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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94화 (9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94화

94화. 날지 못하는 신데렐라(4)

역린이라는 게 있다.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고, 요즘에는 약점이나 건드리면 안 되는 걸 설명할 때 주로 쓰는 단어다.

지영에게도 역린이 있다.

가족과 친구들이다.

청주로 돌아가는 중,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 중인 강한결도 역린이고, 숙소에 있을 이성진이나 임효중, 황석도 역린이다. 하지만 이들보다도 더욱 지영에의 크게 흔들 수 있는 건 당연히 어머니였다.

세상천지에 피를 나눈 유일한 가족.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가친척도 없어서 이제는 유일한 혈육은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진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가장 소중한 사람. 그게 어머니였다.

양유진은 그런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보는 순간 사람의 감정을. 아니, 트라우마가 있는 지영의 심장을 거칠게 뛰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치겠네…….’

이런 감정은 정말 낯설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인데, 이게 자신도 어떤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연민에서 시작된 감정인지, 이상형에 가까워 생긴 호감인지, 미팅을 끝내고 헤어진 뒤 청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지영은 이 부분을 고민해야 했다.

‘만약 전자라면…….’

접근하지 않는 게 맞다.

그녀의 연락처는 있었다. 어디서 솟은 용기인지 모르겠는데 헤어지기 전, 양지원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겠다고 한 뒤에 양유진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때 양유진 빼고, 다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지만 지영은 뻔뻔한 표정으로 연락처를 받았다.

그러니 연락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이 연민에서 출발한 감정이라면?

그건 양유진에게는 대단한 실례가 될 수도 있었다.

양유진은 안 그래도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다.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인생을 갈아 넣고 있는…….’

얼마 전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물론 어머니는 괜찮다. 김지영 여사님까지 또 출동해 지영이 합법적으로 번 돈이라고 보증까지 서주신 뒤 수익금의 일부를 안겨드려, 이제는 돈 걱정은 없으셨다. 그래서 그저 아들이 운동을 건강하게,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니 어머니는 안심이다. 하지만 양유진은 아니다.

후원을 받지만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정도는 그녀가 전부 해결해야 했다. 그게 끝일까? 아니다. 사는 곳, 대학, 몇 년 뒤의 미래까지 생각하면 양유진은 한숨만 겨우 돌릴 수 있을 거다. 애초에 부모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걸 그녀 혼자서 이룩해야 했다.

양지원이 성공하지 못하면, 그 사정은 여전히 나아지지 못할 것이다. 운동은 그만큼, 양날의 검처럼 위험하다. 끝이 정말 극단적인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양지원과 양유진의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연민으로 다가서서, 나중에 감정을 확인하고 한 발 빠지게 된다면 그것만큼 쓰레기 짓도 없다.

후우.

‘어렵다…….’

자신의 감정이 확인이 안 되니까, 마음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살짝 내렸다. 그러자 운전하시던 여사님이 백미러로 힐끔 지영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쳤는데 눈 끝이 초승달처럼 휘신다.

왜 저렇게 웃으시는지 알아서, 지영은 부끄러움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휴, 우리 아들들, 엄마는 오늘 기분이 너무 좋다.”

“…….”

끙 소리가 나올 뻔했다.

힐끔 보니, 강한결도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고개를 슬그머니 창가로 돌렸다. 솔직히 자신도 자신인데, 지영은 강한결도 정말 의외였다. 인간이 너무 완벽해서 마치 만인의 연인 같은 느낌을 주는 게 강한결이었다.

어떤 상징적인 존재라서, 누구 하나가 소유할 수 없는 그런 존재.

그게 강한결이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황금세대나 강한결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이성에 호기심이 생겼다.

‘아니지, 보니까 호기심 정도를 넘어선 것 같던데…….’

이건 진짜 사건이었다.

아직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외모와 느낌만으로도 그를 움직이게 만든 양지원. 괜히 그녀가 대단하게 생각됐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했던 지영은 속으로 피식 실소를 흘렸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 것처럼, 강한결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돼서였다.

그냥 서로 가만히 있는 건, 어차피 서로 똑같아서였다.

“아들들.”

“네.”

“…네.”

지영은 조금 늦게 대답했다.

“엄마는 찬성. 애들 괜찮더라.”

“……끙.”

“……네.”

지영은 그냥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강한결이 놀라서 돌아봤고, 여사님도 살짝 놀라셨는지 차가 잠깐 휘청거렸다. 그러곤 속도를 천천히 줄이시는 여사님.

“지영이 진심이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지영은 솔직히 대답했다.

지영의 짧은 인맥으로, 이런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특히 연애 쪽은 많이 추려봐야…… 3명이다. 어머니, 이선영, 그리고 눈앞에 김지영 여사님. 어머니한테는 이상하게 창피하고, 기자에게 기삿거리를 떠먹여 주고 싶진 않았다. 그럼 앞에 두 사람을 제외하고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앞에 있으니 이 복잡한 감정을 꺼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감정을 빨리 제대로 정의 내리고 싶었다.

고민은 길게 해도, 정할 때는 확실히 정하는 게 지영의 스타일이었다. 얼른 정리해야 접든지, 아니면 밀고 나가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뭐가 잘 모르겠는데?”

차 속도가 더 줄어들었고, 한쪽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운전하면서 고민을 들어주는 건 위험하니까 아주 올바른 주행 방법이었다. 그렇게 다시 주행이 안정적으로 변하자 지영은 그 질문에 대답했다.

“연민에서 이런 감정이 든 건지, 아니면 이상형이라서 이런 감정이 든 건지, 어느 쪽인지를 모르겠어요.”

지영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여사님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다시 휘었다.

마치 지영의 고민이 너무 기꺼운 듯 보이셨다.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좀 예상과는 달랐다.

“성진이나 효중이, 그리고 석이는 그나마 그 나이 또래로 보일 때가 있는데 너랑 내 아들은 왜 이렇게 철들이 빨리 들었나 몰라.”

“…….”

그건 제가 애들보다 10년을 더 살아서 그래요.

라는 답이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긴 했지만 당연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지영아. 그런 고민을 하는 게 맞아. 너도 그렇고, 내 아들도 그렇고 일단 보통 애들과는 너무 다르잖아.”

“……네.”

지영은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 부분은 황금세대 전체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그걸 일찍 깨달아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워 엇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속했다. 어떻게 이런 애들이 있을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철저하게 관리했다. 빛나는 재능, 그 재능이 꽃피울 수 있게 노력하되, 그 재능으로 건방진 놈이 되는 것만큼은 절대로 없도록 단속했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한다는 게 특별한 거다.

그러니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지금은 몰라도, 아니, 지금도 그래. 너희들은 특별해서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가지게 돼. 좀 더 과하게 부풀려서 얘기하면, 너희가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부터 연애까지 전부 시선에 걸린다는 얘기야. 그리고 특히 지영이 넌 더 그래. 이미 넌 거의 반은 연예인이야.”

“…….”

반은 연예인이라.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며칠 뒤에 전에 찍은 광고가 방송을 타기 시작할 거다.

그때 현장에 있던 이선영은 지영과 친구들이 광고를 찍는 장면을 담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진짜 타고났다.

‘맞아. 내가 타고난 연예인이라고 했지.’

본인이 연예인처럼 행동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그래서 결국 그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발을 들이는. 그러면서 그런 케이스의 연예인 몇 명의 이름을 알려줬다.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연예인 중 몇이, 일반인이었지만 우연한 방송 출연으로 이후 연예인으로 아예 진로를 바꾼 뒤 크게 성공했으니까.

그녀는 지영이 그들과 똑같지는 않아도, 흐름이 비슷하다고 했다.

“네가 그럼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도 거의 비슷하게 시선을 받을 거야. 그리고 너 때문에 그 사람이 누군지 더욱 파고들겠지. 그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어.”

“…….”

역시 시야가 넓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기에, 보는 것 또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가만히 경청했다. 김지영 여사님은 그런 지영에게 푸근히 웃어주며 말을 이어갔다.

“갑자기 마음이 간다고 막 밀어붙였다가, 나중에 헤어지면 너도 힘들겠지만 그 사람도 힘들어. 게다가 보니까 마음이 그렇게 강한 아이는 아닌 것 같고. 혹시라도 네가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다가왔는지 알게 될 수도 있고. 그럼 정말 상처받을 거야. 그러니 지영이 네가 지금 하는 고민은 옳아. 이 엄마가 볼 때는 말이야.”

“…….”

“하지만 그 답은 엄마가 내려줄 수 없어. 왜인지는 알겠지?”

“네.”

얘기를 들으면서 지영은 어느 정도 복잡한 마음이 신기하게도 큰 조언이 없었는데도 정리가 되어가는 걸 느꼈다.

‘요는,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이 가는가, 아니면 포기하고 싶은가. 이거겠지.’

어느 쪽으로 마음이 움직일까?

지영은 그런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

방치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쪽으로든 마음이 움직일 게 분명해서였다.

여사님의 말은 고민은 정답이었지만, 그 고민에 대한 답을 함부로 정해줄 수 없단 뜻이셨다. 심지어 이건 인연에 관련된 문제다. 그러니 여사님도 신중하게 답을 하셨다.

더욱이.

‘선택도, 책임도 내가 져야 하는 거니까.’

대화는 거기서 끝.

지영은 눈을 감았다.

신기했다.

잠깐 본 얼굴인데, 감은 눈 속에서 아른거렸다.

* * *

언니, 밥 먹어!

언니! 밥!

“우웅…….”

하나밖에 없는 방 밖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양유진은 겨우 눈을 떴다. 피곤했다. 저녁 3시에 집에 들어와서 지금이 7시. 고작 4시간밖에 잠을 못 자서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그래도 몸이 일어나야 한다는 걸 기억해서, 거의 무의식중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거실엔 고소한 냄새가 났다.

동생이 제일 잘하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냄새였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좁은 주방 바닥에 앉자, 동생이 밥상을 가져왔다.

“으이구…….”

“우웅……. 차가.”

물에 젖은 손수건이 볼에 닿자 몸에 힘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벅벅, 동생은 그런 자신의 움츠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부터 꼼꼼히 닦아줬다. 세수를 하면 되지만, 몸도 눈도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특히 새벽엔. 그래서 밥을 먹기 전에 항상 동생이 이렇게 닦아줬다.

고마운 동생이다.

“다 됐다. 언니 얼른 먹어. 버스 올 시간 됐어.”

“웅…….”

차가운 손수건이 얼굴을 훑고 가자 그래도 좀 정신이 들었다.

“와…….”

정신이 드니까 생겨난 시야에 잘 차려진 밥상이 보였다.

애호박과 두부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 요즘은 비싸서 자주 못 해 먹는 계란말이, 콩나물무침과 오징어채볶음, 진수성찬이다. 밥도 그녀가 좋아하는 흰 쌀밥이다.

밥에, 찌개 한 숟갈.

맛있다.

동생은 정말 요리를 잘하니까.

“맛있지?”

“웅……. 우음.”

오물오물.

밥이 들어가자 세포가 톡톡! 터지는 것처럼 살아나 눈이 완전히 떠졌다. 그러곤 전투적으로, 야무지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놔야 일할 때 딴생각이 안 들고,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

띠링.

동생도 그제야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리모컨으로 오래된 TV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수려하게 생긴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다. 연예인인데, 왜 낯이 익지? TV가 아니라 다른 데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계란말이를 오물거리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음?”

“왜?”

“저…… 어디서 본 거 같아서.”

“……강지영이잖아.”

“응?”

“강지영. 저번 주말에 본 사람.”

“주말에? 주말에는 후원자님…… 아. 아아! 연예인이셨어?”

“……아니, 운동선수야.”

“응? TV 나오잖아.”

“근데 운동선수라고. 유도하셔. 되게 잘하고.”

“아 진짜?”

“응.”

“와, 신기하다……. 연예인도 만나봤네, 나.”

“……운동선수라니까.”

“헤헤.”

동생의 작은 타박에 그녀는 그냥 웃었다.

연예인이 학교폭력은 나쁜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같이 왔던 연예인이랑, 다른 잘생긴 연예인들이랑 학교폭력은 나쁜 거고, 하면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언젠가 쉬는 날 동생이랑 봤던 영화에서 고백하던 것처럼, 스케치북에 학교폭력이 나쁜 이유를 하나씩 넘겨 가며 보여줬다.

연예인인데 운동하는 사람.

아니, 운동하면서 연예인도 하는 건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솔직한 감상평을 말했다.

“멋있다…….”

“……누가, 저 사람이?”

“웅.”

“난 별로야.”

“어? 왜?”

별로라고 해서 고개를 돌려 동생을 바라봤다.

동생은 밥을 쿡쿡 찌르면서 불만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언니 바라보는 게 되게 별로였어.”

“응? 난 되게 따뜻했는뎅.”

“엥? 뭐야. 언니 눈 어떻게 된 거 아냐? 되게 게슴츠레했어!”

“아닌뎅…….”

“맞아!”

“웅, 그래…….”

“그리고 언니 그 말투 좀…….”

“응? 에이, 혀가 짧은 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에휴.”

“밥 먹자, 밥. 너도 학교 가야지?”

“칫.”

귀여운 동생이다.

고마운 동생이고.

동생이 싫어하는 거 같으니까, 얼른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아침부터 아는 연예인을 봐서 그런가, 아니면 연예인을 만났다는 사실이 괜히 좋아서 그런 걸까, 기분이 좋았다. 들뜬 기분으로 시간이 흘렀고, 공장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아침이에요!”

“오, 유진이 왔어? 오늘도 안전!”

“네! 오늘도 안전!”

다치면 안 되니까, 기계가 돌기 시작하자 그녀는 짝! 소리가 나게 뺨을 치고는 일과를 시작했다. 한참 열심히 하다 보니까 점심시간이다. 반장 언니랑 같이 TV를 보면서 밥을 먹는데, 또 아침에 봤던 연예인이 나왔다.

“아휴, 잘생겼네, 잘생겼어. 어때, 유진아. 진짜 잘생기지 않았니?”

“네? 아뇨. 잘생긴 건 모르겠는데 눈빛은 따뜻하고, 되게 고마운 사람이에요.”

“응? 고맙다니, 왜?”

“헤헤, 그런 게 있어요.”

“음, 뭐지 얘가?”

누나!

하고 누가 앞에 앉았다.

“이따가 끝나고 뭐 해요?”

“나? 알바 가는데.”

“하루 쉬면 안 돼요?”

“응, 안 돼.”

이런 건 단호하게 거절하랬다.

그래서 바로 거절했더니 바로 풀이 죽었다.

“정근아. 우리 유진이 눈 높다. 저기 저 애 보이지? 저 정도는 되고 와.”

“누구요? 아, 강지영?”

“저 청년 이름이 강지영이야?”

“네. 올 초에 왜 되게 유명했잖아요? 아, 작년이었나?”

“왜? 뭐 때문에?”

“아, 그게…… 잠깐만요.”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특별한 사정 때문에 학교 대신 공장에 나오는 남정근이 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어, 그 연예인이다, 하면서 보는데 유도선수라고 했던 게 맞는지, 도복을 입고 시합을 하는 영상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피를 흘렸다.

입술이 너무 찢어져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입고 있던 도복은 완전히 엉망이 됐다. 하지만 그런데도 시합을 포기하지 않고 입에 솜을 물고는 시합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막 엎치락뒤치락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고 막!

부웅! 부웅! 하늘을 날고!

“아!”

넘어가는 줄 알아서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는데, 다행히 앞으로 넘어졌다.

아, 유도는 뒤로 넘기는 건가? 앞으로도 넘기면 되는 건가? 모르겠다. 유도는 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걸 보니 진 건 아닌 것 같다.

아!

안 돼!

하면서 10분을 넘게 봤다.

와, 심장이 너무 아프다.

동생이 시합할 때처럼, 심장이 저릿거렸고, 호흡이 가빠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확! 상대를 잡아채 다리로 확 차서 던졌다. 그걸로 승부가 난 건지 일어나서 짧게 포효까지 했다. 그렇게 끝난 영상.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어머어머, 얘. 유도가 이렇게 박진감 넘치던 거였니?”

“재밌죠? 이게 작년 연말인가? 그때 올라와서 장난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막 예능에도 나오고. 이 선수가 아까 TV에 나왔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상형이라니, 누나 눈 너무 높은 거 아니에요?”

“응? 이상형이라고 한 적 없는데?”

“네?”

“그냥 고마운 사람이야.”

“네? 왜 고마운데요?”

“있어.”

말해주지 않을 거다.

고마운 사람, 나만 알고 있을 거니까.

연예인한테 막 도움받았다고, 그런 거 함부로 얘기하고 다니면 안 된다고 동생이 그랬으니까. 말하지 않을 거다.

“아휴, 점심시간 다 갔네. 슬슬 가자.”

“네, 언니.”

휴식은 끝!

다시 일할 시간이다.

오후도 열심히 일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갔다.

저녁은 바쁘다.

할 일이 너무 많다.

자정을 넘어서까지 정말 정신없이 일하고 났더니 퇴근 1시간 전에야 좀 시간이 났다. 빈 매대를 채우고, 노곤한 몸으로 엎어져 있다가 아직 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얼른 TV를 켰다.

또 나왔다.

이번엔 광고가 아니라, 예능이었다.

방송에 나온 우리 후원자.

정말 고마운 사람.

졸음이 달아났다.

한참 예능을 보는데, 사장님이 나오셨다.

못 본 건 내일 봐야지.

“안녕히 계세요!”

“그래, 고생했다! 차 조심! 사람 조심하고!”

“네!”

열심히, 부지런히 걸어 집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두 시.

당연히 동생은 자고 있다. 물을 작게 틀어서 땀에 찌든 몸을 수건으로 닦고, 옷을 갈아입고 동생의 옆에 누웠다.

그러자 동생이 끌어안아 줬다.

“언니…….”

“우웅…….”

“고생했어…….”

“우웅…….”

“…….”

다시 동생이 잠들었다.

꽉 찬 하루.

그녀의 하루는 바쁘고, 보람차다.

그래서 오후 7시쯤, 모르는 번호로 온 메시지도 읽지 않았다.

아니, 읽지 못했다.

그리고 꿈을 꿨다.

꿈은 그녀의 꿈이 나왔다.

누구한테도 손 벌리지 않고, 동생 뒷바라지하는 거.

행복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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