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88화
88화. 전국 청소년 유도 선수권(4)
선배의 권위?
이 바닥, 스포츠 세계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다. 나이 많다고, 선배라고 권위적으로 나오는 건 말이다. 그리고 이런 권위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냈다. 옛날에는 진짜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 비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종종 그런 못난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 나온다.
지금이 그랬다.
선배라고, 자기들이 나이가 많다고.
‘그걸 우리가 신경이라도 쓸 것 같았어?’
팡!
허벅다리를 차서 상대, 한체대 장상수를 허공에 띄웠다가 도로 내려놓은 뒤 툭 끌어 바닥에 엎어지게 만든 지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지영이 정말 화가 나는 건, 하필이면 건드려도 이성진을 건드렸다는 거다.
‘차라리 나를 건드리지!’
이성진의 얘기는 근 한 달을 갔다.
이제는 잠잠해졌지만 한창 시끄럽게 언론에서 다룬 게 거의 한 달이란 뜻이다. 그 시간 동안 이성진의 얼굴과 이름은 매일같이 이곳저곳에서 다뤄졌다. 그럼 그 당시 이성진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 한 달간 이성진은 웃지 않았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하고, 힘들었었다. 자신에 대한 얘기가 3월에 들어서서 거의 가라앉고 나서야 이성진은 조금씩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예전처럼 정말 밝지만은 않았다.
억지웃음.
그래서 안 그래도 마음이 정말 쓰였었다.
이성진은, 어떤 식으로든 친부와 친모를 떠올리는 걸 싫어했다. 만약 기술이 발전해 특정 기억만 지우는 시술이 가능하다면 이성진은 거기에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반드시 받고 말 거다. 그만큼, 정말로 싫어했다.
그래서 이제 좀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오늘 또 건드린 거다.
아주 더럽고, 저급한 방법으로.
이게 지영은 너무 화가 났다.
툭, 툭툭.
목깃을 먼저 선점한 지영은 이번에도 하체를 공략했다. 그러다가 허벅다리 모션. 움찔하고 자세를 낮추는 장상수. 지영은 그대로 앞으로 당겨 굳히기 포지션을 만들었다. 그다음 목을 한번 털어 손을 집어넣자, 장상수는 졸려 가긴 싫었는지 몸을 발라당 뒤집었다.
그건 마치 강아지가 주인에게 재롱떨려고 배를 까뒤집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지영은 피식 웃어주곤 그대로 허리를 세웠다. 그게 또 쪽팔렸는지 얼굴을 붉히는 장상수. 사실 애초에 조를 마음도 없었다.
유도에서 상대에게 굴욕을 선사하는 방법은 사실 많지 않았다.
크게 잡아야 두세 개? 그 정도가 전부였다. 첫 번째가 조르기로 기절시키는 거다. 조르기로 지면, 확실히 굴욕감이 든다. 두 번째는 반칙패고, 세 번째는…… 넘기지 않는 거다.
점수를 충분히 딸 수 있으면서도, 그냥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
사실 이게 세 번째가 가장 굴욕적이었다.
솔직히 아까 지영이 허벅다리를 찼을 때도 조금만 기울이기를 했으면 그냥 한판이었다. 목깃도, 소매 깃도 제대로 잡고 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기울이기 조금, 상체를 조금만 숙이기만 했어도 한판을 딸 수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러지 않았다.
지영은 이번 판, 확실하게 복수를 해줄 생각이었다.
어떻게?
넘기지 않고, 가지고 노는 거로.
시도!
하지메!
심판의 외침에 지도를 받은 장상수가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애초에 실력 면에서도 지영에게 도달할 수 없는 선수였다. 작년에 겨우 3등 하나로, 운 좋게 한체대라는 좋은 대학에 간 선수다.
피지컬, 기술, 시합 운용 등, 그 무엇하나 지영에게 상대가 안 되니 장상수는 반칙을 쓰기 시작했다. 도복을 교묘하게 말아 쥐는 것. 심판을 등지고 있으니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거기에 갑자기 앞으로 크게 한 발을 내딛더니, 모두걸기를 쓸어왔다.
그런데 이건 모두걸기가 아니라 그냥 로우킥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도복을 뜯어내고 바로 물러났다.
부웅!
그러자 목표를 잃은 발이 허공을 가리고 몸이 빙글 돌았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뒤로 물러난 지영이 빤히 바라보자, 장상수는 얼굴을 붉히고 다시 덤벼들었다. 지영은 긴 팔로 상대의 전진을 막고, 오히려 유리한 포지션을 잡았다. 그리고 돌아 나오며 다시 발목받치기. 발가락 끝에 툭 걸린 장상수의 정강이 바로 아래 발목. 지영은 갑작스러운 기술에 이번에도 장상수의 몸은 착실하게 중심이 흔들렸다.
하지만 넘어가면 안 되니까.
지영은 아예 도복을 놨다. 그러자 마치 비보이가 바닥을 짚고 몸을 회전시키는 것처럼 빙글 도는 장상수. 그의 얼굴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유도는 보통, 실력 차이가 나면 진짜 극단적으로 그게 눈으로 보이는 종목이었다.
특히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시합을 봐도 실력 차이가 명백하면 아주 높은 확률로 승자를 맞출 수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정말이지, 극단적으로 실력 차이가 보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지영은 상대를 넘길 의사가 아예 없는 것처럼 시합을 풀어나갔다. 잡고, 끌고, 중심을 무너뜨리고, 차올렸다가 놔주고. 다시 끌고 다니고. 지영은 이걸 반복했다.
관중석은 조용했다.
보통 각 팀에서 응원 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지영의 냉정하다 못해 잔인한 시합 플레이에 다들 말문을 잃은 탓이었다.
하지만 지영을 욕하진 않았다.
이미 시합장에 있는 모두가, 한체대 선수가 이성진을 저열한 단어들로 모욕했고, 그것 때문에 잠깐 경기가 멈춰졌으며, 그 선수는 반칙패를 당했고, 연희고가 그 모욕 때문에 화가 가득 났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물론 지영의 이런 경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유도는 예시예종인데, 지영의 행동은 거기서 확실히 벗어나 있었다. 약자를 조롱하는 플레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체육관은 그냥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지영의 저게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들, 속 시원하다 생각하는 선수들로 나뉘어 경기를 지켜봤다.
지영은 장상수를 그렇게 굴리면서, 시합장의 이러한 분위기를 읽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출 것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다.
“흐어, 흐어, 흐어…….”
진이 빠져 잠시 숨을 헐떡이는 장상수. 심판은 그런 장상수에게 세 번째 지도를 줬다. 이걸로 반칙패. 지영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좀 전 그쳐에 지도가 들어갔다. 그런데 다시 지도를 줬다는 건 심판도 흘러가는 상황을 깨닫고, 그냥 시합을 끝내버리겠다는 생각에 반칙패를 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에 나온 한숨이다.
물론 심판에게 따질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한 번 더 끌고 다녔으면 분명 지도가 들어갔을 테니까. 길어야 30초 뒤에 들어갈 지도가 30초 빨리 들어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승자 선언, 인사. 지영은 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터덜터덜, 멘탈이 터진 장상수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나왔고, 놀랍게도…….
짜악!
짝!
한체대 감독이 직접 와서 장상수의 싸대기를 그 자리서 올려붙이기 시작했다.
“개X끼야! 네가 그러고도 유도인이야! 이런 개자식이 어디서 아직도 그딴 머저리 같은 짓을 해! 어!”
“감독님! 감독님 참으세요!”
“놔! 이 쌍놈의 새끼를 그냥!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처먹어서! 어!”
“감독님! 안 됩니다! 아이고 감독님!”
“이 새끼들 이거! 김 코치! 학교 가서 똑바로 교육해!”
“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발요! 애들 손대면 큰일 나요!”
화끈하시다.
다행히 한체대 감독님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신 분이셨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성진이 받은 모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옷을 챙겨입은 지영은 대기석 쪽으로 향했다.
분위기는 여전히 싸했다.
평소라면 하이파이브를 하고, 수고했다. 잘했다. 등의 격려가 오갔을 건데 지금은 그저 조용했다. 그래서 괜히 후배들만 긴장한 채 숨죽이고 있지만 분위기는 풀릴 줄을 몰랐다. 지영의 다음 경기는 황석과 강한결이다.
황석이 먼저 들어가고, 마지막 시드인 강한결이 맨 마지막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시합이 시작되기 전, 한체대 감독님이 찾아왔다. 지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 쉬고 있던 임대성이 한체대 감독을 보고는 곧장 달려왔다.
“한체대 박종한일세.”
“연희고 코치 임대성입니다.”
“후우, 우리 애들이 진짜, 너무 큰 잘못을 했어. 정말 미안하네.”
“…….”
임대성 코치는 그 말에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그리고 지영도 솔직히 좀 놀라웠다. 박종한 감독은 딱 봐도 50이 넘었다. 그런데 직접 찾아와서 이렇게 사과를 한다? 지영의 기준으로는 이건 솔직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 임대성 코치는 한창 후배고, 그 아래인 지영은 까마득히 어린 후배들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자신의 학생이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다.
그에 지영은 속으로 탄식했다.
‘왜 이런 감독님 아래에 그런 쓰레기들이…….’
아니, 아직 1학년이지 뭐.
그래도 지영은 안타까웠다.
참된 지도자로 보이는 한체대 감독님이 저렇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물론, 그렇다고 한체대 선수들을 봐줄 생각은 아직까진 없었다.
박종한 감독은 이어서, 이성진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제 고작 고등학생인 이성진에게. 이 역시…… 놀라웠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기본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해야 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같은 과정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이런 스포츠계에서는 더더욱.
왜?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작 저런 어린 새끼한테 고개를 숙여야 돼?’
‘아니, 뭐! 시합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냥 넘어가! 그럼 그냥 잊히는 거야 다!’
이렇게 문제가 흘러가는 경우도 많았다.
이 모든 게 자존심 문제다. 자존심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후배에게 고개를 숙이지 못하게 강제로 막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박종한 감독은 달랐다.
“성진 학생. 미안하네. 감독인 내 책임일세.”
“……아니에요.”
“내가 따끔하게 처벌할 테니까, 부디 이번 한 번은 이해해 주게.”
“……네.”
그래서 지금까지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던 표정을 유지하던 이성진도 감독의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 모습을 보며 지영은…… 대단하다, 진짜 멋있다.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잘잘못을 인정하고, 관리자로서 책임을 지는 저 모습은 진짜…… 놀랍다 못해 아름답게 보였다.
멋있다.
진심으로.
다른 걸 떠나서 박종한 감독님은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다음에 서울에 오면 한번 찾아오게나.”
“네, 감독님.”
“오늘 일, 다시 한번 미안하네. 성진 학생도 미안해.”
“……네.”
박종한 감독님은 그렇게 책임을 지고 가셨고, 임대성은 하아,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진아, 더 할 거냐?”
“……아니요. 저렇게까지 하시는데 더 하면 제가 나쁜 놈 되잖아요.”
“그렇지. 그러면 우리가 진짜 나쁜 놈 되는 거지. 그리고 아까 시합장에서 잘 참았다. 진짜 잘했어. 너 내려쳤으면 바로 반칙패였다.”
“……네.”
확실히 그랬을 거다.
만약 이성진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때렸으면, 무조건 이성진도 함께 반칙패였다. 한체대 놈이 먼저 한 짓거리가 있으니 징계는 면하겠지만, 그러면 결국 대회는 물 건너가는 거다. 그래서 그 부분은 정말 대견했다.
“자, 그럼 이제 시합에 집중하자. 한체대 애들 굴리지 말고. 알았지?”
“……네.”
이성진이 늦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영도 뒤늦게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런 지영을 임대성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보더니, 피식 웃고는 어깨를 두드리곤 다시 심판석으로 돌아갔다.
지영은 일어나서 아직 시합에 들어가지 않은 황석, 강한결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러자 굳어 있던 표정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독해졌던 마음이 풀린 거다.
이걸로, 장상수처럼 굴욕을 당하는 선수는 이제 나오지 않을 거다.
“성진이는? 기분 좀 풀렸어?”
“응. 표정 많이 풀렸어.”
“후우, 다행이네. 알았어. 그보다 한체대 감독님 멋있으시네.”
“그러니까. 나도 진짜 놀랐다.”
강한결의 말에 지영도 아주 격하게 동의했다.
저런 감독님이 있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저런 모습도 닮고 싶었다. 잘못했으면 순순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 저런 모습도 꼭 가지고 싶었다.
“석이 시작하겠네. 시합 잘하고.”
“응.”
지영은 황석이 시합장에 들어서자 대화를 마무리하고 옆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사이드를 볼 것도 없이 황석도 무난하게 한판, 강한결도 한판으로 올라갔다. 이어진 시합에서도 황금세대는 승승장구했고, 전원 4강에 무난히 안착했다.
4강.
청소년 세계선수권 출전 티켓이, 손에 잡힐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