다시 한번 다짐을 받은 뒤 전화를 끊은 지영은 양유진에게도 연락해서 상황을 알렸다. 그녀에게도 단단히 당부를 한 지영은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거실로 나가 체중계에 올라갔다. 77㎏. 평체보다는 조금 덜 나갔다.
이제부터 살을 빼야 했다.
수척해진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심적으로 고생한 모습은 반드시 필요한 연출이었다. 그런 모습은 친구들의 손에서 SNS를 타고 알려질 것이고, 그 사진들은 연민이란 감정을 일으키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게, 강한결의 머리에서 나왔다.
‘대단한 놈이야, 진짜.’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그런 발상이었다.
‘언론을 조지기 위해 여론을 이용한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 기발한 거지.’
따지고 보면 둘 다 지영과 친구들을 괴롭혔던 이들이었다.
언론은 조회 수 때문에, 여론은 분노를 풀기 위해 죄 없는 황금세대를 믹서기에 넣어 갈려고 했다.
우리가 대체, 뭘 잘못해서?
그런 의문이 언제나, 시간마다 한 번씩 떠올랐다.
그래서 지영은 강한결의 전략을 아주 착실하게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몇 달이었다. 이제부터, 여론은 뒤집히기 시작할 테니까.
일요일이 지나고, 한 주가 시작됐다.
수요일쯤 기다렸던 기사 하나가 쏙 올라왔다.
-더 런닝, 이성진 하차 논의 중?
-더 런닝 측, 아직 확정된 바 없어.
-더 런닝 제작진. 지금 이성진, 이성진 소속사와 조율 중이다. 공식 입장은 결정되는 대로 발표하겠다.
이성진의 더 런닝 하차 얘기가 나오면서 일요일 날 터졌다가, 화요일 날 살짝 주춤하기 시작한 강지영의 은퇴설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 기사는 그리고 시작부터 굉장히 강렬했다.
현재 가장 팬덤이 강력한 건 당연히 이성진이었다. 옛날에 가정사 때문에 안 그래도 누나 팬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더 런닝에 합류하면서 그쪽 프로그램 팬들도 많이 생겼다. 예인으로 지영이 팬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성진만큼은 아니었다.
더 런닝 게시판이 누님들의 화력으로 인해 터지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글이 기사가 터진 직후 2시간 만에 달리기 시작했고, 누님들은 자체적으로 하차 문제를 분석, 언론의 탓이라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결집 된 누님들의 화력은 어마어마했다.
너희들 때문이다.
우리 성진이가 뭘 잘못했다고 못살게 구냐!
가뜩이나 힘들었던 앤데! 꼭 그래야만 하냐!
우리 성진이 하고 싶은 거 하게 그냥 둬라!
아주 일부지만, 누님들의 여론이 돌아가면서 상황은 강한결이 의도한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걸 점심나절에 확인한 지영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친구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네, 진짜.’
친구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괜히 자신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노력으로 이미 얼굴은 한없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운동량은 거의 없었지만, 식단을 이전보다 확 줄였기 때문이었다. 워낙 기초대사량이 많아서 식단 조절만으로도 충분히 수척해진 모습은 연출이 가능한 황금세대였다.
누가 보더라도 심적으로 고생한 친구의 모습.
그런 친구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밖에 나가서 얘기했고, 화장실 가는 것도 살금살금 움직였다. 그게 전부 다 자신과 친구들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심적으로 힘들지 않은데, 친구들을 속인다는 마음에 속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불은 붙었고, 어느 방향으로 터질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친구들에게는 이 스탠스를 유지해야만 했다.
수업이 끝나고, 황금세대는 평일임에도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 평소 훈련하는 곳이지만 황금세대는 전원 그냥 숙소로 들어갔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을 본 학생들의 입에서 이제 소문은 좀 더 구체화 될 것이다.
이 또한, 강한결의 계획 중 하나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 찝찝해.”
이성진이 교복 대신 평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며 한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주부터 이번 주까지, 벌써 10일 가까이 운동을 하지 않았다. 새벽 운동은 개별적으로 했지만, 도복을 입지 않으니 땀을 제대로 빼지 못해 몸이 찝찝했다.
“몰래 운동하는 건 안 되겠지?”
이성진의 말에 비슷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임효중이 대답했다.
“지금 밖에 기자들 있을 텐데, 걸리면 우리가 연기하는 걸 바로 들통날걸?”
“아 씨…… 짜증 나.”
시무룩.
풀이 죽은 이성진이 소파에 늘어졌다. 지영은 한숨을 내쉬고는 TV를 틀었다. TV를 틀자마자, 예인의 재방송이 나왔다. 저번주에 했던 마지막 재방송.
서건이란 캐릭터의 화려한 일면이 가득 스포트라이트 되고, 반대로 도언이란 캐릭터는 실패한 뮤지션으로 조명되는.
“오, 지영이다!”
“옷 잘 어울리는데?”
코디 누나가 정말 많이 신경 써줘서, 지영은 이 작품을 하며 매회 새로운 옷을 입고 패션쇼를 해야 했다. 그때는 솔직히 좀 지치고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또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말고, 연기라는 것 자체에 지영은 매력을 느꼈었다. 본래라면 자신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를 보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상처받은 유망주 연기가 먼저였다. 여기에 괜히 연기 연습하거나 하다가 걸려서 한결이가 짜놓은 판에 금이 가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답답해도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그런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교무실에 갔던 강한결과 황석이 들어왔다. 둘은 옷을 벗기도 전에 바로 자리에 앉았다.
“뭐래? 왜 부른 거야?”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그냥, 당분간 공부에 집중한다고 했어.”
마지막 수업 종이 치자 바로 방송을 통해 강한결을 교무실에서 찾았다.
아마 오늘 아침부터 올라온 기사 때문에 부른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았다.
“답답하지?”
“어? 어어, 아니야. 하하. 답답은 무슨. 오랜만에 쉬니까 좋은데?”
자신을 빤히 보던 강한결의 말에, 이성진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얼굴에 좀이 쑤셔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말에 지영이 고개를 돌려봤는데도 확실히 그런 기색이 강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회귀하고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지영은 정말 바쁘게 살았다. 시합도 시합이지만 유도 외적으로도 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들이 많아 과장 조금 보태서 토나 올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10일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진짜 좀이 쑤셨다.
유도 훈련이야 당장은 기자들의 눈 때문에 쉬고 있는 거고, 나중에 좀 조용해지면 다시 훈련을 시작할 거라서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 자체가 가져다주는 무료함과, 조급함이 분명 느껴졌다.
강한결의 플랜에 찬성해 그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고 있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었다.
“조금만 참자. 내년 세계선수권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눈치 안 보고 움직여도 될 거야. 그리고 지금 당장 시선 때문에 훈련은 못 하지만, 그것도 시간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고.”
“야, 나 괜찮다니까? 심심하긴 해도 그 정도 못 참을 정도 애는 아니다, 내가!”
“하하, 그래.”
강한결의 대답에 입을 삐죽인 이성진이 에잇! 공부나 할래!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이성진의 행동에 어? 하는 표정을 짓진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진짜 삐진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성진의 행동에 피식 웃은 지영은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밥 먹으러 가자.”
“밥? 어!”
후다닥!
밥 먹자는 말에 후다닥 다시 나오는 이성진.
친구의 너스레와 함께 오히려 마음이 풀린 황금세대는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은 시합 식단. 다 참을만한데 역시 이건 별로였다. 현재 체중은 73이고, 지영은 여기서 2㎏ 정도 더 빼서 유지할 생각이었다.
저녁에는 공부.
운동이 없는 평범한 학생의 모습으로 지내기를 한참, 이성진은 더 런닝에서 하차했고, 임효중의 데뷔는 동결, 강한결의 영화는 무기한 제작 연기 기사가 속속 올라갔고, 은퇴가 확실하단 여론이 형성되면서 해가 지났다.
* * *
2023년.
새해가 밝고 다시 한참 지났을 때, 인터넷에 황금세대, 연희고 아이돌에 대한 기사는 거의 올라오지 않기 시작했다.
노출이 되지 않으니 자연히 관심에서 멀어진 거였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그냥 평범하게 공부하고, 학원에 다니는 일반적인 학생의 삶에 익숙해졌다.
“아들 잡채 간 좀 볼래?”
“네.”
그리고 명절에 이렇게 내려와, 아주 평범하게 집에서 쉬는 것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하나,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한 여자의 집착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식탁에 올려뒀던 폰이 울면서, 한 여자의 이름을 액정에 띄웠다.
이연 누나.
근래, 지영을 정말 못살게 구는 여자였다.
“어머, 또 전화 왔네?”
“네, 저 전화 좀 받고 올게요.”
“그래.”
방으로 들어간 지영은 전화를 받았다.
“네, 누…….”
-읽었지? 어때? 할 거지? 응?
“……저 이제 드라마 안 한다니까요?”
-아니야. 그러지 마. 거짓말 말아줄래?
이연.
포기를 모르는 여자였다.
전에 종방연 때 이연은 같이 작품을 하자고 했었다. 그때는 기사들 때문에 그냥 넘어갔었는데, 은퇴 얘기가 나오고 얼마 안 지나 이연은 지영에게 연락하더니 대뜸 드라마 시나리오를 보내줄 테니까, 같이 하자는 말을 해왔다. 당연히 지영은 거절했다.
그 작품이 정말 좋은 작품이고, 재미있다고 해도 지영은 은퇴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연은 믿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지치지도 않고 지금까지 계속 연락해서 같이 작품 하자고 이렇게 떠들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지영이 은퇴했단 얘기를 아예 조금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거절해도 지금처럼 매주 연락해 왔다. 차단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더 의심할 것 같아서 지영은 그냥 매번 연락이 오면 거절, 또 거절만 반복하고 있었다.
-설날인데 어차피 시간 많지? 꼭 보고 연락해?
“죄송합니다. 저 정말 이제 아무것도 안 해요. 끊을게요.”
뚝.
하아.
전화를 끊은 지영은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포기를 모르는 여자였다. 고개를 저은 지영은 침대에 올려져 있는 시나리오로 시선을 줬다.
나의 무사님.
정은정 작가의 신작이자, 주인공으로 아예 지영과 이연을 두고 썼다는 사극 로맨스였다. 정은정 작가는 이제 세 편을 낸 작가로, 그 세 작품 전부 이연이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전부 중박 이상은 터뜨렸다.
정은정에게 이연은 일종의 뮤즈였고, 그래서 나이를 떠나 두 사람은 엄청난 절친 사이였다.
그래서 이연은 자신이 책임지고 지영을 설득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며, 지금 이러고 있었다. 솔직히 시나리오는 재밌었다.
제목은 전형적인 로맨스물일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조금 다르다.
군주.
여주인공은 철혈의 군주로 나오고, 남주인공은 그런 군주의 칼 역할이다.
망국의 왕족 혈통을 이은 군주와 군주를 도와 망국을 재건하기 위해 칼을 쓰는 무사의 이야기.
솔직히 해보고 싶은 연기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은퇴 상태. 강한결의 계획이 100% 달성되지 않는 한, 자신의 입에서 오케이란 대답은 절대 나가서는 안 된다는 걸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시나리오를 들어 책장에 꽂았다. 그리고 다신 꺼내 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명절이 지나고, 3월이 됐다. 이윽고 열린 세계선수권.
한국 남자 대표팀은 금1 은1, 동 4개의 성적을 거뒀고, 금을 딴 선수가 하필이면 황금세대와 견주는 천재 장대호였다. 다만 그들과는 다르게 엘리트 코스를 일찌감치 밟고 있던 장대호는 이번 세계선수권부터 대표팀에 승선했고, 자신의 천재성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전 경기 한판승. 천재의 등장에 작게 환호하는 한편, 자연스럽게 그런 장대호와 견주는 천재들인 황금세대가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커뮤니티가 다시금 들썩이기 시작하며 황금세대는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