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41화
141화. 몰려오는 비난(4)
“어! 강지영이다!”
지영과 황석이 내리자, 바로 알아보고는 달려드는 기자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경비실에서 경비원 두 분이 나와 바로 지영과 황석이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
“이번 아시안 게임 성적에 대해 한마디만 해주시죠!”
“지영 선수가 이겼던 일본의 미야모토 신지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억울하거나 배 아프진 않으십니까?”
“항간에는 연예인으로 진로를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 도는데 사실입니까?”
순서대로가 아니라, 악을 쓰는 것처럼 그냥 달려드는 질문들.
그에 지영과 황석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
“…….”
이미 알고 있었다.
교문 앞에 서성이는 기자들의 존재는 당연히 경비실을 통해 학교로 전달됐고, 학교 측은 자연스럽게 그 소식을 강한결에게 토스, 다시 강한결에게 온 소식은 지영과 황석에게 건너왔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학교 후문도 정문도 어차피 기자들이 있다고 하니, 지영은 숙소에서 가까운 정문에 내렸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다.
운동장에 계시던 체육 선생님 두 분이 나서고 나서야 지영은 겨우 철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지영의 귀에 꽂히는 한 목소리.
“거 X발, 별것도 아닌 새끼가 X나 비싸게 구네. 하여간 가정 교육 못 받은 티가 나요. 이러니 제 애미도 다치게 하지.”
그 말에 지영은 걸음을 옮기다 말고 우뚝 멈췄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제대로 들었는데, 곧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의미를 곱씹으며 몸을 돌리는데, 그 말에 황석도 걸음을 멈추고는 지영이 완전히 돌아보기 전에 성큼성큼 걸어가 철문을 확 열어젖혔다.
“야!”
황석이 지른 소리가 아니라 지영이 왔다는 말에 교문으로 오고 있던 이성진의 목소리였다. 놀란 친구들이 빠르게 달려오자 기자들이 이때다 싶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세요!”
“황석 선수는 왜 시합에 나가지 않았습니까! 연예인으로 전향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에 조용하던 황석이 손을 들어 기자들의 질문을 막았다.
워낙에 덩치가 좋은 황석이다. 얼굴은 배우 뺨치게 생겼다고 해도 덩치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솔직히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황석이 솥뚜껑만 한 손을 들었으니, 놀라서 주둥이를 닫을 수밖에.
“사과부터.”
“네?”
“거기 기자님. 아까 한 말 사과부터 하세요.”
황석이 딱 지정해서 말하자 그 기자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거 미안해요. 내가 말이 심했네. 됐죠?”
“…….”
“그러니 이제 질문에 대답 좀 해주죠? 서울에서 먼 길 왔는데.”
꿈틀.
그 말에 황석의 미간에 새겨졌던 힘줄이 꾸물거리더니, 천하의 황석답지 않게 날이 선 목소리가 날아갔다.
“거 X도 아닌 X만 한 새끼들 보러, 뭐 하러 청주까지 왔는데요.”
“뭐?”
“X만 한 새끼들 보러 뭐하러 청주까지 오셨냐고. 볼 것도 없는데요. 기자님 입으로 그랬잖아요. 별 볼 것도 없는 X만 한 새끼들이라고. 근데 왜 왔냐고요. 불 것도 없는데.”
와우…….
지영은 대형 사고라는 걸 인지했지만, 그것보다 황석이…… 천하의 황석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그건 황석의 성품을 아는 체육 선생님들도, 언제나 석이가 음료를 챙겨 경비실 냉장고에 채워주는 걸 아는 경비원분들도, 얼른 말리러 달려왔던 강한결과 이성진, 임효중도, 그리고 쉬는 시간, 운동장에서 놀다가 달려온 학교 친구들도, 전부 놀라고 말았다.
뒤통수에 공이 사정없이 꽂혀도 괜찮아. 하고 순한 양처럼 웃는 게 황석이었다.
복도에서 장난치던 애들이 황석을 못 보고 부딪쳐 나동그라지면 오히려 본인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사과하는 게 황석이었다.
그런 황석이.
이런 거친 말을?
그래서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석을 바라봤다.
설마하니 황석이 이렇게 사고를 칠 줄 모른 것도 모른 거지만, 이런 거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줄은 더더욱 모른 지영이었다.
“하, 허. 미치겠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황석이 저격했던 기자가 기가 찬단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이번엔 황석이 아닌 이성진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기자 아저씨는 대가리에 피 말라서 좋겠어요? 아, 피가 다 말라서 대가리가 벗겨진 건가? 피 좀 수혈해요. 어떻게, 내가 좀 드려요? 난 대가리에 피 안 말라서 많은데.”
“뭐 이 새끼야?”
그 기자가 인상을 팍 찡그리자, 강한결이 나섰다.
“이 새끼 저 새끼 하지 마시고요.”
“하, 이 새끼들 진짜. 니들 미쳤구나?”
“미치신 건 기자님이시고요. 기자님이 하는 모든 행동, 목소리는 이미 다 녹화되고, 녹음되었습니다. 이거, 연희 재단 이름으로 한번 터뜨려드릴까요?”
“뭐? 야 인마, 그거 불법이야!”
“그럼 학교 앞까지 찾아와서 아무런 죄도 없는 선수에게 마이크 디밀면서 못살게 굴고 폭언을 던지는 건 합법입니까?”
역시 강한결이다.
말로는 이 친구를 이겨낼 수 없다.
“우린 국민의 알 권리를 챙겨야 하는 의무가 있어!”
피식.
그놈의 알 권리.
기자가 기레기로 변하는 이유가 바로 저 알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놈의 알 권리를 위해 그 어떤 수단도 정당방위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 그게 문제다. 그걸 자기합리화 수단으로 삼는 순간, 그때부터는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다.
“그 권리에 따라줘야 할 의무가 저희는 없습니다만.”
“왜? 국민의 세금으로 훈련하고, 대회에 나갔으면 그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인 거야.”
웃기고 있다.
강한결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저희는 국가대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선수촌에 입촌하지 않았고, 입촌하지 않았기에 국민의 세금을 쓴 적이 없습니다. 자, 기자님? 우리가 왜 의무를 져야 하죠?”
“어, 그게, 으음…….”
그 말에 우물쭈물하더니 주변 기자를 둘러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기레기. 그러나 그 시선을 다른 기자들은 슬그머니 피했다.
피식.
그 모습에 지영은 진짜 내 친구지만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강한결은 한 가지를 숨겼다. 바로 대회다.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그리고 세계 청소년 선수권은 협회에서 당연히 모든 비용을 댔다.
그럼 그 비용은 어디서 나올까?
협회에서 따로 사업을 해서 나올까?
아니었다.
당연히 해마다 체육회에서 유도회로 나오는 비용에서 나왔고, 그 비용은 당연히 국민의 세금이었다.
이런 논리로 갔다면 강한결의 말이 막혔을 텐데, 그걸 모르니 기자는 당장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중에 터져도, 그때는 또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된다. 지금 당장은 어린 치기와 혈기로 저 기레기를 찍어누르는 게 먼저였다.
사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과대포장, 확대, 재생산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를 점령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진실이 아님에도, 아 진짜 걔들이 그런가 보다, 하면서 기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조는 어느새 자신의 손가락이 타인을 욕하는 문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 좀 가라앉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그 때문에 황금세대는 사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해도. 아니, 어른도 견디기 힘든 게 악플이었다. 그런 악플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고, 그 원흉이 앞에 나타나자 본래는 그러지 않았을 성미를 확 뒤집어버렸다.
그래서 평소에는 항상 이성적이고 냉정한 강한결마저 저렇게 말을 받아치고 있었다.
그 모든 일의 원흉이 그리고 눈앞에 있으니까 더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기자.
‘아니지.’
기레기.
연희고 황금세대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덩치를 키워서, 괴롭히기 시작한 자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
“자자, 한결이 너도 이제 그만하고. 기자님도 그만하시죠?”
그때, 임대성 코치가 나섰다.
그는 강한결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고, 기자들을 향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또 뭔데? 어? 저 어린 새끼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이 새끼 저 새끼 하지 마시고요. 그 말도 지금 다 녹음됐으니까. 저는 연희고 유도부 코치입니다. 오늘 일은, 연희 재단 측에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겁니다.”
“연희 재단? 하, 왜. 언론 탄압이라도 하시게?”
꼭 하는 말이 저거다.
언론 탄압. 알 권리. 그걸 빼면 컨트롤 C와 컨트롤 V밖에 못 하는 자들이 꼭 저걸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요즘엔 국민도 깨어 있어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가 터지면, 아마 저 기자는 조용히 넘어가긴 힘들 거다.
연희 재단이 충북지방에 있다고 해도, 뿌리내린 역사는 감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렇게 나온 일을, 저 기자는 이제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자, 너희들도 수업 들어가고.”
임대성 코치는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을 전부 억지로 교실로 보냈다. 그에 못마땅해하며 몸을 돌린 친구들. 그런 친구들의 표정은 어느 순간 훅 펴졌다. 세상 시원하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저 기자뿐만이 아니라 황석이나 강한결, 이성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다.
일단 단어 선택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아.’
황석.
너 혹시?
지영은 아직도 굳어 있는 황석을 바라봤다. 황석은 안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영은 걸음을 멈추고 황석을 불렀다.
“석아.”
“응? 어, 왜?”
“너 일부러 그랬지? 내가 못 나서게 하려고.”
“어… 하하. 역시 들켰어?”
그렇게 대답한 황석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역시 불쑥 든 생각이 맞았다. 이 순박한 친구는 그 기자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발언에 자신이 폭발할까 봐, 먼저 나서서 그걸 막은 거다.
그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고마웠다.
“아니, 뭐라고 지껄였는데 지영이가 폭발할 정도야?”
이성진의 물음에 황석은 손에 쥐고 있던 폰을 조작해 녹음한 음성을 들려줬다. 음성은 지영과 황석이 택시에서 내렸을 때부터 시작됐고, 어느 순간 문제가 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 X발, 별것도 아닌 새끼가 X나 비싸게 구네. 하여간 가정 교육 못 받은 티가 나요. 이러니 제 애미도 다치게 하지.]
문제가 되는 그 음성에, 친구들의 표정이 진짜 차갑게 굳었다.
이성진은 물론이고 임효중, 그리고 강한결까지 표정이 진짜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주변에 같이 가던 친구들도 분노한 표정이 됐다.
“석아. 이걸 그냥 뒀어? 그냥 콱! 허리를 반으로 접어버리지!”
“맞아! 와 기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해? 우리 이거, 인터넷에 다 퍼뜨려 버리자!”
“저런 기자는 기자도 아니지! 기레기지! 기레기!”
친구들이 오히려 더 화나서 기자를 성토했다.
그런 친구들의 반응에 강한결이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석아, 잘했어. 지영이 쟤 진짜 업어치기 꽂고도 남았다. 욕으로 끝낸 게 다행이네.”
피식.
그 정도는 아니라고.
유도선수가 일반인을 내던지면, 단순히 바닥에 부딪히는 정도로 안 끝난다. 최소로 잡아도 복숭아뼈 정도는 깨진다고 봐야 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지영이 설마 기자를 던지겠나. 하지만 적어도 황석보다 더 강하게 얘기했을 게 분명했다. 그럼 황석보다 분명 더 큰 사고를 쳤을 거다.
이 순박한 친구는 그걸 그 짧은 순간 깨닫고, 자신이 총대를 멨다.
“고마워, 석아.”
“고맙기는. 내가 고맙지.”
지영의 인사에 순진하게 웃는 황석. 그렇게 한바탕 대형 사고를 친 황금세대는 교실로 이동했고, 오후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사고는 쳤지만 하루는 변함없이 똑같이 흘러갔다. 하지만 미세하게 다른 게 하나 있다면, 황석에게 받은 음성 파일이 한 기자의 품으로 넘어갔다는 거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걱정하지 마! 내가 잘 포장해서 저격해 줄게!]
그 말에 안심하고 수업에 집중하는 지영.
기레기가 무서워하는 건 국민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죄를 까발리는, 다른 기자였다.
그렇게 저격 준비를 끝내놓았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지영이 수업을 받는 동안 ‘(속보) 연희고 황금세대의 충격적인 인성!’이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지만 뒤이어 날아든 ‘(속보) 충격을 거론한 기자의 충격적인 인성!’이란 기사에 저격당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9월.
그런 9월이 가고, 10월이 왔다.
바야흐로, 스포츠인의 축제인 전국체전 시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