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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75화 (7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75화

75화. 야나기가우라(3)

아무리 중심이 단단해도, 이렇게 원심력까지 더해지면 가만히 서서 버틸 수는 없다. 헤비급이 아니라면 말이다. 거기에 지영도 벌크업을 통해 힘을 늘려서, 마사루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힘이 좋은 선수에 속했다.

유도선수로서 강지영은 아직 완성형은 아니다.

아직 힘과 체격이 여물지 않았고, 기술의 예리함 또한 지영보다 적어도 십수 년을 연마한 선수들보다는 떨어졌다. 회귀를 하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 도복을 입고 제대로 기술을 연마한 적은 거의 없으니 머리로 그리는 이미지와 실제 육체가 그려내는 이미지의 합이 맞지 않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타이밍을 잡는 건 다르다.

지영의 장점 중 하나가 회귀를 통한 통찰력이다. 적어도 동년배 선수보다 10년은 더 살았고, 유도의 곁에 있었다. 그래서 시합을 바라보는 관점은 남달랐다. 유도는 본능이 앞서는 경기지만, 지영은 이성이 앞서는 경기를 한다.

물론 이성이 무조건 본능보다 낫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타이밍을 잡는 건 이성이 훨씬 유리하다.

바로, 지금처럼.

“윽!”

마사루의 신형이 앞으로 끌려오며 몸이 붕 떴다. 하지만 바로 가슴 깃을 잡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중심을 잡는 마사루. 그러자 마사루의 자세는 엎드려뻗쳐 하는 자세가 됐다. 지영은 엎어진 마사루의 등 깃을 잡고 그대로 당겼다. 그러자 마사루는 지영의 뭘 하려는지 알고, 바닥에 아예 납작 엎드렸다.

‘눈치도 빠르네?’

지영은 들어서 그대로 마사루의 안으로 파고들어 배대뒤치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가랑이 사이에 발을 넣어 그대로 뒤집으려고 했다. 그런데 눈치 빠른 마사루는 그걸 정확하게 예측하고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렇게 납작 엎드리면 헤비급이 와도 답이 없다.

게다가 완벽하게 엎드린 상태로 들어서면 굳히기 상황으로 변하고, 이럴 땐 들어서 던져봐야 점수가 나오지도 않았다. 좀 전처럼 완전히 엎드린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서 들어갔으면 점수가 나왔을 거고 말이다.

지영은 도복을 놓고 일어났다.

‘유효 포인트 하나 땄고.’

그래도 성과가 없던 건 아니었다.

이 정도 공격은 점수는 안 나도, 유효기술쯤은 된다. 지도나 절반 같은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칙 상황에 지영이 몇 점 앞서나가는 정도다. 하지만 지영이 노린 건 따로 있었다.

‘만약 이걸 정식 시합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면…….’

지금 공격으로 유효 포인트를 뺏겼다는 걸 반드시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되냐? 좀 전처럼 돌부처 같은 포지션을 절대 취할 수 없다. 지영이 조금만 공격적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유효 포인트를 하나 더 따내면 마사루에게 지도가 들어가게 된다. 물론 시합이라면 말이다.

마사루는 그걸 분명 의식할 거다.

아니, 의식해 주기를 바랐다.

일어나서 도복을 고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마사루의 눈빛에, 승려의 고요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투지가 채웠다. 적어도 좀 전과 비슷한 포인트를 따내겠다는 의지가 제대로 전해져왔다.

지영은 그걸 보며 속으로 웃었다.

생각대로 된 탓이었다.

누가 하지메! 나, 시작! 신호를 주지도 않았지만 정확히 비슷한 타이밍에 서로 맞붙었다. 마사루의 스타일은 힘을 통한 정통 업어치기 파다. 고로, 이걸 본다면 지영이 조심해야 하는 건 딱 정해져 있었다.

‘안다리, 안뒤축 연계를 통한 업어치기.’

그리고 잡기 싸움.

안다리는 뒤로 중심을 무너뜨려 뒤로 넘기는 기술. 여기에 걸리면 상대는 당연히 중심을 앞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중심이 뒤로 물리면 그냥 쿵! 넘어가니까. 그런데 업어치기는 중심을 앞으로 당겨서 거는 기술. 이래서 연결이 된다. 중심을 찰나지만 앞으로 밀고 나오는 순간 업어버리면 방어할 답도 없다.

안뒤축은 안다리처럼 중심을 뒤로 밀어내거나, 혹은 주저앉히는 기술이라서 역시 업어치기와 연결된다.

그리고 업어치기가 특기인 선수들은 이 두 가지 연결기술을 매일같이 훈련한다.

아마 마사루도 수만 번은 이 연결기술을 연습했을 거다.

그래서 지영은 안다리와 안 뒤축 타이밍, 그리고 소매 깃을 주지 않은 채로 거리를 유지했다.

허리기술도 그렇지만 손기술인 업어치기도 상대를 당겨야 들어가는 기술이다. 말아업어치기 같은 경우에나 중심을 뒤로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마사루의 정통 업어치기는 무조건 당겨야만 한다.

‘하지만 무조건 정통 기술로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지.’

앞과 뒤, 어디로든 넘길 기술이 존재하는 게 또 유도라는 운동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영은 기술을 경계만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면 어떤 심판은 그냥 둘 다 지도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 지영의 유효 공격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말이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시합 중이라 크게 어필도 못 한다. 그러니 지금은 절대로 밀려서는 안 된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5 대 5.

가능하다면 6 대 4. 물론 지영이 6이다. 공세에서 이렇게 유리하다는 느낌만 심판에게 줘도 마사루는 지도를 받고, 지영은 지도를 면할 수 있었다.

지영이 가진 최대의 장점 중 하나.

이게 바로 시합 운용이다.

마사루는 그런 지영의 시합 운용에 조금씩 말려왔다. 그래도 용케 억지 기술은 들어오지 않았다. 몇 번 움찔하는 게 보이긴 했는데 지영이 카운터에 능하다는 정보 때문에 억지로 기술을 걸었다가 벼락처럼 들어오는 되치기를 신경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잘한다.

힘이 너무 좋아서, 중심이 너무 좋아서 상대를 넘길 각이 안 나오지만, 지영은 대신 다른 것부터 이미 천천히 무너뜨려 가기 시작했다. 일단 상단부, 멘탈을 흔들었다. 만약 그냥 대충 자유 연습을 하는 선수였다면 지영의 이런 전략은 애초에 소용도 없었겠지만 마사루는 연습에도 진심인 선수다.

그래서 아주 유효하게 먹혀갔다.

짧은 잡기 싸움 공방전 끝에 가슴 깃을 잡은 마사루의 손에서 힘이 살짝 빠지는 게 느껴졌다. 잠시 그쳐를 하자는 무언의 제스처. 지영은 그걸 바로 알아듣고 어깨 깃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가슴 깃을 놓고 물러나는 마사루. 지영도 뒤로 물러났다. 아귀가 저릿저릿했다.

‘힘 하나는 진짜 엄청나네…….’

힘이 좋은 선수랑 붙으면 역시 이게 문제다.

상대의 힘을 막으려면 당연히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 자체로 이렇게 육체에 부하가 걸린다. 처음에 1분, 두 번째는 거의 2분 가까이 잡고 있었는데 고작 이 짧은 시간 만에 아귀가 뭉치는 느낌이 난다.

거기에 마사루의 업어치기는 힘이 그렇게 좋은데도 굉장히 유연하다. 아까 봤으니까 그건 확실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멘탈은 흔들었으니까.

그러니 타이머가 삐! 하고 울리는 순간 패배라고 생각할 거다. 물론 지도 하나로는 실제 유도에서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옛날에나 지도 하나라도 시합이 끝났지만 지금은 무조건 점수다.

5분이 끝날 때까지 지도 2개를 받아도 승부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도가 쌓이는 건 당연히 압박이다. 왜? 3개는 반칙패로 선언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초반에 잡고 있었을 때, 그때 서로 지도 한 개씩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영이 기술을 걸어 유효 공격을 획득했고, 다시 지금까지 잡기만 했다.

그럼 여기서 마사루는 지도 2개, 지영은 지도 1이다.

이제 지도가 하나씩 나란히 들어가면 마사루는 지도 3개로 반칙패다. 시합으로 생각한다면 아마 이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일 거다. 고작 한 번이지만, 유효기술이 중요한 이유였다.

“후우…….”

지영은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1분가량. 마사루는 반드시 남은 1분 안에 승부를 보러 올 거다.

“마사루!”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몸을 돌려보니 이번 판은 쉬는지 밖에 있던 신지 옆에 이노우에 코세이가 보였다.

“쇼부 봐라, 마사루!”

“하이!”

이노우에 코세이의 지도라.

조금은 부러운데?

눈빛이 돌변한 마사루가 다시 자세를 잡고 다가왔다.

키도 작은데 흡사 전차가 밀고 오는 것 같다. 하지만 지영은 오히려 좋았다. 전차는 방향 전환이 매우 힘들다. 돌아가 봐야 상단부 대가리만 돈다. 턴도 매우 느리게 돌고. 속도는 좋을 수 있어도, 전차는 유연할 수는 없다.

그런 전차가 바짝 붙어 왔다.

가슴 깃을 잡고는 지영을 당겨 초 근접거리로 들어오는 마사루.

업어치기도 당겨 붙여 던지지만, 허리기술도 당겨 붙여서 찬다. 그러니 자세만으로는 서로 누가 유리하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경우는 힘이 좋은 마사루가 조금은 더 유리했다.

툭, 툭툭.

모두걸기로 간을 보다가, 갑자기 말아업어치기 자세로 빙글 도는 마사루. 하지만 지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뒤꿈치를 찍는 위치를 보니, 이건 페인트다. 만약 말아업어치기를 할 거였으면 돌아도 훨씬 더 돌았어야 했다. 그래야 중심이 아예 360도 가까이 돌 수 있으니까.

하지만 찍은 발의 위치를 보면 그 정도 회전각은 아니다.

그러니 이건 페인트.

진짜는 따로 있다.

그러나 이 자세가 페인트라고 해도, 걸 수 있는 기술은 매우 제한적이다. 자세가 안 나오기 때문이었다.

‘내 되치기를 노리는 건가?’

카운터의 카운터?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역시, 지영이 예상한 것처럼 말아업어치기 회전은 끝까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 나오면서 껑충, 자세를 거의 점프를 뛰듯이 해서 바꾼 마사루가 뒤로 물러나며 지영을 쭉 한차례 당기더니 노렸던 비수를 꺼내 들었다.

역방향 낚시걸이.

‘이거구나.’

지영은 자세를 쭉 깔며 들어오는 마사루의 낚시걸이에 이 선수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기교파가 아닌 정통파인데, 기교파 기술을 꺼내 들었다. 그것도 카운터로. 이건 곧 자존심보단 승부에 집착하겠다는 뜻.

‘좋은 마음가짐이야.’

유도는 무도지만 무도가 아니다.

유도는 무도지만 스포츠로 분류된다.

그러니 승부에서 이기는 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이렇게 엘리트 스포츠를 하는 입장에서는.

지영은 그런 마사루의 선택에 찬사를 보내며, 그가 낚시로 노리는 왼발을 쭉 빼는 스텝으로, 오른발로 모두걸기를 쳤다. 지영의 오른 발바닥이, 목표를 잃고 허망하게 지나가는 마사루의 발목을 제대로 툭 쳤고, 그의 몸은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매트에 얌전히 드러누웠다.

워낙 부드러워 한판은 애매해도, 최소한 절반이니.

승부는 났다.

* * *

“음……. 클래식하군.”

코세이 코치의 말에 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판 쉬면서 마사루와 지영의 경기를 지켜본 신지의 의견도 같았다. 아니, 애초에 신지는 지영과 시합을 했던 영상을 수십 번을 넘게 봐서 이미 그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한국보다 몇 배나 많은 선수가 있는 일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방어 중심에 카운터를 주로 치는 선수.

이게 클래식이다.

예전에는 수비적으로 시합을 풀어나가도 바로바로 지도가 들어가지 않았고, 그걸 이용하는 선수들도 제법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영의 장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합 운용이 정말 좋습니다.”

“봤다. 마사루가 힘이 좋으니까 철저하게 아웃 사이드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군.”

“네. 끌려가면 그대로 업히니까요. 게다가 방어도 좋아서 마사루가 제대로 업었어도 점수로 연결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것도 그렇겠지. 하지만 신지. 저 선수의 제일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저것 말고 더 있습니까?”

“자세다.”

“자세라면…….”

“연습에 임하는 자세. 어느 순간에도 진심인 마음가짐. 신기하군. 그게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전부 제대로 보여.”

“아…….”

“아무리 연습이라고 해도 한 경기 한 경기를 저렇게 진심을 담아 하는 선수는 많지 않지. 연습은 습관이고 관성이니까. 하지만 저렇게 진심을 담으면, 실력향상이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지.”

“…….”

이노우에 코세이는 팔짱을 끼고는 자신을 한번 바라봤다가, 마사루와 함께 매트 밖으로 나가는 지영을 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신지. 나는 네가 올림픽까지는 쉽게 접수할 줄 알았다. 적어도 나는 하지 못한 2연속 제패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넓구나. 쉽지 않겠어.”

“…….”

“조금만 방심해도 너는 저 친구의 뒤에서 꼬리를 잡으려고 간절한 얼굴로 손을 뻗게 될 거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반짝.

이노우에 코세이의 도발에 신지는 씩 웃으며 눈을 빛냈다.

천재.

갑자기 툭 튀어나온 한국의 천재 강지영.

하지만 신지는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강지영이 천재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도 그에 못지않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졌지만, 다음 대회는 다를 거다. 신지는 그걸 위해 대학팀 합류도 미루고 이곳, 한국까지 날아왔으니까.

“하지만 쉽지 않겠지.”

“코치님이 도와주시면, 더 수월해질 겁니다.”

“그래. 그걸 위해서 왔으니까. 대신,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대충하면 나는 지도를 일절 하지 않을 거다.”

“네, 코치님.”

꾸벅.

이노우에 코세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신지는 바로 몸을 돌려서 지영에게 향했다.

2주간의 전지훈련.

신지는 이 시간 동안, 강지영이란 선수를 반드시 뛰어넘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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