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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14화 (11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4화

114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7)

와자리!

절반이다.

이성진은 옆으로 돌아나가다가 상대의 빗당겨치기에 진짜 제대로 걸렸다.

그런데 머리부터 박히는 순간 허리를 뒤틀어, 그대로 역으로 튕겼고, 그 결과 어깨 후면만 매트에 부딪히면서 그대로 한 바퀴를 빙글 돌았다. 조금만 더 어깨 아래로 닿았으면 한판이 나왔을 거다.

진짜,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시합이 바로 재개되지는 않았다. 밖에서 모니터링을 하는 부심이 타임을 요청했고, 심판이 받아들이면서 시합이 잠시 중지됐다.

“아…….”

절로 탄식이 나왔다.

이 경우, 축구나 야구처럼 VR 판독으로 점수가 뒤집힐 수도 있었다. 지금 이 판독은 지영이 봤을 땐 절반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독이 아니라, 한판인가 절반인가에 대한 판독 같았다. 등이 완전히 닿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크고, 화려하게 제대로 돌아가서 생긴 일이었다. 그래서 부당한 판독은 아니었다.

‘후, 제발…….’

지영은 부디 판정이 번복되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쪼그리고 앉은 채 주심과 부심이 상의 중인 걸 바라보는 이성진. 간절하기도 간절한데, 눈빛이 제대로 독해졌다. 방심하진 않았지만 제대로 날아갔으니 화가 날 법도 했다.

그렇게 속 타는 몇 분이 지나고, 주심이 다시 안으로 들어와 섰다.

그리고 두 선수를 지긋이 바라본 심판이, 하지메! 경기 시작을 힘차게 외쳤다.

“와, 와아…….”

“하…….”

“으아! 다행이다…….”

놀란 친구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지영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속행되는 –66kg의 결승전. 힘차게 기합을 내지른 두 선수가 다시 맞붙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성진이 유리했던 상황이 이제는 뒤집혔다.

물론 똑같이 절반, 절반이라 지도 하나가 있다고 4분 경기가 끝난 후에도 반칙패를 받진 않는다. 일단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저 스웨덴 선수, 신성이구나.’

북유럽 계통의, 선이 아주 고운 느낌의 선수였다.

신장은 이성진보다 작았고, 좀 깔보기 쉬운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이 순하다고 할까? 그래서 강하단 느낌을 주진 않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아니, 상대를 얕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저 선수는 우승 후보 일본 선수를 잡고 올라온 선수였다.

운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실력자라는 뜻인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부터가 큰 문제 없이 성진이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으니…….’

이건 진짜 제대로 잘못 짚은 거다.

지영은 반성했다.

연희고 황금세대는 분명, 타고난 천재들이다.

자신을 포함해 강한결, 임효중, 황석, 그리고 이성진은 진짜 유도에 있어서만큼은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관계자들은 이들을 두고 몇십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들이라고 했겠나.

그런 소리를 지겹도록 듣고 컸지만 그래도 자만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고 운동에 열과 성을 다해 임했다.

그래서 솔직히 세계의 첫 관문인 세계 청소년 선수권을 화려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

세계는 넓다.

그런데 그 안에 설마 자신들처럼 타고난 선수가 한 명 없을까?

아니, 절대 아니다. 당장 지영의 체급만 해도 미야모토 신지가 있었다. 자신과는 종이 한 장 차이의 실력을 가진 선수. 제대로 붙었을 때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 없는 선수가 당장 자신의 체급에 있는데, 이성진의 체급이라고 없을까?

‘한결이도, 효중이도, 석이 체급에도 있겠지.’

천재는 우리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진짜 너무 오만한 생각이었다.

‘난 아직 어리석구나.’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나를, 우리를 자만하게 하는 마음이 있구나. 지영은 반성했다. 이런 해이한 정신으로는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떠오른 지금부터 지영은 그런 자만심을 모조리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자, 스웨덴 선수 크리스티안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크리스티안은 절반은 땄음에도 처음처럼 경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성진도 처음처럼 공격적으로 나갔다.

잡기 싸움이 치열했다.

워낙 빠르고, 둘 다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 잡기 싸움에서도 파이팅이 넘쳐 보였다. 부딪쳐서 손속을 교환하고, 잡고 뜯고를 반복하면서 서로 맞부딪쳤다. 하지만 이런 잡기 싸움이 이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이성진이었다.

두 번의 잡기 싸움과 소강상태가 이어지자 역시 심판은 그쳐를 선언하고 지도를 하나씩 줬다.

절반에 지도 두 개.

절반을 빼앗겨도 지고, 지도를 하나 더 빼앗겨도 지는 상황. 이성진은 이걸로 코너에 몰렸다. 남은 시간은 1분가량. 이제는 승부를 봐야 할 때였다. 하지만 이성진은 이미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좀 더 공격적으로 가! 신장에서 우위잖아. 차근차근 코너로 몰아! 지도 하나만 더 받게 해도 동점이다! 1분이면 시간 충분해!”

전기정 교수의 사이드에 이성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도복을 쉽게 주지 않으니 기술을 거는 건 역시 힘들다. 그렇다고 파울로처럼 어설프게 기술을 걸어오면 무조건 되치기에 걸린다고 봐야 했다.

하지메!

심판이 경기를 속행시키자 이성진은 빠르게 크리스티안의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탁, 손을 쳐내는 순간에도 반 발자국을 밀고 들어가, 상대의 가슴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자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서는 크리스티안.

그런 크리스티안에게 안뒤축을 거는 이성진.

툭.

뒤로 물러나는 상황에 맞물려 크리스티안의 중심이 짧게 흔들렸다. 이성진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중심을 바로 잡고 서려는 순간 긴 팔을 쭉 뻗어 목깃을 잡고, 가슴을 그냥 손바닥으로 밀면서 재차 안뒤축을 때렸다.

훅!

걸리긴 했지만 미는 동작이어서 크리스티안은 재빠르게 몸을 돌려 앞으로 엎어졌다. 이성진은 굳히기를 하지 않았다. 리치가 긴 게, 이럴 때는 진짜 도움이 된다. 아마 성인부를 따져도 이성진의 신장은 체급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할 거다.

175만 되도 거의 최상위인데, 이성진은 무려 177에서 178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도 업어치기를 구사하는, 쉽게 볼 수 없는 유형의 선수였다.

그쳐 후, 다시 시작.

이성진은 이번에도 똑같이 상대의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한 번 유효포인트를 땄으니, 여기서 한 번 더 밀어붙이면 지도가 들어갈 확률이 못해도 90%쯤 되니 이성진의 전략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걸 크리스티안도 알고 있다는 것.

저 새로운 신성은 경기 운용도 수준급이었다. 한 번 더 밀리면 유리한 포지션을 빼앗긴다는 걸 깨달았는지 밀리지 않고, 역으로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밀고 들어온다면, 그건 이성진에게는 베스트다.

홰액!

도복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밀고 오는 크리스티안의 소매 끝을 잡은 이성진이 벼락처럼 업어치기를 걸었다. 그러자 크리스티안의 몸이 붕 떠서, 빙글 돌아서 앞으로 뚝 떨어졌다. 유효기술이긴 하나, 크리스티안은 반사적으로 그대로 앞으로 달려들며 밭다리를 찍었다.

이성진은 그 밭다리에 제대로 걸렸다.

하필이면 상대를 더 밀어붙이려고 일어나면서 앞으로 가던 상황에 딱 걸렸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상태로 걸린 밭다리.

‘나였으면 무조건 한판 던졌겠지만…….’

기술을 찍은 사람도, 기술에 걸린 사람도 제대로 잡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라 양쪽 다 그냥 애매해져 버렸다. 그 결과 이성진은 겨우 기술을 피해 옆으로 엎어질 수 있었다.

다행이었고, 아까웠다.

만약 크리스티안이 밭다리를 찍지 않았으면 심판이 지도 하나를 더 주는 걸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크리스티안은 귀신같이 눈치채고 피해 갔다. 이렇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 했다.

크리스티안 뫼르고드는 영리했다.

그리고 체력과 기술까지 겸비한……. 지영은 이성진이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테 후, 하지메!

힐끔, 이성진이 점수판을 보는 게 보였다.

남은 시간은 30초.

어차피 저 30초가 다 지나도 승부는 나지 않는다. 30초 안에 절반을 따거나 빼앗기거나, 반칙을 받지 않는 이상은 연장전 돌입이었다.

서로 치열하게 다시 기술을 한 번씩 주고받고, 30초가 지났다.

삐이이이……!

후!

심판이 그쳐를 선언하고, 도복을 고쳐 입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선수가 도복을 고쳐 입기 시작하자 그사이 전광판이 역으로 세팅이 됐다. 시간은 이제 0초에서 시작해 1초로 흐른다.

짧은 소강상태 이후, 다시 하지메!

연장전이 시작됐다.

양 선수 전부 기합은 없었다.

그저 후! 짧게 숨을 내쉬고는 치열한 전장으로 들어섰다. 이성진은 시작부터 맹공을 걸었다. 체중을 빼는 건 힘들어하지만 그렇다고 이성진이 체력이 없는 선수는 절대로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체력이 없었으면 그 힘든 감량을 견뎌낼 수조차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오늘 시합에서 처음으로, 이성진이 소매를 잡았다.

이성진이 소매를 잡자 밖에서 스웨덴 감독이 크게 계속 뭐라고 소리쳤다. 보통 시합 중에는 사이드를 볼 수 없는데도 저렇게 소리치는 걸 보면 소매를 얼른 뜯으라는 지시 같았다. 그만큼 이성진의 업어치기를 경계하고 있었다.

“됐다.”

“잡았다! 끝내, 성진아!”

친구들은 이성진이 처음으로 소매를 잡자, 바로 목청껏 크게 외쳤다. 지영도 이게 기회라고 봤다.

이를 악문 크리스티안이, 급하게 소매를 뜯어내려 하지만 이성진은 소매를 놓치지 않았다. 애초에 황금세대 중에서도 가장 잡기 싸움을 잘한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저 악력이었다. 네 손가락으로 제대로 도복을 말아쥐기만 하면, 이성진은 강한결의 힘까지 견뎌냈다. 제대로 뿌리치려는 움직임에 맞추어 움직여주면 황석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뿌리치는 것에 맞춰 부드럽게 안으로 쫓아 들어가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인데, 이성진은 그쪽으로는 스페셜리스트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 결국 안 되겠는지 급히 맞붙어 오지만, 이성진이 그 순간 가슴 깃을 잡았다.

왼쪽 소매, 오른쪽 가슴. 그렇게 양 깃을 이성진이 잡는 순간 재빠르게 크리스티안이 아예 반칙을 받을 각오로 엎어졌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이성진의 업어치기가 작렬했다.

홰액!

쿠웅……!

제대로 실렸고, 제대로 날렸다.

크리스티안의 몸이 붕 떠서 매트에 떨어지는 순간, 심판이 천천히 손을 일자로 높게 들어 올렸다.

잇폰!

우와……!

경기장 한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같은 대표팀 선수들, 그리고 50여 명쯤 되는 교민들의 함성이었다.

“으아!”

벌떡 일어난 이성진이 함성이 들린 곳을 가리키며 그 함성에 화답했다.

짝짝짝!

다른 관중들도 이성진의 한판에 박수를 보냈다. 엄청난 경기였다. 오늘 경기 중, 가장 화끈했던 경기기도 했다. 그래서 관중들도 박진감 넘치는 경기 후, 우승을 거머쥔 이성진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그 박수에는 졌지만, 대등한 승부를 보여준 크리스티안 뫼르고드에 대한 격려의 의미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승자인 이성진을 보던 크리스티안이 홀가분한 얼굴로 일어나 도복을 고쳤다.

그리고 이성진도 비슷하게 도복을 고쳐 입었고, 띠를 매자 심판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손을 이성진 쪽으로 뻗었다.

꾸벅.

인사하고 물러나려는 이성진에게 크리스티안이 다가왔다. 그러곤 손을 뻗었다.

이성진은 씩 웃고는 그 손을 가볍게 툭 치곤 크리스티안의 팔을 두드려줬다.

승자와 패자 둘 다,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라 지극히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결승전 하나가 끝나고, 마지막 경기를 위해 땀이 흥건한 매트를 정비했다. 그 사이 의사가 와서 지영의 상태를 한 번 더 점검했고, 괜찮은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들어줬다.

금일 마지막 경기를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 후, 5분 뒤.

지영은 매트 위로 올라갔다.

그런 지영의 앞에는 백색 도복의 미야모토 신지가 있었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오늘 처음으로, 빙긋 웃었다. 미소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정정당당, 최선을 다해서 붙자!

당연히, 지영은 그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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