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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16화 (11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6화

116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9)

한일전.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한일전에 대해서만큼은 응원 열기가 아주 뜨겁게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져도 괜찮고, 영국에 져도 괜찮고, 하다못해 필리핀이나 베트남에 져도 괜찮지만, 일본에 지는 건 죽어도 용납할 수 없는 나라.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런 풍토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가 됐음에도 결코 식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솔직히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종목인 유도임에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서 순식간에 tvM의 중계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몰리게 만들었다. 찾아오는 건 쉬웠다. 커뮤니티에 주소 링크만 걸면,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바로 방송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아나운서도, 전문 해설도 없이 그냥 경기만 송출되는 중계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나운서, 해설의 목소리가 없어서 현장의 음성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었다.

연장전 시작 후, 벌써 5분.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일본의 신지가 업어치기로 공격하면, 한국의 지영은 발기술이나 되치기로 응수했다. 기본 경기 시간 4분, 그리고 연장전이 벌써 5분이 넘어가고 있으니 벌써 10분에 가깝게 두 선수는 반칙도, 점수도 없이 치열하게 맞붙는 중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손에 땀을 쥐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아프고 사람을 안달복달 못하게 만드는 경기. 그래서 더욱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시합이었다.

그런 시합이라, 빠르게 SNS를 통해 사방으로 퍼져서 수만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마침 토요일이고, 한국은 이미 퇴근 후를 넘어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그래서 깨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대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응원이, 지구 반대편까지 건너가기 시작했다.

물론, 당사자는 그 응원을 받을 겨를이 없었다.

* * *

훅, 후욱, 후우.

지구 건너편, 모국에서 엄청난 응원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지영은 심판의 그쳐 선언 후, 숨을 몰아쉬었다. 시합 시간은 이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시합은 백중세였다.

‘하아…… 하아…. 진짜 칼을 갈고 나왔구나…….’

자신처럼 비슷하게 무릎에 손을 대고 숨을 몰아쉬는 중인 신지를 보며 지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가 칼을 갈아줘서, 솔직히 말하면 고마웠다. 지영은 이런 시합을 고대해왔다. 숨이 턱턱 막히고, 폐와 근육이 슬슬 비명을 지르는 시합.

이런 시합을 정말 기대했다.

그리고 신지는 그런 시합을 하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 같았다.

하지메!

심판의 외침에 지영의 의식이 잡생각을 단숨에 끊었다. 잡생각은 방심이다. 저 천재에게 그런 방심한 마음으로 덤벼들었다간 언제 어떻게 한 판이 날아갈지 몰랐다.

보통 시합이 10분을 넘어가면, 아무리 체력 좋은 선수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잡기 싸움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힘들어 죽겠는데 손속을 나눌 생각조차 못 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지영과 신지는 아니었다.

둘은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잡기 싸움에서 패배하면 그 자체가 시합의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걸 정말 잘 알았다. 그래서 이제 막 10분이 지난 지금도, 둘은 끝없이 잡기 싸움을 이어갔다.

지영이 어깨 깃을 잡으면 신지는 어깨를 툭 쳐서 공간을 확보해 가슴 깃을 잡아 왔다. 서로 어깨와 가슴 깃을 잡으면 어느 누가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소매 나, 반대쪽 가슴 깃을 먼저 뺏기면 이때부터는 저울추가 확 기울어지듯 한쪽이 유리해지고, 다른 한쪽은 불리해진다.

잡기 싸움은 이 영역에서 정말 치열하게 벌어졌다.

한쪽으로 소매와 가슴을 전부 잡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잡기 싸움.

한쪽의 소매와 가슴 깃을 오래도 아니고 10초만 잡고 있으면 반칙이 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주지 않는 건, 그렇게 잡혀도 실력자들은 한판을 던질 실력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은 상대가 깃을 선점하는 걸 무조건 막았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깃을 잡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도 계속, 서로 몇 번이나 유리하게 잡기도 했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상황에서는 기술이 들어갔고, 기술에 걸린 쪽은 정말 넘어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게 지극히 당연했다.

그걸 10분간이나 신경 쓰고 있었으니, 정신력도 솔직히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했다.

툭, 투둑!

신지가 먼저 움직였다. 낚싯대 챔질하는 것처럼 두어 번 채 올리더니, 그대로 말아업어치기 모션을 취하는 신지. 가슴 깃만 잡고 있어도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이다. 지영은 이미 오늘 이 기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피해야 할지, 그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말아업어치기는 말 그대로 말아서 던지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그래서 말리면 안 된다. 무조건 버티거나, 아예 영향권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두 번을 다 그렇게 피했던 만큼 지영은 이번에도 똑같이 코어 힘으로 아예 끌려가는 걸 버텼다. 모든 조건이 비등비등하지만, 그래도 신장이 지영이 크고, 근력도 좋아서 딱 서서 버텨서 기술을 막아냈다. 솔직히 옆으로 돌아서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반응이 조금 떨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맛테!

심판이 그쳐를 선언하자, 지영은 자리로 돌아오며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손아귀로 들어오는 힘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길게 시합을 했고, 애초에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던 만큼 반응이 좀 떨어졌다.

‘밀리면 진다. 명심하자…….’

여기서 한 번 더 밀리면 지도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그걸로 시합이 끝나진 않지만, 그래도 심적으로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둘은 지금 백중세로 시합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밀리기 시작하면, 그 한쪽이 한도 끝도 없이 밀릴 게 분명했다.

유도는 기세 싸움이란 말도 있다.

뭐, 아무리 기세등등해 봐야 확실한 실력 차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는 실력이 부족한 선수가 기세로 자신보다 잘하는 선수를 잡는 모습이 종종, 아니, 자주 드러나는 경기 중 하나였다.

지영도 이 부분을 아주 중요시 생각했다.

지영이 시합 중에 더러운 짓거리를 당할 때마다,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뿌리부터 단단히 정신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메!

생각 끝.

명료하진 않으나, 의지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로 지영은 빠르게 치고 나갔다.

지영이 갑자기 접근하자 신지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지영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기술을 받았던 입장에서, 신지의 생각대로 흘러가게 해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여태껏 둘은 그렇게 경기를 풀어왔다.

네가 기술을 걸면, 다음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신이 기술을 걸어 반칙조차 주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지금까지 계속, 이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어깨를 먼저 잡은 지영이 옆으로 돌아 나왔다.

움찔!

빗당겨치기 각을 슬쩍 재보던 신지는 아주 짧은 순간, 기술을 포기했다. 제대로 잡지도 않고 기술을 걸다가 지영의 카운터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지영도 예상했다. 그렇기에 더 멀리, 길게 돌면서 원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발목받치기.

퍽!

지영답지 않게 거칠고, 강하게 쳤다. 이걸로 신지가 아프다고 악을 쓰진 않겠지만 분명 둔중한 충격을 느꼈을 터. 그렇다고 반칙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렇게 조금 세게 발목받치기를 친다고, 그것도 발바닥으로 정확히 쳤는데도 반칙을 주는 심판이라면, 돈을 받아먹었는지부터 조사해보는 게 맞았다.

부웅!

원심력이 더해진 발목받치기에 신지의 몸이 그대로 떠올랐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지영은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 아니, 정확히는 신지가 그 손을 몸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뜯어냈다.

원심력에 끌려 끌려가는 와중인데도 어깨 깃을 밀어 뜯어낸다?

겨우 앞으로 엎어져 굳히기 방어 태세를 갖추는 신지를 보며 지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가끔가다 보면 이 친구는 진짜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좋았다.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것에, 지영은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했다. 자신은, 아직은 정상이 아니다. 이 대회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이고, 세계선수권을 포함해 A랭크 대회, 그리고 올림픽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선수들은 아마, 최고의 선수들일 거다.

그 선수들과 붙어서 반드시 이긴다. 장담은 못 한다. 그러나 그건 지금 상황에서다. 몇 년만 더 지나면, 육체가 폼이 최상으로 올라왔다면? 그땐 장담할 수 있었다.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걸 불가능케 만드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미야모토 신지였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꺼리거나, 싫어해야 정상이지만 지영은 반대였다. 혼자 무쌍 찍고, 혼자서 다 가지고 노는 유도 대회.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그래서 다행이라는 거다.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지가 일어나고, 다시 시합이 속행됐다.

이걸로 서로 쌓은 포인트는 다시 무효가 됐다. 하지만 둘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아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영이 생각했던 걸, 신지도 똑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유도에 입문한 이후, 신지는 언제나 최고였다.

아, 처음엔 지기도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났을 때는 이미 신지의 상대는 없었다.

육체가 여물지 않아 성인부에게는 져도, 대학부 아래는 모두 신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체급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유망주를 키운다고 내보내 준 몇 개의 대회에서도 신지는 바로 두각을 드러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성인 선수들도 모조리 한 바퀴씩 날리며 정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대회는 메이저 대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막히고 한동안 국제대회는 아예 뛰지도 않았다.

그러다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을 나가게 됐고, 강지영이란 선수를 만났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선수.

나이가 자신과 비슷한데도, 지극히 강력한 실력을 보여준 선수.

유도가 재미없어지려는 무렵에 만났으니…… 강지영은 신지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유도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강지영으로 인해 유도가 훨씬 더 즐거워졌다.

그래서 오늘을 정말 기다렸다.

강지영과 다시 시합에서 붙는 날을, 거의 매일 염원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그냥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둘은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맞붙었다.

어느덧, 경기 시간은 15분을 넘기고 있었다. 15분. 무려 15분이다.

“하아, 하아, 하아…….”

“후욱, 흐윽, 후우…….”

둘은 심판이 그쳐를 한 사이, 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땀은 비 오듯 흘러 매트를 적시고 있었다. 어찌나 많이 흘렀는지 심판이 경기진행요원을 불러 매트에 흥건한 땀을 닦게 했다. 그 짧은 틈 간, 지영은 최대한 숨을 골랐다. 아무리 지영이라고 해도…… 무려 15분이다. 15분을 쉬지 않고 경기했다. 폐가 아프고, 이제는 손이 조금씩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보통, 쉬지 않고 소아다리를 해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그때 보성이랑 했을 때도 솔직히 크게 힘들지 않았다. 막판에 보성 코치를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전력으로 맞붙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써서, 신지를 상대했다. 그랬더니 아주 팔이 후들거렸다. 다행히 하체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지영은 이것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다행히 이마의 출혈은 더는 없었다.

신지는 지영을 생각해서인지, 굳히기를 아예 걸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술을 거는 중에 서로 부딪히는 상황도 없었다. 그래서 이마는 괜찮은데, 처음 커팅이 났을 때 흘린 피가 역시 문제가 되고 있었다.

뭔가, 몸에서 힘이 급속도로 뽑혀 나가는 기분을 좀 전부터 느끼기 시작한 거다.

‘슬슬 한계인가…….’

본래라면, 아직 몇 분은 더 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커팅으로 인해 베스트 컨디션 자체를 만들지 못했고, 커팅이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지영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후…….”

지영은 진행요원이 걸레로 매트를 닦는 모습을 보다가, 주변을 돌아봤다.

고요했다.

관중석이 꽉 찬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관중이 있는데도, 정말이지 숨소리조차 하나 들리지 않고 고요했다.

지영은 그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환호가 있는 시합이 있다면, 지금 같은 경우는 고요한 게 오히려 경기에 도움이 된다. 왜? 소란하지 않으니 시합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관중의 매너.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좋아졌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신지도 관중석을 돌아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였다. 확실히 참 자신과 닮은 게 많은 친구였다.

매트 수습이 끝났다.

심판이 다시 자리에 서자, 지영은 다시 상념을 지웠다.

그러곤, 승부를 보겠다는 다짐을 강하게 먹었다.

이제 육체는 한계다.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라 이 이상 시합을 끌고 나가는 건 결코 좋지 않았다. 아마도…… 필패. 몇 분만 더 지나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컨디션이 아예 나락으로 처박힐 거다.

그래서 지영은 1분, 그 안에 승부를 보기로 했다.

물론, 뜻대로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다만, 그간 쌓아온 자신의 실력을 믿을 뿐.

그런 다짐과 각오가 끝나자,

하지메!

심판이 시합을 재개시켰다.

지영은 이번에도 빠르게 앞으로 움직였다.

기본은 왼손이다. 지영의 주력 포지션이 왼쪽이다 보니, 왼손으로 깃을 잡아야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영이 뻗은 손은 이번에도 어깨 깃을 잡았다. 반대로 신지는 역시 오른손을 뻗어 가슴 깃을 잡았다.

오늘 수없이 잡았다가, 놓았던 깃을 잡은 두 선수.

지영은 마주친 신지의 눈빛에서, 신기하게도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나랑 같은 생각이네.’

승부를 보겠다는 집념, 신념. 각오, 그리고 다짐.

이기겠다는 열망, 투지가 모조리 혼합되어 버무려진 감정이 신지의 또렷한 눈빛 속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참 신기하다. 이런 게 느껴진다는 게.

툭.

신지가 어깨를 털었다.

업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털기다.

지영은 그래서 반사적으로 겨드랑이를 조였다. 그러자 뒤로 한걸음 물러나면서 안뒤축을 때리는 신지. 지영은 그걸 발을 빼서 피했다. 지영이 발을 빼는 순간, 중심이 순간 위로 올라오면서 다시 한번 툭 채는 신지.

‘전조가 길다.’

전조.

업을까, 아니면 발기술로 중심을 먼저 흐트러트릴까?

지영은 본능적으로 이 두 개가 전부 미끼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걸 깨닫자마자, 미끼에 반응했다. 미끼 앞에, 다시 미끼를 던져둔 거다.

움찔!

지영의 중심이 뒤로 물러나면서 낮아졌다. 업어치기를 방어하겠다는 뜻이다. 어차피 한 번 업어치기에 업혀도 반칙을 받을 일도 없으니까 지영의 방어는 아주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그러자 눈을 빛낸 신지가, 안뒤축 모션에 빠르게 스텝을 더 밟아 안다리를 걸어왔다.

중심을 내리깔면서 거는 안다리.

이성진이 보여줬던 것과 아주 흡사한 안다리였다.

그 안다리에 지영은 눈을 빛냈다.

승부처다.

안다리는 제대로 들어왔다.

가슴 깃을 젖혀 지영의 왼쪽 팔을 제대로 감기까지 했다. 화려한 기술? 그렇게 이기면 좋기야 하지만 유도는 멋없는 발기술로 던지든, 화려한 업어치기나 허리기술로 던지든 어차피 등에 닿는 부위로 점수를 계산한다.

그러니 고로, 똑같다는 얘기다.

그렇게 신지의 몸이 지영의 옆면에 딱 달라붙는 순간, 지영은 하체에 힘을 최대한 주며 버텼다. 그러곤 자신에게 안기듯이 안다리를 걸어온 신지의 반대쪽 겨드랑이 아래 깃을 잡고는, 발을 빼서 자신을 지지대 삼아 그대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신지가 급히 발을 빼고 버텼지만, 이미 상체는 제대로 끌려 지영의 겨드랑이에 맞닿아 있는 상태였다.

고로, 늦었다는 소리였다.

신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며 지영은 모든 힘을 쥐어짰다.

동시에 오른발이 뒤로 크게 회전했다.

그러곤…… 왼발로,

파앙!

지영의 몸이 머리가 바닥에 처박힐 정도로 수직으로 떨어졌고, 동시에 딸려 온 신지의 몸은 그대로 뽑혀서 떠올랐다가, 허공에서 튕겨 나갔다.

쿵! 쿠웅!

한 사람은 구르고, 한 사람은 떨어지고.

둘은 반사적으로 심판을 돌아봤다.

엄중한 시선으로 경기를 보고 있던 심판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아…….”

신지의 탄식이 들리는 순간, 심판의 손이 번쩍! 위로 올라갔다.

“잇폰!”

“우와와아!”

심판의 판정과 함께 신지는 고개를 숙였고, 지영은 매트에 대자로 누웠으며, 관중은 환호했다.

경기 시간 총, 16분 30초.

길었던 결승전은 끝났다.

소수가 주목하고, 손에 땀을 쥐며 봤던 한일전은 대한민국 강지영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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