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86화 (8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86화

86화. 전국 청소년 유도 선수권(2)

제26회 전국 청소년 유도선수권 대회.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선발전을 겸한 대회다.

시합장은 충남 천안이었다. 다행히 청주에서 얼마 걸리지 않아서 이동 거리는 짧았다. 예비 계체와 본 계체를 끝내고, 저녁을 먹은 뒤 하루를 푹 쉰 뒤에 시합장에 들어섰다.

오전 8시.

시합장은 이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청소년 선수권 대회는 대한민국에서 유도를 하는 모든 선수들이 출전하는 시합이다. 그래서 당연히 선수가 많았고, 선수가 많으면 당연히 시합이 늦게 끝난다. 사실 이미 시합은 시작됐다. 어제 여자부 선수들 시합이 있었고, 오늘은 남자부가 전부 시합을 치른다.

이렇게 총 2일.

시즌 첫 대회라 그런지 선수들의 눈빛이 매우 살아 있었다.

게다가 선발전이라서, 기세는 정말 만만치 않았다.

“휘유.”

시합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달려드는 시선들.

연희고 황금세대.

유도 선수들은 보통 그렇게 지영과 친구들을 부른다.

반대로 일반인들은 연희고 아이돌로 부르고. 아이돌일 때는 그냥 저런 시선은 덤덤하게 받아넘기는 수준이지만, 황금세대일 때는 다르다.

유도는 기세다.

기세에서 밀리면 경기력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대회부터는 후배들이 있다.

이런 시선에 기가 죽으면, 황금세대를 얕보는 선수가 반드시 나올 거다. 그리고 누구 하나가 얕보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얕보기 시작할 거고, 그렇게 되면 괜한 시비가 붙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예전에, 지영의 기준으로는 10년도 훨씬 더 전에 그런 일이 있기도 했다.

‘중학교 때였나?’

후배들이 화장실에서 시비가 붙었다.

다분히 황금세대를 저격하는 시비였다. 마침 주먹질로 변하기 전에 한 심판 선생님이 화장실로 들어와 무마됐고, 그 학교를 단체전에서 만나 탈탈 털어버렸지만 어쨌든, 얕보이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시선이 몰려들자, 역시 후배들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어깨 펴.”

지영은 후배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며 그렇게 말한 뒤 가장 앞으로 나섰다.

강지영.

이성진과 더불어 매체에 가장 많이 나왔고, 그래서 황금세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선수. 지영이 앞으로 나오자 시선이 마치 뭔 적을 만난 것처럼 지영에게 몰려들었다. 이건 지영의 기세를, 나아가 황금세대 전체의 기세를 꺾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걸 아는 이상, 그 의도대로 흘러가게 둘 수는 없었다.

가방을 스탠드에 놓고, 도복을 꺼내 매트로 올라가는 지영. 그런 지영의 뒤를 황금세대들이 뒤따랐다.

“자 준비운동 하자.”

강한결의 말에 조영우가 넵! 하고 힘차게 대답한 뒤 구호를 붙여 준비운동을 주도했다. 짧고, 빠르게 몸을 푼 뒤 곧장 2인 1조로 잡아 부딪치기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지영은 같은 체급의 권지호와 잡았다.

그런데, 권지호의 익히기가 영 부자연스러웠다.

‘긴장했네.’

긴장으로 몸이 굳어서 기술이 영 어색하다.

그런데 그럴 만도 했다.

황금세대가 진을 치고 있는 연희고의 신입생 신분. 그러니 시선도 만만치 않게 받았다. 하지만 권지호의 작년 성적은 전국소체 2위, 그리고 청주에서 열리는 청풍기 1위다. 중1 때 유도를 시작해서, 중3 때 정상에 섰으니 사실 권지호도 재능이 상당하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고등부는 또 다르다.

겨울 간 제법 성장했지만, 아직은 고등부 유도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적의라고 봐도 좋은 시선 때문에 얘가 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지영은 후배의 고등학교 첫 대회가 긴장으로 망가지게 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지호야.”

“네? 네, 형.”

“형이 냉정하게 봤을 때, 네가 여기 있는 선수 절반은 넘게 이겨. 헤비급 다 포함해도.”

“아…….”

농담이 아니다.

권지호는 잘하는 선수다.

만약 지영이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고등부 전체 신입생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유망주였다. 실제로 조영우, 주성호, 권지호 3인방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충북체고와 청석고가 엄청 노력한 거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충북권을 넘어서 서울 보성, 의정부 경민도 접촉했었다.

그만큼 실력 있는 친구였다.

거기에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와 요즘 연습 때 잡으면서 폼을 확 끌어올렸다. 그러니 실력으로 봤을 땐 적어도 어디 가서 꿀릴 레벨이 아니었다.

다만, 담이 좀 약했다.

“고등학교 첫 대회인데 긴장으로 망치고 싶은 건 아니지?”

“네? 네에.”

“그리고 너 이우진이랑 해보고 싶다며. 이우진이랑 붙으려면 못해도 준결까지 가야 되는데, 그렇게 긴장해서는 준결은커녕 8강도 못 간다.”

“네.”

이우진.

권지호는 지영을 목표로 잡지 않았다.

현재 73에서 강지영이란 천재를 잡을 수 있는 선수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경민의 이우진이 유일했다.

그래서 권지호는 지영에게 도달하기 위해, 이우진을 징검다리로 삼았다.

이는 확실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같은 팀 내에 있는 지영은 아주 훌륭한 도달점이 될 수 있지만, 너무 높은 벽은 도전 자체가 위험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한 단계 아래의 벽을 먼저 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지영이 보기에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다행히 몇 마디 말로 권지호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이어서 부드럽고, 빠르게 익히기를 했다. 업어치기, 허리후리기, 허벅다리, 밭다리 등을 20회씩 각개 별로 2세트씩 하자 몸에서 열기가 후끈 피어올랐다. 시간은 8시 30분. 이제 많아 봐야 10분에서 15분 내외다.

버피 테스트와 팔벌려뛰기, 밀어 올리기 등으로 마지막 예열을 마치자마자 임대성 코치가 심판 회의에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오늘 임대성 코치는 심판을 들어가서, 심판 복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

“몸 제대로 풀었어?”

네!

작지만, 단단한 대답.

그에 만족한 임대성이 고개를 끄덕이곤 강한결과 지영을 향해 말했다.

“오늘 사이드는 지영이랑 한결이가 본다. 자, 이거.”

밖에서 사이드를 보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고, 미리 신청도 해야 했다. 그래서 임대성은 지영과 강한결을 코치로 등록했다. 목에 거는 카드를 받아 든 지영은 그걸 이리저리 살폈다. 감회가 조금 새로웠다.

회귀 전엔 지금으로부터 4년 뒤, 이걸 받아서 도 대회부터 시작해 전국대회를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 겸 코치. 그때와는 달랐지만 옛 향수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영은 그걸 목에 걸고, 다시 코치를 바라봤다.

“22년 첫 대회다. 그러니 기분 좋게 출발해야지? 그러려면, 이번 대회가 아주 중요해. 오늘 보니까 너희들 잡으려고 다들 이를 갈고 나온 것 같더라. 하지만 너희가 누구냐. 유도판에서는 황금세대로 불리는 천재들이다. 그러니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줘. 방심하지 말고, 긴장하지 말고. 실력만 내보이면 이변은 없다. 신입생도 마찬가지다. 져도 괜찮아. 하지만 실력은 전부 내보이고 지는 걸 목표로 삼아. 최선을 다했는데도 졌다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다들 알았지?”

네!

임대성의 말에 다들 크게 대답했다.

정상의 자리는 이미 작년에 탈환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계속해서 도전자들의 거칠고 저돌적인 도전을 받아야 하는 상황. 방심과 자만은 도전자들에게 일격을 허용하게 할 거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패배.

지영의 사전에, 패배란 없는 단어였다.

“자, 그럼 멋지게 방어전을 해보자. 다들 모여!”

연희, 파이팅!

크게 기합을 넣은 뒤에야 매트에서 내려온 지영은 챙겨 온 패딩을 입고, 양말도 신었다. 그리고 장갑도 꼈다. 손발이 차면 몸이 경직되게 마련이니 이 정도 준비는 기본이었다. 임대성은 다시 심판석 쪽으로 이동했고, 강한결도 지영처럼 무장을 한 뒤 팀원들에게 말했다.

“코치님이 다 말했으니 됐고, 첫 게임 성호지?”

“네!”

주성호.

새로 들어온 –60㎏ 체급 후배.

황금세대는 –60이 없기 때문에 성호는 들어오자마자 주전이었다.

“내가 성호 맡을게. 다음 게임이…… 지호네. 지호는 지영이가 보고.”

“알았어.”

6개의 경기장.

여기서 한 경기장에서 55부터 쭉 돈다.

선수 인원이 적은 –55와 +100이 한 경기장에서, 그리고 바로 위인 –60과 –100이 한 경기장에서 돈다. 그리고 66, 73, 81, 90이 각자 따로 한 경기장에서 돌고. 이러면 속도가 매우 빠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사이드를 봐야 하는 지영과 강한결에게 부담이 되겠지만, 가장 냉정하게 시합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게 둘이라, 임대성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지영도 불만은 없었다.

밖에서 시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실제 실력을 올리는 안목을 키울 수 있으니까.

성장에 끝없이 목마른 지영에게는 이것도 좋은 훈련이었다.

9시가 됐다.

안내 멘트 뒤에 경기장이 비워졌다.

그리고 잠시 뒤, 대회가 시작됐다.

* * *

체육관을 뒤덮기 시작하는 후끈한 열기.

지영은 이 열기가 좋았다.

축구나 야구처럼 리그전이 아닌 단판제가 주는 긴장감과 투지가, 지영에겐 역으로 더없이 기분 좋은 고양감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었다.

9시 정각.

시합이 시작됐다.

첫 게임에 들어가는 선수들의 비장한 표정과 두 판 뒤 시합에 들어가는 권지호의 표정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지영은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호와 붙을 선수를 바라봤다.

표정은 비슷했다.

충남체고 1학년

둘 다 신입생이고, 상대 전적은 2승 무패로 지호가 앞선다. 하지만 두 게임 다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실력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수다.

힐끔.

그런데 그 선수는 상대인 지호를 바라보지 않고, 지영을 도전적으로 바라봤다.

지영은 그런 상대 선수를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름이, 임지형?”

“네.”

“눈빛 좋네. 그런데 지형아. 그렇게 쳐다보는 건 좀 실례다.”

“……네.”

“그리고 시합에 집중해. 나한테 신경 쓸 겨를 있어? 지호한테 전적도 밀리는데.”

“…….”

지영의 도발에 임지형의 눈빛이 확 변했다.

다분히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이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임지형은 최선을 다할 거고, 권지호는 좀 더 어렵게 시합해야 할 거다. 하지만 지영이 노린 바가 바로 그 부분이다.

‘강하게 크자, 지호야.’

지영은 연희고 신입생 애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학교도 아니고, 연희고다.

연희고의 작년 성적은 전승까진 아니지만, 2패가 전부였다.

작년 초 국대선발전에서 강한결의 1패, 그리고 작년 말 아시안 청소년 선수권에서 이성진의 1패. 이게 전부였다.

이 두 번의 패배를 제외하면 전부 승리했다.

연희고는 그런 엄청난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친구들은 많이 긴장했다. 연희고의 연승행진들이, 자신 때문에 깨지는 건 아닌지. 그런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야 했다. 더 강한 상대와 붙어도, 부끄럽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했다.

이런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지영의 생각이었다.

“맞아. 넌 아직 나도 못 이겨놓고 어딜 감히 지영이 형한테 비비냐?”

“야, 씨. 오늘은 이길겨!”

“저번에도 그 말 했던 거 같은데?”

“이긴다고. 두고 봐라…….”

다행히 권지호는 잘 이겨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둘은 아는 사이인지, 격의 없이 투덕거렸다. 하지만 2번의 경기가 순식간에 지나고, 곧 서로의 적으로 돌변했다.

쿵!

강한결이 사이드를 보는 경기장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권지호와 같은 1학년 후배인 주성호가, 멋지게 업어치기 한판승을 거뒀다.

“가자.”

“네.”

툭툭. 어깨를 다독여 준 지영은 권지호와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어, 지영이 안녕?”

“어, 누나 안녕하세요.”

“오늘 사이드도 봐?”

“네. 코치님이 심판으로 들어가셔서요. 누난 어제 시합 잘하셨어요?”

“1등 했지. 흐흐!”

“오, 축하합니다.”

오늘 경기 진행을 맡은 충남체고 여자 유도부의 선배 정수인이다.

같이 홍콩 대회에 갔다 오면서, 제법 안면을 터서 친해진 선배기도 했다.

“지영이도 시합 잘해!”

“네.”

대화를 끝낸 지영은 코치석에 앉았다.

곧 권지호의 시합이 시작됐다.

지호는 전형적인 허벅다리 선수였다.

그래서 시합 스타일은 지영보단, 임효중과 비슷했다.

지영만큼 크진 않지만 긴 팔다리로 잡기 싸움에 중점을 두고, 잘 잡으면 그대로 허리기술을 차는. 전형적인 틀어잡기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상대인 임지형은 역으로 전형적인 업어치기 선수였다.

정석을 따라가는 만큼, 누가 잘하고 누가 별로라 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경우.

모든 스포츠계의 통용되는 격언대로 게임이 흘러간다.

‘잘하는 놈이 이기는 거지.’

그래.

시합은 잘하는 놈이 이긴다.

이건 보편적인 상식이다.

외부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끼어들지 않는 이상은, 어느 한쪽이 기량을 제대로 못 발휘하는 게 아닌 이상은, 잘하는 놈이 이기게 되어 있었다. 둘 다 베스트 컨디션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권지호는 긴장이 풀렸고, 베스트 컨디션이었다.

임지형도 컨디션은 좋아 보이지만, 둘 중에서 잘하는 놈은 권지호였다.

파앙!

시원하게 들어간 허벅다리가, 임지형을 하늘로 날리는 걸 보고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후배들의 출발이 좋다.

그러니 이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때였다. 그리고 이 시합에서 우승해,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나갈 생각이었다.

지영은 슬슬, 세계가 보고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