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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11화 (11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1화

111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4)

퍼억!

비틀, 지영은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도복을 놓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

별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환하게 변하더니, 뭔가 반짝이는 게 가득 찼다. 이어서 오른쪽 이마가 화끈하더니 그쪽의 시야만 붉게 물들었다. 주르륵, 심판이 급히 그쳐를 하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뚝, 뚝, 뚝.

피가 매트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영은 떨어지는 피를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커팅.

복싱이나 격투기를 보면, 주먹이나 머리에 부딪혀 눈썹 부위가 찢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보통 커팅이라고 했다. 실제로 두 종목에서는 상당히 흔하게 나오는 상황이었다. 유도 또한 마찬가지. 초 근접거리에서 서로 맞잡고 경기를 하다 보니, 심심치 않게 이런 커팅이 나오곤 했다.

지영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짜증이 왈칵 올라왔다.

“강. 괜찮나?”

심판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심판도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의료진을 소환했다. 안으로 들어온 의료진에게, 지영은 곧바로 의견을 피력했다.

“시합할 수 있습니다.”

“일단 좀 볼게요.”

“…….”

후우.

이게 짜증 난다.

커팅이 나면 당연히 출혈이 문제가 되는데, 이 경우 의료진이나 심판이 시합을 아예 기권패로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시합 계속할 거죠?”

“네.”

40대 여의사의 말에 지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단 지혈제 바르고 응급처치해 줄게요. 앉아봐요.”

“감사합니다.”

지영이 자리에 앉자, 의사는 곧장 찢어진 부위의 피를 닦아내고, 지혈제로 보이는 연고를 발랐다.

“따끔할 거예요.”

“네. 윽…….”

그러곤 스테이플러 같은 걸 이마에 대고 쐈다. 생살이 씹히는 거라서 지영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다음은 마무리로 붕대를 둘둘 감았다. 그걸로 일단 응급처치는 끝. 의사가 심판과 몇 마디 얘기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다만 원래 대기하던 자리로 가지 않고, 경기장 바로 밖에 서서 대기했다.

진행요원이 들어와 바닥에 이미 흥건했던 피를 닦고 나갔다.

그리고 지영도 여벌의 도복으로 상의를 갈아입었다. 그쯤에서야 굳히기 상황에서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커팅이 나게 만든 브라질 선수, 파울로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의는 아니었다.

고의였다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전조가 있었을 거다.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1회전, 2회전 전부 지켜봤는데 파울로는 시합을 지저분하게 하는 스타일이 결코 아니었다. 지극히 보편적인 심성을 가진 브라질의 유도 유망주.

파울로는 딱 그런 선수였다.

그러니 이건 사고였다. 지영은 이 사고를 파울로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도, 화를 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다만, 자꾸 피를 보게 되는 이 상황이 그냥 짜증 날 뿐이었다.

재개될 준비가 끝나고, 하지메! 심판이 시합을 시작시키자 파울로는 두 손을 모아서 가슴에 올리고 꾸벅, 인사를 했다. 마치 합장 같은 인사였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슬쩍 내밀었다.

툭.

가볍게 손을 맞대 서로 화해를 했단 모습을 보인 뒤 경기를 속행했다.

파울로.

이 브라질 선수는 이전 판에 했던 제이미와 느낌이 비슷했다. 상체는 가볍지만, 더럽게 유연하다. 그리고 특기는 굳히기. 주짓수를 배웠는지 상대를 굳히기로 끌고 가서 승부를 보는 타입이었다.

실제로 커팅이 났을 때도 몸을 돌려 누우려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그래서 지영은 굳히기를 본인이 주도하는 쪽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찢어진 부위를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출혈을 막았다고 해도, 계속해서 조금씩 피는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지영이 건강해도, 출혈이 계속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시합을 빨리 풀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고, 제대로 처치를 끝내야 남은 시합을 준비할 수 있었다.

잡기 싸움.

파울로는 커팅을 냈기 때문인지 위축되어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지영은 그렇다고 그의 정신을 차리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피해자는 자신이고, 파울로는 아무리 실수였다고 해도 가해자였기 때문이었다.

소매 싸움.

파울로는 발이 빨랐다.

유도선수가 발이 빨라 뭐 하겠냐고 하겠지만, 발이 빠른 건 생각보다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일단 잡히면, 그 이점은 금방 사라진다.

소매를 잡히자 급하게 강하게 뿌리치는 파울로. 지영은 팔을 뿌리치면서 옆으로 도는 파울로를 빠르게 쫓아가 가로막았다.

현재 경기 시간은 2분 정도 남았고, 처음에 간을 보느라 이미 반칙은 하나씩 주고받았다.

그래서 딱히 누가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이미 파울로는 자신의 행동에 지영이 상처를 입으면서 스스로 소극적인 자세로 들어갔고, 이는 결국 반칙을 하나 더 받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유리한 상황이 됐기 때문에 지영은 좀 더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그제야 파울로는 어느 정도 충격에서 벗어나 공세로 나왔지만, 이미 자세를 잡고 움직이는 지영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주력 특기 기술이 하나밖에 없는 선수들은 보통 여기서 문제를 드러냈다.

특기가 간파당하면, 그것 하나만 조심하면 된다.

다른 기술을 전부 통달한 것처럼 잘하지 않으면 조심해야 할 것도 별로 없으니 대응하기가 쉬웠다.

파울로는 주짓수를 기본으로 한 서브미션이 특기인 선수였다.

그럼 이런 선수를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굳히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격투기처럼 자신이 그냥 벌러덩 드러눕거나, 아니면 태클을 걸어 넘길 수도 없는 게 유도다.

허리 아래쪽으로 손이 가면 무조건 반칙패다 보니까 태클은 그냥 지겠다는 선포고, 자신이 그냥 벌렁 드러누우면 그대로 지도가 들어간다. 그러니 지영이 단단히 방어하면서 밀어붙이면, 파울로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서로 반칙이라도 하나 같이 주고받으면?

지영의 승리다.

그걸 아는지 파울로는 막무가내로 덤벼 들어왔다. 벌써 시간은 3분이나 지났고, 잠시 후면 서로 나란히 지도가 들어간다는 걸 그간의 경험상 이미 알고 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라도 지영의 중심을 무너뜨려 기술을 거는 것밖에 없었다. 그게 그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만, 지영은 카운터의 대가다.

무리한 밭다리.

지영보다 다리가 길어서 제대로 들어오긴 했지만 지영의 무게중심은 오히려 앞으로 가 있었다. 밭다리는 어떻게든 상대의 중심을 뒤로 무너뜨린 다음 찍어야 하는 기술인데 이런 식으로 기술을 걸면?

나 되치기 해주세요!

이렇게 소리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사실 파울로는 전략을 잘못 잡았다. 밖에서 괜찮으니까 천천히 하라는 사이드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지금 여유가 없었다. 지도가 2개여도, 4분 게임이 다 지나도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작금의 유도는 반칙으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 더 차분하게 경기를 운용하면 연장전까지 충분히 끌고 갈 수 있었다. 지영도 사실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단시간에 끝내는 게 베스트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당연히 연장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데 파울로는 연장전 자체를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니 이건 명백한 실수고, 이런 실수를 놓칠 지영이 아니었다. 지영이 역으로 목을 휘감아 가자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은 파울로지만, 이미 늦었다.

쿠웅!

잇폰!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밭다리를, 역으로 되치기로 연결해 그대로 한판을 따냈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쉰 지영은 일어나 도복을 고쳤다.

뚝.

피와 땀으로 물든 붕대에서 옅어진 핏방울이 뚝뚝 흘렀다. 역시, 스테이플러로 찍긴 했지만 지혈이 완벽하게 된 건 아니었다. 인사를 하고 지영이 밖으로 나오자 감독과 코치, 그리고 의료진이 바로 달려들었다.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하. 피 아직도 많이 나네. 일단 자리 옮기자. 그리고 치료를 받고 계속할지, 아니면 포기할지 정하자.”

“시합은 끝까지 하겠습니다.”

“야, 지금 출혈 심하다니까?”

“그래도요.”

전기정 교수는 지영의 말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보기에는 젊은 혈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혈기가 맞았다.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메이저 대회다.

이런 대회를 고작 커팅 때문에 포기한다?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출혈이 좀 있지만 이건 당연히 언제고 멎을 거고, 시합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일단 알았으니까 가서 치료부터 받자.”

“네.”

대기실로 들어가자 의사가 와서 붕대를 풀었고, 상처를 확인했다. 그러곤 눈살을 찌푸렸다. 급하게 수습만 했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피를 닦아내고 있는데 헝가리 유도협회 관계자가 들어왔고, 대화를 잠시 나누더니 한국 스태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근처에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차라리 상처 부위를 꿰매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어차피 시합이 남았고,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 그게 최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되는 게, 바로 병원으로 갈 수가 없었다. 지영은 지금 3판을 이겼고, 이제 4강에 안착했다. 흔히 준결승이라고 부르는 위치까지 올라간 거다.

하지만 그래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패자부활전이 있지만 패자부활전이 시작되려면 일단 준결승까지 진행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패자부활에 들어가는 선수들이 선정이 되고, 그들의 경기하는 동안 시간이 난다.

“음, 그럼 일단 다시 지혈하고, 붕대를 감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관계자가 의사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응급처치는 처음과 똑같았다. 지혈한 다음 연고를 바르고, 다시 스테이플러로 상처 부위를 찍었다. 이번엔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신음을 흘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다음이 다시 붕대.

단단한 압박감에 지영은 안도감이 들었다.

“정말 괜찮지?”

전기정 교수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또 상처가 난 건 솔직히 기분이 진짜 별로였다. 오늘 시합은 중계되는 걸 알고 있던 탓에 어머니도 보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아, 많이 놀랐겠네.’

아침에 ‘연예인님! 오늘 시합 파이팅해요!’ 하고 메시지를 보내준 양유진도 보고 있을 거다. 오늘 동생 훈련 끝나면 같이 보겠다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 그냥 화가 났다.

부상.

두 번의 세계 대회에서, 두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그것도 그냥 발목이나 손을 다치는 것도 아니고 자꾸 피를 보는 부상을 당했다. 첫 대회는 입술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졌고, 오늘은 이마에 커팅이 나서 피를 철철 흘렸다.

부상은 지영이 극히 경계하는 상황 중 하나였다.

교통사고로 유도를 그만둬야 했었기 때문에 부상 자체가 지영에겐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도나 레슬링이나, 복싱 같은 경기는 솔직히 부상을 방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상대랑 겨루는 모든 스포츠가 그랬다.

어느 순간, 정말 예상도 못 한 한순간에 부상은 슬그머니 찾아와 품에 안긴다. 그러니 시합 중에 일어나는 부상은 아무리 지영이라고 해도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좀 전처럼, 갑자기 부딪치게 되는 상황은 더더욱.

워낙에 근거리다 보니, 어? 하는 순간 이미 충동해서 부상이 생겨버리는 거다.

처치를 받고 밖으로 나오니, 지영의 다음 상대가 될 게임은 이미 끝났고 신지가 경기를 하고 있었다.

“괜찮냐?”

지영이 나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걱정 가득한 얼굴들. 강한결이 대표로 질문을 해왔고, 지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어지럽거나 그런 건 없고?”

“아직 괜찮아. 그보다 물 좀 주라. 시합 끝나고 아무것도 못 마셔서 목이 타네.”

“어, 어! 여기!”

황석이 얼른 아이스박스에서 물을 꺼내 건네줬다.

부상에 중점을 둬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해주지 않은 스태프들이 조금은 원망스러운 지영이었다.

쿠웅!

물을 한 모금 마시는 그 순간, 완전한 컨디션으로 부활한 신지가 업어치기로 상대를 던지면서, 승리를 따냈다.

“석아. 대진 어떻게 됐어?”

치료받느라 이전 경기를 하나도 못 봐서, 대진이 궁금한 지영이었다.

“아 맞다. 지영이 넌 스페인 선수랑 붙고, 신지는 미국.”

“음…….”

지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73에서 가장 두각을 내보인 선수들이 역시 전원 올라왔다. 특히 스페인 선수. 후안 페르난데스. 스페인 모험가 이름과 똑같은 이 선수는 지영도 눈여겨봤던 선수였다. 지영이 봤던 몇 명의 선수 중, 가장 강할 거라 예상했던 선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그 선수가 올라왔다.

전형적인 스페인계의 미남.

얼굴이 무슨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잘생긴 선수였다.

지영은 그런 선수와의 대결이 사뭇 기대됐다.

신지의 경기가 끝나고, 여자 선수들의 준결승이 먼저 시작됐다.

그렇게 30분쯤 더 지나, 이성진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50초.

이성진이 한판을 따내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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