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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68화 (6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68화

68화. 예능 촬영(3)

점심 메뉴는 해물찜이었다.

제주도의 해산물을 어마어마하게 때려 넣고, 토종닭을 넣어 푹 고아낸 해물찜은 그냥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지영도, 친구들도, 그리고 선배님들도 전부 아주 맛있게 먹었다. 한유진은 올라오면서 말했던 것처럼, 지영을 엄청 챙겼다.

“야 무슨 엄마냐?”

“아 제 팬이라잖아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이 누나가 챙겨야지!”

“누나는 무슨 누나야! 너 그러다 큰일 난다?”

“괜찮아요! 이미 욕먹을 각오 끝났거든요!”

“어휴, 저 막무가내 진짜.”

그렇게 장세리의 타박을 받을 정도로 챙겨줘서 지영은 손이 많이 가는 해물찜을 정말……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소란 속에서 점심을 다 먹고 잠시 소화를 시키고 나자 장세리가 다시 PD에게 물었다.

“이제 뭐 해요?”

“이제 숙소로 이동해서 쉴 겁니다.”

“쉰다고? 진짜?”

“네.”

단호한 PD의 대답에 장세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촬영이 편하니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선배님들이 전부 똑같았다.

“아 방송쟁이들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맞아요, 언니. 저렇게 말해놓고 또 언제 뭘 시킬지 몰라…….”

맞아맞아…….

선배님들은 전부 두 사람의 말에 동의했다. 이미 동화가 끝난 이성진도 똑같이 PD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좁히고 있었고, 대체적으로 분위기 전체가 그랬다. 하지만 지영은 그냥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전 인터뷰를 하러 충주까지 와서 거짓말을 하고 가진 않았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 없습니다.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이봐이봐. 뭐 있네!”

“하하. 자, 그럼 숙소로 이동하겠습니다.”

PD가 먼저 일어나 자리의 끝을 알렸다.

그러자 다들 짐을 챙겨 주섬주섬 일어났다. 지영은 일어나면서 궁금했던 걸 물었다.

“누나. 스태프분들은 식사 안 해요?”

“제작진? 숙소에 아마 밥차 준비 중일 거야.”

“아, 밥차……. 밥차 맛있다던데.”

“맛있지. 가끔 나도 뺏어 먹고 그래. 으흐흐.”

한유진다운 능글맞은 웃음에 지영은 이번에도 그냥 뭐, 웃어주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짐을 챙겨 나와 카페에서 짐을 챙기고, 차량 두 대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도 제주도의 맑은 바닷가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다.

배정받은 숙소에 짐을 넣어놓자.

“아, 졸리다…….”

배가 터지도록 먹은 이성진이 벽에 등을 기대고 스르륵 무너졌다. 그리고 다들 비슷했다.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폰을 꺼내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뭐 워낙 삭막한 인맥이라서 텅텅 비어 있었다.

카메라맨도 없고 해서, 지영은 그대로 누웠다.

많이 먹어서 그런지 잠이 솔솔 왔다.

“좀 자둘까? 이따가 뭐 할지도 모르는데.”

강한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분명 오후는 휴식이라고 했지만, 혹시 또 모르니까 체력을 보충해 두기로 했다. 그렇게 짧게 잠에 빠졌다가, 소란스러움이 느껴져 잠에서 다시 깼다.

30분쯤 지나 있었다.

지영은 화장실에 갔다가 밖으로 나가봤다. 그러자 공터에서 족구를 하는 선배님들이 보였다.

쉰다고 했는데?

“야! 그걸 못 넘기면 어떡하냐!”

“언니 죄송요!”

“아 곽현정! 그냥 넘기라고오!”

“언니 죄송요!”

지영은 가만히 앉아서 그걸 보다가, 아.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분량 뽑는 거구나.’

쓰일지 안 쓰일지 모르지만 일단은 한다.

지영은 저게 진짜 프로구나 싶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나이들이 적지 않은 선배님이었다. 현역은 딱 두 분이고, 그마저도 제법 나이가 있었다. 그러니 아마 자신들보다 더 피곤할 거다. 그런데도 저렇게 방송 분량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니 프로정신이 엿보였다.

멋있었다.

은퇴하고도, 저런 프로정신을 보인다는 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프로는 돈을 받고, 받은 돈만큼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게 프로라고 언제고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지영이 생각하는 프로도 그런 느낌이었다.

지영이 나온 걸 봤는지 임수진이 쫄쫄 다가왔다.

“어, 잤어요?”

“네. 죄송합니다. 많이 지워졌어요?”

“아니요. 조금만 손보면 될 것 같아요. 저기 벤치에 앉아 있어요.”

“네.”

말 잘 듣는 얌전한 아이처럼 대답한 지영은 그녀가 가리킨 벤치로 가서 앉았다. 잠시 뒤 임수진이 메이크업 박스를 가져와 지영의 얼굴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이것도 세 번째라고 이제는 알아서 눈을 얌전히 감았다.

전문가는 역시 금방 메이크업을 수정해줬다. 자느라 눌린 머리도 물을 뿌린 뒤 손을 넣어 다시 볼륨을 살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무슨 마법 같았다.

“됐어요. 옷은, 음. 뭐 안 묻히고 잘 먹었네요.”

“조심히 먹었어요. 뭐 묻혔다고 혼날까 봐.”

“어머, 혼나다니요? 지영 씨 혼냈다가 뭔 소리를 들으려고?”

“에이, 누가 그래요?”

“여기 팬들이. 참, 지영 씨 사인 있어요?”

“네? 사인이요? 없는데요?”

“그럼 하나 얼른 만들어놔요. 지영 씨 사인받으려고 대기 중인 스태프 적어도 수십이니까.”

“…….”

사인. 사인이란 말에 지영의 입은 합죽이가 됐다.

사인은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이 연예인이란 자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보통 사인이 생기지만 지영은 이제 고작 고1. 회귀 전에도 사인할 땐 대충 이름만 썼던 지영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 연예인이란 자각 없었죠?”

“아니. 전 연예인이 아닌데요?”

“그럼 손홍민 선수가 사인해 주는 건요?”

“……이해했습니다.”

“스포츠 스타들도 사인은 요즘 필수잖아요. 그러니 하나 적당히 만들어둬요.”

“네.”

이런 조언도 고마웠다.

임수진이 돌아가고, 지영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한유진의 목소리였다.

“네, 누나.”

“깼어? 다들 곤히 자서 안 깨우고 우리끼리 노는 중인데, 낄래?”

“어…… 저 볼은 잘 못 차서요.”

“에이, 얘보단 낫겠지!”

아 언니!

곽현정이 한유진의 말에 매달리며 투정을 부렸다.

그걸 보면서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카메라가 이렇게 많은데도 선배님들의 저런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여기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언니 반칙이죠!”

“왜! 거기 남자보다 잘하는 은아 네가 있는데?”

“그래도요! 한 명 더 나오면 모를까 절대 반대!”

“아 은아 너 진짜. 너 진짜 아, 진짜 와…….”

그 대화를 들으면서 지영은 저는 그냥 구경할게요. 하고 말한 뒤 뒤로 빠졌다. 지영이 뒤로 빠지자 어느새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그래? 이거 장 보는 내기거든. 누나 지면 너도 같이 가야 된다? 알았지?”

“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족구.

10분쯤 지나 강한결이 나왔다.

“깼어?”

“응. 아우, 세상모르고 잤다. 애들 깨웠으니까 다 나올 거야.”

“오후는 휴식이래.”

“그래? 그럼 저 게임은 뭔데?”

“방송 분량 겸, 장보기 내기.”

“아아.”

쪼르르.

강한결을 담당해주는 분이 다가와 지영처럼 메이크업을 고쳐줬다. 친구들이 속속 나와서 마이크와 메이크업을 수정받았다. 그사이 족구 내기의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볼을 잘 다루는 핸드볼 선수 김은아가 있는 팀의 승리였다.

“아아, 아아…….”

“아우 곽현정 진짜!”

“언니 죄송요! 대신 이따가 짐 제가 다 들게요!”

“됐어! 네가 퍽이나 들겠다! 애들 데리고 갈 거야!”

장세리는 매달리는 곽현정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잘들 잤어?”

“네, 죄송합니다. 잠깐 잔다는 게 그만.”

“아니야. 한창 잘 먹고 잘 쉬어야 할 시기인데 뭐. 오후는 뭐 별거 없다니까 주변 돌아다니면서 좀 놀아. 그래야 카메라맨들이 따라다니면서 분량 조금이라도 챙기지.”

“네.”

강한결이 대표로 대답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됐다니까. 그럼 우리는 좀 쉴 테니까, 이후엔 너네한테 맡길게. 자.”

바통 터치.

그렇게 말한 장세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강한결이 지영을 바라보며 멀뚱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영아. 이제 뭐 할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냥, 너 하는 거 하려고.”

“……뭐야.”

어이가 없어 지영이 웃자, 강한결이 씩 웃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 리더는 너잖아? 우리 프로그램을 나오게 해줬으니까.”

“너까지 놀리기냐?”

“그냥 하루만 해. 자, 뭐 할까 이제?”

“……바다나 가자. 제주도까지 왔는데 바다는 한번 봐야지.”

“오케이.”

안 그래도 사실 바다는 가볼 생각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는데, 안 가보는 건 좀 손해 같아서였다. 지영은 어차피 하루 리더를 하기로 했으니 총대를 메고 제작진 측으로 향했다. 그러자 회의를 하던 메인 PD 반은영이 지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지영 씨. 왜요?”

“저희, 바다 좀 갔다 오려고 하는데요. 가도 될까요?”

“바다? 그럼요. 가야죠, 바다.”

오히려 반은영이 더 좋아해서 무안해진 지영이 어색하게 웃자,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안 그래도 바다 뷰가 좀 필요하긴 했어요. 음음, 연희고 아이돌과 바다. 잘 어울리네요. 일단 카메라랑 작가만 먼저 붙여줄게요. 지금 출발해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지영이 친구들을 향해 손짓하면서 걷기 시작하자 바로 그 주변으로 다가와 착착 서는 친구들. 어느새 그런 연희고 아이돌을 앞에서 찍는 카메라가 등장했다. 사사삭 오더니, 무릎을 꿇고 끝에서부터 훑어가는데, 내색을 안 하려고 했지만 엄청 민망했다.

“큼큼.”

결국 황석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렸고, 지영의 고개는 조금씩 내려왔다.

오히려 선배님들이 빠지자, 더욱 민망해졌다. 그래서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걸어 카메라를 뒤로 두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걸 두고 볼 제작진이 아니었다.

“잠깐잠깐! 천천히, 천천히 걸어주세요.”

언제 따라왔지?

민망해서 빨리 걷기 시작하자 언제 따라왔는지 송보경이 곧장 제지를 해왔다.

“네?”

“천천히, 천천히 좀요. 걷는 컷 좀 따게요.”

“……네.”

이런 것도 전부…… 사전에 준비를 했던 걸까?

맞다.

지영은 모르겠지만 그가 출연 제안을 수락한 뒤, 연출과 작가들이 모여서 연희고 아이돌을 어떻게 비출지 아주 심도 있게 회의에 들어갔다. 아이돌처럼 잘생겼지만 본업은 엘리트 체육을 하는 학생들이라 프로그램 취지와도 맞아서 부담도 없었고, 그래서 제작진은 이들을 제대로 조명할 준비를 했다.

실력과 인성, 외모.

그리고 중점을 둔 건 이 셋 중에서 바로 세 번째다.

바로, 외모.

즉, 외모를 바탕으로 영상미를 살리기로 작정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사실 등장부터 이미 충분히 공을 들여 담던 중인데, 지영과 친구들이 카메라 내성이 없어 도망가려고 하자 얼른 붙잡은 거다.

결국 지영은 무슨 모델의 워킹, 영화의 등장 장면을 잡는 것처럼 천천히, 한참을 걸어서야 바다에 도착했다.

‘쉽지 않다, 예능…….’

고작 여기까지 오는 데도 진이 빠졌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면서요!”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은 이성진의 항변에 송보경이 눈을 끔뻑이더니, 뒤이어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걷기만 했잖아요?”

“이게 무슨 그냥 걷기만 한 거예요? 저 앞에서 여까지 오는 데 30분이나 걸렸는데! 횡단보도도 몇 번이나 다시 건너고!”

“아, 그것 때문에 삐지셨구나?”

“안 삐졌거든요! 와, 거짓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면서!”

“호호, 다 끝났어요. 진짜. 이제 마음껏 놀아도 돼요.”

“이제 와서요? 이미 지쳤는데?”

“한창 젊잖아요? 운동선수라 체력도 좋을 거고.”

이성진이 말로 밀린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여기서 숙소까지는 10분 거리다. 지영의 걸음이면 진짜 금방 도달할 거리인데 30분이 넘게 걸린 이유는, 걷는 컷을 따겠다며 둘, 혼자, 셋이서, 넷이서, 전체가 걷고 또다시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걷는 거면 문제가 없겠는데 표정도 신경 써야 했다.

이성진 같은 경우는 웃어야 했다. 그것도 개구지게. 임효중의 경우는 시원하게, 강한결의 경우는 담담하게, 황석은 반대로 사색에 빠진 모습을 보여야 했다. 지영은? 무표정으로 걸어야 했다.

그래서 이 걷는 모습 모습을 담는데 진이 쭉 빠졌다.

그래도 잠시 뒤, 적당히 기력을 회복하고 흩어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바다는 정말 오랜만에 와서 지영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파도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쉬었다.

“휴, 이제 좀 낫네.”

옆에서 같이 꼼짝도 안 한 황석의 말에 지영은 바다를 바라본 채 툭 물었다.

“힘들어?”

“조금. 그래도 다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 이제 힘든 거 다 끝났겠지. 저녁 먹고, 그리고 모닥불 피워놓고 얘기하고, 이런 거 지나가면 괜찮을 거야.”

“그렇겠지? 근데 진짜 방송 쉽지 않다. 나 촬영 때보다 더 떨려. 그건 주어진 것만 하면 되는데, 이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 굳이 하려고 하지 말자. 알아서 해줄 거야, 아까처럼.”

“응.”

지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방송이라는 게 그렇듯,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긴장한 채 돌아가서 장을 보고, 저녁을 여행의 꽃인 바비큐를 해 먹으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조였던 긴장을 그쯤에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좀 더 긴장하고 있었어야 했나?

풀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성진이 사고를 터뜨렸다.

그것도 거하다 못해, 아주 성대하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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