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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26화 (12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26화

126화. 예인(藝人)으로 살어리랏다(5)

“아, 힘들다…….”

새벽부터 시작된 촬영.

지영은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에야 겨우 휴식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임은진이 도시락을 앞에 가져다줬는데, 도시락이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정신이 좀 멍했다.

“혼이 나갔네, 혼이 나갔어.”

“……연기, 역시 힘드네요. 와…….”

“후후, 만만치 않지?”

“네. 어후.”

지영은 고개를 털었다.

배가 고픈 것도 고픈 건데, 하도 머리를 굴렸더니 체력 말고 정신력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이런 상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역시 먹는 거다. 영양분을 몸에 공급하고, 잠시 눈을 붙이면 그사이 정신력도 좀 회복될 거다.

그런 마음에 도시락을 열었는데.

“어, 음…….”

풀이다.

풀밭이다.

뱀 기어 나오겠다.

“염분 들어가면 얼굴 부어서 안 돼. 지영이 너 잘 붓는 편이라며.”

“음…… 그래도 이건 좀. 누나. 저 시합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됐어요.”

“아는데, 그래도 안 돼. 얼굴 부어 나오면 편집으로 연결할 때 티 나잖아. 그래서 박지상 감독님이 각별하게 신경 써 달라고 하셨어. 오늘 촬영 끝나고 회식한다니까 그때까지만 참자. 응?”

“……네.”

후.

실제로 지영은 좀 잘 붓는 편이긴 했다. 그리고 평체중이었다면 괜찮겠지만, 지금은 시합 끝나고도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유지하기 위해 염분이 가득한 식단은 되도록 피해왔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고 장민주 작가에게 부탁까지 받았다. 날카로운 이미지를 유지해 달라고. 그래서 한국에 도착해 회식할 때도 가능한 저염식을 한 지영이었다.

그런데 또, 식단이 풀밭이다.

자연히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감량한다 생각하고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반쯤 먹었을 때 지영은 앞에서 똑같이 샐러드를 먹는 임은진에게 말했다.

“누나는 그냥 보통 도시락 드시지. 왜 그거 먹어요?”

“나? 다이어트. 배우들 작품 들어가면 이게 좋아.”

“네? 뭐가요?”

“나만 맛있는 거 먹으면 눈치 보이잖아? 그래서 난 되도록 똑같이 먹는데, 그럼 자연히 다이어트도 되고 좋거든. 내가 살이 잘 붙는 편이라서, 막 먹으면 동글동글해져서 굴러갈걸?”

“…….”

설마.

지금도 그런 이미지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저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도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봐야 했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무염식 식단을 먹어주니 고맙긴 고마웠다.

“원래 배우분들도 작품 할 때는 이렇게 해요?”

“하지. 특히 여배우들은 더하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거랑 카메라에 담기는 거랑 또 다르거든. 그래서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쫙 관리하고 가. 그리고 작품 중에도 관리하고.”

“……힘든 직업이네요.”

“그럼, 어떤 의미로 여기만큼 힘든 곳도 없어.”

지영은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량은 유도 선수라면 헤비급을 제외하곤 피할 수 없었다. 경량급부터, -100까지 거의 체중을 뺀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개체가 끝나면 그래도 좀 먹는다. 최대 2㎏까지. 그리고 시합이 완전히 끝나면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거짓말 안 하고, 이성진은 하루 만에 거의 7에서 10까지 찌울 때도 있었다.

하루 만에 어떻게 그렇게 먹냐 하겠지만 몸의 수분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먹는 족족 몸으로 들어간다. 화장실도 거의 가지 않는다.

그러니 아침, 점심, 저녁을 폭식으로 달려주면 7㎏ 정도는 금방 찐다.

그리고 그렇게 살이 오른다는 건, 당분간은 감량에서 해방되었다는 걸 뜻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시합까지 한 달 정도를 남겨둔 시점까지 먹는 건 자유다.

그러나 배우들은 아니었다.

작품 전에 선수들처럼 체중을 빼고, 그리고 작품 중에도 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식단관리를 한다. 요즘 관찰 예능을 보면 그러지 않는 배우들도 많은 것 같지만 유지가 필요한 배우들은 작품 하는 내내 이런 관리를 하는 것 같았다.

어후, 끔찍했다.

드라마는 보통 몇 달이나 걸리는데 그 긴 기간 동안 감량?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그러나 지영은 깨달았다.

‘음, 내 얘기네?’

처웃지 마! 네 얘기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외국 소녀의 삿대질과 이 대사가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거다. 실제로 지영은 이게 자신의 일이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배우, 진짜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지영은 의자에 길게 몸을 눕혔다.

“잘 거지?”

“네, 좀 쉬려고요.”

1시간? 좀 딜레이되면 2시간쯤 시간이 있으니 짧게나마 쉴 생각이었다. 솔직히 원래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좀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럴 체력이 없었다. 지영은 임은진이 건네준 수면안대를 차고 눈을 감았다.

지영의 장점 중 하나가, 눈을 감으면 잘 수 있다는 점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어느 순간 윽! 하는 느낌과 잠에서 깬 지영. 안대를 벗고 시간을 확인하니 30분쯤 지나 있었다.

딱 좋게 잤다.

지영은 기지개를 길게 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대본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밖은 여전히 분주했다.

이곳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냥 돌아가면서 먹고 교대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런 모습이 정말 효율적이면서도, 참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 이렇게 자리 잡은 시스템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데 근처에서 다른 배우의 매니저로 보이는 이와 대화를 하던 임은진이 지영을 발견하곤 바로 다가왔다.

“깼어? 컨디션은 어때?”

“그래도 좀 먹었다고 좀 살아났어요. 음, 누나. 촬영 구경 좀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요?”

“다른 세트장에서 준비 중이야. 따라와.”

“네.”

임은진과 함께 세트장을 가로지르는 지영.

분주하게 움직이던 스태프들이 지영을 보곤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해왔다. 그래서 비슷하게 인사를 받으면서 좀 걷다 보니 다른 세트장에 도착했다. 야외 촬영이 아니면 거의 모든 촬영이 이곳 종합세트장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지영은 촬영의 80%쯤이 이 세트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좀 나면 이곳 구조를 좀 외워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착한 세트장은 지영이 찍었던 공간과는 완전히 달랐다.

화려함의 극치.

고급 살롱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어울리는 의상을 입은 임윤옥 선생님이 중앙의 소파에 앉아 대본을 보고 계셨다. 그런 임윤옥 선생님을 잠시 바라본 지영은 역시 포스가 남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대배우.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

전 세계를 강타한 보이그룹.

아카데미를 포함한 세계 영화제를 휩쓴 패러사이트.

그리고 그 아카데미에서 대한민국 최초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가 바로 임윤옥 선생님이셨다. 그런 배우의 아우라는 소파에 앉아 대본을 보고 있는데도 어마어마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신기했다.

회귀를 해서 그런가?

아니면 남의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었던 삶을 살아서 그런 걸까?

지영은 남들보다 분위기를 더 빨리, 더 깊게 느끼는 편이었다. 그래서 임윤옥이 주는 기세, 아우라가 저절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정도를 넘어서 뭔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느낌까지 받았다.

대단하다.

멋있었다.

그런 임윤옥이 곧 연기를 시작했다.

임윤옥은 음악계의 대모로 등장한다. 복장은 클래식계의 대모 같지만, 실제는 대중문학이다. 대모로 불리는 이유는 극 중 가장 큰 ENT의 대표이자, 극 중 등장하는 거대한 대중문화협회의 협회장이면서, 부동산 부자이기도 했다.

즉, 돈 많고 능력도 좋고,

리더십까지 엄청난, 극 중 서건이란 캐릭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넘사벽 먼치킨 캐릭터가 바로 임윤옥이 연기하는 장숙정이었다.

액션 사인이 나기도 전에, 대본을 치운 순간부터 임윤옥은 장숙정으로 변했다.

그것도 정말 신기했다.

고작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인상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와…….”

그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뭔 큰 소리라도 난 것처럼 돌아보더니 눈총을 줬다. 지영은 그 시선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폰을 꺼내 아예 무음으로 돌렸다.

여기서 삐리리! 하고 알람이나 전화라도 울리면 대역죄인이 될 것 같아서였다.

잠시 뒤, 임윤옥 선생님의 연기가 시작됐다.

사락, 사락.

다리를 꼬고서는 서류를 슥슥 본 다음, 툭 소리가 나게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러곤 테이블 위에 있던 고풍스러운, 60년대나 썼을 법한 클래식한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김 비서. 잠깐 들어와.”

뚝.

그 말만 하고 곧장 전화를 끊는 그녀.

그러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그렇게 몇 초쯤 지났을까. 지영이 보기엔 적어도 한 20초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똑똑. 임윤옥의 뒤쪽에 있던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울렸고, 들어와, 하는 말이 떨어졌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한 여성.

임윤옥의 비서 역할을 맡은 20대 중반의 배우가 들어왔다. 통성명은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 배우는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와 임윤옥의 옆에 선 다음, 그녀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찾으셨습니다. 회장님.”

“응, 김 비서. 영호 그룹 이 회장, 이 얘기 이거 사실인지 확인 좀 해. 서류는 보고 태우는 거 잊지 말고.”

“네, 회장님.”

용건만 빠르게.

서류를 한 장 주자, 비서는 그걸 공손히 양손으로 받은 다음 물러났다. 비서역의 배우가 나가자 임윤옥은 폰을 꺼냈다. 그러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임윤옥의 표정이 변했다.

살벌했다.

무표정하던 표정이 일순간 확 변하는데, 누가 보더라도 독이 바짝 올랐다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정 회장님, 나예요. 네, 지금 확인했어요. 아, 전화 드린 건 영호 그룹 건은 아니에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정 회장님. 늘그막에 심심한가 봐요? 자꾸 딴생각을 하시는 것 같으셔.”

그러곤 몸을 소파에 천천히 묻었다.

“그 말 믿어볼게요. 심심하시면, 말해요. 내가 안 심심하게 해드릴게. 회장님 그룹, 요즘 노리는 곳이 많더라고요. 쏠쏠하지 않겠어요? 내가 가진 5%면? 봐서요. 끊어요.”

뚝.

통화도 길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내용의,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눈 건지 의미가 확 와 닿았다.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표정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게 극적일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 그저 눈매가 살짝 찢어지거나, 눈썹이 꿈틀거리거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거나,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그 표정과 목소리 톤이 합쳐지니, 하나의 거대한 뭔가로 변했다.

컷!

박지상 감독의 외침과 동시에 주변에서 후우, 하는 한숨이 들려왔다. 그중에는 지영도 있었다.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지영은 한숨을 내쉬는 중에 깨달았다.

‘이게 연기구나. 나처럼 연기하는 척이 아닌, 진짜 연기.’

지영은 저 대화에서, 실제로 상대가 있었다면 그 상대가 얼마나 진땀을 흘렸을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아니,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그리고 이 신 다음으로, 전화기를 내던지며 분통을 터뜨리는 회장님이 나가겠지.’

분명, 그럴 것 같았다.

극 중 장숙정에게 이를 갈지만, 강력한 권력과 금력을 갖춘 그녀를 어쩌지 못해 애꿎은 이만 북북 가는 그런 장면이 말이다.

이제는 그런 상상이 재밌으면서도, 신기했다.

지영이 언제나 시합 전에 해오던 이미지트레이닝과는 결이 달랐다. 좀 더 실체를 확실하게 보는 느낌이다.

‘이미지트레이닝이 동영상이라면, 이건 뮤지컬이나 연극인가?’

좀 더 명확하게 장면이 그려져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영아.”

“아, 선생님.”

지영은 자신이 생각이 잠긴 사이 다가온 임윤옥 선생님의 부름에 상념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봤니?”

“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얘, 따라 하면 안 돼. 알았니?”

“네?”

“너는 이런 기술이 필요한 연기를 해선 안 돼. 서건이 걔, 그런 기술적인 얘 아니야.”

“아, 음…….”

무슨 소린지 지영은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런 지영을 보곤 임윤옥 선생님인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까 새벽에 했던 것처럼, 그렇게만 해. 나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

“네, 선생님.”

따라 해볼까 싶은 마음을 들켰나 보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임윤옥 선생님의 조언이다. 듣지 않는 건, 미친 짓이었다. 지영은 당연히 미친놈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장비가 다시 이동했다.

이번엔, 장민재의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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