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15화 (11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5화

115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8)

기다렸던 시간이다.

사위가 고요해지는 느낌이 찾아온 뒤, 심판이 입장하라는 신호가 뒤이어 눈에 잡혔다. 미야모토 신지가 먼저 움직였다. 지영은 그걸 보며 뒤이어 따라 들어갔고, 일련의 준비 과정을 거친 뒤에 한 발자국 앞으로 다시 나섰다.

시합이 시작될 시간.

지영은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항상 하던 상대가 아니다.

아, 신지는 몇 번 잡아보긴 했다.

아시아 청소년 결승에서도 붙어봤고, 전지훈련을 왔을 때도 붙어봤다. 아시아 청소년은 지영의 승리였다. 하지만 전지훈련 당시에는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그때도 진심으로, 전력으로 붙었는데도 그랬다.

지영이 정말이지, 유일하게 가진 모든 실력을 극한으로 쥐어 짜내게 만드는 실력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론.

‘안호진보다도 위.’

안호진은 상대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업어치기 주특기 선수고, 그만큼 업어치기를 방어하면 승률은 확실하게 올라갔으니까. 하지만 신지는 딱히 주특기라고 할만한 기술이 없었다. 그런데도 지영이 이렇게 경계하는 건, 모든 것을 전부 다 잘한다. 이렇게 보면 된다.

그리고 반대로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카운터가 주특기에 들어가긴 하지만, 손기술, 발기술, 허리기술까지 전부 수준급, 그 이상으로 찰 줄 알았다.

신지가 기술에 한계가 없는 올라운더라면, 지영은 모든 기술에 카운터를 칠 수 있는 저격형 선수였다.

그래서 하지메! 심판이 외친 순간부터 좀 소극적인 양상으로 흐를 거라고 생각들 했지만, 개뿔! 전혀 아니었다.

턱! 드득! 탁!

잡고, 뜯고, 달려들어 잡고, 다시 뜯어버리고, 잡아서 도로 끌었지만 그것도 뜯어냈다.

시작부터 잡기 싸움 난타전이었다.

잠시 물러나서, 후. 짧게 숨을 내쉰 둘이 다시 움직였다.

둘은, 심판이 그쳐 할 틈조차 주지 않고 재차 맞붙었다.

소매 끝을 잡은 신지가 지영의 팔을 받쳐 올려 공간을 만들었고, 그 안으로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파고들었다. 겨드랑이 아래가 신지의 어깨에 턱 하니 걸쳐지는 순간, 지영의 상체가 쭉 뽑혀 올라갔다.

이 상태에서 가만히 있다간, 그대로 반원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가서 앞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신지라면 그걸 비틀어서 등으로 내던질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지영은 그대로 반대쪽 어깨를 잡고, 아래로 푹 주저앉듯이 무게중심을 낮춘 뒤 스텝을 밟으며 허리를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그리고 골반을 신지의 앞쪽으로 내보낸 다음, 밟았던 스텝을 이어 돌아서 나왔다.

거의 제대로 걸렸지만, 지영은 이런 방어는 기가 막히게 해내는 선수였다. 그리고 기술이 파훼된 이 순간부터는, 지영의 시간이었다.

반대쪽 어깨, 깊숙이 손을 넣어 잡고 있기 때문에 자세에서는 지영이 훨씬 유리했다.

지영은 그대로 가슴 깃을 잡고는 허벅다리 모션을 취했다. 골반이 안쪽으로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중심을 낮추는 신지.

지영은 그 상태에서 허벅다리를 차지 않았다.

이미 기술 방어를 하는 중인 상대에게 허벅다리를 차는 건, 피해서 되치기로 빗당겨치기를 걸어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신 낮아진 중심을 무너뜨리기 적합한 안뒤축을 툭 때렸다.

그러자 휘청거리는 신지.

하지만 이 정도로 넘어갈 거였으면, 미야모토 신지를 지영이 천재라고 인정하지도 않았을 거다. 지영은 다시 한번 기술을 걸려다가, 멈칫했다. 느낌이 싸했다. 뭔가 들어올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순간 신지가 그대로 몸을 뒤로 누이며, 배대뒤치기를 걸었다.

발바닥으로 배나 하복부를 받쳐서, 상대를 뒤로 던지는 기술.

사실 이 기술을 주력 기술로 쓰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일단 뒤로 드러눕는 기술이라서 되치기라도 당하면 그대로 한판이고, 나아가 이 기술로 상대를 던지는 게 정말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통 이 기술은 작정하고 던지려는 것보단, 한 타임 쉬어가기 위해 시간을 벌 용도로 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신지 정도 되면, 이것도 주력 기술이다. 상체를 내리고 버티는데, 신지가 발로 살짝 들어 올리더니 뒤가 아닌, 우측으로 지읏기를 틀어버렸다. 그러자 몸이 그대로 딸려갔다. 지영은 그래도 버티다간 제대로 날아갈 것 같아 바닥을 짚고, 그대로 발을 강하게 차올렸다.

그러자 합기도의 축전 옆돌기처럼 빙글 돌아 바닥에 떨어졌다. 워낙 강하게, 그리고 빠르게 차서 신지가 미처 기울이기를 끝내기도 전에 돌아서 기술의 영향력 안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맛테!

심판의 그쳐 신호에 도복을 놓고 일어서는 지영.

일어난 지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심판이 최초 하지메를 외치고, 첫 번째 맛테를 했는데 벌써 1분이 20초가 지났다. 워낙에 공방을 빠르게 주고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사실 초반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건 이미 예상했다.

이미 지영에게 대회에서 한 차례 진 전적이 있던 신지였다. 자신감이 강하고, 승부욕이 엄청난 신지는 분명 패배를 만회하고 싶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시작부터 강공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도 신지는 초반부터 강하게 나왔다. 그때도 그랬는데, 지금이라고 다를까? 거기에 더해 지금은 이미 어느 정도 상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탐색전 같은 것도 일절 없었다.

그저, 승부를 본다.

지영은 신지의 마음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메!

심판이 오늘의 마지막 경기인 걸 감안해서, 크고 단호하게 시작 신호를 외쳤다.

그리고 그 신호 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두 선수가 다시 맞붙었다.

* * *

스포츠.

스포츠는 과연 왜 생겼을까?

아마 제대로 된 이유는 논문 급으로 복잡하겠지만, 그냥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로는 바로, 오락일 거라고 본다.

현대의 스포츠는, 오락이다.

보고, 즐기는.

공연문화예술과 거의 결이 비슷한, 오락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포츠에, 문화예술을 돈과 시간을 들여 관람하고 열광한다.

유도란 경기는, 스포츠긴 하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종목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까지나, 올림픽 때 반짝하고 마는 정도. 유도란 스포츠는 딱 그랬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와, 죽이네…….

-아 심장 아파…….

-나 유도 좋아했던 거 맞네. 맞아. 와, 와아.

-나 친구들 만나러 가야 하는데, 카페에서 이거 보느라 일어나질 못하겠음.

-근데요, 사람이 저렇게 쉬지도 않고 움직이는 게 가능해요?

-4분 다 되어가는데 와 진짜 조금도 쉬질 않네.

-다른 유도 경기 창 하나 더 틀어서 보고 있는데, 이 경기에 비하면 진짜 애들 노는 수준…….

시합은 엄청나게 격전이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손에 땀을 쥐는 정도를 넘어서, 하도 몰입해서 담이 오고, 심장이 저릿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스포츠가 가진 마력이 고작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선수들의 경기에서 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현직 고등부 유도선수인데, 저 강지영이 저렇게 사력을 다하는 경기는 진짜 처음 보네요.

-맞음. 쟤들은 진짜 시합 나와도 그냥 산책하는 느낌으로 휙 돌고 금 받아 가는 느낌이었는데…….

-솔직히 작년에 신지랑 경기했을 때는 강지영 쟤가 컨디션이 안 좋았구나 했는데, 아니었네요. 신지가 진짜, 강지영만 한 괴물이었네요.

-전에 청주에서 전지훈련 할 때 한 번 잡아본 적 있는데, 미친 실력입니다. 동체급이랑 위아래 하나 차이 나는 체급은 황금세대 빼고 싹 털렸음.

-어? 쟤 한국 왔었음?

-네. 저 우석 다니는데, 신지 졸업한 학교랑 자매결연 맺어서 년에 한 번씩 교류 겸, 훈련함.

-우석? 너 석진이냐?

-ㅇㅇ 넌 누구?

-누구? 종명이 형이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대학 생활은 무탈하십니까?

-선후배 만담은 딴 데 가서 하고, 신지 쟤가 그 정도 천재라면 왜 지금 일본 국대 아님? 솔까 강지영이 저번에 태릉 가서 안호진도 날렸다는데.

-헐? 진짜임?

-나 우진이랑 동긴데, 우진이 태릉에 파트너로 들어감. 그때 안호진이 직접 강지영 초대해서 붙었는데, 강지영이 먼저 한판 던졌다고 했음.

-헐, 대박…….

-안호진도 나중에 던지긴 했는데, 실력 차이가 보였고. 나머지 2선발, 3선발은 다 깨졌고.

-미쳤네…….

-일본에 아는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신지 쟤도 지금 국대 2, 3선발이라네요.

-……천재들이네.

-천재들끼리 시합 씹어 먹…… 억!

-와씨! 저걸 저렇게 피하네?

-아니, 시팔ㅋㅋㅋㅋ 저걸 피하면 뭘로 던지라고?

-와, 빗당겨치기 제대로 걸렸는데 진짜, 저걸 빠져나가네 강지영…….

-다 죽은 방어유도 부활시켜서 대회 싹 씹어먹는 앤데 뭐…….

-아 맞네…….

-아 자괴감 개쩌네……. 쟤들 체급은 진짜 개불쌍하다. 뭔 짓 해도 쟤네 국내에서는 넘기 힘들 것 같은데.

-이성진은 좀 가능성 있는 것 같지 않음?

-ㄴㄴ 이성진 개독종이고, 악바리임. 신지혁 선배도 이성진한테 카운터로 날아갔음.

-그리고 아까 이성진이랑 붙은 애도 졸 잘하더만. 스웨덴이었나?

-ㅇㅇ 걔가 우승 후보던 일본 애도 잡고 올라옴.

-연장이네.

-점수 없고, 지도도 없이 연장. 와 이런 게임은 또 첨 보네.

-4분 내내 피 터지게 붙었으니 뭐…….

-강지영 개X끼 팔이나 부러져라…….

-?? 위 새끼 이건 뭐 하는 새끼지?

-강지영한테 개박살 난 새끼 중 하나겠죠ㅋㅋㅋ

-X신 ㅋㅋㅋ

-스포츠맨십이라곤 X도 없는 새끼네ㅋㅋㅋ

-유도 예시예종 스포츠 아니었냐고ㅋㅋㅋ

선수들은, 역시 이렇게 대화의 결이 달랐다.

그쳐, 도복을 고쳐 입고, 점수판이 다시 세팅되고, 심판의 하지메 신호에 맞추어 시간은 0에서 1로 흐르기 시작했다.

* * *

후…….

열기로 온몸이 후끈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4분 경기가 끝나 있었다.

지영은 도복을 고치면서 반사적으로 전기정 교수를 바라봤다. 전기정 교수는 지영의 시선에 고개만 단단하게 끄덕여 주곤, 어떠한 사이드도 보지 않았다. 그에 지영은 경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실소를 흘렸다.

‘그거 업무 태만이라니까요, 교수님.’

왜 저러는지, 물론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영의 시합을 보면, 진짜 피 터지게 시합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전기정 교수는 사이드를 보지 않았다.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잘하는 중인 선수에게 괜한 주문을 했다가 흐름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흐름은, 지영이 생각하기에도 베스트다.

신지는 진짜 날을 갈고 나왔고, 그래서 기술을 방어하고 역공하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한계였다.

버겁다는 건 아니지만, 따로 여기에 뭔가를 추가해서 신지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몸에 체득한 기술과 육신이 가진 체력, 정신이 가진 정신력을 바탕으로 거의 본능적인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영도 전기정 교수가 따로 코치를 해줘도, 그걸 따를 여력이 없었다. 자신이 여력이 없으니 전기정 교수에게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잠시의 소강상태.

지영은 생각을 정리하고 최대한 호흡을 되돌렸다.

천하의 지영도, 4분간 미친 듯이 시합을 하고 나면 당연히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서, 막 죽을 것 같고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심판이 다시 자리에 와 서서, 지영과 신지를 번갈아 바라봤다.

일단 한 번씩 봤다는 건 시합을 재개하겠다는 뜻. 지영은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의지를 다지고, 각오를 세우고.

필승의 신념을 정신에 단단히 채워 넣었다.

하지메!

이윽고 심판이 다시 하지메를 외치는 순간 지영은 다시금 전장으로 들어섰다. 창과 칼, 총은 없지만 매트 위, 이곳이 지영에게는 전장이었다. 그리고 이 전장에서 지영은, 반드시 승리하고 싶었다.

그런 지영의 의지는, 카메라 앵글에도 고스란히 잡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