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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37화 (13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37화

137화. 결실의 계절(6)

66도 졌다.

66에 나온 일본 선수는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 나왔던 선수였다. 이성진과 붙었던 크리스티안에게 져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3위를 하고도 좋아하지 않았던 선수.

기무라 히로.

기무라라는 성에, 히어로를 뜻하는 일본 이름 히로를 쓰는 이 선수의 결승 상대는 한국의 신지혁이었다. 기무라가 일본의 신성이라면, 신지혁도 이제 대학생이면서 벌써 국가대표에 선발된 천재였다.

이성진도 쉽게 볼 수 없는 신지혁과 기무라 히로의 시합은 호각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신지혁이 절반을 따고, 2분 뒤 기무라 히로가 절반을 땄다. 그리고 다시 지도 하나씩을 사이좋게 받고, 연장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연장 5분이 지났을 때 신지혁의 발목이 돌아갔다.

땀에 미끄러졌는데, 하필이면 그 순간 기술을 걸다가 발목이 제대로 돌아가 버렸다. 신지혁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지만, 상대는 일본 선수다. 게다가 지금까지 호각으로 붙었던 선수다. 정상 컨디션으로도 호각인데, 발목이 돌아간 상태라면?

“힘들겠다.”

이성진이 굳은 얼굴로 결승전을 지켜보며 한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기무라 히로가 부상 부위를 공략하는, 딱히 비매너로 경기를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발목이 돌아간 상태로 호각의 선수와 싸워 이기길 바라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

재차 시작된 경기에서 뒤로 연신 밀렸다.

그리고 결국 억지로 밀고 나오다가, 제대로 걸리지도 않은 업어치기에 몸이 빙글 돌아 뚝 떨어졌다. 절반과 한판의 경계. 심판은 번쩍 손을 들어 올리며 잇폰! 힘차게도 외쳤다. 신지혁은 일어나지 못했다. 발목이 아파서가 아니라, 패배가 분해서 바로 몸을 세우지 못했다.

카메라에 비친 신지혁의 등이 떨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경기는 냉정하게 바라봐야 했다.

기무라 히로의 반칙도 아니었다. 그리고 발목이 돌아가고 나서도 기무라 히로는 그 발목은 노리지 않았다. 그저 파이팅 있게 밀어붙인 다음, 상대가 밀고 나오는 걸 받아서 업어치기를 쳤을 뿐. 그러니 이는 굉장히 클린한 경기였다. 다만, 신지혁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절룩이면서 신지혁이 나가고, 이어지는 경기.

이번에도 한일전이었다.

“나왔다.”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눈을 빛냈다.

이어지는 경기는 –73체급 경기였고, 이번에도 한일전이었다.

한국은 에이스 안호진.

일본은 미야모토 신지.

지영이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유일한 선수, 미야모토 신지가 다부진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미 연락받아서 알고 있었다. 일본의 1선발이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아웃 됐고, 그 자리를 미야모토 신지가 차지했다는 소식은 이미 그에게 연락받아 알고 있었다.

사실 미야모토 신지는 일본 내에서 3선발쯤이었다.

실력은 부족하지 않지만 세계대회 커리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 유도협회는 유망주를 키우기 위해, 점수권 내에 있는 선수들을 불러 자체 시합을 시켰다. 그리고 승자는 미야모토 신지였다. 그 결과 미야모토 신지는 아시안 게임 한 달 전에 일본 유도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 나와 결승까지 올라왔다.

“지영아. 누가 이길 것 같냐?”

임효중의 질문에 지영은 잠시 고민했다.

안호진.

잘하는 선수였다.

이전에 한 번 붙어봤을 때 느꼈지만 올림픽을 두 번이나 치를 동안 한 체급에서 부동의 에이스 자리를 유지할 만한 실력이 충분히 있던 선수였다. 시합 운용, 끈기, 기술, 체력 등등, 나무랄 데가 조금도 없는 선수였다.

유도 강국 한국의 에이스가 되기에 자격이 충분한 선수.

‘그런데, 그게 약점이지.’

나무랄 데가 없긴 하지만 반대로 어느 한쪽이 엄청나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정말 좋지만, 반대로 어느 한쪽도 한계를 치고 나간 스탯이 없는 선수였다. 그렇다면 미야모토 신지는?

전체 스탯이 일단, 안호진을 훨씬 상회하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상성은 일단 빼고, 직접 붙어봤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둘 다 베스트 컨디션이면, 신지가 이길 거야.”

“그렇겠지?”

“응, 아마도.”

지영은 신지의 편을 들었다.

냉정하게 봤을 때, 두 선수와 붙었던 자신에게 누가 더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미야모토 신지였다.

눈부신 천재성.

신지의 천재성은 이미 개화 중이었다. 아니, 이미 개화가 끝났다. 어떤 선수를 만나더라도 상대를 시원하게 던질 기술과 체력, 센스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신지에게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선택을 내린 이유는 더 있다.

“그리고 상성도 안 좋을걸?”

“상성?”

“응. 안호진 선배님, 일본에서 유도 배우셨잖아. 그리고 지금도 그쪽 유도가 남아 있고.”

“아, 그러네…….”

재일교포 출신인 안호진은 일본에서 유도를 배웠다.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한국 유도 스타일도 장착이 되었지만, 그래도 기본 베이스는 일본 유도다. 그리고 신지는 일본에서 유도를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쪽 스타일에 대해 익숙했다. 스타일에 익숙하다는 건 때에 따라 엄청난 이점이 된다. 지영은 이번 경기에도 분명 그러한 이점의 차이가 날 거라고 봤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

안호진은 정점에 떠 있지만, 이제 조금씩 지는 별이다.

반대로.

미야모토 신지는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찬란한 별이었다.

지영은 이것도 시합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봤다.

인사. 다시 인사. 그리고 시작.

결승전이 시작됐다.

크게 기합을 넣은 두 선수가 의지를 불태우며 맞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소매 끝만 잡은 채 훅 파고들어 온 신지의 소매꽂이에 안호진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

“어!”

쿵!

잡기 싸움을 하기도 전에 소매만 말아 쥐고 파고들어 와 허리만 튕겼는데 안호진의 몸은 너무나 쉽게 떠서 떨어졌고, 심판은 와자리를 선언했다. 절반. 시작과 동시에 절반을 뺏었다. 신지는 가차 없었다. 없어진 안호진의 등 뒤로 올라타 그대로 다리를 넣어 조인 다음 몸을 굴렸다. 그러자 힘없이 끌려가는 안호진. 이건 안호진이 힘을 안 준 게 아니라, 신지가 너무 제대로 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호진은 굳히기엔 당하지 않았다.

안호진의 귀를 보면 굳히기에 정말 많은 시간을 수련한 느낌이 강했고, 실제로 그는 굳히기를 잘했다. 그래서 누르기까지 가지 않고 맛테 선언이 났다.

업어치기에서 굳히기까지. 이 한 번으로 30초가 훅 지났다.

그리고 다시 시작.

지영은 카메라가 잡은 신지의 얼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지 표정 봐라.”

“실망한 표정을 저렇게 대놓고 짓네. 이야…….”

친구들의 이 말이 지영이 쓴웃음을 지은 이유였다.

처음의 다부지던 표정은 이미 사라졌다.

‘그땐 긴장하고 있던 거지. 그리고 한 번 붙어본 지금은, 상대가 별로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서인 거고.’

딱 한 번 잡아본 거지만 신지는 이미 파악이 끝난 것 같았다.

낮잡아보는 게 아니라, 지영이 보기에도 둘의 경기는 신지 쪽으로 우세했다. 심판의 하지메 외침과 함께 다시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보지만, 신지는 역시 잘했다. 잡기 싸움이면 잡기 싸움, 기술이면 기술. 안호진은 제대로 기술 한 번 걸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2분이 순식간에 지났다.

특히 타이밍을 잡아 쭉 들어가는 업어치기와 허리기술에 안호진은 계속해서 흐름이 끊겼다.

보통 선수들은 기술을 걸기 전, 티를 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업어치기 선수면 털고, 안뒤축이나 안다리, 그다음 업어치기. 보통 이런 식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생략하더라도 최소한 한 번의 챔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신호를 주는 건 버릇에 가까웠다. 중심축을 무너뜨려야 하니 당연히 그게 기본이었다.

그렇다면 그 흐름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잘라버리면?

안뒤축을 한 뒤에 양 깃 업어치기를 하려는데 갑자기 소매를 뜯어버리면? 아니면 상대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열어 둔 자신의 공간으로 상대가 먼저 기술을 건다면? 그럼 흐름이 뚝, 하고 끊겨버린다.

신지는 철저하게 안호진의 타이밍을 끊었다.

유도는 기술을 걸어 상대를 넘겨야 승리하는 스포츠인데, 기술 흐름의 맥을 커팅을 해버리니 시합이 제대로 될 수가 없었다.

“가지고 노네.”

눈살을 찌푸린 강한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은 그런 경기를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미야모토 신지는 본래가 오만한 선수였다. 자신이 호적수라 인정한 지영에게나 살가운 느낌이지, 그 외엔 오만하다. 이는 인정했느냐, 인정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였다.

한국에 와서 같이 훈련했을 때도 그랬다.

지영에게나 살갑게 굴었지, 보통은 차가웠다. 아니, 오만했다. 특히 자신보다 실력이 별로인 선수는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도 그랬다.

그러니 저게, 미야모토 신지의 본래 속성이었다.

그리고 그게 지영을 자극했다.

근래, 자극이 없긴 했다.

연기의 세계에 잠시 빠져 있긴 했지만 그게 유도만큼 충만한 감정을 선사하진 못했다. 그런데 신지의 저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같은 나라의 운동 선배인 안호진이 저렇게 철저하게 밀리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기분 더럽네.”

“어?”

“기분 더럽다고. 신지 저런 표정 보니까.”

“…….”

친구들을 함구하게 만든 지영의 한 마디가, 지금 지영의 기분이었다.

지영도 시합 때 저와 비슷한 표정을 짓긴 하지만 대놓고 상대를 조롱하는 마음에서 짓는 건 아니었다. 지영의 표정은 차분함에 기반 된 거고, 신지의 저 표정은 무료와 무시에 기반된 표정이었다.

그게 아무리 친분이 있던 선수라고 해도, 지영의 기준에서 신지는 선을 넘었다.

4분 시합.

남은 1분 동안 안호진은 최선을 다했다. 그건 절박한 그의 표정에서도 확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신지는 그 1분을, 안호진을 가지고 노는 데 썼다. 일반인은 모르겠지만 유도를 하는 사람은 딱 보면 안다.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과 최선을 다해 시합에 임하는 것의 차이를.

신지는 이미 충분히 안호진을 던질 기회가 있었다. 지영이 보기에 기울이기를 조금만 더 했어도 최소 절반을 딸 기술을 적어도 세 번은 걸었다. 하지만 신지는 그러지 않았다. 기울이기를 못했다?

천하의 미야모토 신지가?

‘그럴 리가 없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야.’

왜?

상대를 던져 점수가 나오면 무조건 시합은 끝난다. 그러니 일부로 안 던진 거다. 더 시합하려고.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니까. 아니, 정확히는 상성에서 훨씬 앞서니까 그냥 결승전 경기 시간을 전부 채울 생각인 거다.

안호진을, 조롱하면서.

삐이이이!

경기는 그렇게 조롱 속에서 끝났다.

“아…… 호진 선배도 졌네.”

60, 66에 이어, 73도 일본에 졌다.

운명의 장난인지 오늘 결승전은 거의 한국과 일본의 시합이었다. 그래서 정말 기대했는데, 결과는 처참하게 깨지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안호진이 전형적인 패자의 모습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

“…….”

그런 안호진 선배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잡았는데, 지영을 포함한 모두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한일전이다. 다른 종목이어도 한일전에서 지면 기분이 별로인데, 같은 종목인 유도에서 처참하게 박살 나고 있으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밀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한국 유도는 강하다. 세계랭킹만으로 따져도 결코 순위가 낮지 않았다. 다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고, 그건 곧 누가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란 뜻이었다. 그런데 처참하게 깨졌다.

오늘 마지막 경기인 –81 결승전 선수들이 입장했다.

이번에도 역시 한국과 일본. 선수가 입장하자 임효중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일본이 확실히 세대교체를 하는 모양이긴 하네.”

“쟤, 너랑 세계 선수권에서 붙었던 애지?”

“응.”

임효중이 준결인가에서 붙어서 가지고 놀았던 일본 선수가 아시안 게임에 나와서 결승까지 올라왔다.

경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탄식이 나왔다.

“아…….”

“하…….”

시작과 동시에 쫓아 들어가며 찬 찍어 허벅다리에, 한국 선수가 그대로 돌아갔다. 방어적으로 나오는 상대를 따라가며 찬 허벅다리가 제대로 먹힌 거다.

전패.

처참한 경기 결과에 황금세대는 전원,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강한결이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건가? 무리해서라도 시합에 나갔어야 했을까?”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반대해서가 아니라, 이번 경기 결과에 속이 끓어서였다. 그래서 올림픽까지 명료하게 짜놓은 로드맵이 있음에도, 그 로드맵이 제대로 된 건지, 너무 자신들만 생각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에 다들 침묵했는데, 이번 침묵을 깬 건 이성진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그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노트북을 보여주는 이성진.

민심의 공식적인 창구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은 이미, 말도 안 되는 경기 결과에 분노로 폭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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