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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80화 (8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80화

80화. 야나기가우라(8)

훈련만큼 중요한 게 있다면?

말해 뭐할까.

휴식이다.

아무리 성장기라고 하지만 고된 훈련으로 지친 심신을 제대로 쉬게 해주지 않으면 부상 확률은 정말 극단적으로 올라간다. 실제로 아직 고등학생인데도 만성부상에 시달리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연희고 코치 임대성이 이 학교로 온 뒤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장기 선수들의 보호였다. 할 때는 하되, 쉴 때는 확실히 쉬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주말에는 웬만큼 큰일이 있지 않은 이상은 무조건 휴식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토요일 오전 훈련까지만 하고, 일요일 저녁까지 휴식이었다. 비봉과 우석, 원광, 야나기는 훈련을 야간까지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외박은 아니지만 밖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토요일 오후, 지영은 약속했던 대로 이선영을 만났다.

요즘 바빴는지 학교 근처에서 만난 이선영이 볼이 홀쭉해진 채로 왔다.

“뭔 일 있었어요?”

“나? 아아, 요즘 갑자기 바빠서 잠을 거의 못 자서 그래. 끝나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테니까 별일 아냐. 근데 지영이 너도 살이 좀 빠진 거 같은데?”

“이번에 전지훈련 네 팀이나 들어와서 훈련이 좀 빡셌거든요.”

“그래? 근데 그런 것 치곤 얼굴이 밝네. 자, 일단 일 얘기부터 하자. 광고는 어떻게 됐어?”

공익광고.

그것도 학교폭력과 연관된 프로그램이다.

지영은 어제 친구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학교폭력 근절 공익광고. 그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자 다들 놀란 얼굴에서 다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강한결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사로이 돈을 벌기 위해 찍는 광고가 아니라,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는 고생. 이게 강한결의 마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강한결이 수락하자 나머지도 금방 수락했다.

“다 괜찮대요.”

“잘됐다. 아휴, 매일 연락 와서 귀찮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하나 쳐냈고!”

“하하. 그래서 이건 언제 찍어요?”

“전달하면 알아서 스케줄 잡겠지? 아, 이건 그냥 내가 임대성 코치님이랑 연락해서 스케줄 잡을게. 너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괜찮지?”

“그래 주면 감사하죠.”

“그래, 어휴. 이러니까 진짜 내가 너 매니저가 된 것 같다. 아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겠는데?”

이선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는 말에 지영은 그냥 조용히 웃으며 속내를 숨겼다.

‘벌써 앓는 소리는 곤란해요, 누나.’

이선영에게는 정말 바라는 게 많았다.

그리고 그걸 말하면 이선영이 질색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알아서 그 자리로 움직이게 만들 생각이었다. 물론, 그때까지 이선영과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이 붙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보인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선영은 적어도 된 사람이다.

지영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이다. 때에 따라서 엄청나게 독해지기도 하지만…… 그거야 본업이 기자인 그녀에게 당연히 필요한 정신이었다. 물론 이 모든 생각은, 그녀가 이번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나 가능한 얘기였다.

“그럼 하나 끝났고. 이제 진짜 중요한 얘기를 해보자. 나는 솔직히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 일단 지영이 네가 한 말이, 아주 보편적인 상식으로 봤을 때도 말이 안 되는 건 알지?”

“네, 그건 인정해요.”

“인정하니 다행이네. 그럼 나도 돌리지 않고 얘기할게.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영이 네가 한 말들이, 참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역시나 걸렸다.

근데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영 본인도 참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베가 제약 주식을 증거와 담보로 걸긴 했지만 솔직히 그게 얼마나 빈약한지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 지영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게 ‘아 그래? 그렇구나! 너 대단하다!’, 이러고 지나갈 일은 결코 아니었다.

심지어 이선영은 기자였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대기업의 횡포를 온 세상에 까발렸던 기자였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팩트에 민감했다. 그러나 지영은 두루뭉술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다시 확신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지영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뭐가 궁금해요?”

“다 궁금하지. 나는 솔직히 두어 달 너와 붙어 있으면서, 강지영이란 한 명의 인간에 대해 못해도 70% 이상은 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요?”

“그런데 그게 깨졌어. 사업? 코인? 주식? 그래 할 수 있지. 왜 못 해? 능력 있고 돈 있으면 고등학생도 할 수 있지. 그런데, 그게 말처럼 이루어질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네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좋고, 대단한 일인지 알겠는데 내가 생각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게 아니야.”

“뭔데요?”

“너의 확신.”

“…….”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을 바로 찔러왔다.

이선영은 지영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너는 확신이 있었어. 베가 제약? 그래. 이번 치료제 이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제약회사에 운 좋게 투자를 한 건지 아니면 알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다르잖아. 그런데 너는 확신이 있어. 자신의 생각대로 될 거라고.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어.”

“…….”

“마치, 결과를 아는 사람처럼.”

“……후우.”

역시 무섭다, 이선영은.

하지만 이런 성격이라서 지영은 오히려 이선영에 대한 신뢰가 더욱 쌓였다. 사람이 좋다는 거야 그녀의 행보로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이런 꼼꼼하고 세심한 감각까지 있다면 지영으로서는 최고의 파트너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실을 얘기해 줄 수는 없다.

‘기자인 누나가 회귀라는 걸 믿을 리가 없겠지.’

특종감?

그녀가 생각하는 특종이라는 건 애초에 그런 게 아니다. 판타지가 아니라, 극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녀에게는 특종이다. 말해봐야 미친놈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인 게 지영이 품은 진실이다.

“너는 네가 나를 섭외해서 할 일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어떻게 확신해? 그리고 그 확신에 대한 근거는?”

“……그 근거를 못 대면, 없던 일이 되는 건가요?”

“글쎄? 그래도 변명까지 들어봐야 알겠지?”

“음, 잠깐 생각해 봤는데 누나 마음이 그러면, 전 누나 마음 못 돌려요. 확신에 대한 근거는 있는데, 그건 누나 성격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도 않고요.”

회귀.

이건 지영이 평생 혼자 가지고 갈 비밀이다.

그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밝힐 생각이 없는 지영이었다. 이선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생긴 꿈. 이걸 이루려면 이선영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이 비밀을 오픈해 가면서까지 해야 한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지.’

하고 싶은 일이지만, 집착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지영의 말에 이선영은 웃었다.

“역시 재밌어.”

“네?”

“너는 진짜, 참 오묘해. 보통 예상한 반응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어.”

“죄송해요. 오묘해서. 그리고 누나한테 했던 부탁은 없던 일로 해주세요. 생각해 보니까, 앞으로 그것 말고도 바쁠 것 같아요.”

“그래도 되겠어? 너는 확신이 있는 기회잖아.”

“네. 괜찮아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다.

이선영에게는 그냥 따로 부탁하면 된다. 일종의 의뢰 형태로.

‘그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거야.’

잘될 줄 알았다.

아무런 문제 없이. 하지만 이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회귀 이후, 거의 모든 게 지영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노렸던 게 있으면, 그것도 잘 풀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 거다. 지영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부담은 나만 안으면 돼.’

그렇게 하면 만약, 잘못되어서 의가 상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로 웃고는 있지만 어쨌든 이건 대립각이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낫다.

지영은 결정했다.

주식을 팔기로.

“괜찮겠어? 하고 싶은 일이잖아?”

“누나, 굳이 제가, 내가 밝히고 싶지 않은 걸 말하면서 누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제겐 방법이 애초에 있었어요. 다만 그게 과정이 복잡하고, 또 누나의 도움도 필요했으니까 겸사겸사 누나한테 부탁한 거죠. 그런데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보네요.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 않은 거고,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잘못했다간 누나랑 의가 상할 뻔했어요. 그냥 지금처럼 지내요, 우리. 도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

“광고는 찍을게요. 어차피 좋은 일이라서 애들 다 찬성했으니까. 그럼. 가볼게요. 누나도 주말 잘 보내세요.”

드륵.

지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선영은 화가 난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여전히 품은 채 지영을 보고 있었다.

잘됐다.

솔직히 돈 관리며 이런 문제 때문에 좀 복잡한 상황이기도 했다. 이선영이 정말 필요한 건 맞지만.

‘그건 돈이 있으면 다 해결돼.’

아니면 직접 발로 뛰든가.

지영은 이선영에게 서운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반응이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거다. 카페를 나선 지영은 바로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택시에 오른 지영은 바로 김지영 여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 지영이에요. 아, 지금 회사에 계신가 해서요. 네. 네네. 지금 가려고요. 네, 방금 택시 탔으니까 금방 도착해요. 네.”

결국에는 생각해 뒀던, 두 번째 방법으로 가기로 했다.

‘반만 처분해도 충분하니까.’

지영은 시내에 도착해 주말인데도 일터로 나오신 김지영 여사님을 만나 주식의 반을 처분을 부탁하고는, 강한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내에 나온 친구들은 전부 PC방에 있었고 지영은 그 틈에 합류해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지영은 계획을 새로 정립했다.

* * *

역시, 역시 신기하다.

이선영은 서울로 올라가면서, 계속해서 신기하단 단어를 떠올렸다.

“선욱아.”

“네? 네.”

“고등학생인데. 아직 민증도 나오지 않은 앤데. 투자로 돈을 벌어서 힘들게 운동하는 애들을 지원하고 싶다고 하네?”

“누가요. 아, 지영이가요? 애가 벌써 그런 생각을 해요?”

“그치? 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심지어 벌써 투자 한 건은 성공했더라고.”

“성공이요? 그래 봐야 뭐 얼마 되겠어요?”

“베가 제약 신약 나오기 전에 넣었더라. 500 정도 넣은 게 지금은 5천이 넘어.”

“헐.”

김선욱이 운전하다 말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애잖아. 오백이 오천이 됐어도 애면, 그걸로 막 옷 사고, 컴퓨터 사거나, 폰을 바꾸거나, 아니면 게임 아이템 사거나 그러고 싶잖아?”

“뭐 그렇겠죠?”

“근데 걔는 오히려 투자를 더 해서, 어려운 애들 돕는 후원재단 비슷한 걸 만들고 싶은가 봐. 이게 아직 고2도 올라가지 않은 애 머리에서 나올 생각이냐?”

“누님.”

“어? 왜.”

“지영이를 아직도 몰라요?”

“어…… 어?”

“걔네, 그냥 그런 애들이잖아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무런 생각도 안 들고 좋던데요?”

“그거야 알지. 하지만 너무 비범하니까 오히려 이상하잖아?”

그리고, 그것도 적당히 비범해야지.

일반적인 궤에서 너무 벗어나 있으니까 오히려 인간에 대한 신비함과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마치 태어나서 본적이 없는 생명체를 조우한 기분? 이선영의 기분이 지금 그랬다.

‘그리고 그 확신은 정말…….’

솔직히 그게 제일 의심스러웠다.

기존과는 다른 어떤 특별함? 신비함? 의심? 이런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지영이가 제안한 건?”

“까였어.”

“네?”

“내가 뭘 좀 물었거든. 그랬더니 그건 알려줄 수 없다네? 그러더니 내가 따로 뭘 말하기도 전에 그냥 나 까버리고 갔어.”

“헐, 풋, 푸핫. 누님 진짜 누님답게 굴었네요?”

“천성이 기자인데 어쩌겠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의 확신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그거 물었다가, 대차게 까였어.”

“그래서 이렇게 물러나게요?”

“미쳤어? 지영이가 한번 양보했으니까, 이번엔 내가 양보해야지. 근데 그게 오늘은 아니고.”

“오늘이 아니면요?”

“음, 내일 저녁쯤?”

오늘이나 내일 저녁이나 사실 크게 다를 것도 없지만 이선영은 남은 하루 간 자신도 생각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영의 말을 의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의심을 품은 채로 같이 일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영을 믿긴 하지만 그래도 옆에서 운전하는 김선욱만큼 믿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의심을 지우고, 지영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정신을 만들 생각이었다.

팩트가 없어 힘들겠지만, 그래도 지영이 하려는 일에는 그녀도 흥미가 이미 충분히 유발된 상태였다.

‘뭐, 지영이의 말이 틀리면 어때. 아니, 오히려 좋지. 그 애도 애 같은 구석이 있는 거니까.’

지금까지는 인간미가 참 없었지만, 만약 지영의 말을 믿고 투자했다가 실패해도 강지영이란 한 인간이 오히려 인간다워지는. 이선영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니 불편하던 속도 사르르 풀렸다.

그렇게 서울에 가서 일을 정리하고, 다음 날 내려오면서 지영에게 전화를 그녀는 어? 하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벌써 자금 마련했다고?”

고작 하루인데, 이 친구는 벌써 혼자 움직일 준비를 끝내놓았다.

그런 지영의 행동력에 감탄하는 한편, 진짜 자신을 배제했다는 사실에 서운해진 그녀는 김선욱을 닦달해 청주로 쐈다.

하지만 도착해서 만나 얘기를 나눠봤지만, 그녀의 자리는 이미 빠져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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