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90화
90화. 전국 청소년 유도 선수권(6)
지영의 다음 순번이었던 황석과 강한결도 무난히 결승에 올랐다.
황금세대 전원 결승 진출.
여기까지는 관계자들도 전부 예상했던 결과였다. 즉, 이변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한체대로 인해 소란스러웠던 오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결승전만 남겨둔 지금은 좀 과장되게 설명하면 전운이 감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한 걸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 생각으로 경기장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메이저 대회 출전권이 걸려 있는 대회다 보니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결승전은 60㎏부터 시작이었다.
이번에도, 작년 아시아 선수권 출전권을 두고 피 터지게 싸웠던 선수들이 체급을 올렸는데도 둘 다 결승전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박 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물론 진짜 싸운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경기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역시, 4분 안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연장전. 양측이 지도를 2개씩 받았을 때는 이미 몇 분이 더 지나 10분이 넘은 상태였다. 서로를 알아도 너무 잘 알아서, 어떤 기술을 걸어도 귀신같이 눈치채고 빠져나가서 더더욱 승부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도는 심판이 최초의 하지메를 외치고 나면, 어느 한쪽에게 승자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끝나지 않는 경기다.
반드시 승부가 나는 종목.
그래서 결국 승부가 났다.
저번 대회에서는 계성고의 선수가 이겼는데, 오늘은 덕원고 선수가 이겼다. 계성고 선수의 업어치기 후 일어나는 걸 그대로 모두걸기로 쓸어버려 한판을 따냈다.
“으아아아!”
승자의 특권인 포효를 내지른 덕원고 선수.
그런 덕원고 선수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지영도 그 선수의 승리에 박수를 보냈다. 저렇게 혼을 쏟아 넣어 승리를 쟁취한 선수는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었다.
60이 끝나고, 66차례가 됐다.
이성진의 차례다.
“이성진 파이팅!”
“…….”
지영의 응원에 고개를 돌린 이성진이 엄지를 척 들어 올리고는 시합장에 들어갔다. 이제는 기분이 완전히 풀어져서 본래의 컨디션을 찾은 이성진은 시합을 오래 끌지 않았다. 고작 30초. 자신의 업어치기를 철저하게 방어하려고 중심을 한껏 뒤로 뺀 상대에게 밭다리를 찍어, 그대로 한판을 따냈다.
“아자!”
주먹을 치켜올리며 짧게 포효하는 이성진.
그런 이성진을 향해 지영은 엄지를 내밀었다. 용케도 그걸 본 이성진이 씩 웃은 뒤 인사를 하고 나와 지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해라! 지면 가만 안 둠!”
“응.”
짝!
이성진과 하이파이브를 한 지영은 숨을 후우! 짧게 내쉰 다음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결승전은 심판이 한 게임만 보아서, 다시 심판이 들어올 때까지 대기 시간이 좀 있었다. 건너편에 선 이우진이 지영을 차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우진.
천재는 천재다.
분명 충분히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같은 체급에 지영이 있다. 회귀 전에는 작년 체전 전에 지영이 사고로 강제 은퇴를 당하면서 천재성을 꽃피우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지영을 만나 2전 2패다.
물론 두 번 다 외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시합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패배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체전 결승 때는 굴욕적인 시합을 치르기까지 했다. 유도선수로서, 정말 겪고 싶지 않았던 일을 당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이제 해결됐고, 마음껏 경기를 치를 수 있는 판이 마련됐다.
심판이 들어왔다.
인사하고, 입장. 다시 인사하고, 한 발자국 앞으로.
하지메!
시합이 시작됐다.
악!
기합을 넣은 이우진이 신중한 표정으로 접근했다. 겨울 간 확실히 성장한 느낌이 났다. 이전에 선발전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욱 실력이 늘어난 게, 신기하게도 딱 서로 깃을 잡는 순간 느껴졌다.
‘근력을 올렸구나.’
묵직해졌다.
이전의 이우진은 좀 가벼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우진은 잡는 순간 확실히 힘이 느껴졌다. 성장은 역시 지영 혼자만 한 게 아니었다. 이우진도 겨울 간 철저하게 자신의 피지컬을 끌어올렸고, 청소년 선발전에서 겨우 절반으로 이겼던 구혁을 한판으로 돌리고 결승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우진이 그렇게 성장했다면, 지영 또한 마찬가지로 성장했다.
지영이 벌인 일이 제법 많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훈련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벌인 일이 많아서, 운동을 대충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더욱 철저하게 훈련에 임했다.
스포츠계의 명언.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 배신하지 않지.’
지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만약 겨울 간 훈련을 대충했다면 지금 이우진과 잡았을 때 좀 당황했을 거다. 하지만 지영은 정말 성실히 훈련에 임했다. 그래서 이우진이 성장한 만큼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성장했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영은 이번 게임을 즐길 생각은 없었다.
그런 마음을 품은 이유는 이우진 때문이었다. 자신과 잡았을 때마다 외압 때문에 제대로 시합을 못 했던 이우진이다. 그러니, 그는 지영이 이번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준결승은 그런 상대가 아니라서 즐겼지만, 결승은 아니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할 각오로 들어선 지영이었다.
그래서 첫 공격은 지영이 먼저였다.
툭!
어깨를 털어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툭, 모두걸기를 쳤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이우진은 자세를 곧장 바로잡아 모두걸기를 그대로 받아넘겼고, 뒤이어 역공으로 나왔다.
그대로 툭! 가슴 깃을 끌어올려 그대로 서서 업어치기를 걸어오는 이우진.
서서 업어치기.
유도에서는 정말 잘 나오지 않는 기술이다.
서서 업어치기를 수만, 수십만 번을 연습하긴 해도 시합 때는 쓰기 극히 힘든 기술이다. 왜? 상대가 체중을 밑으로 쭉 깔거나, 옆으로 슬쩍 돌아 나오기만 해도 기술이 파훼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걸었다.
그대로 상체만 빙글 돌려서 말아업어치기의 형태로. 이대로 끌려가 이우진의 어깨에 상체가 걸리는 순간, 그대로 한판이다. 하지만 지영은 오히려 골반을 집어넣고 막고, 그대로 허리를 껴안아 그대로 챘다.
허리 껴치기와 허리 채기의 중간쯤에 있는 기술이 그대로 들어갔다.
홰액!
콰앙!
너무 거하게 돌아갔다.
마지막에 도복을 놓쳐서 그대로 내던지지 못했고, 이우진의 몸이 360도 가까이 돌면서 한판을 주기는 애매하게 떨어졌다.
와자리!
역시 한판은 아니고 절반 판정이 났다.
지영은 도복을 고쳐 입고, 이우진을 응시했다. 놀란 기색이 역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마치 그렇게 될 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절반을 빼앗겼는데도 눈빛은 담담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투지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지영은 그게 고맙고 멋있어 보여서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인내력으로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상대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어서였다. 대신, 웃음 대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게 상처 입은 선수에 대한 예의가 될 테니까.’
하지메!
다시 시작.
이우진은 역시나 빠르게 접근했다.
어차피 절반을 뺏긴 순간부터 뒤는 없다는 걸 그는 알았다. 그래서 방어는 거의 포기하고, 공격 일변도로 나왔다. 지영이 카운터의 대가라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도 그는 잡고, 털고, 업고를 반복했다.
이우진 정도의 실력자가 보통 이렇게 나오면 웬만한 선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영은 차분하게 공격을 받았고, 끌고 안 뒤축 모션을 역으로 받아서 모두걸기를 때렸다.
쿵!
이우진은 제대로 떨어지기 직전 그 짧은 틈에 그래도 몸을 비트는 데 성공해 앞으로 떨어졌다.
제대로 노리고, 제대로 카운터를 쳤다.
안 뒤축 되치기가 제대로 들어갔지만 이우진이 자력으로 겨우 한판을 모면한 거였다.
경기 시간 1분, 절반 한 개.
거기에 되치기에 한판을 모면한 상황이 한 번.
이걸로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사실 극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우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지를 더욱 불태웠다. 지영은 그래서 방심하지 않았다. 가슴 깃을 먼저 주되, 소매 깃은 절대로 잡혀주지 않았다.
소매 깃을 주면 특기인 업어치기가 들어올 거고, 그건 확실히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철저하게 가슴, 어깨, 혹은 등 깃만을 내준 채 시합을 풀어나갔다. 이렇게 되면 답답한 건 역시 이우진이다. 그는 시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흐르자 역시 조급한 기색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시합은 어느새 3분을 넘었다.
1분 만에 절반 하나를 빼앗겼지만 더 점수가 나오지는 않은 상태.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승자는 지영이다.
남은 시간 1분이면, 그래도 승부를 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1초를 남기고 이기고 있다가 지는 게임이 나오는 게 또 유도이니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업어치기.
지영이 소매를 안 주니 걸 수 있는 업어치기는 역시 말아업어치기뿐이다. 하지만 지영은 상체를 바닥에 쫙 깔아서 이우진의 기술을 방어했다. 말아업어치기는 어설프게 버티면 그대로 기술 이름처럼 말려서 홱 뒤집힌다. 그러니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게 제대로 된 방어였다. 그렇게 기술이 막히자 이우진은 후! 답답함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맛테.
다시 하지메.
지영은 이번엔 선공으로 나섰다. 기술을 한 번 받은 상태에서 또 수비적으로 나오면 지도가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가슴 깃을 먼저 선점한 지영이 털면서 모두걸기를 툭 쳤고, 움찔하는 이우진에게 갑자기 확 덮치는 것처럼 달려들었다.
이우진은 갑자기 지영이 덮치듯이 잡기 싸움을 걸어오자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짧은 움찔거림이 이우진에게는 더없이 큰 악재로 작용했다. 한 번에 달려들어 목을 휘감으며 밭다리, 이미 지영의 체중에 밀려서 중심이 뒤로 물러난 이우진은 뒤늦게 버티려고 힘을 줬지만 이미 지영의 오른발은 바닥을 찍고, 뒷발이 따라오며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꼼짝없이, 제대로 걸린 밭다리였다.
콰앙!
잇폰!
매트가 터지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가 나고, 승자가 결정됐다.
승자는, 이변 없이 지영이었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숨을 몰아쉬는 이우진.
지영은 그런 이우진을 잠시 내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표정이 홀가분해 보여서 가능한 행동이었다. 이우진은 그렇게 손을 내민 지영을 잠시 보다가 씩 웃고는 맞잡고 일어났다. 최선을 다했지만, 졌다.
그게 이우진에게 더없이 후련한 감정을 선사한 것 같았다.
각자의 자리에 서서 도복을 고쳐 입자 심판이 승자 선언을 했다. 지영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경기장을 벗어났다. 이우진이 후련한 것처럼 지영도 사실 속이 후련했다. 첫 경기도 경기지만, 두 번째 경기는 화가 난 이우진이 결승에서 아예 시합을 포기해 버렸다. 그래서 더없이 찝찝한 전적이었는데, 이걸로 말끔히 해소됐다.
그래서 후련한 얼굴로 나오자 임대성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는 뜻이다.
지영은 대기장 쪽으로 가면서 시합에 들어가는 임효중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잘해라.”
“당연하지. 우승 축하해.”
“응, 너도 미리 축하한다.”
그렇게 지나쳐서 대기장으로 움직인 지영은 권지호가 가져다준 음료를 마시고 수건을 받아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음료수를 한 모금. 그 순간 쿠웅!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와아! 환호성이 들렸다. 그 소리에 일어나 경기장을 봤더니 임효중이 도복을 고치고 있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한판.
지영은 그에 피식 웃고 말았다.
잠깐 숨돌리는 사이 경기가 끝나버렸다.
임효중이 나오고 다시 강한결이 들어가고, 황석이 들어가고. 마지막 헤비급까지.
이변은 없었고, 황금세대는 이제 세계로 가는 길목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