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98화
98화. 날지 못하는 신데렐라(8)
눈매가 매섭다.
운동을 끝내고 나온 양지원은 자신의 언니 옆에 낯설면서도 낯익은 남자 둘을 지긋이 바라봤다. 딱히 노려보는 건 아닌데도 워낙에 눈매가 날카롭다 보니 매섭단 느낌이 절로 났다.
“왜 두 분이 언니랑 있어요?”
양지원의 말에 강한결은 바로 옆으로 한 발자국 떨어지며 손을 들어 올렸다.
“저는 따로 왔어요. 여기 둘은 같이 온 거고.”
“……언니?”
어? 어어…….
쪼르르르……. 양유진이 양지원의 옆으로 슬그머니 걸어갔다. 그러자 그런 언니를 꼭 끌어안는 양지원. 그때 그녀가 나온 문이 열리고 곽현정 선배님이 나왔다.
“어? 지영이랑 한결이? 이번 주도 왔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곽현정은 둘의 인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초승달처럼 휘게 웃었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그러곤 그렇게 중얼거리며 두 사람을 스쳐 지영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큼, 헛기침을 한 강한결이 물었다.
“선배님, 식사하셨어요?”
“저녁? 이제 먹어야지. 도와주고 싶은데 남편이 와서, 미안.”
“하하, 그럼 다음에요.”
“알았어! 그럼 나간다! 두 사람 다 저녁 맛있게 먹고!”
“네.”
꾸벅.
손을 흔드는 곽현정에게 공손히 인사한 양지원이 다가왔다. 눈에 막 불만이 터지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음, 양지원의 눈빛을 글로 설명하라고 하면…… 왜 이 두 사람이 여기에 있지? 이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았다.
“혹시 제 운동 감시하시러?”
그렇게 물어와서 강한결은 손을 내밀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말에 지영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요?”
“음, 그냥 보러 왔어요.”
“네?”
“그냥 양지원 선수 보러 왔다고요.”
와, 이렇게 돌직구를?
그것도 언니가 옆에 있는데? 다이렉트로, 미트 정중앙에 그냥 때려 넣는다고? 지영은 강한결의 고백 아닌 고백에 솔직히 정말 놀랐다. 그리고 그건 양지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강한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런 반응에 지영은 안도했다.
사실 두 사람과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너무 크게 났다.
그냥 서로 일반적인 관계였으면 좋겠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애초에 첫 만남 자체가 후원 미팅이었으니 만큼, 관계가 확실히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영의 앞에서 양유진이 보인 반응도 그런 관계가 크게 한몫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미팅 때처럼 날이 선 반응이거나, 아니면 후원을 빌미로 이상한 생각을 하면 어쩌지 찰나 간 걱정했는데 양지원은 딱 평범한 반응을 보여줬다. 이는 양지원의 심사가 그래도 배배 꼬이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날지 못해 한없이 시니컬한 신데렐라일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 음…… 그 지영 오빠는요?”
고개를 살짝 돌린 양지원이 지영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저요?”
“네. 같이 안 왔다면서요.”
“네. 전 양유진 씨 보러 왔어요.”
“왜요?”
대답해야 한다.
아주 잘.
그래도 앞에 강한결이 보여준 예가 있어서, 지영도 그냥 솔직하게 지르기로 했다.
“차 마시면서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그러고 싶어서요.”
“…….”
그런데 자기 언니 얘기에는 아주 차분하게 지영을 응시한다. 자신보다 언니가 더 중요하니까 저런 반응이 나온다는 걸 알아서 지영은 그 눈을 똑같이 차분하게 응시했다. 그렇게 아주 짧게 시작된 눈싸움. 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기서 계속 서 있기도 뭐한데, 밖으로 나갈까요?”
“……네.”
강한결이 나서서 상황을 잠시 갈무리했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 지영은 양지원을 향해 말했다.
“저녁 먹으러 가요. 이따가 청주 내려가야 하는데 밥도 못 먹었고, 가서 먹기에도 늦고. 여기서 먹기도 그렇고.”
“……어쩔래, 언니?”
아, 밥 한 번 먹기 정말 힘들다.
지영의 말에 양지원은 선택을 양유진에게 돌렸다. 그러자 양유진은 어? 하고 놀랐다가 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건 버릇인 것 같았다. 당황할 때 나오는. 하지만 괜찮았다. 저 모습도 귀여우니까.
“그, 지원이 너만 괜찮으면…….”
“그래.”
고개를 끄덕인 양지원이 지영을 향해 말했다.
“가요. 저녁 먹으러. 맛있는 거 사주세요. 아, 우리 언니 피자 좋아해요.”
“피자…….”
지영은 양지원의 말에 바로 폰을 꺼냈다.
그리고 검색하기 전에 일단 먼저 물어봤다.
“혹시 자주 가는 곳 있어요?”
“아니요. 자주 못 먹어서.”
“네.”
자주 못 먹어서.
되게 함축적인 말이었다.
그 안에는 자주 먹을 수 없는, 현실이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지영은 바로 폰으로 근처에 있는 피자가게를 검색해 봤다. 다행히 여기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피자가게 하나 있었다.
“근처에 있네요. 그쪽으로 가죠.”
“먼저 가요. 전 언니랑 천천히 뒤에서 갈게요.”
“네.”
그래도 살짝 거리감은 둔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지영은 먼저 몸을 돌리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으로 붙으며 조용히 말하는 강한결.
“드라마 작가님 만나러 간다며?”
“응. 만나고 왔어.”
“이게 서울행의 목적이지?”
“응. 야. 그래도 나는 다는 말하지 않았지만 반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넌 집에서 쉴 거라고 했잖아.”
“쉬려고 했어. 말하고 난 뒤에 마음이 변한 거지.”
피식.
변명은…….
“진심인가 보네?”
지영이 그렇게 묻자 강한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보는데, 뭔가 확 왔거든. 그러는 너도 진심 아니야? 이렇게 적극적인 걸 보니.”
“응 뭐, 나도…….”
저격당했거든.
서로가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했다. 어차피 서로 알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참, 애들한테는 언제 얘기할래? 성진이 요즘 불만 폭발 직전인 것 같던데. 그리고 애들 얼추 눈치는 챘어.”
지영의 말에 강한결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지영의 말처럼 정말 이성진과 황석, 임효중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하지만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 지금은 좀 기다려 주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고등학생인데도 그렇게 인내해 주고 있었다.
솔직히 그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상황이었다.
“슬슬 얘기해야지. 근데 애초에 우리가 잘못 생각했나 봐. 먼저 얘기하고 같이해도 됐을 건데.”
“그건 뭐 내 잘못이지.”
그렇게 답하며 쓴웃음을 짓는 지영.
괜히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혼자 하려고 계획했던 게 바로 후원 일이다. 그런데 그걸 강한결과 함께하게 됐고, 그 결과 많은 게 꼬여버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그 선택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 선택 때문에 뭔가를 계속 숨겨야 하는 찜찜함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친구들 상황을 보니, 한계에 도달한 것 같고. 그래서 조만간 상황 봐서 한번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양유진에 대한 얘기는 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피자가게에 도착했다.
수제 피자가게.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자, 한 5분 뒤 두 사람이 들어왔다. 양지원은 그래도 몇 번 와보긴 했는지 자연스러웠지만 양유진은 가게 안을 살피며 조금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앞에 앉고, 잠시 뒤 종업원이 메뉴판과 물, 컵, 물수건 등을 주고 돌아갔다.
“뭐 먹을래요?”
“네? 어, 그…… 저 피자는 잘 몰라서.”
“그럼 골라봐요.”
지영이 메뉴판을 펴주자 눈이 동그래진다.
딱 봐도 만만치 않은 가격에 놀란 것 같았다. 그런 양유진의 반응을 본 동생이, 바로 가장 첫 장에 있던 피자 두 개를 팍팍 골라버렸다.
“그럼 두 개 시킬게요.”
“네.”
피자를 시키고 나자, 또 침묵이다.
대화를 풀어나가는 스킬은 지영도 부족한데, 양지원까지 있으니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영의 옆엔, 강한결이 있었다.
“시합이 언제라고 그랬죠?”
“시즌은 7월쯤에 시작해요.”
“음, 그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네요?”
“네. 근데 안무랑 곡에 적응하다 보면 두세 달은 금방이니까…….”
양지원은 조금 자신이 없는 표정이 됐다.
곽현정이 한눈에 알아보고 피겨계로 끌어들인 천재. 남들보다 큰 신장과 시원시원한 안무. 그리고 표현력도 피겨에 대해 모르는 지영이 보기에도 상당히 좋았다. 그 연기에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니까.
그걸 2년 만에 해낸 게 양지원이 천재라는 증거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실력에 크게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당연했다. 그녀는 아직 국내대회 경력밖에 없다. 그건 곧 국내에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에 잘해서 세계대회에 나가기 시작하면 이는 분명 바뀌고도 남을 거다.
천재란 족속이 그렇다.
‘천재의 시간은 일반인과는 다르게 흐르지…….’
남은 1을 하면 1을 배운다.
1을 알려줬는데, 그 이상을 배우거나, 1도 얻지 못하는 상황 것부터가 이제 재능의 영역이다. 현재 국내 정상급 선수들은 못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한 선수들이다. 양지원은 그들보다 적어도 6년에서 5년은 늦게 시작했다.
하지만 벌써 그들의 턱밑에 도착해 있었다.
그것만 해도, 그녀의 재능은 이미 입증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노리는 위치가 너무 달랐다.
양지원도 그렇고, 그녀의 언니도 그렇고, 곽현정도 그렇고, 지영이나 강한결도 그렇고. 국내가 아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특히 그녀 스스로가. 그러다 보니 아직 부족한 경험이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건 쉽게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직접 부딪치고 깨져봐야지. 그래야 확신을 얻지.’
지영도 신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세계에서 어디까지 통할지 정확히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얼추, 제대로 알고 있었다. 갔다가 오면, 그런 객관적인 평가를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평가는, 자신감으로 변환된다.
진짜는 그때부터였다.
“지금은 길목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변할 거예요. 음, 골목길 정도 되려나?”
지영의 말에 양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스로 실력에 확신이 들지 않는 것 같은데,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제대로 준비해서 맞부딪쳐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진짜 최선을 다해서 제대로 부딪치고 나면, 자신의 실력에 냉정한 평가가 가능해질 거예요.”
지영의 말에 양지원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운동선수다.
유망주긴 하지만, 아직은 국내 정상급은 아닌.
반대로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지만, 지영은 이미 제법 전적이 화려하다. 사실 강지영, 강한결에 대해 그녀는 지난 주말 이후 종일 검색해서 찾아봤다.
그리고 당연히 지영의 시합 영상도 봤다.
그녀가 봤을 땐, 눈앞에 두 사람이 진짜 천재였다. 그리고 벌써 국내에서는 아마 최정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 즉, 종목은 달라도 자신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영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솔직히 정말 기꺼웠다.
천재이면서 자만하지 않고, 종목은 다르지만 조언을 진지하게 듣는 이런 자세는 정말 좋다.
‘성공하겠다, 넌.’
확신할 수 없지만, 확신해서도 안 되지만, 이상하게 그런 확신이 든다.
“정말 제 동생 잘 될까요?”
“네, 잘될 거예요. 현실 때문에 그동안 넘지 못했던 벽도, 아마 넘을 수 있을 겁니다.”
“와아…….”
동생 얘기에 또 표정이 환하게 핀다.
그 모습에 지영은 실소를 흘리고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온통 동생 생각뿐이다. 그래서 절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저 모습 때문에 담긴 거니까.’
그리고 급할 것도 없다.
천천히, 천천히 지분을 차지해 가면 되니까.
양지원이 한결 편해진 얼굴이 되었을 때, 피자가 나왔다. 양지원, 양유진 자매의 얼굴을 합친 것보다 피자 한 판이 훨씬 컸다. 고소한 치즈 냄새도 그렇고, 그냥 정말 맛있어 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아!”
살짝 말꼬리가 흐려지기도 하네?
모든 게 신선해서 지영은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식사는 다행히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먹는 종종 양지원이 강한결에 이런저런 질문도 던져줘서 분위기는 더 나쁘지 않았다. 1시간쯤 걸려 저녁을 먹고, 가게 앞에서 인사를 하고 지영은 강한결과 함께 청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종일 움직여서 몸은 피곤했지만,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있음을 확인한 지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기분 좋아 보인다?”
“지는.”
“하하.”
지영의 말처럼, 강한결의 얼굴에도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둘에게, 오늘은 정말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그리고 그건, 두 자매도 마찬가지였다.
* * *
웬만해서는 절대 타지 않는 택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탄 두 사람이 떠나고, 양지원은 언니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피자 맛있었다, 그치?”
자신의 팔에 매달린 채 걷던 언니의 말에 양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피자는 오랜만에 먹었다. 비시즌이라 체중 관리를 그렇게 하지 않는 지금이지만, 피자는 비싸서 먹기 힘든 메뉴였다. 요즘 저렴하게도 잘 나오지만 그래도 그 돈이면…… 계란이 한 판이다. 계란 한 판이면 한 달을 요리 여기저기에 쓸 수 있었다. 오늘 먹은 피자로 식재료를 샀으면 적어도 2주는 식탁이 풍성했을 거고.
식사를 책임지는 그녀의 입장에서 피자는 먹고 싶어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먹은 피자는 진짜 맛있었다.
“응, 나는 시카고 피자? 그게 맛있던데. 언니는?”
“나도나도! 와 치즈가 막! 우와! 나 그런 거 TV에서만 봤는데!”
“내가 나중에 배워서 해줄게.”
“진짜?”
“응. 나 지금도 그냥 피자는 할 수 있어. 집에 오븐기가 없어서 그렇지.”
“하나 살까?”
“응?”
언니가 이런 말을?
돈을 관리하는 건 자신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살 때는 언제나 허락을 받고 산다. 가계부도 꼼꼼하게 작성해서, 언니와 함께 월말에 항상 뭐가 과소비고, 뭐는 잘 절약했고를 항상 의논한다.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한지 등을 정한다. 그럴 때 단 한 번도 이런 ‘사치품’은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언니가, 오븐기를 사자고 한다고?
그에 놀란 양지원이 언니를 바라보자, 배시시 웃는 언니.
“지원이가 해주는 피자 먹고 싶어서 그래.”
“진짜?”
“응. 그리고 지원아.”
“응?”
“언니 이제 편의점 알바는 그만할까?”
“……언니 뭐야. 내가 그렇게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했으면서,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그냥…….”
꼼지락꼼지락.
당황하거나, 뭔가 말하기 부끄러운 말을 들었을 때나, 해야 될 때 나오는 이 반응. 양지원의 눈이 대번에 가늘어졌다.
“언니. 지영 오빠가 뭐라고 했지?”
“그, 그게…… 그냥 좀…….”
“……뭐라고 했는데? 거짓말하면 내일 밥에 물 타서 줄 거야.”
“흐잉, 그냥…… 지원이 너가 운동 열심히 하려면, 내가 너무 힘들면 안 된다면서…….”
“…….”
“그럼 내 걱정 때문에 제대로 컨디션 유지하기 힘들 거라고 했어…….”
양지원은 언니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감탄했다.
‘와, 그렇게 안 생겼는데…….’
그녀가 본 강지영은 선뜻 다가가기 힘든 외모였다.
자신에게 오늘 번호를 따 간 강한결 씨와는 다르게, 강지영은 잘생겼지만 뭔가 친해지기 힘든 외모였다.
날이 선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고, 부드러운 것 같은데도 뭔가 어려운. 그런 외모였다.
말투도 그랬다.
보통 자기 또래 애들과는 다른 정중한 말투였다. 묵직함은 없지만, 부드러운 저음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보니까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다고?’
역시 사람은 겉모습이 다가 아니구나……. 양지원은 바로 반성했다.
황금세대.
혹은.
연희고 아이돌.
그녀는 강한결, 강지영이 그렇게 불린다는 걸 조사해서 알고 있었다. 조사라고 하기도 뭐한 게 인터넷에 이름을 치면 바로 연관검색어로 뜨는 게 황금세대와 연희고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을 다 꼼꼼히 확인했다.
유도라는 종목에서 벌써 천재성을 입증한 하나 위 오빠들.
강한결은 그 무리의 대장이고, 강지영은 그중에서도 아웃사이더처럼 독특한 아우라를 가졌다. 사진이나, 그가 나왔던 예능들을 보면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단, 그녀를 더 신기하게 만든 건 그들의 행보였다.
일진? 괴롭힘 같은 건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전부 없애버렸고, 학교의 평화를 가져온 장본인들이었다.
공익광고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 것도 그들이 진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어떻게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데, 그럴 수가 있지?’
양지원은 학교에서 그냥 평범했다.
교유관계도, 성적도 평범했다. 그래서 황금세대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음의 벽이 살짝 허물어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황금세대의 멤버 중 한 사람이, 언니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사람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언니보다는 눈치가 몇 배나 빠른 그녀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신기하고, 겁도 났다.
특히 강지영이 자신을 생각해서, 그리고 언니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고, 언니가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은 진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원아?”
“어? 어어. 음, 나는 찬성이야. 이제…… 언니 그렇게 고생 안 했으면 좋겠어.”
“흐음, 그럴까? 에잇! 그럼 이번 달까지만 할게!”
“진짜?”
“응! 진짜! 우리 지원이가 마음 불편하면 안 되니까!”
“언니…….”
세상 밝게 웃는 언니를 보면서, 그녀는 갑자기 강지영이 불쌍해졌다.
‘고생 꽤 하겠어요, 오빠…….’
우리 언니, 너무 그런 쪽으로는 눈치가 하나도 없거든요.
하루밖에 안 됐지만 사람 됨됨이를 봤다고나 할까?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라 벽이 느껴질 것 같았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라서, 그녀는 마음을 꽉 부여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언니부터 씻으러 들어가고, 양지원은 옷을 잘 정리해서 옷걸이에 걸어놨다. 그러자 띠링 하고 울리는 핸드폰.
매시지를 봤더니 그 강한결 씨였다.
[잘 들어갔어요?]
잠깐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답하는 양지원.
[네. 지금 막 도착했어요.]
[다행이네요. 음,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요?]
[네. 다음에는, 저도 오빠라고 불러주세요.]
[……생각해 보고요.]
[하하, 그걸로 만족할게요. 일단은. 아, 그리고 다음 주에는 둘이 봐요.]
다음 주?
둘이?
그 메시지에 양지원의 몸이 절로 옷장으로 돌았고, 걸려 있는 옷을 매의 눈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체육복, 경기 의상, 교복, 운동복, 청바지 몇 벌, 셔츠 몇 벌, 티셔츠 몇 개가 걸려 있는 단출한 옷장에 그녀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아직 답장도 안 했으면서, 그녀는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죄송합니다, 운동해야 돼요. 하고 답장을 보냈다.
쉽지 않은 건, 이쪽도 매한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