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73화
73화. 야나기가우라(1)
이노우에 고세이.
한국에서는 보통 고세이 말고 이노우에 코세이라고 발음하는 일본의 유도선수다. 이노우에 코세이는 아주 유명하다. 특히 허벅다리를 차는 선수는 이노우에 코세이의 영상을 한 번쯤은 무조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주특기는 허벅다리 연계기술이다.
안다리에서, 다리가 걸리면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기울이기와 동시에 허벅다리 걸기로 연결해서 한판을 던지는.
보통 유도선수들이 업어치기 장인으로 꼽는 건 한국의 전기정 교수다.
전기정 교수의 업어치기는 알면서도 못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리고 허벅다리는? 기술 자체가 전기정 교수의 업어치기처럼 깔끔하진 않지만 일단 걸리면 열에서 아홉은 날아가는 게 그의 허벅다리다.
그런 이노우에 코세이는 그 허벅다리와 깜짝 업어치기로 세계를 제패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미야모토 신지와 함께 등장했다.
“야, 이노우에 아니냐?”
연희고도 단숨에 이노우에 코세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외모 또한 굉장히 인상이 깊은 편이어서 선수들은 단숨에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맞는 것 같은데?”
“맞지? 와, 전설을 다 보네. 근데 왜 이노우에 코세이가? 아니, 그것보다 저 팀은 뭐지? 저기 미야모토 신지도 있네. 어, 음……. 야냐기가우라? 일본 고등학교지?”
이성진의 말에 다들 팀명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나기가우라.
일본의 수많은 학교 중에 거의 제일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포츠 전문 고등학교.
일본에서는 통칭, 야나기라 불리는 학교로 미야모토 신지가 다녔던 학교기도 했다. 매트에 올라온 신지가 몸을 풀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지영을 발견하곤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지영은 그가 다가오자 스트레칭을 멈추고 일어났다.
“지영!”
일본 특유의 억양으로 지영을 부르는 신지.
지영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물었다.
“신지. 여긴 어쩐 일이야?”
“우리? 우리 유도팀이 우석고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매년 겨울이나 여름에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훈련하거든.”
“아…….”
야나기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단숨에 이해가 갔다. 자매결연. 사실 연희고에도 이런 자매결연 요청이 제법 온 걸로 안다. 실제로 충북 유도회는 중국 흑룡강성 체대와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었다. 하지만 연희고는 이런 요청을 전부 거절했다. 학업이 우선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운동은 뭐, 여건만 지원해 주면 알아서들 잘하니 그런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엔 강력하게 요청했어. 이번 훈련 때 연희고를 초청하거나, 아니면 그쪽으로 가서 훈련하자고.”
피식.
신지의 말에 지영은 신지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전부 파악했다.
“그럼 이노우에 코세이 선수는? 너희 감독이야?”
“아니, 이번 한정 초청 코치.”
“……어?”
“너 잡으려고. 일본 유도협회에서 붙여준 특별 강사님 정도?”
“…….”
아이고.
신지가 지영에게 패배한 게 일본 유도계는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나 보다.
하긴, 미야모토 신지 정도면 일본 유도의 미래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니긴 했다. 실제로 실력은 지영이 봤을 때도 엄청났다. 다시 붙으면 무조건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그런 레벨의 선수.
그런 선수를 위해 특별 코치를 붙였는데 그게 이노우에 코세이다.
‘지원 스케일이 진짜 어마어마하네.’
그리고 종주국이다 보니까 지원 또한 엄청났다.
실제로 일본은 유도를 하는 학교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리고 한국처럼 전국대회를 전부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선발전을 거쳐야 본선인 인터하이에 나갈 수 있다. 일본 스포츠 만화의 꿈인 인터하이. 일본에서는 전국대회 출전 자체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선수층이 두터운 게 일본의 스포츠인데, 거기서도 탑을 찍은 선수인 미야모토 신지가 졌다는 사실을 일본 유도계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나 보다. 차라리 미야모토 신지가 방심을 해서 갑자기 한판을 당해 졌다면 조금 이해했겠지만, 시합 영상이 있었을 테니 얼마나 혈투를 벌였는지도 알 수 있었을 거다.
즉, 새로운 신성의 머리 위에 드리운 먹구름.
그게 바로 강지영이었다.
그리고 그 먹구름을 치우기 위해 일본 유도계는 미야모토 신지에게 일본의 유도 영웅 중 한 사람인 이노우에 코세이를 붙여줬다. 이건 좀 부럽기도 했고, 다른 의미로는 집착이 엄청나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지영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솔직히 비봉이랑 우석, 원광의 경량급 선수층이 약해서 좀 불만이었는데, 잘됐네.’
미야모토 신지 말고, 그에 준하는 선수들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야나기의 선수들은 보통 한국의 선수층의 두 배였다. 오늘은 합동훈련이라 여자팀도 왔는데, 여자팀만 해도 무려 20명이 넘고, 남자팀은 그보다 반 배 많은 30명이었다. 총 오십. 한국에서는 용인대가 아니라면 저런 선수층을 가진 팀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겨우겨우 한체대 정도나 비벼볼 수 있을까?
그래서 기대가 됐다.
미야모토 신지 정도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선수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영은 웃었다.
“잘 왔어.”
“하하, 반겨줄 줄 알았어. 이 주간, 잘해보자.”
“그래. 아, 맞다. 신지. 너 졸업 아니야?”
신지의 나이는 지영보다 한 살 많다.
하지만 일본의 교육과정 나이를 보면 이제 19살이 되는 신지는 대학생이 되는 게 맞다. 그래서 그걸 물어보니 신지는 씩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이 훈련 끝나면 대학팀으로 바로 합류야.”
“……하하.”
신지의 집념 또한 대단하다.
인정. 이건 진짜 인정이다. 그래서 지영은 신지와 훈련할 때 정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신지가 돌아가자, 대화를 들은 지영의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쟤도 진짜 대단하네.”
“그런데 일본 유도협회 대응이 더 대단하다. 유망주를 키우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임효중과 황석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고등부 선수들에게 협회서 해주는 건 거의 없었다. 유망주들을 불러다가 그냥 합숙 훈련을 하는 정도? 당연히 연희고에도 선수를 보내라는 요청이 왔지만, 연희고는 청소년대표 합숙도 불참이다.
뭐 어쨌든 한국은 유망주에 대한 지원은 이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솔직히 국가의 지원보다는 알아서 실력을 키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일본은 유도 영웅을 전담으로 붙여서 전지훈련까지 보냈다.
“지영이 긴장 좀 해야겠는데?”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나만 긴장해? 신지가 있었던 학교면 아마 실력이 상당할 건데. 너희도 만만치 않을걸?”
“그래도 집중 마크는 너니까. 우리야 그냥 훈련하는 정도지. 하지만 넌 자존심이 걸렸으니까.”
“뭐, 그것도 그렇겠네.”
지영과 다시 한번 붙으려고 여기까지 온 신지. 그의 오만한 프라이드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연습이라도 지영을 이기려고 최선을 다할 거다. 신지의 실력을 생각하면 잘못했다가는 그냥 개쪽이었다.
지영은 여유롭던 마음을 당장에 버리고, 시합에 준하는 긴장감을 품은 채 막 시작된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선수는 많았다. 백 명에 육박하지만 청주유도회관이 아니라, 아예 연희고 실내 체육관에 훈련장을 마련해서 충분히 수용 가능했다.
경기장만 여덟 개 사이즈.
워낙에 대인원이라 훈련을 시작하니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냥 학교끼리 만나서 준비운동을 해도 긴장감이 피어나는데, 야나기까지 합류하자 긴장감은 배로 커졌다. 야나기는 일본의 명문이고, 이곳에 모인 비봉, 우석, 원광은 한국의 전통 있는 유도팀이다. 연희는 떠오르는 신흥강자고. 그러다 보니 이는 당연히 자존심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20분간의 몸풀기.
그리고 익히기. 익히기는 짧게 10분으로 잡았다.
이어서 바로 자유 연습 돌입이었다.
지영은 누구와 잡을까 잠시 고민하는 중인데 누가 뒤에서 툭 쳤다. 몸을 돌려보니 일본의 국기를 마크로 달고 있는 선수가 보였다. 그런데…….
‘여자?’
신장은 자신보다 조금 작다.
176 정도?
물론 여자치고는 엄청 큰 신장이긴 하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턱까지 내려오는 단발에, 화장을 했으면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예쁘장한 외모였다. 쌍꺼풀이 없는 게 단아함을 키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떡 벌어진 어깨를 비롯한 건장한 체격은 외모보다 신체가 먼저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
깜빡, 깜빡.
손가락 하나만 곱게 펴서 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이 여선수를 보며 지영은 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 선수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영과 실력이 비슷하려면 정말 최소에 최소로 잡아도 현 국대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거다. 남자와 여자의 피지컬 차이 때문에 보통 여자 대표선수들도 고1, 고2, 중3 선수들을 잡는다. 그런데 비슷한 체급에 입상권 선수라면 거의 남자가 이겼다.
피지컬에서 상대가 안 되니 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지영이 좀 망설이는데, 신지가 다가왔다.
“현 일본 국가대표야. 나보다 훨씬 더 천재 소리 듣는.”
“아, 그래?”
“응. 여기 올 때부터 지영 너와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벼르고 있었거든. 미안하지만 한번 잡아줘.”
“음…… 알았어.”
그래, 합동훈련이 왜 합동훈련이겠나.
함께하는 훈련이라서 그런 말이 붙었고, 아무리 여자 선수라고 해도 자신의 실력향상을 위해 이렇게 부탁하는데, 그걸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도 먼 타국까지 날아온 선수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고마워. 아, 그리고 충고 하나 해줄게.”
“충고?”
“조심하는 게 좋아. 히카리는 타이머가 울리면, 돌거든.”
“…….”
그러곤 신지가 떠났다.
지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히카리라 불린 여자를 바라봤다. 눈매 때문인지 세상 순한 느낌인데, 돈다?
‘뭐, 잡아보면 알겠지.’
짝을 잡으라고 준 3분이 지나고. 경량급이 먼저 안쪽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그 무리의 틈에는 지영도 있었다. 먼저 앞서 걷는 히카리의 등판을 보며 지영은 그녀의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5분 타이머가 울리는 순간, 신지가 왜 충고를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 * *
안자이 히카리.
혜성처럼 등장해, 일본 여자 유도계를 평정한 안자이 히카리는 현 –70 일본 유도 국가대표다. 그녀는 중학교 때 –57을 시작으로 고1 때 –63, 그리고 지금은 –70을 제패하고 세계대회에서도 입상 중인 스타급 선수였다. 미야모토 신지도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안자이 히카리가 유도계에선 훨씬 더 유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유명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저돌적인 스타일에서 피어나는 투지였다.
“후, 후우……!”
깃을 잡자마자 털고, 당겨서 안 뒤축을 치고, 순식간에 들어와서 목깃을 잡고 당겨서 바로 허벅다리를 찬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스타일. 물론 거기에 지영이 넘어가지는 않았다. 아무리 천재 소리 듣는 선수라고 해도, 지영은 남자고 히카리는 여자였다. 그래서 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기술 하나하나가 분명 위협적이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만했다. 아니, 심지어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지영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미치도록 저돌적인 이 스타일 때문이었다. 이게 원래 스타일인지, 아니면 전술로 들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마치, 30초쯤 남겨 두고 지고 있을 때나 쓸 전술이었다.
게다가 무슨 놈의 눈빛이…… 이건 뭐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좋게 말하면 투지가 넘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승리에 미친 사람의 눈빛이었다.
이런 짐승 같은 스타일을 가진 선수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예쁘장하던 선수가 이러니, 괴리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아무리 이렇게 덤벼든다고 해도…… 히카리는 생물학적으로 여자. 그리고 지영은 생물학적으로 남자고, 이 차이로 인한 피지컬의 급 또한 너무 달랐다.
‘허벅다리, 업어치기 둘 다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해.’
거기에 힘도 상당했다.
이 정도면 적어도 60㎏ 남자 선수들이 내는 힘에 비견해도 될 만한 힘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과 힘이 뛰어나도, 상대는 지영이었다. 일본 유도의 미래라고 불리며 특별관리를 받는 미야모토 신지를 연장 접전 끝에 결국엔 한판으로 던져버린, 한국 유도계의 차세대 에이스인 강지영이다.
‘잘하네.’
하지만.
히카리가 비록 신지보다도 유명한 선수라고는 하나, 툭툭! 소매를 뜯자 재차 달려드는 상태에서 유연하게 들어간 빗당겨치기는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 전술을 바꿔 이번엔 아주 차분한 기색으로 다시 덤벼드는 히카리를 보며 지영은 왜 이 여자가 천재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전술을 바꾼다고 해도, 지영의 상대는 아니었다.
흥미는 딱 여기까지.
지영의 흥미는 근처에서 우석고 선수를 시원하게 한판 던지고 다가오는 일본 선수에게 자연히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