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02화
102화. 왕의 초대(4)
처음 붙어보는 유도선수들끼리는 잡는 순간, 아주 많은 정보를 교환한다.
선수의 힘, 기술, 잡기 싸움 능력, 발기술, 중심이동 등등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바박!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상대와 나에게 전달된다. 지영은 안호진과 잡기 싸움 몇 번, 그리고 서로 가슴, 어깨 깃을 잡는 순간 아주 많은 정보를 받아들였다.
‘역시…….’
다르다.
안호진의 실력은 랭킹이 말해주듯, 세계 정상급이었다.
아깝게 이번에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은메달을 땄고, 아시안 게임도 은메달을 땄지만 세계선수권은 금을 땄다. 그리고 굵직한 메이저 대회에서도 다수 금메달을 땄다. 그러니 안호진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 기대감과 함께 딱 잡아보자마자, 지영은 기대 이상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거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묵직함이다.
안호진의 신장은 지영보다 10㎝ 정도 작은 170 초반이다. 그러니 리치 차이가 상당히 났다. 안호진은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지영이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은 일단 무리하지 않고, 상대의 스타일을 살폈다.
사실 안호진의 경기는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질리도록 봤다.
언젠가 넘어야 할 산.
안호진은 지영에게는 그런 존재였기 때문에 시합 스타일을 익히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계속 봐왔기 때문이었다. 회귀 전, 앞으로 2, 3년 뒤에는 장강의 앞 물결이 뒷물결에 밀려나듯 이우진에게 자연스럽게 왕좌를 넘겨주지만, 그래도 그전까지는 73체급에서는 최고의 선수였다. 그건 절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툭.
부드럽게 지영의 팔꿈치 오금을 슬쩍 들어 올려, 공간을 확보하는 안호진.
안호진은 전형적인 업어치기 선수다. 허벅다리를 못 차는 건 아니지만, 73에서는 좀 작은 체구를 이용해 빠르고, 강력하게 업어치기를 구사하는 스타일이다. 업히면, 그대로 날아간다. 그리고 업어치기만 방어하려고 하면, 지영도 좋아하는 빗당겨치기를 사정없이 꽂아버린다.
지영은 그런 안호진의 스타일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업어치기 공간을 내려고 팔꿈치를 쳐올렸을 때, 이미 어깨를 잡았던 깃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업어치기. 쉭! 바람 갈라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진짜 빠른 업어치기였다.
이성진의 빛처럼 빠른 업어치기와 비견될 만큼, 엄청난 속도로 들어오는 업어치기를 지영은 상체를 비슷한 속도로 숙여가며 방어했다. 업어치기는 말 그대로, 상대를 업어 던지는 기술이다. 말아업어치기가 아닌 이상, 소매꽂이가 아닌 이상 업어치기로 상대를 던지려면 내 어깨나 등을 자신의 어깨나 등에 실어야 하는데, 이미 지영은 그 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끝.
아니다.
업어치기가 무로 돌아갔으니 아주 짧게 지영의 시간이 왔다. 지영은 바로 상체를 세워 일어나며 움찔하는 안호진에게 밭다리를 찍었다. 그러자 아예 도복을 놓고 앞으로 엎어지듯이 상체를 숙이는 안호진. 그러곤 무지막지한 하체 힘으로 버텼다. 아예 도복을 놓은 상태라서 이건 지영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기술을 풀고 물러나자, 안호진이 후,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일어났다.
아까웠다.
‘조금만 빨리 찍었어도, 넘길 수 있었는데.’
하지만 반사신경이 진짜 좋은지, 지영의 밭다리를 찍으려는 순간 이미 그냥은 못 버티겠다는 판단이 선 것처럼 도복을 놓고 아예 상체를 숙였다. 그 짧은 틈에 이런 판단이 가능한 건 그만큼 경험이 많다는 뜻이라 볼 수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맞잡았다.
이번에도 지영은 어깨 깃을 잡았고, 안호진은 지영의 가슴 깃을 잡았다. 지영은 몸 쓰기로 어깨를 털어 가슴 깃을 잡은 팔을 눌러 죽인 뒤, 그대로 안호진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안호진은 그걸 역으로 어깨를 털어 쳐낸 뒤에 뒤로 물러나며 안뒤축을 쳤다.
툭.
움찔.
부드럽게 틀어왔지만 제대로 중심이동을 보고 친 안뒤축에 지영의 중심이 순간 흔들리자, 그 상태에서 그대로 손목만 툭 챈 뒤에 양손으로 가슴 깃을 잡고 빙글 돌았다. 이번엔 말아업어치기였다.
걸리면 무조건 날아가는 속도와 힘, 그리고 타이밍이었다.
이미 중심을 잡기도 전에 회전이 끝난 상태라, 이건 처음처럼 기술을 방어할 겨를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넘어갈 생각 또한 없었다. 이렇게 쉽게 넘어갈 것 같았으면, 안호진이 초대에 응하지도 않았다.
몸이 말려서, 안호진에게 끌려갔다. 어느 정도 끌려간 순간 지영은 다리를 아예 밖으로 빼서 상체를 빳빳하게 세웠다. 그간 지영이 단련한 코어가 그 순간 빛을 발했다. 그냥 우악스럽게 힘으로 업어치기를 막는 거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안호진의 힘은 정상급 선수답게 강했지만, 힘은 지영도 만만치 않았다. 하체와 코어, 그리고 데드리프트를 하듯이 상체를 강하게 뽑듯이 당겨 몸이 말려가는 걸 막았다.
넘기려는 자와 넘어가지 않으려는 자의 힘 싸움.
싸움의 승자는 지영이었다. 안호진은 지영이 버티는 힘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도복을 놓으며 기술을 포기했다.
후…….
이번엔 지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버티는 게 늦었다면 절대 못 막고 몸이 말려서 날아갔을 거다. 운 좋게 절반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안호진 정도의 실력자면 이미 등에 업히는 순간 거의 한판으로 기술을 끝낼 거다.
그러니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
연습이니까 한 번 넘어가는 건 괜찮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괜찮지 않았다. 넘어가는 것도 버릇이 된다. 국가대표한테 넘어간 거니까 괜찮아. 하는 생각들 하나가 승부욕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승부욕 저하는 실력상승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황금세대는, 훈련 중에도 웬만해서는 설렁설렁하는 법이 없었다.
서로 사력을 다해, 그런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게 얼마나 힘든지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알 거다. 그게 가능한 게 지영이고, 황금세대였다.
다시 일어나서, 재시작.
지영은 이전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이 선수에게 가슴 깃을 내주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다. 좀 전에는 겨우겨우 막긴 했지만, 제대로 말리면 답도 없이 날아간다는 확신이 선 만큼, 잡기 싸움이 더 중요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치열한 잡기 싸움.
잡기 싸움을 참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못 해서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닌 지영이 진심으로 잡기 싸움에 나서자, 안호진은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지영과 안호진의 유도 스타일은 극과 극이었다.
지영은 방어 유도에 중점을 두지만, 상대에 따라 언제든지 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제각기 다른 황금시대 친구들과의 훈련이 이런 지영의 유도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래서 지영에게는 특정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있다면 카운터를 기가 막히게 친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도 스타일이라고 보기보단, 능력이라고 보는 게 맞다.
반대로 안호진은 전형적인 업어치기 선수다. 그것도 일본의 유도 스타일이 아직 남아 있는. 일본 유도는 이상하게도 도사 유도처럼 보인다. 느긋함과 오만함 사이 그 어딘가쯤에 있는, 그런 느낌이다. 물론 실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만, 시합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안호진은 유도를 일본에서 배워 그런 느낌이 제법 강하게 났다. 한국으로 귀화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신지가 올라운더 스타일의, 색깔이 없는 유도를 구사한다. 그래서 이런 유도 스타일은 사실 지영도 처음이었다.
같은 업어치기 선수지만, 이성진과도 느낌이 달랐다.
느긋함과 오만함.
그 사이 어딘가의 독특한 느낌이 났다. 지영은 아마 그게 세계 최정상급 선수가 가진 실력에 기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급할 것도 없지.’
회귀해서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지영이다.
회귀 전에도 사고가 없어서 이렇게 실력을 키워나갔다면, 아마 지금 안호진에게는 살짝 부족한 실력일 거다. 그러나 지영에게는 안호진만큼 훈련한 시간은 없어도,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었다.
그 노하우는, 상대를 어떻게 상대해야 효율적인지에 대한 노하우였다.
지영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만하게도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할 자신이 있었다. 선수가 네다섯밖에 없던 초등부 방과 후 유도 교실에서 전국 소년체전 1등 선수를 배출한 것도 지영이 상대에 따라 확실하게 저격할 수 있는 카드를 중점으로 두고 훈련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제 걸음마는 떼었을까?’
회귀 전, 유도가 하고 싶어 자신의 학교로 전학까지 왔던 박한솔을 떠올리며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고 그건 곧, 딴생각이었다. 라고 안호진은 생각했는지 눈을 빛냈다.
홱!
안호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지만, 지영은 딴생각을 한다고 멍 때리고 있던 건 아니었다.
‘모르지?’
이런 심리의 변화도, 카운터로 쓸 수 있다는 걸.
특히 눈치가 빠른 인간한테 더욱 잘 먹히는 미끼라는 것도.
턱! 드득!
안호진이 업어치기로 도는 그 순간 지영은 역으로 안호진을 확 당기며 왼발이 빠져나가면서 앞 포지션을 잡았다. 그리고 빛살처럼 찍어서 허벅다리를 찼다. 힘으로, 강제로. 억지로 끌어당겨 찬 허벅다리지만, 유도는 반칙만 아니면 넘기면 그게 장땡이다.
화려하게 홱! 넘어가는 건 아니지만 걸리긴 걸렸다.
그 순간에도 중심을 낮추고 방어를 해낸 건 대단하지만 이미 다리 한쪽이 들린 상태, 지영은 그걸 몇 번을 더 차올려서 기어이 던져냈다.
쿵.
크진 않고, 그냥 쿵.
“이야…… 저걸 노려서 차네.”
“기다렸지?”
“그런 것 같은데? 호진이도 방어는 잘했는데, 힘도 좋나 보네. 키가 커서 힘은 별로일 줄 알았는데.”
“저 신장이면 음, 쟤는 비시즌이니 거의 81이랑 힘 비슷하겠지.”
“그럼 평체가 81 정도? 이거 피지컬에서 호진이가 너무 밀리는구만.”
기어이 지영이 안호진을 한판으로 던지고 나자, 주변에서 연습을 보던 선수들의 대화가 그제야 지영의 귀로 순차적으로 꽂혀 들어왔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쉬고 도복을 고르는데, 저 멀리서 이우진이 씩 웃는 게 보였다. 마치,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질투 따위는 없는, 순수한 호승심도 보였다. 그게 기꺼워 피식 웃을 뻔했는데, 여기서 웃었다간 진짜 건방지다고 찍힐 것 같아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그러곤 다시 상대를 바라봤다.
일어난 안호진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사실, 지영은 자신이 있는 채로 이곳에 왔다. 그 자신감은 신지로부터 시작됐다. 신지는 현재 일본에서도 천재 소리를 듣고 있었고, 실제로 일본의 국가대표 1선발과 붙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의 1선발은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며, 현 세계랭킹 1위 선수였다.
그걸 역으로 적용하면, 지영의 실력은 세계에서도 정상급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아주 단순한 1차원적인 계산이지만, 반대로 타당성이 있는 계산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영은 안호진에게 조금 부족할 수는 있어도,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밀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시합 영상을 보면서도 그런 판단이 섰었고.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안호진은 아주 훌륭하고, 강한 선수지만 자신이 더 낫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 들었다.
물론…….
홰액!
쿵!
제대로 파여서 걸렸다.
땅굴 파듯 들어온 한 팔 업어치기에 걸려서, 방어한다고 했는데도 몸이 날아갔다. 점수는 한판과 절반 사이. 이렇게 어? 하는 순간 그대로 날아가는 정도의, 아주 짧은 차이였다. 하지만 다음 올림픽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지영은 그 안에 좀 더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황금세대가 짜놓은 ‘로열로더’ 계획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 * *
운동이 끝나고 정리운동.
남자대표팀 감독 장재균은 코치 조성호에게 물었다.
“어때 보여?”
“누구 말씀이십니까?”
“쟤, 호진이가 오늘 불러온 애.”
“아, 강지영이요?”
“그래, 걔. 아까 보니까 호진이도 한판 날아가는 것 같던데?”
장재균의 말에 조성호는 짧게 고민한 뒤에 답했다.
“지금 대표팀 차출해서 세계대회 나가도, 입상권은 가볍게 갈 것 같습니다.”
“그지?”
“네. 지금 일본 73은 미야모토 신지라는 친구가 자리를 넘겨받을 것 같은데, 그 신지라는 얘도 보니까 진짜 잘해요. 진짜 천재가 뭔지 보여주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런 미야모토 신지를 잡은 게 저 앱니다. 연장 혈투 끝에 잡았더군요. 그거 영상은 감독님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봤지. 그런데 고등부 레벨이라고 생각해서 좀 집중 안 했는데, 이제 보니까 아니었군. 내가 멍청한 짓을 했어.”
“그런데 쟤들, 선발전을 안 나와서 부르기는 힘듭니다.”
“알아. 그런다고 들었어. 조 코치가 왜 안 나온다고 하는지 좀 알아봐.”
“넵.”
“우리도 이제, 다시 정상 탈환해야지.”
장재균의 생각으로는, 현재 대표팀은 고였다.
이는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뜻.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다음 올림픽에서 다시 왕좌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넵, 일단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어슬렁어슬렁.
꾸벅 인사한 조성호는 가장 뒤에서 정리운동을 하는 지영에게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한량처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