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84화
84화. 고백의 결과(2)
연희고 아이돌 출연 회차는 1회분이었다.
본래는 2부를 기획했다고 했지만, 당시 이성진의 고백으로 2부 기획은 1부로 줄여졌다. 2부로 나누면 이성진의 고백한 뒤가 잘려버리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분위기로는, 다음 2화를 좋은 분위기로 끌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반은영 PD는 1화로 줄이는 대신, 방송 시간을 확 늘려 편성했다. 보통 길게 하면 100분도 하긴 하지만, 이번엔 거의 2시간이 넘게 편성됐다.
딱 봐도 의도가 보였지만 이는 어차피 이성진이 바란 일.
지영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방송을 챙겨봤다.
어머니는 지영이 나올 때마다 어머, 어머, 흐뭇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지만 2시간이 넘어 이성진의 고백이 시작됐을 때부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셨다.
이성진의 고백.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 고백은,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성진이 고개를 숙이며 도와달라고 했을 때부터는.
“어머, 어떡하니. 우리 성진이 힘들어서 어떡하니…….”
어머니는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셨다.
정확히는 어느 정도 집안에 문제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모르셨던 거다.
“정말 성진이 저렇게 컸니?”
어머니가 물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지영을 돌아보며 물었고, 지영은 그냥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휴, 어쩌니, 성진이 진짜.”
“이번에 잘 해결해야죠.”
“엄마가 하나도 도움이 못 되어줘서 어쩌지? 아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미 준비 많이 해놨어요. 저기 나오는 장세리 선배님도 도와주신다고 했고요.”
“어머, 저 사람이?”
“네. 증거도 많이 준비해 놔서, 아마 잘 해결해 줄 것 같아요.”
거기다가 장세리가 끝이 아니다.
증거는 이선영에게도 갔다.
며칠 전 그녀는 삐치긴 했지만, 그래도 기자로서의 사명감으로 이성진의 일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증거를 확보하고, 오랜만에 기자로 돌아가 청주에서 지금 취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강한결이 준 정보. 그리고 그녀가 따로 확보한 증거들.
이 방송이 나가고 만약 이성진의 부모가 못된 마음을 먹을 시, 이선영은 둘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서 움직일 거다. 그리고 장세리는 법률적인 부분을 책임져 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접근금지. 뭐 이런 거 말이다.
물론 그 정도로 이성진의 친부나 친모가 떨어져 나갈 일은 없겠지만 당장은 2년만 일단 버텨서 사회적으로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호적제도가 폐지되어서 완전한 독립은 불가능해도, 성인으로 홀로서기를 할 발판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거다.
사실 이번 고백도 그를 위한 발판이었다.
라고 전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영은 이 방송을 보면서 생각이 변했다.
‘이건 경고야. 대국민 앞에서 보내는 경고.’
그땐 그냥 사고를 쳤구나 싶었는데 지금 저 고백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저건 자신을 좀 도와달라는 것보다는 어째 자신의 친부모에게 보내는 경고 같았다. 만약 다시 한번 찾아와 행패를 부릴 시에는, 나는 참지 않는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 같았다.
‘좋지 않은데…….’
이성진은 마치 언젠가 자신이 사고를 치게 될 순간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는 참지 않겠다는 것도 확실하게 암시했다.
‘너 설마 이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방송은 끝났다.
이성진의 고백이 지난 뒤에, 장세리가 스태프까지 전부 불러 모아 판을 벌이고, 불편한 분위기를 환기시킨 뒤에 다음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주변을 돌고, 그걸로 방송은 끝났다.
“저 들어가 볼게요.”
“응? 그래그래.”
방으로 들어온 지영은 노트북을 켜고 반응을 살폈다. 당장 어마어마한 반응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게시판, 그리고 프로그램 제목을 치면 아래에 뜨는 SNS를 통해 이미 실시간으로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곤 있었다.
지영은 이성진과 함께 있을 임효중을 빼고, 황석, 강한결 방을 하나 만들었다.
그러곤 바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얘기했다.
그러자 강한결의 대답이 거의 바로 들려왔다.
-내가 봐도 그래. 성진이 어째 사고 칠 느낌이다.
-나도 동감. 근데 성진이 문제,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판단한 것 같아.
뒤이어 나온 황석의 말도 동감했다. 이건 잘못 판단한 게 맞았다. 이성진의 고백이 문제가 아니라, 이성진의 문제를 너무 방치한 게 문제였다. 항상 웃지만 저 방송을 보니까 알 수 있었다.
‘너무 곪아 터졌어…….’
이 부분이 문제였다.
곪아서 고름이 생기면, 그 환부를 찢어서 고름을 빼줘야 한다. 안 그러면 고름이 살을 녹이고 뼈도 녹이고, 종내에는 생명조차 녹인다. 마음의 상처 또한 고름에 비교할 수 있었다. 이성진의 마음은, 이미 농양이 고이고 고여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역으로 녹이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괜찮아지겠지?
물론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모든 질병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든, 약물 치유든 어느 쪽으로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치료 불가능한 병이라면?’
시간은 독이다.
절대로 약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암.
암은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를 키우고, 결국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이성진에게 시간은 지금,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석아, 성진이 지금 효중이네 있지?
-응. 아까 같이 있다가 효중이네로 갔어.
-음, 알겠어. 혹시 모르니까 잘 지켜보자.
지영은 청주 돌아가면 자신도 신경 쓰겠다고 답을 보냈다.
그렇게 짧은 톡을 끝냈을 때, 기사가 올라왔다. 이선영이 올린 기사였다. 그리고 그 기사를 통해 이성진의 사건은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밤사이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목요일 저녁.
지영은 숙소에 도착했다.
보통 외박이나 휴가가 끝나면 저녁 8시쯤에 숙소에 들어가지만, 지영은 오후 1시쯤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임대성, 장세리 선배님, 그리고 김지영 여사님과 임효중, 황석의 부모님, 한은정까지 전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과 교무주임 선생님도 와 계셨다.
모두 방송을 보셨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래도 두 분 다 이성진을 나무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영이 연희고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선생님들이었다.
진짜, 진심으로 학생을 생각한다는 게 느껴지는 선생님들.
자신의 권위, 안녕, 승진보다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선생님들.
꾸벅, 인사를 한 지영은 강한결의 옆에 앉았다.
지영이 앉자 장세리가 눈인사를 한 다음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을 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일단 제가 회사를 통해 지원하고, 선수를 보호하는 법적인 조치는 전부 알아보고 있어요. 앞으로 성진이가 혼자 자립해서 훌륭한 선수가 될 때까지 제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케어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걱정 않으셔도 될 거예요.”
학생, 그리고 선수 보호.
장세리는 그 책임을 지겠다고 확실하게 못 박았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확실히 지는 편이었고, 그게 너무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장세리 선수. 그럼 학교 측에서는 다른 지원을 하겠습니다. 일단 학교 내로 찾아오는 건 경비업체를 고용해 막도록 하겠습니다.”
“업체를 고용하면 비용이 제법 많이 들 텐데요?”
“어차피 더 늘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워낙 유명해져서 학교로 찾아오는 기자, 방송국 관계자, 그리고 학생들을 막는 데 기존 경비체제로는 벅찼었거든요. 그리고 이사장님도 이번 방송 보시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전부 하라고 하셨으니까 비용 문제는 괜찮을 겁니다.”
역시 연희 재단…….
학생의 학업을 위해서라면 돈이 몇 얼마가 더 들어가도 상관하지 않는 저 마인드. 저건 정말 멋있었다.
그런 교무주임 선생님의 말에 장세리의 얼굴에 정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한국을 다 뒤져봐도 연희 재단만큼 대단한 곳이 없다더니, 허명이 아니었네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지원해 주셔서.”
“하하, 뭘요. 참, 그러면 성진이는 장세리 선수의 회사에 소속되는 건가요?”
교무주임 선생님의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차원에서 지원이 나가려면, 역시 어쩔 수 없어요. 연희 재단에서 어떤 걱정을 하는지는 저도 알아요. 학업, 그리고 운동. 걱정 마세요. 저희는 이성진이라는 소속 선수의 학업과 운동을 방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만약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니라면, 오직 그 두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멋있다, 정말.
“그렇다면 계약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성진이가 아직 미성년자라 계약 자체가 불가능할 텐데.”
맞다.
법률 대리인.
이성진은 부모의 동의 없이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 계약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세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장 계약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심적으로, 구두 계약 정도만 있겠네요. 정식 계약은 성진이가 법률 대리인 없이 계약이 가능할 때 할 생각입니다. 성진이도 여기에는 찬성했고요.”
“오…….”
그 말에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장세리는 그러니까 지금, 계약도 없이 이성진을 그냥 지원하겠다는 소리였다. 단, 성인이 된 이후 계약하자는 조건을 달고서.
‘최고의 조건이야…….’
이성진은 스타성이 있다.
방송은 화요일에 나갔고, 오늘은 목요일이다. 고작 이틀 만에 이성진이란 어린 선수의 삶은 낱낱이 조명이 됐고, 9시 공중파 뉴스에도 나왔다. 이틀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불린 사람은 단연 이성진이었다.
단순히 운동만 잘하는 선수도 아니고,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그와 친구들은 왕따를 없앨 정도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성진이 뜰 수밖에 없었던 건…… 역시나 외모다.
이성진의 외모는 곱상하다.
아마, 황금세대 중에서 가장 곱상할 거다. 지영은 ‘애매’한 느낌이고, 나머지는 전부 남자다운데 이성진만 곱상하다. 그런 곱상한 외모는 당연히 여성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꽃미남 스타일이 한물갔다고 하더라도, 이런 스토리가 겹쳐지면 그건 호감을 품고, 팬이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이성진이 방송에서 한 고백은 지영이 보기엔 담담해 보이지만 짙은 분노와 경고를 담은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을 시청한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이상하게도 비에 젖은 불쌍한 소년처럼 보였는지 방송 이후 어마어마한 팬덤이 쌓였다.
여성들의 모성, 혹은 보호 본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성진이 지금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
신의와 의리, 그리고 배려.
장세리와 함께하는 건 지영이 보기에도 최고였다.
“다행입니다. 그날 이후 학교도 성진이 미래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 정도면 이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하.”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선생님들도 부디 성진이 잘 부탁드려요.”
“제가 해야 할 말이군요. 저희야말로 우리 성진이 잘 부탁드립니다.”
훈훈하다.
이성진은 그 사이에서 차분한 눈빛으로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이성진의 눈빛에 미안함이 가득 담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문제가 생긴 것에 대한 미안함일 게 분명했고, 지영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 건 자신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한 자신.
그러니 반성해야 하는 사람도 자신이었다.
그러던 그때, 이선영의 전화가 왔다. 지영은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네, 누나.”
-지영아.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겠는데?
“네? 왜요?”
-이성진 친아빠 이승곤 씨, 지금 구치소에 있어.
“네?”
교도소?
이건 또 생각 못 했는데?
‘아, 그래서 이틀간 조용했구나.’
-도박, 사기에 폭력, 음주 뺑소니로. 치인 사람은 안타깝게도 돌아가셨고. 아직 형량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딱 봐도 당분간은 못 나오겠어. 그리고 공교롭게도, 가경동에서 출발해 연희고 쪽으로 차를 몰고 갔어. 음, 만약 그대로 갔으면 연희고로 갔을 가능성이 커. 앞에 큰 사거리서 사고가 났으니까.
“…….”
-친모 쪽은 찾아보고는 있는데 거기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일단 그쪽은 시간 나는 대로 계속 추적해 볼게.
“아…….”
이래서 조용했구나.
지영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음주운전이, 오히려 잘됐다, 하는 마음이 들기는 또 처음이었다.
‘이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건가…….’
그렇게 증오하는 음주운전인데. 하아.
하지만 또 그것 때문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게 떠오르자 좋아할 일은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성진의 일이 잘 풀렸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누군가가 죽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는 건 참으로 못된 마음이다.
“고마워요, 누나.”
-흥, 됐거든?
아직도 삐쳐 있다.
하긴, 그렇게 부탁할 때는 언제고 하루 만에 마음 바뀌었다고 매정하게 자리를 빼버렸으니, 서운할 만도 했다. 하지만 지영은 이선영이라는 기자와의 인연을 이렇게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누나.”
-응?
“JB코인. 적당히 넣어두세요.”
-……그거였구나? 네가 투자하려고 했던 게.
“네. 근데 무조건 이달 말일에는 빠져야 합니다. 3월 넘어가면 절대 안 돼요.”
-작전이네? 뭐, 일단 알았어. 그런데 의뢰비치고는 너무 센데?
“그럼 일단 충청권에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 좀 알아봐 주세요.”
-휘유. 일단 알겠어. 아, 전화 온다. 또 통화하자?
“네. 다시 한번 고마워요, 누나.”
-흥, 됐거든?
뚝.
전화가 끊기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참, 솔직한 사람이다. 이래서 이선영이라는 인간이 참 좋다.
“일단 그럼 친부 쪽은 일단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된 거고…….”
이선영의 말대로라면, 성진이의 친부는 이성진을 찾아오다가 잘못됐을 확률이 높았다. 방송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는 봉합됐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남은 건 이제 친모다.
친부와 비교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인간 여자.
하지만 이상하게도 친모는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아예 증발한 것처럼 사람 찾는데 이골이 난 이선영도 이성진의 친모를 찾을 수 없었고, 시간이 흘러 첫 대회로 정한 제26회 전국 청소년 유도선수권 대회가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