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63화
63화. 새해 휴가(2)
2주.
길다고 하겠지만 지금까지 근 두 달을 쉬지 않고 달려온 선수가 재충전을 완벽하게 끝내기에는 그리 긴 시간은 또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애매하다. 어떤 선수는 짧다고 할 거고, 어떤 선수는 충분하다고 할, 개인마다 느끼는 게 다른 시간일 거다.
이런 휴가 동안, 지영과 친구들은 휴가를 즐기는 방식이 전부 달랐다.
임효중의 경우 거의 이성진과 붙어 있다. 실제로 이성진이 임효중의 집에서 휴가를 보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둘은 주로 PC방이나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황석의 경우는 가족이나, 한은정과 보냈다.
강한결은 며칠 쉬고, 아마 이번에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 거다.
요즘 강한결의 취미는 아마도, 여행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임대성 코치에게 배운 캠핑도 한다.
가족에게 짐을 옮겨달라고 해 거기서 며칠이고 있다가 오는, 지영이 생각하는 휴식과는 전혀 다른 휴식을 즐기는 게 강한결이었다.
그럼 지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지영은 애초에 휴가 스케줄을 아무것도 짜놓지 않았다. 지영은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진짜 휴식이라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그때그때 생기는 일을 처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어떤 계획도 없는, 그런 휴가를 지영은 선호했다. 그래야 머리도, 몸도, 가능한 쉬어주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이선영을 만나고 집에 돌아온 지영은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전국체전이 끝나고부터, 여유라고는 거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성적이 떨어지지 않게 정말 오랜만에 공부까지 하면서 보냈으니 누워 있는 시간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서 있는 시간이 몇 배나 많았다.
아직 육체가 젊고, 정신력 또한 남다르고, 목표가 워낙에 확고해 버틸 수 있던 거지, 이런 스케줄을 몇 달이고 지속하는 건 성인도 솔직히 힘들었다.
그래서 그 힘든 시간을 견뎠으니 지영은 아무런 스케줄도 잡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확인해 볼 건 있었다.
바로, 주식이었다.
오랜만에 주식 앱을 열어 어떻게 됐나 확인해 봤더니, 그사이 주식은 훨씬 더 올라 있었다. 임상시험은 보통 몇 년이나 걸릴 정도로 정말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워낙에 상황이 특수해 벌써 2차가 끝나가고 있단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 지영이었다.
실험의 목적은 하나.
바이러스가 인체에 해를 주지 않고, 코로나만 궤멸시킬 수 있는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인류가 이 실험에 집중하는 이유 또한 하나다. 워낙에 많은 나라가 아직도,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어디서 몇백이 발생했네, 어느 나라의 전체 감염자가 몇십만, 몇백만을 넘겼네 하는 기사를 봐도 이제는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무덤덤해졌다고, 그게 위협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직도 거리는 마스크의 세상이고, 사람 간에 뜨거운 환영도 재개되지 못했다.
그렇게 의약을 다루는 세계의 많은 기관들이 움직여 아주 빠르게 테스트를 점검했다. 코로나로 인해 생명이 위중한 사람들에게도 벌써 투약되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의 환자들, 그리고 환자의 가족들이 먼저 투약을 해달라고 요청했으니, 문제 될 것도 없단 말이 덧붙어 있었다.
이런 기사들은, 그 자체로 베가 제약의 주가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기사가 올라온다. 세계적으로 따지면 천 단위는 가뿐히 넘고 있다. 그래서 지영이 처음 넣었던 돈은, 벌써 몇 배가 그 수치가 올라서 지금은 거의 3천만 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당장 이 돈이면 일단 집에 있는 빚을 갚을 수는 있지만 지영은 아직 뺄 생각이 없었다.
요즘 서민치고 몇천씩 빚이 없는 집도 없고, 애초에 이자도 아직 어머니가 부담하는 게 가능한데 굳이 그걸 갚겠다고 황금알을 쉬지 않고 낳아주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건 미련하다 못해, 미친 짓이었다.
‘잘되고 있구나.’
이걸 팔 시점은 나중에 김지영 여사님과 의논을 해봐야겠지만, 적어도 몇 달은 더 들고 있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주식을 확인하고 나자, 지영은 이제는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눈을 감고, 낮잠을 청했다. 아직도 시합의 여파가 남아 있는 몸은 지영이 눈을 감고 잘 준비를 하자 옳다구나! 하고는 그의 의식을 확 낚아채 버렸고, 지영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정신을 맡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두 시간쯤 지나서 저녁 5시가 되기 전이었다.
지영은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 뒤,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어두웠다. 오늘은 21년의 마지막 날이고, 그래서 재래시장에도 새해 음식을 하시는 어머님들의 방문이 많아 어머니도 이따가 8시는 되어야 일을 마치실 게 분명해서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밥이라도 해놓자는 생각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밥솥에 남은 찬밥을 통에 덜어 놓고, 쌀을 씻는 지영.
그래도 회귀 전에 밥은 꽤 자주 했었던지라, 그가 쌀을 씻는 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요리는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쪽으로는 워낙에 꽝이라, 예전에 한 번 고기를 괴상한 맛으로 볶아보고는 이후 요리는 손절한 지영이었다.
그렇게 밥을 안치고 지영은 거실로 가 TV를 틀고는 소파에 앉았다.
TV를 틀기 무섭게, 코로나 관련 뉴스가 나왔다.
영국의 어느 노부부가 코로나로 인해 사경을 헤매다가, 치료제 베가를 투여받고는 24시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이 뉴스, 기억에 있던 뉴스였다.
원래 회귀 전 이 당시 지영은 병원에 있었다. 1차 수술이 끝나고, 2차 수술을 앞두고 꿈도 희망도 없이 인형처럼 멍하니 병원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 뉴스가 기억에 남는 건, 그의 딸과 아들이 너무나 헌신적으로 두 분을 살폈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올라오며 보여준 그 절절함을 기억해서였다.
더불어, 그때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도 저렇게 살아났으면 싶었지.”
저 노부부와 가족에게 베가 제약에서 내놓은 신약은 희망을 넘어, 기적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영은 그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무의식중에 소망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영은 다시 수술을 받았고, 긴 재활 끝에 ‘겨우’ 걸을 수 있게 됐으니까.
그래서 저 뉴스는 지영의 기억에도 있는 뉴스였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지영은 진심으로 저 노부부에게 일어난 기적에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다음 뉴스도 코로나, 그다음 뉴스도 코로나라 지영은 채널을 돌려 예능을 찾았다.
마침, 좀 노는 언니들 재방송이 나와 거기에 채널을 고정한 지영은 일어나 찬장에 가서 육포 하나를 들고 왔다.
어머니의 유일한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육포였다.
K사의 육포로, 언젠가 듣기로는 어머니는 이 육포가 아버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유일하게 집에서 마를 날이 없는 간식이 바로 이 육포였다. 그중 지영이 가져온 건 파지였다.
네모로 자르기 위해 주변을 쳐내면서 남은 자투리로 구성된 파지 육포는 당연히 맛있었다. 애초에 정품과 똑같은 거라 맛의 차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육포를 뜯으며 지영은 좀 노는 언니들을 시청했다.
좀 노는 언니들.
20년 8월쯤부터 시작한, 지금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여자 운동선수들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친구들과 정말 즐겨봤던 예능 프로기도 했다.
특히 지영은 배구 선수 한유진이 좋았다.
특유의 허당미가 가끔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특히 뭔 요리를 만들겠다고 할 때가 제일 재밌었다.
“하하.”
지금도 스테이크를 해보겠다며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스테이크가 아니라 다태워쓰를 만들었다며 리더인 박세인에게 대차게 깨지고는 풀 죽어 있는 저런 모습도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한 30분쯤 보다 보니 예능이 끝났다.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다 보니 임스테이 재방송이 또 나와서, 지영은 거기에 채널을 고정하고는 지잉, 지잉 울리기 시작하는 폰을 확인했다. 강한결의 전화였다.
“어, 한결아.”
-바빠?
“아니, 바쁠 게 뭐 있어. 휴간데.”
-하하. 뭐 데이트라도 있나 했지.
“놀리냐?”
친구의 실없는 농담에 지영이 장난으로 톡 쏘아붙이자, 미안, 이라는 장난기 어린 사과가 바로 돌아왔다.
“어쩐 일인데?”
-우리 방송 건, 코치님한테 허락 맡았고. 코치님이 학교 측에다가 전달해서 허락받으셨대. 그거 말해주려고.
“아 그래? 톡으로 말해도 되는데.”
-데이트 중이면 못 볼 수도 있잖아?
“……오늘 컨셉 뭐지?”
강한결은 좀 노는 언니들에게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지, 평소와는 다르게 장난기가 넘쳤다. 그리고 그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게. 평소 팬이었던 분들 볼 수 있어서 내가 너무 들떴네.
“오랜만에 너 인간미 넘치는 모습 봐서 그런가? 기분은 괜찮은데?”
-그러냐. 고맙다. 그분들 꼭 한번 보고 싶었거든.
“고맙기는.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아직 연락받기 전이거든? 연락 오면 촬영 날짜는 우리 휴가 기간 내에 잡으면 되지?”
-응, 아마도? 훈련 들어가면 아무래도 빼기 힘드니까. 참, 우리 휴가 끝나면 그다음 주에 또 전지훈련 몇 팀 들어온대.
오, 합동훈련이다.
지영이 제일 좋아하는 훈련 방식이었다.
“진짜? 어디어디 오는데?”
-지금 논의 중이라는데, 아마 비봉이랑, 우석, 그리고 원광 정도?
“강팀이네?”
-강팀이지.
전부 전통이 있는 강팀이었다.
비봉은 장대호가 있는 학교로, 전통적으로 헤비급이 정말 강한 팀이다. 지금도 90부터 +100까지, 입상 선수가 다섯이나 있고, 그래서 무차별 대회를 석권 중인 팀이었다.
우석과 원광은 둘 다 전북에 있는 팀이었다.
우석은 전주, 원광은 익산. 한동안 침체기였다가,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는 팀이었다. 우석과 원광은 비봉처럼 한쪽에 치우친 강팀은 아니지만, 밸런스가 아주 좋은 팀이라 단체전 8강, 4강 단골팀이기도 했다.
“재밌겠다.”
-이주 합숙이라니까, 충분히 즐겨라. 방학 동안 합동훈련은 그때가 마지막일 것 같으니까.
“어 진짜? 더 안 받는대?”
-응. 스케줄표 봤는데, 2월 말까지 합동훈련은 그게 끝이었어. 대신 외부훈련은 몇 번 나갈 것 같고.
“그건 다행이네.”
겨울은 실력을 올리기 최고로 좋은 시기였다.
이때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이때 실력에 안주해 오히려 퇴보하는 선수도 나온다. 게다가 3학년이 빠져서, 이제 유망주들이 대거 치고 올라오는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고2 때, 혹은 고1 때 성적이 없던 선수들이 갑자기 입상권으로 올라가 체급의 새로운 강자가 되는 것도, 이 시기에 결정이 된다.
그만큼 중요한 시기가 바로 겨울 비시즌이었다.
-참, 애들은 1월 4일 이후라면 다 스케줄 괜찮다니까, 연락 오면 그 이후로 네가 알아서 잡고 전달해 줘.
“그래? 알았어.”
-그럼 고생해 주고. 휴가 잘 보내라.
“응.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친구.”
-응, 너도 복 많이 받아.
그렇게 전화를 끊고, 지영은 통화 중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혹시 좀 노는 언니들 제작진 측인가 했는데, 이상한 대출 메시지였다. 폰을 내려놓고 다시 TV를 보는 지영.
막 지영과 친구들이 게임을 시작하려고 할 때쯤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지영은 바로 가서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받았다.
“에구, 고마워. 아들 배고프지?”
“네. 조금?”
“고기 볶아줄까 하다가 입술 때문에 못 먹을 것 같아서, 육회 사 왔어. 엄마가 밥 빨리하고 양념장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밥은 해놨어요. 그리고 TV 보면서 육포 먹어서 괜찮으니까 천천히 하세요.”
“그래? 그럼 엄마 옷만 갈아입고 할게?”
“하하, 네.”
그게 뭔 대수라고 허락을 받으시나.
지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얼른 짐을 주방에 놓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지영은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자, 조금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채소 장사를 하시는 어머니는 따뜻한 곳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 훈훈한 곳에 채소를 둘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같은 대목엔 호객행위도 해야 해서, 아마 밖에서 종일 서 계셨을 거다. 그래서 볼이 겨울바람에 빨갛게 익었고, 손도 여기저기 흉터투성이였다.
그게 안쓰럽고, 미안했다.
지영은 현실적으로 어머니가 일을 안 하게 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나이도 나이지만, 한평생 일을 해오신 분이라 쉬는 법을 잘 모르시는 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주식으로 진짜 어마어마한 대박이 나도, 갑자기 지영이 로또가 되어 수십억을 벌어도,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진 않으실 거다.
평생 살아온 방식을, 돈이 생겼다고 그만둘 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이해도 하지만 지켜보는 건 또 다른 곤욕이었다. 그리고 지영은 이 문제가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계속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건 어머니의 장사는 제법 잘되고, 몸은 고단해도 지영이 회귀 전이던 스물일곱까지 크게 어디 아픈 곳이 없으셨다는 점이었다.
잠시 뒤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신 어머니가 얼른 저녁을 준비했다.
뜨거운 건 못 먹으니, 어제 미리 끓여 놓은 뒤 냉장고에 넣어뒀던 콩나물국과 나물, 그리고 육회가 저녁이었다.
새해 전야.
두 모자의 저녁은 그렇게 평상시랑 큰 차이점은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불쑥 든 생각에 밥을 먹다 말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응? 왜 아들?”
“내일 가게 안 여시죠?”
“응, 내일은 쉬지.”
내일은 열어봐야 어차피 시장을 찾는 사람이 없으니, 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럼 내일 아들이랑 데이트할래요?”
“어? 어어, 응?”
“아들이랑 데이트해요, 내일.”
어머니는 지영의 말에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결국 몇 번이나 더 권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몸을 편하게 해드릴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따뜻해지게 해주는 게, 지영은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생엔 끝까지 무뚝뚝한 아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은 엄마에게 따뜻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