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01화
101화. 왕의 초대(3)
국가대표.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그러니까 엘리트 체육을 하는 선수들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태극마크다. 국기사 같은 곳에서 마크를 구해 박는 게 아닌, 진짜 의미의 태극마크를 다는 선수들을 보통 국가대표라고 한다.
유도는 보통 한 체급에 국가대표가 둘에서 셋은 된다.
이런 선수들이 모여 있으니, 분위기는 진짜 끝내줬다.
그리고 고등부, 대학부에서 온 파트너와 실업팀에서 온 선수까지. 남녀 선수 육십이 넘는 대인원이 있는 공간에 있다 보니, 마치 자신 혼자 이방인 같았다.
사실 지영도 이런 식으로 초대를 받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워낙에 훈련도 마이페이스로 하다 보니까 별로 그런 마음도 없는데 베일에 감춰진 것처럼, 혹은 신비주의처럼 느껴지는 게 바로 연희고 황금세대였다.
그중 실력으로는 거의 정상급에 도달했을 거라 평가받는 강지영의 등장은, 일종의 이벤트에 가깝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벤트가 마음에 안 드는지, 준비운동 하는 내내 부담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당연히 지영은 그 얼굴들을 알고 있었다.
용인대 이호석.
워낙 쓰레기라 설명은 필요 없고.
다른 시선은 이번에 안호진에게 밀려 도쿄 올림픽에는 못 갔지만, 안호진에게 상대성이 워낙에 좋아 다음 올림픽을 노려볼 만하다고 평가받는 박준석, 이렇게 둘이었다. 이호석이야 뭐, 지영에게 워낙에 처절하게 깨졌으니 그렇다 쳐도, 박준석의 저런 시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호승심을 넘어서, 이건 그냥 지영을 무슨 원수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부딪치기로 몸을 푸는데도 뒤통수가 아주 그냥 따갑다 못해 뚫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지영은 같이 몸을 푸는 이우진에게 물었다.
“박준석 선배는 왜 저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지영이 조용히 그렇게 묻자, 이우진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대답했다.
“시기와 질투지 뭐. 그리고 너희들 행보가 워낙에 독특하잖아. 반은 연예인, 반은 운동선수. 그런데도 실력은 최상. 질투 날 만하지. 나도 그런데.”
“…….”
씩 웃는 이우진은 말과는 달리 실제로 크게 질투하는 것 같진 않은 얼굴이었다. 밉지 않은 친구. 나중에는 사석에서도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말을 이어갔다.
“여기 들어와서 알게 된 게 있는데, 안호진 선배는 우리 부류야.”
“우리 부류?”
“응. 타고난 부류들. 그런데 박준석 선배는 타고나기보단, 어마어마한 노력파야. 난 저 선배가 잘 때 빼고 쉬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
“워…….”
그렇게 하면 몸이 남아나질 않을 텐데?
인간의 육체는 고된 훈련으로 혹사 되면, 반드시 쉬어줘야 한다. 음식 섭취와 수면 등이 다시 몸을 회복시키는 대표적인 예였다.
“몸이 진짜 강철이야. 뭔 뼈마디가 철근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그래서 부상도 거의 없어.”
“흠…….”
“그런데 너희는 예능도 나오고, 드라마도 찍고 막 그러잖아. 그러니 저 사람의 눈엔 네가 그냥 재능으로 놀면서 유도하는 한량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이우진의 말에 지영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한량? 놀면서 한다고?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였다.
지영이 유도에 얼마나 진심이고,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옆에서 본다면 절대 그런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할 거다. 특히 요즘엔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 그런 소리를 안 들으려고 더 철저하게 훈련한다.
하지만 그건 지영이나, 연희고 황금세대들, 후배들, 그리고 임대성 코치만 안다.
다른 사람의 눈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지영은 그걸 굳이 고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지영은 그렇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우진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그렇게 해서 이 정도 실력이면…… 세상 너무 불공평하지.”
“하하. 맞아. 나 이 악물고 한다. 그러니 그런 오해는 마라.”
“다행이다. 너도 노력하니까. 노력도 안 하는 선수한테 그렇게 졌으면 진짜…… 자괴감 때문에 운동 그만두고 싶었을 거야.”
“응. 그럴 필요 없어. 나도 그렇고, 우리 전부 진짜 웬만한 선수보다 더 힘들게 훈련해.”
“그래. 그건 진짜 다행이다. 하하.”
삐이이!
잡담은 그만하라는 것처럼, 대표팀 코치가 호루라기를 불어 다음 훈련으로 넘어간다는 걸 알렸다. 자유 연습은 여기도 경량, 중량급으로 나눠서 하는지 81부터는 훈련장 한쪽으로 이동했다. 이우진은 굳이 지영과 잡을 생각이 없는지 다른 선수를 잡으러 갔다.
멀뚱멀뚱.
이우진이 가버리자 파트너가 없는 지영은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지영에게 곧, 박준석이 다가왔다.
“한 판 하자.”
“네.”
올 것 같았다.
‘아마 내 기를 팍 죽여놓고 싶겠지.’
감히 파트너 입촌부터 시작해 훈련하러 오라는 연락부터 시작해 전부 씹어버렸으니 아마 박준석의 입장에서는 지영이 어마어마하게 건방지게 보였을 거다. 그래서 교육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쿠웅!
시작과 동시에 저돌적으로 밀고 오는 걸 받아서, 그대로 빗당겨치기로 꽂아버렸으니 교육은 시작부터 실패했다.
바닥에 꽂힌 박준석의 눈빛은 멍했다.
그리고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지영의 모습은, 남이 보기엔 참으로 건방졌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한 바퀴 제대로 날아간 박준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일어나서 진지한 눈빛으로 지영을 바라봤다.
하지만 지영은 그래도 그 눈빛 안에 담긴 기분 나쁜 느낌을 감지했다.
‘정신만 차렸네.’
썩은 생각은 고치지 않고.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지영은 좀 전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잡기 싸움을 걸어오는 박준석을 상대하면서, 이상하게도 그리 힘들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준석은 테크니션이 아니다.
아까 이우진이 말했던 것처럼 피지컬을 베이스로 한, 늘어지는 시합을 하는 유형이었다. 안 넘어가지만, 반대로 확실한 메치기 기술이 없는 선수. 그런데 체력이랑 피지컬이 워낙에 좋아 그걸 바탕으로 소소하게 점수를 따든가, 아니면 반칙을 받게 만든 다음 시합을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좋게 말하면 체력형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속 빈 강정이다.
유도는 기본적으로 메치는 운동이다.
메치기가 주력인 운동에서, 메치기 기술이 없다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다. 박준석을 그걸 체력과 시합 운용으로 매웠다. 하지만 그쪽으로는…… 지영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툭, 소매 깃을 잡은 걸 쳐냈다.
아귀힘도 엄청나게 좋아 뻑뻑했지만 팔을 접어 위로 당기면 헤비급이 잡아도 뜯겨나간다. 지영이 소매를 뜯어내자, 이번엔 가슴 깃을 잡아 왔다. 그건 그대로 뒀다. 어차피 지영의 기본 자세가 어깨나 등 깃을 잡는 거니까.
그 상태에서 다시 시작된 잡기 싸움.
툭.
가볍게 모두걸기를 쳤는데, 돌처럼 단단하다. 이런 선수는 강제로 자세를 무너뜨리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은 무리하지 않았다. 받아줄 건 받아주면서, 적당히 거리도 유지했다. 사실 지영은 급할 게 없었다.
이게 시합이었으면 이미 시합은 끝났다.
처음의 빗당겨치기로 말이다.
그래서 지영은 이미 한판을 확보했으니, 이대로 버티기만 해도 연습이지만 지영의 승리다. 그리고 그걸 박준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습 시간 3분이 지났을 무렵부터, 강하게 밀어붙여 오기 시작했다. 기술이 없는 만큼, 상대를 코너로 모는 방법만큼은 제대로 터득한 박준석. 하지만 이런 저돌적인 잡기는 지영도 밀리지 않는다.
‘힘으로 안 되면, 중심으로 받으면 돼.’
왼발을 앞에 놓고, 그 발을 축으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잡기 싸움을 이어나가면 웬만해서는 뒤로 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지영의 힘은 체급에서도 순위권이다. 예전에 고생고생해가며 올린 근력은 이럴 때 쓰려고 했던 거였다. 물론 그래도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덤프에 밀리는 것처럼 속절없이 물러나진 않았다.
지영이 밀리지 않고 맞받자, 박준석은 오히려 더욱 저돌적으로 밀고 왔다.
하지만 황석보다는 그 힘이 약하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황석의 힘도 견디는 훈련을 했던 지영이라, 이 정도는 솔직히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씩 툭! 발목받치기로 상대의 중심을 이용하면 저돌적인 전진도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삐이이!
5분 종료.
결국 박준석은 지영을 넘기지 못했다.
꾸벅, 인사를 한 지영은 밖으로 나갔다. 지영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람이 다가왔다.
“야, 한판 하자.”
이호석이다.
그래서 지영은 바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파트너 있어요.”
“그럼 다음 판에 해.”
“다음 판도 있어요.”
“……야이씨.”
“…….”
거친 소리가 나오자 지영은 그를 돌아봤다.
이호석.
그때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지영은 이런 놈에게 소중한 연습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이호석은 지영의 훈련에 도움이 되는 놈도 아니었다.
‘뭐, 더러운 스타일에 대비하려면 잡는 게 맞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붙어봐야 자신보단 이호석이 얻어가는 게 더 많은 것도 있어서 더 싫었다. 이호석은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이를 악물고 부르르 떨더니, 이내 몸을 돌려 사라졌다.
하.
어딜 가나 나이를 믿고 뻗대는 부류가 있다.
이호석이 딱 그랬다.
지영은 그런 이호석과는 조금도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잠시 쉬고 있는데, 선수 한 명이 또 다가왔다.
지영이 모르는 얼굴.
“다음 판에 있어?”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나랑 한판 하자.”
“네.”
“근데 야, 너 잘하더라. 준석이가 그렇게 약한 애는 아닌데.”
준석이?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박준석을 이렇게 부를 정도면 그냥 선수는 아닐 것 같았다. 유도선수는 많지 않아서 얼굴 보면 딱 아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지영은 10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그리고 회귀 이후에도 굳이 대표팀 경기 같은 건 챙겨보지 않아서 이 선수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어요.”
“운치고는 경기 운영이 너무 노련하던데?”
“…….”
지영은 그 말에 그냥 어색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제가 좀 잘하긴 하죠? 하고 받아칠 수도 없으니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게 아마도 베스트였다. 말을 건 선배가 앞을 봤을 때, 지영은 힐끔, 등에 붙은 이름표를 확인했다.
서정훈.
‘아, 서정훈 선배.’
기억났다.
용인시청 소속으로, 꾸준히 성적을 내는 선배였다.
국가대표로 여기 있는 건 아니고, 훈련을 들어온 선수. 하지만 이런 서정훈에게는 독특한 별명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안호진 킬러다.
유도는 상대성이라는 게 강하게 작용하는 스포츠다. 진짜 날고 기는 선수도 이 상대성에 딱 걸리면 입상도 없는 선수에게 매번 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영은 아직까지 그런 경험이 없지만, 반대로 말하면 지영이 아마 이우진 킬러 정도 될 거다.
안호진과 서정훈의 상대 전적은, 1승 5패로 압도적인 서정훈의 우세였다.
날고 기는 안호진도 서정훈만 만나면 맥을 못 춰서 그의 별명이 안호진 킬러였다. 실제로 안호진이 한국에서 진 게임을 보면 서정훈에게 패한 게 거의 80% 이상이었다.
그만큼 안호진에게는 거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게 바로 서정훈이었다.
하지만 그건 안호진에게지, 지영까지 거기 포함되는 건 아니었다.
쿠웅!
순간적으로 걸어온 밭다리를 그대로 받아서, 되치기로 한판.
서정훈이 성급하게 기술을 건 건 아니었다. 지영의 중심이 뒤로 가 있었기 때문에 한 발자국만 먼저 앞으로 뗐으면 제대로 기술이 걸렸겠지만, 그 자체가 지영이 던져 놓은 미끼였다. 그래서 밭다리가 들어오자마자 곧장 받아서 되치기로 한판을 던진 지영이었다.
그렇게 지영은 한 명씩, 마치 도장깨기처럼 깨 올라가기 시작했다.
73의 다른 대표는 부상으로 쉬고 있어서 하지 못했고, 66부터 81까지, 웬만한 선수들은 전부 한판을 던지며 실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깨고 나자 벌써 훈련이 끝날 때쯤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야 찾아오는 안호진.
“막판은 저랑 해요.”
친근한 미소로, 그리고 여전히 존대로 해온 그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땀에 푹 젖어서 그런지 청춘 만화 주인공처럼 싱그러움도 느껴졌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는 지영이 그렇게 보였을 테지만 적어도 지영은 그렇게 느꼈다.
라스트!
코치의 외침과 함께 지영은 안호진과 라스트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자 주변의 시선이 싹 모였다.
현 국가대표와 차세대 유망주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실력이 출중한 지영의 대결이니 시선이 안 모일 수가 없었다.
삐!
타이머가 돌기 시작하자 인사를 한 뒤에 서로 맞붙는 두 사람.
지영은 안호진과 부딪치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강하다.’
현 세계랭킹 2위의 저력을 지영은 잡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