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79화
79화. 야나기가우라(7)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편법은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답은 후자다.
운동에 왕도가 존재한다면, 들인 시간만큼 실력이 향상된다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절대로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 놀고먹고, 자기만 해서 실력이 오르길 바라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타인의 훈련을 지켜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정도는 해줘야 실력 향상을 바랄 수 있었다.
유도도 당연히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실력이 빨리 오르는 특정 훈련이 존재한다면, 그건 굳히기라고 할 수 있었다.
누르기, 꺾기. 그리고 조르기.
여기서 이 세 번째 때문에 실력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게 바로 굳히기였다. 누르기와 꺾기는 보통 그렇게까지 괴롭진 않다. 평범한 경우, 아니 훈련에서는 꺾어도 탭을 치면 금방 놔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르기는 달랐다.
아주 잠깐이지만 졸리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서, 이건 누구나 기피하게 되고 그런 마음은 곧 조르기에 대한 공포로 변한다.
졸리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괴롭다.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힌 다음 정신이 아득해지면, 무한한 공포감이 엄습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버둥 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발버둥엔 진짜 젖 먹던 힘까지 전부 다 담겨 있고, 나중엔 진짜 목에 손만 들어가도 경기를 일으키며 저항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런 상황 자체가 굳히기 실력을 엄청나게 가파르게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둘째 날과 셋째 날, 고작 이틀 동안 지영은 무려 여섯 번이나 졸렸다.
물론 아예 졸려간 건 아니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독하게 마음먹었다면 이 중에 최소 서너 번은 졸려갔을 거다.
그리고 그게 지영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제대로 냈다.
공포와 두려움이 굳히기 실력을 상승시키기도 하지만, 분노도 충분히 앞에 둘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고작 이틀이지만 헤비급 여자 선수에게도 눌렸다는 사실이, 지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후의 자유 연습보다 더욱 이를 악물고 굳히기를 했다. 보통 경량급, 중량급 나눠서 하지만 지영은 한판도 쉬지 않고 굳히기를 연습했다.
그 결과. 지영은 아주 빠르게 야나기의 굳히기에 익숙해졌다.
여기서 익숙해졌다는 건 방어가 가능해졌다는 거고, 방어가 가능해졌다는 건 당연히 눌리지 않고, 꺾이지 않고, 졸리지 않는다는 걸 뜻했다.
그럼 그다음은?
역공이 가능했다.
지영이 야나기의 굳히기를 보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실제로 야나기의 선수 대부분이 주짓수와 같은 서브미션계 훈련을 받았다는 거였다. 상대를 넘기는 것과 상대를 누르고 조르고 꺾는 굳히기가 혼합된 유도와는 달리 주짓수는 누르고 꺾고, 조르는 게 전부인 스포츠였다. 그렇기에 굳히기 자체에서는 주짓수가 더 효과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짓수처럼 전신의 관전 전체를 꺾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 움직임이 섞이자 방어 자체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그래도 중요한 건 적응이 끝났다는 점이었다.
상대는 마사루.
첫날 지영을 무려 네 번이나 눌렀던 실력자인데, 지영은 버티고 또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5분이 지나 삐! 소리가 나자 마사루가 자세를 풀고 물러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후우, 지영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지영. 실력이 정말 빨리 늡니다.”
“덕분이지.”
“아닙니다. 지영이 열심히 하는 덕분입니다.”
씩 웃은 마사루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지영은 쉬지 않고 곧바로 또 상대를 잡았다. 이번에는 81 선수다. 마사루보다 체격도 좋고, 힘도 좋은 81 선수고 첫날에 지영을 두 번 누르고 한 번 꺾었던…… 선수였다. 인사를 하고 시작.
상대는 역시나 하위 포지션으로 움직였다.
몸을 V자로 만들어서 코어로 버티고, 발로 전진을 막고 올라오는 몸을 뒤집거나 감아서 꺾는 스타일. 야나기는 거의 대다수가 이런 스타일이었다. 느낌이 다 비슷한 걸 보니 아예 전문가를 초빙해 단체로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좋지.’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건 주의해야 할 것도 거의 비슷하다는 뜻이니까 결과적으로 지영에게는 오히려 좋게 작용했다.
지영은 빠르게 덤벼들었다.
야나기 선수는 지영이 도복 바짓단을 잡고 한쪽으로 치우자 그쪽으로 따라 움직이면서 엎드려지는 걸 피했다. 손과 다리로만 움직이는, 코어 힘이 진짜 단단하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한 이동. 하지만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이번엔 바짓단을 꽉 찍어 누른 뒤, 한쪽을 상대 허리 밖으로 뺐다. 그리고 몸을 틀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대번에 손이 쭉 들어와 지영의 목깃을 잡고 잡아당겼다.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자유 연습할 때는 그렇게 강하다는 느낌이 없는데, 굳히기에 돌입하자 이건 뭐, 대학생이랑 잡는 것보다 더 빡빡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
원래는 이쯤에서 몸이 휙 뒤집힌 다음 수세에 몰렸었지만 지금은 단단하게 중심을 내려서 몸을 뒤집을 각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지영이 아니었다. 지영은 상대의 오른쪽 허벅지를 찍어서 제압하고, 팔을 뻗어 목깃을 잡은 다음 단단히 고정했다.
후우.
숨을 고른 지영은 바짝 긴장했다.
이제 상대와 서로 맞붙어 있는 상태라 어떤 기술이 들어올지 예상은 해도 방비는 쉽지 않은 포지션이 됐다. 여기서는 이제 조금만 삐끗해도 몸이 뒤집히든가, 아니면 꺾기나 조르기 포지션으로 뒤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니 조금의 틈도 줘서는 안 되는 상황.
포지션 자체는 지영이 조금 유리했다. 일단 상대의 허벅지를 제대로 제압하고 있으니 여기서 발만 빼내면 바로 누르기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상대는 굉장히 여유로웠다. 마치 네가 어떻게 해도 나는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표정은 지영이 보통 자유 연습을 할 때나 가지는 마음가짐이라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실력은, 아무리 지영이 적응했다고 쳐도 야나기 선수가 위였다.
홱!
목깃을 잡았던 손을 놓고 그대로 반대쪽 목으로 감아 잡은 다음, 상체를 더 세워 압박해 오는 야나기 선수. 지영은 그걸 오히려 더 안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버텼다. 그러자 야나기 선수는 마치 이걸 기다렸다는 듯이 지영의 무릎을 툭, 걷어찼다. 걷어차이는 순간 지영의 몸이 쭉 깔렸다. 이건 반칙이 아니었다. 실제로 누르기 상황에도 발이 꼬이면 상대가 꼰 발을 다른 발로 밀거나 툭툭 쳐서 뽑는 경우도 있었다.
우악스럽게 걷어차면 반칙이지만, 지금처럼 툭 쳐서 밀어내면 허용되는 기술.
‘아, 당했다.’
지영은 바로 자신이 상대의 노림수에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차이기 전에 차라리 몸을 옆으로 틀었어야 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맞붙어서 눌러보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패착이 됐다. 지영은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미 상대는 아예 띠까지 잡아서 당기고 있는 와중이라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굳히기의 무서움.
이렇게 잡히면 진짜 답도 없다는 거다.
완벽하게 지영을 제압한 상대가 지영의 골반에 발을 대고 들어 올려 다른 발과 교차시켜 몸을 뒤집었다.
완벽하게 제압당한 상태라, 지영은 별다른 반항도 못 해보고 그냥 홱 돌아가서 누르기 밑으로 깔렸고, 이내 누르기 포지션을 빼앗겼다.
몸을 써서 틀어보지만 완벽하게 잡혀서,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툭툭, 지영은 한숨과 함께 상대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러자 힘을 풀고 일어나는 야나기 선수. 씩 웃은 그는 손을 뻗어 지영을 일으켜 세워줬다.
순한 친구다.
유도에 진심이라서, 예의도 있는.
야나기 선수들 전체가 그래서 그리 특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선수와 붙는다는 건 지영에게는 갑자기 드러난 ‘약점’을 보완할 아주 좋은 찬스였다. 지영은 고맙다고 말한 뒤, 주변을 돌아봤다.
임효중이 바로 근처에서 눌려서 아등바등거리고 있는 게 바로 보였다.
단순히 굳히기에 약한 건 지영이나 이성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임효중, 강한결, 황석도 지영과 비슷한 실력이었고, 그래서 다 같이 지금 탈탈 털리는…… 중이었다. 유도에 있어서만큼은 진짜 완벽할 것 같았던 황금세대의 인간미가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들 재능, 의지, 승부욕 등이 있어서 지영처럼 빠르게 적응 중이었다.
이어진 굳히기 연습에서도 지영은 처음처럼 맥없이 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훈련이 끝났고, 진이 쭉 빠진 지영은 점심을 먹고, 짧은 낮잠을 청했다. 오후 세 시부터 훈련이니 많이 자봐야 1시간 남짓이지만 지금 자두지 않으면 오후 훈련에 심각한 지장을 끼친다. 눕자마자 거의 곯아떨어진 지영은 맞춰둔 알람이 아니라, 전화 소리에 깼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폰을 확인하자 이선영이란 이름이 떠 있었다.
오늘은 금요일.
그녀는 생각이 길었는지, 이제야 전화가 왔다.
‘하긴…… 고등학생인 내가 한 말이니 생각이 많을 수밖에.’
지영이 증거라고 보여준 것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다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영이 그 정도로 빈약한 증거를 내줬으니 이선영의 고민도 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고민 자체를 해준 것도 고마워해야 했다.
하지만, 지영이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진심이었고.’
할 수 있는 최선.
만약 그게 닿지 않으면 어쩔 수 없었다.
“네, 누나.”
-잤어?
“네, 잠깐 잤어요.”
-그래? 이따가 다시 전화할까?
지영은 그 말에 잠깐 시간을 확인했다. 1시 40분. 일어날 시간쯤이긴 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서 결정하셨어요?”
-응, 네가 성인만 됐어도 큰 고민 안 하는데, 너무 어리잖어, 네가. 그래서 고민이 길었네.
“고민 결과는요?”
-일단은 해보는 쪽으로. 잠깐 알아봤는데 충주에도 그런 애들이 진짜 많더라고.
없을 리가 있나.
아마 최소 수십 명은 될 거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셀 수조차 없을 거고.
“고마워요, 누나.”
-고맙기는. 솔직히 재미도 있을 거고, 근데 아직 마음을 확정한 건 아니야. 나도 궁금한 게 아직 좀 남았거든.
“음, 완전히 수락이 아니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솔직히 공동투자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니?
“그렇긴 하죠. 그래서요?”
-내일 올라가서 몇 개 물어볼 게 있어. 그것만 제대로 답해주면 할게.
잘 넘어온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네?
역시 이선영은 만만치 않았다. 뭔가 맹한 느낌으로 끌려오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이 매우 뚜렷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성격이라 지영은 좋았다. 그래서 지영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한 번 더 설득해 보기로 했다.
“누나, 그럼 그건 내일 얘기해요.”
-청주지? 점심 지나서 갈게. 아 그리고 맞다. 부탁이라고 하긴 좀 뭐한데, 나한테 본사에서 일이 하나 떨어졌거든? 너 그거 좀 같이하자.
“네? 뭔데요?”
-광고.
“광고요?”
-응. 학교폭력 근절 공익광고. 너네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
“아…….”
지영은 순간 머뭇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당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선영이 같이 일을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지영은 신세를 진 셈이었다. 그래서 머뭇거리자, 이선영이 큭큭거리고 웃었다.
-반응 참 솔직해. 그래도 하자. 너랑 황금세대 애들 다 같이. 이번에 본사에서 직접 사람이 내려와서 나한테 부탁하고 갔거든. 잘하면 복귀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만약 같이 일하게 될 경우 내가 움직이기 더 좋잖아. 여기저기 정보 얻기도 편하고.
“오, 그래요?”
-그럼. 너나 연희고 아이돌 애들이 따로 소속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나한테 기회가 온 거지. 학교로 연락 계속해 봤는데 아주 대차게 까였대. 그래서 나한테 왔어.
“음…… 그럼 그것도 상의를 좀 해볼게요. 저 혼자면 몰라도 애들 다 같이 나가는 거면 물어는 봐야 되거든요.”
-응, 말해보고 연락 줘. 그리고 자세한 얘기는 내일 내가 올라갈 테니까 그때 얘기하자.
“네.”
-그래, 내일 봐, 그럼.
후,
그래도 이 정도면 팔부능선은 넘은 거 아닐까? 생각처럼 쉽게 일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지영은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정 안 되면, 그냥 주식 팔아서 움직여도 되니까.’
코인에 대한 생각은 여기까지.
지영은 생각을 정리했고 다시 잘까 하다가, 그냥 일어난 김에 물 샤워를 하고 나와서 운동 갈 준비를 했다. 지영이 나오자 하나둘씩 친구들도 일어났고, 20분쯤 숙소를 나섰다. 체육관으로 가는 길. 맨 뒤에서 걷던 지영은 친구들에게 툭,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던졌다.
“우리 광고 찍을까?”
“…….”
“…….”
5일간의 고된 훈련으로 씻고 나왔음에도 제정신이 아닌 친구들이, 이건 또 뭔 헛소리야? 하는 눈빛으로 지영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