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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28화 (12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28화

128화. 예인(藝人)으로 살어리랏다(7)

새벽부터 시작된 토요일 촬영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박지상 감독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하고 외친 시간이 저녁 8시경이었다. 그리고 세트장 근처의 가든으로 모든 인원이 이동했다.

오늘 회식을 쏘는 사람은, 장세리 선배님이셨다.

지영의 스케줄을 특별히 신경 써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도착과 동시에 백숙, 그리고 삼겹살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박지상 감독, 장민주 작가의 인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됐다. 어른들의 시간. 지영은 정신은 어른이지만 몸뚱이는 고2라서, 한쪽 구석에 얌전히 자리 잡았다. 이런 회식 경험은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 조용히 밥이나 먹을 생각이었다.

다행인 점은, 가든이 워낙에 커서 달리기 시작한 배우들의 소란이 구석에선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임은진도 매니저로서, 한쪽에서 다른 매니저들과 대작을 시작한 터라, 지영은 백숙과 삼겹살을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배고팠다. 그래서 좀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점심 굶었어?”

오늘도 앞에 앉아 있는 이연이 지영이 먹는 걸 놀란 눈으로 보며 물었다.

“네, 풀밭이었어요. 얼굴 붓게 나오면 안 된다고 해서.”

“그런데 이렇게 먹어? 내일 괜찮겠어?”

“고기만 먹어서 괜찮아요.”

“아. 장을 안 찍는구나. 음음.”

이연은 지영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영은 장이나 소금을 찍지 않고 고기만 먹었다. 파절이나 다른 반찬은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계속 무염식에 가까운 저염식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초장이나 쌈장 등, 염분 작살 나는 장 종류를 찍어 먹으면 내일 아침 아주 볼만하게 얼굴이 빵빵해질 게 분명했다.

그러니 딱 고기만.

백숙도 그냥 푹 고아서 나온 거라서, 따로 간이 되어있진 않았지만 누룽지를 넣어서 그런지 고소함이 가득해서 충분히 먹을 만했다. 삼겹살이야 뭐 말해 입 아프고. 그렇게 배가 확실히 찰 때까지 먹고, 지영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와, 많이 먹네. 평소에도 이렇게 먹어?”

이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더 먹죠. 훈련 있는 날은 최소 지금 먹은 거에 두 배는 먹어요.”

“헐. 지금도 엄청 먹었는데?”

“열량 소모가 엄청나니까요. 집게 주세요. 제가 구울게요.”

“자, 여기.”

이연은 두말없이 바로 집게를 건넸다.

천하의 이연이 고기를 굽는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연은 생각보다 털털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굽겠다고 하기도 했다. 지영은 이런 건 또 사양하지 않는 편이라, 그녀가 구워준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이젠 지영 차례.

배려를 받았으니, 이젠 배려를 해줄 때였다.

지영이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이연은 잘도 먹었다. 지영만큼은 아니지만 혼자 삼겹살 2인분을 무난하게 해치웠다.

“지영이 너, 연기 잘하더라.”

그러곤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던진 말은 이런 칭찬이었다. 그에 지영은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만 딱 했다.

“뭐야, 그 대답은?”

“음, 놀릴 것 같아서요.”

“오, 눈치 빠른데?”

이연은 상당히 짓궂은 캐릭터였다.

좀 찾아봤는데, 촬영 중 이연의 장난! 이런 제목으로 올라온 기사가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녀의 장난기는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했다. 생긴 것과는 다른 캐릭터. 그래서 지영은 그녀가 자신을 놀릴 만한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연은 여지를 안 준다고, 안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영아.”

“네?”

“천재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이야?”

싱긋, 찡긋.

장난기 가득한 질문에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지영이 한숨을 쉬자 이연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더 친해지면, 앞으로 촬영이 참 피곤해질 것 같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척할 수도 없었다.

“알았어, 안 할게. 음, 오늘은 여기까지만.”

오늘은?

“……도망 다녀야겠네요.”

“뭐, 나 피해서?”

“네. 다행히 붙는 신 그렇게 많이 없으니까요.”

“에이, 배우끼리 친해져야지.”

싱긋싱긋 웃는 이연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암사자 같았다.

하지만 지영은 평범한 고2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적당히 대답하곤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장난기를 받아치는 방법은 무시가 최고였다. 그런 지영에게 흥미가 떨어졌는지, 잠시 뒤 이연이 일어나서 먼저 떠났다.

그녀가 매니저와 떠나고, 잠시 뒤 지영도 일어났다.

임은진은 대작 판에 끼고 있었지만 당연히 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지영은 숙소로 바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해 씻고 나오자 몸이 노곤했다.

정확히는 체력보단, 뇌가 지친 느낌이었다. 시간을 보니 10시쯤이었다. 내일도 새벽 촬영이라 바로 잘까 하다가, 지영은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네, 연예인님!]

피식 웃음이 나오는 호칭과 특유의 맑은 목소리가 가진 에너지가 지영의 지친 마음에 단비처럼 내렸다.

“뭐 하고 있었어요?”

[지원이 연습하는 거 보고 있어요!]

“아 맞다. 지원이 곧 시합이죠?”

[네! 3주 뒤 시합이에요! 지금 막바지 훈련하는데, 너무 힘들어해서 안쓰러워 죽겠어요. 힝…….]

지영은 그녀의 대답에 아차 싶었다.

양유진의 동생 양지원은 이제 곧 시합이었다. 피겨는 보통 7월부터 시즌이 시작되는데, 그녀는 3주 뒤에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이 시즌 첫 대회였다. 시즌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안무와 의상, 스케이트화 등을 지원받은 양지원의 실력은 엄청난 속도로 올랐다.

항상 물려받던 것으로 해결하다가, 자신의 몸에 딱 맞춘 장비를 갖춘 양지원은 이번 시즌 최고의 유망주였다. 아니, 이미 전성기가 지났기 때문에 유망주란 말은 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기대주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지영은 양지원이 분명, 이번 시즌부터 제대로 사고를 쳐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잘할 거예요. 그동안 연습도 열심히 했잖아요?”

[힝, 아는데요……. 그래도 안쓰러워요. 요즘 거의 먹지도 못하고…….]

피겨만큼 체중에 민감한 종목도 없었다.

리듬체조, 피겨 등등은 투기 종목 선수보다도 더욱 혹독한 감량이 필수다. 비시즌일 때도 조절을 해야 할 정도였다. 유도는 비시즌일 때 먹는 거에 구애받진 않는다. 일정 체중 이상 넘어가는 건 안 되지만, 그래도 먹는 건 아주 실컷 먹는다. 하지만 피겨나 이런 종목은 비시즌도 식단을 관리해야 할 정도였다.

혹독한 세계였다.

피겨도.

“잘 이겨낼 거예요. 저녁은 먹었어요?”

[네, 지원이 몰래 조금… 헤헤.]

“잘했어요.”

[연예인님은요?]

“저도 먹고 좀 전에 들어왔어요.”

[아! 연예인님도 잘했어요!]

하하.

이게, 이런 게 좋았다.

부담스러운 호칭인데도 그녀가 하니까 너무 귀엽게 들렸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부족하던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고, 메마른 땅에 단비가 되어주는 느낌이었다. 정신적으로 피로했었는데, 양유진과의 통화 몇 분으로 지영은 상당히 회복되어 가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연애의 순기능.

보통 자라나는 운동선수가 피해야 하는 걸로 꼽는 게 술 담배, 그리고 연애다. 잘 나가던 유망주들이 이 셋 때문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는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다. 술담배야 뭐 답이 없고, 연애는 정도를 모르기 때문에 망가진다.

그러나 지영은 정도를 잘 지켰다.

아니, 정확히는 지킬 줄 알았다. 그래서 지영에게는 연애의 순기능이 작용하고 있었다.

[참, 연예인님 오늘 촬영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새벽부터 하고, 지금 숙소 들어왔어요.”

[그것도 잘했어요?]

“네, 처음인데 그래도 안 혼났어요.”

[와, 와, 축하해요!]

“하하, 고마워요.”

[그럼 드라마는 언제 나와요?]

“한 달 뒤에 첫 방송이래요.”

[앗! 꼭 본방 사수할게요!]

양유진의 말에 지영은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동생 연습은 아직도 안 끝났어요?”

[아, 이제 끝나가요! 음, 으음…….]

“내일 또 전화할게요. 오늘은 이만 통화해요.”

[헷, 네에! 연예인님 잘 자요!]

“네, 유진 씨도요.”

[네에!]

지영은 양유진이 이대로는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 성격임을 알아서 끊을게요. 하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지영은 잠시 폰을 더 만지다가, 알람을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모텔의 숙소라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지영은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고, 오늘은 어제보다 빠르게 두 시쯤에 임은진이 깨우러 왔다.

얼마 못 잤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빠르게 샤워를 하고, 대충 머리를 말린 다음 나온 지영은 임은진과 함께 다시 샵으로 갔다.

1시간쯤 달려 도착한 샵에서 한찬미에게 메이크업을 받고, 이번엔 세트장이 아닌 서울 도심으로 향했다. 오늘 찍을 첫 신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밟는 장면이었다.

잠결에 쓴 곡으로 그해 가장 크고 권위 있는 대중문화 시상식에 등장하는 장면.

시상식이야 당연히 저녁에 한다.

하지만 서울 도심에서 저녁에 이런 신을 찍는 건, 통제되지 않는 불덩이를 품에 안고 찍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새벽, 아직 해가 뜨기 전에 어수룩할 때 찍기로 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움직이는 거고.

네 시 좀 안 되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준비가 다 끝나 있었다.

어제 회식을 했는데도 나와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촬영 준비를 마친 사람들을 보며 지영은 솔직히 좀 놀랐다.

술이란 게, 원래 1병만 마시고 일어나야지 해도 끝나고 보면 3병까지 마시게 하는 중독성 강한 놈이라 어제 회식이 일찍 끝났을 리는 없었다. 그러면 분명 몇 시간 못 잤을 텐데, 이미 현장 준비가 끝나 있었다는 게 놀랍다 못해 신기했다.

지영이 차에서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의상 스태프가 어제처럼 달려들어 지영을 홱 낚아챘다.

“급해요, 급해! 얼른 따라와요!”

“……네.”

내가 늦었나?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임은진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 시간에 늦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이해했다. 이번 신은 해가 뜨기 전에 찍어야 했다. 그러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천막으로 된 간이 대기실에 들어간 지영은 스태프가 건네주는 옷을 받고 다시 간이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시상식에 어울리는 수트가 아닌, 개량 한복 비슷한 복장이다.

폼이 넓지만 지영의 신체 사이즈로 맞춤 제작됐기 때문에 핏 자체는 살아있었다.

“음, 역시 잘 어울리네요. 의상은 됐고, 머리 만질게요!”

“네.”

샥샥샥!

급해서 대충 만지는 것 같은데도 그녀의 손길이 머물고 간 곳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게 변했다. 그렇게 10분 만에 그냥 대충 흘러내려 있던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한 그녀는 다시 한쪽에서 가져온 가방을 들고 열어, 팔찌와 목걸이를 꺼내 하나씩 지영의 손과 목에 대보기 시작했다.

“음, 팔찌는 좀 화려하게 갈까 했는데, 역시 무난한 게 좋겠네요. 서건의 이미지는 그쪽이 어울려요.”

“네.”

지영은 군말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서건의 이미지도 그랬다. 수수하다 못해 격의가 없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니, 옷이나 액세서리에도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가 줘서 입으라고 하니 입고, 채워주니 할 뿐. 거기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 게 서건이란 캐릭터였다.

서건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행하고, 말하는 그런 캐릭터였다.

“오케이, 끝! 자 이제 출격!”

“네, 출격…….”

짝!

그녀가 내민 손을 어색한 표정과 대답으로 짝 소리가 나게 쳐준 지영은 간이 대기실을 나왔다. 지영이 나오자 임은진과 대화 중이던 조연출이 바로 그를 데리고 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스타크래프트 밴?

조연출은 연예인들이 타는 차량 앞으로 지영을 안내해 줬다. 거기서 지영은 박지상 감독에게 동선을 설명받고, 밴에 올랐다.

스탠바이 준비가 끝나고, 잠시 뒤 박지상 감독이 묵직한 어조로 액션을 외쳤다. 그 외침으로, 이틀째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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