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74화
74화. 야나기가우라(2)
보통, 초중고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신동, 재능이 있다. 혹은 천재다. 이런 소리를 한번 이상씩은 다들 들어봤을 거다.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유도도 마찬가지로 처음 입문했을 때 낙법을 시켜보면 아 얘가 재능이 있구나, 아니면 얘는 별로구나. 요런 판단이 바로 나온다.
그리고 그때 야 너 재능 있다, 잘한다, 나중에 국가대표 하겠는데? 이런 얘기를 좀 들어본 선수들이 보통 입상권에 든다. 왜? 떡잎이 다르기에 관리(코칭, 관심)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런 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꽤 많았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연희고 황금세대와 비봉의 장대호가 그랬다. 이 여섯은 재능 있다는 말보다는 천재라는 소리나 타고났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은 부류다. 아니, 그냥 물리게 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럼 그 아래는?
재능 있다는 얘기를 수두룩하게 들은 선수들.
8강에서 4강까지 갈 실력자들.
그런 실력자들이 이곳에 없는 건 아니었다.
비봉에도 제법 되고, 우석과 원광에도 제법 된다.
그런데 그런 실력자들이 아주 시원하게 깨지고 있었다.
“와우. 쟤도 좀 하는데?”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체격을 보니 –81인 것 같은데, 그 야나기 선수는 비봉의 주전 –90 선수를 아주 가볍게 던졌다. 서로 오른쪽으로 맞잡은 상태에서 발목받치기에 이은 핸들치기. 그 연계에 비봉 주전이 아주 시원하게 하늘을 날았다. 힘과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았을 때야 저렇게 시원하게 날아간다.
그리고 그곳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야나기 선수들에게 한국 선수들이 밀리는 모양새였다. 그러지 않은 곳이 있다면, 강한결과 임효중, 황석, 그리고 장대호 정도였다. 이 넷은 오히려 역으로 야나기 선수들을 털고 있었다. 현재도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선수들. 고등부가 아니라 대학부에 있어도 정상을 바라볼 선수들이니, 야나기의 평범한 선수들은 그런 천재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콰앙.
임효중이 요즘 연마 중인 소매꽂이로 한판을 던지고, 뒤이어 강한결이 제대로 상대를 제압한 상태에서 허리후리기로 한판을 던졌다. 황석도 엇비슷하게 안다리로 상대를 한판을 던졌다. 장대호는 뭐, 시작부터 그냥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
물론 아직 자유 연습 첫판이라 이게 야나기의 실력 전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신지가 몸담았던 학교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선수층이 받쳐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꽃을 피울 수 없으니 말이다.
‘그건 좀 전에 했던 히카리만 봐도 확실하지.’
지영과 동갑이지만 벌써 일본의 여자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안자이 히카리가 있는 학교. 이런 학교는 기본적으로 강팀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가 있는 팀은, 기본적으로 실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왜?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가 매일 파트너로 잡는 게, 그 팀의 선수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파트너의 실력도 같이 올라간다. 넘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건 기본이고, 그 기본은 계속해서 그 선수의 실력을 끌어 올린다.
그럼 처음에는 갭이 크던 실력 차도 서서히 줄어들고, 그렇게 강팀이 된다.
끌어주고, 밀어주고. 이게 반복되면 실력은 평준화가 된다는 뜻이다.
명문이 계속해서 명문으로 남는 비결에도 이런 이유가 들어간다.
그런 만큼, 확실히 눈으로 봐도 실력자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 신지의 바로 옆에 있는 선수. 까까머리에 짙은 눈썹, 마치 일본 소년만화에 나올 법한 마스크를 가진 선수는 아까 지영의 주변에서 자유 연습을 했었다.
그리고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그래서 둘째 판에 잡기로 한 상태였다. 솔직히 히카리는 계속해서 전술을 바꿔가며 덤벼들어 재미는 있었지만 여자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분명 잘하는 선수이긴 하지만 그 한계 때문에 지영에게 그 이상의 재미는 선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째 판은 솔직히 기대 중이었다.
“너 신지랑은 언제 잡게?”
“글쎄? 알아서 오겠지?”
아직 신지랑은 잡을 약속이 되어 있지 않았다.
신지는 첫판에 무려 여섯 번이나 한판을 던지면서 몸을 풀었는데 하는 걸 보니 어째 마지막 판에 잡자고 할 것 같았다.
“어, 이노우에 코세이 몸 푼다.”
이성진의 말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의 말처럼 스트레칭을 하는 중인 이노우에 코세이가 보였다. 그걸 보면서 지영의 눈빛이 자연스럽게 반짝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영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직은 이노우에 코세이에게 비빌 정도는 아니었다.
지영의 실력은 확실히 한국 고등부, 그리고 대학부까지도 접수할 수 있는 실력이다.
하지만 일반부까지 본다면 또 다르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73 국가대표인 안창린과 붙는다면 또 모른다. 진다고 생각은 하지만, 반드시 이긴다는 장담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포함해 현재 국가대표 1, 2, 3위급의 실력자들. 그리고 일반부의 강자들과 붙으면 지영은 필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과 이노우에 코세이가 붙으면?
지영과 똑같다.
비벼볼 격 자체가 아니다.
일단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난다. 지영은 73. 이노우에 코세이는 –100. 적어도 20㎏ 이상의 체중 차이다. 거기에 실력은? 이노우에 코세이는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정도로 실력자였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고는 해도, 지금 현역들과 비슷한 몸 상태를 가진 걸로 보아 실력도 크게 녹슬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 붙으면 지영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는 내정하게 보면 그런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유도는 수천 번, 수만 번 넘어가야 아 유도 좀 했구나, 하는 운동. 그리고 실력자와의 훈련이 실력향상에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운동이기도 했다.
‘그러니 무조건 잡아달라고 해야지.’
이런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일생에 한 번뿐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유도를 하는 선수들도 저 이노우에 코세이와 평생 한 번도 붙어보지 못하고 접는 선수들도 부지기수일 테니까 말이다.
인성? 모른다.
저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성격이 어떤지 알고 싶지는 않다. 실력만 본다.
역사? 안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가 어떤지. 하지만 저 선수로 실력을 올려, 일본 선수에게 갚아주면 된다. 그러니 지영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그 순간 5분이 지나고, 경량급 차례가 됐다.
지영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일본 선수와 매트로 올라가 한쪽에 자리 잡았다.
“후, 후우.”
눈이 커다란, 유도 소년 같은 선수를 보며 지영은 참 순수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도 빡빡 밀었는데 투지보단 귀여움이 먼저 보였다. 지영은 시작하기 전 그 선수에게 이름을 물었다.
“마사루.”
“마사루? 나는 지영. 강지영.”
“알고 있습니다. 시합, 영상, 봤습니다.”
더듬더듬 영어로 진행되는 대화라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의미는 제대로 전달이 됐다. 순수한 마사루가 단어를 곱씹더니 다시 말했다.
“신지 형이 지는 경기, 처음 봤습니다. 대단, 합니다. 지영 상.”
“고마워.”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나, 유도 잘하고 싶으니까요.”
“나도. 잘 부탁해.”
“잘 부탁드립니다.”
땡!
타이머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본 특유의 인사로 지영에게 인사를 한 마사루가 자세를 잡았다. 지영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탐색전을 시작했다. 툭, 툭툭. 먼저 뻗은 손을 쳐내는 마사루. 그런데 힘이 상당했다. 막으면서 가볍게 밀어친 것 같은데 지영의 손이 속절없이 튕겨 나갔다.
다부진 체격으로 보아 힘 유도일 거라고 예상이 됐다. 그리고 몇 번의 손속 교환 끝에 서로 마사루가 지영의 가슴 깃을, 지영이 마사루의 어깨 깃을 잡았을 때 그 예상은 현실이 됐다. 그리고 그 현실이 히카리에 이어 지영에게 또 당황을 선사했다.
‘뭔 놈의 힘이…….’
이건 진짜 상상 이상이었다.
돌덩이.
마치 최소 –100 선수. 그중에서도 힘이 진짜 좋은 선수를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마사루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그 상태로 다시 탐색전에 돌입하는 지영은 아주 정적인 유도를 선보이는 마사루 때문에 저도 모르게 또 조용히 웃었다.
‘역시 세상은 넓네…….’
나이는 지영과 당연히 비슷할 거다. 일본 교육과정 나이를 생각해도 플러스마이너스 1밖에 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잡았을 때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가 신지 말고도 또 있었다. 지영은 요근래 신지를 제외하면 이런 느낌을 주는 선수를 거의 잡아보지 못했다. 용인대 훈련 때나 두세 명 정도 있었지, 그 외에는 다 딱 잡는 순간 넘길 수 있겠단 판단이 드는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 순진한 마사루는 그냥 이건 뭐, 돌부처였다.
고요한 느낌.
신지가 화려한 공작새라면, 마사루는 수수한 깃털을 가진 새다. 비교하자면 참새? 그런데 몸은 독수리보다도 크다.
‘일단은, 흔들기부터.’
이런 선수는 먼저 선공을 들어가면 100% 되치기 각이다. 그러니 먼저 기술을 들어가는 것보다 중심축을 무너뜨리는 게 먼저였다. 다행이라면 지영 또한 정통파가 아니라는 것. 아까 보니 깔끔한 매치기 본 같은 업어치기를 구사하는 마사루가 정통파 업어치기 선수라면, 지영은 방어 유도에 카운터를 섞은 변칙파에 가깝다.
신장은 지영이 10㎝ 정도 크고, 리치도 훨씬 길다.
지영은 이 장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극단적으로 중심이 단단한 업어치기 선수를 상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소매 깃을 절대 주지 않는 거다. 소매 깃은 강하게 얘기하면 생명선과도 같았다. 소매를 주는 순간, 툭툭, 타이밍을 보다가 대번에 업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요약하면, 가슴 깃도 내줬는데 소매 깃까지 주면 끝이란 소리다.
그래서 지영은 소매를 절대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굉장히 루즈하게 흘러갔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이게 정식경기였다면 서로 반칙을 받으면서, 지도를 두 개씩 받았을 때 승부를 보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연습인데 막 하면 안 되냐고? 안 된다. 지영은 넘어가는 게 싫었다. 아무리 연습이라도, 언제나 승자이고 싶었다. 그리고 넘어가는 것에 익숙해지면 승부욕은 점점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넘어가면 뭐 어때?
그런 안일한 사상은 지영의 머릿속에 일절 들어 있지 않았다.
이는 황금세대 전체가 그랬다.
지는 운동?
넘어가도 괜찮고, 져도 괜찮다고? 그랬다면 지금의 황금세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언제나 연습에 임하는 지영이다 보니, 자연히 눈빛이 서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흠칫.
그런 지영의 눈빛을 본 마사루가 다부진 표정으로 소매 잡기 싸움을 격렬하게 시작했다. 업어치기는 소매를 잡지 않고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말아업어치기다. 하지만 마사루의 선택지에 말아업어치기는 없었다.
지영은 모르지만, 지영의 시합 영상은 당시 일본 스태프가 전부 찍었다. 그래도 아시아권에서 유망주들이 나오는 거니 영상데이터를 챙기는 건 당연했다. 이것도 지영은 모르겠지만, 신지가 지영에게 패배한 이후 유도선수 강지영의 시합기록은 전부 일본 유도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됐고, 철저하게 파헤쳐졌다.
고작 고등학생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일본이 그렇다.
세대교체를 통해 스포츠 분야에 10년 이상을 투자하면서 길게 보는 게 일본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훌륭하게 먹혔다. 당장 브라질 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육상 계주 은메달을 따내는 걸로 그 성과를 입증했다.
철저한 분석, 준비.
일본의 변태적인 집요함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런 의미로, 차세대 에이스인 신지에게 패배를 안긴 강지영은 분명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에서 맞붙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미리 준비하기 위해 데이터를 연구한 거다. 지영을 포함한 한국의 에이스들 전체의 영상을 말이다. 신지에게 밀리긴 하지만 마사루도 유망주라 그 데이터를 받았다.
첫 번째.
카운터에 지독히도 능한 선수.
기회가 오면 거의 90% 이상의 확률로 되치기가 들어간다. 심지어 제대로 들어갔던 업어치기도 끌어당겨 역으로 자신에게 붙인 다음, 찍어버릴 정도로 카운터를 힘과 기술 타이밍 전체를 이용해서 친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복싱으로 따지면 완벽한 아웃복싱에 정교하고 예리한 카운터를 장착한 타입.
그래서 흐름을 끊기 위한 공갈 기술 또한 절대 금지였다. 적당히 대충 들어가는 기술에도, 여지없이 카운터가 들어올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마사루는 자세를 딱 고정한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까지 파헤쳐졌다는 걸 모르는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노림수가 있는데?’
혹시 역 카운터?
되치기의 되치기.
유도에서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 시합 중에 상대의 기술을 되치기하려다가 역으로 되치기당해 훅 날아가는 경우는 상당히 자주 나온다. 예를 들면, 업어치기 후 엎어져 있는 상대를 들어 밭다리를 찍었는데, 상대가 버틴 다음 일어나면서 역으로 밭다리를 찍는 경우. 그런 경우가 바로 되치기의 되치기다.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힘이 좋은 선수라면 충분히.
그래서 지영은 최초 생각했던 대로, 중심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홰액!
갑작스럽게 돌아 나오면서 발목받치기.
정말 갑자기 들어간 기술에, 마사루의 신형이 앞으로 제대로 끌려왔다.
카운터의 기본은 타이밍이고, 지영은 그 타이밍을 잡는 데 귀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