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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61화 (6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61화

61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6)

지영은 병원으로 향하지 않았다.

의료실로 바로 향하지도 않았다.

이유는 하나.

친구들 경기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피는 멎어서 의료진은 지영의 의사를 이해하고, 기다려 줬다. 다만 그래도 기본적인 처치는 받았다.

후.

땀과 피로 범벅이 된 흰 도복을 벗고, 처치를 받는 지영의 눈에 매트 위에 흩뿌려진 피와 땀을 닦아낸 뒤에야 입장하는 임효중이 보였다.

“임효…… 끄응.”

파이팅을 외치려고 했는데, 그사이 몸이 식으면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울을 받아 슬쩍 확인했더니 정말 제대로 찢어진 게 보였다.

‘시합 중에 입술을 깨문 것까지 같이 겹쳤나 보네.’

아주 너덜너덜, 걸레가 되기 직전이라 이거 꽤 오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지영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런 부상은 유도선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그나마 좀 양호한 부상이었다. 적어도 뼈나 인대가 다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

시합이 시작됐다.

지영은 정신을 차리고는 거즈를 물고, 이성진이 가져다준 타월을 몸에 두른 뒤 그의 옆으로 갔다. 강한결과 황석은 곧바로 시합이라, 다들 입장석으로 이동한 뒤라 이성진 혼자였다.

“임효중 파이팅! 어, 입은? 병원 안 갔어?”

“끝나고 가려고.”

“하여간, 쯔쯔.”

혀를 찬 이성진은 그래도 나중엔 씩 웃으며 금메달 축하해! 하고 축하를 해줬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여 그 축하를 받고는 친구의 시합에 집중했다.

임효중의 상대도 일본 선수였다.

이름은 쿠도 신이치.

한국으로 따지면 이제 대학교 1학년.

즉, 이 대회 나이 제한 커트라인에 걸친 선수였다. 쿠도 신이치는 피지컬이 이미 완성된 선수였고, 미야모토 신지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신지는 전형적인 도사 유도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쿠도 신이치는 도그파이터, 즉 개싸움 스타일이었다. 이게 뭔 뜻이냐면…… 진짜 시합 스타일이 지저분하단 뜻이었다.

“아, 저 새끼 시합 더럽게 하네.”

“…….”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입안에 찬 피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 아니라, 스타일이 진짜 더러웠다. 특히 도복을 잡은 손을 말아쥐어, 손가락을 교묘하게 꺾는 모습을 보였다. 심판을 등지고 있어 반칙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영과 이성진의 눈에는 그게 아주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리고 마치 불도저처럼 품으로 파고들어, 빡빡 밀은 머리로 상대를 가슴이나 머리를 찍어 누른다.

머리로 머리를 비비면?

아프다.

유도선수들이 머리를 빡빡 미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매트에 머리가 비벼지면 머리카락이 꼬이고, 머리카락이 꼬인 상태에서 다시 비벼지면, 그게 드럽게 아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날엔 머리를 정말 짧게 잘랐었다. 아니, 자르는 게 아니라 거의 밀어버렸었다. 빡빡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길게 기르지도 않지만, 삭발도 아닌 적당함.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런 이유로 아프지는 않다. 그냥 머리로 비비고 들어오는 그것 때문에 아프다. 임효중은 저런 도그파이터 스타일과의 경험이 별로 없었다. 애초에 허벅다리를 귀신처럼 차는 임효중에게 저렇게 달라붙는 건 그냥 나 좀 날려주소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임효중은 저런 스타일과 별로 붙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임효중은 당황한 기색은 아니었다.

애초에 황금세대에는 질 나쁜 선수와 붙어서 흥분하는 성격들이 아니었다. 이성진이 조금 움찔하지만, 그런 이성진을 말리는 임효중은 지영만큼이나 차분한 선수였다.

“걸렸다.”

그래서 타이밍을 보고, 딱 한 번.

허벅다리 걸기로 앞으로 데굴, 구르면서 멋지진 않지만 깔끔하게 한판을 따냈다. 그러곤 자신의 도복을 잡고 매달리는 쿠도 신이치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는 제 자리에 가서 섰다.

강지영 금, 임효중 금이 결정됐다.

그다음으로 들어간 건 강한결이고, 다섯 중에서 가장 완벽한 그 친구는 정말이지, 너무나 깔끔하게 소매꽂이로 1분 만에 한판을 따내고 나왔다.

금 2개에서 3개로 늘어났다.

마지막 황석.

장대호가 남았지만, 지영은 황석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입술치료를 받으러 갈 생각이었다.

“황석 파이팅! 지면 죽는다!”

후!

지영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특유의 루틴으로 시합에 들어간 황석은 이번에도 힘든 경기를 시작했다.

황석의 상대는 잘했다. 지영이 보기에도 확실히 청소년으로 보기 힘든 피지컬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엄청나게 차분하게 시합을 운용해 나가는데, 몇 번 맞붙은 걸 보니 확실히 쉽지 않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다 3분이 지났을 때 절반을 빼앗겼다.

“황석 파이팅!”

응원하고 싶지만 입술의 상처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황석의 파이팅을 계속 외쳤다. 그 효과가 있던 걸까? 30초 남겨 놓고, 밭다리 절반을 땄고, 10초 남겨두고는 깜짝 업어치기로 다시 절반을 따면서, 금메달을 땄다.

“우아아!”

황석답지 않은 포효, 그리고 지영이 있는 쪽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지영도 그에 환하게 웃었다.

“와아! 나이스! 황석 나이스!”

이성진은 그런 황석에게 아낌없이 환호했다. 자신은 비록 동메달이지만, 이미 끝난 시합에 연연하지 않고 친구들의 금메달을 축하해줬다. 지영은 황석이 오자, 손을 내밀었다.

짝!

금 4, 동 1.

황금세대의 첫 세계 대회는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

지영은 장대호의 경기는 보지 않고, 바로 치료를 받으러 갔다.

* * *

남자부는, 한국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하지만 다음 날 벌어진 시합은, 일본과 중국의 대결이었다. 여자부는 고작 네 명만 준결에 갔고, 결승에는 두 명만 올라갔다. 그리고 그나마 거기서 한 명만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남은 체급 전부가 중국과 일본의 결승전이었다.

세계에서도 일본 여자유도는 매우 강했다.

그리고 아시아권에서는 더욱 강했다. 이번 대회 여자부는, 일본의 잔치였다. 그렇게 이틀째 시합이 끝나고, 대표팀은 관광도 없이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시합이 연말이었기 때문에 곧장 한국으로 향한 거다.

한국에 도착해 해산식도 없이 그냥 헤어져서 청주로 돌아왔다.

청주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짐을 풀 겨를도 없이, 임대성 코치에게 인사만 하고 바로 씻고 다들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다 같이 모여 시합에 대한 복기를 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더럽게 피곤했다. 특히 지영은 마지막 시합을 정말 오랜만에 빡세게 해서, 온몸이 쑤시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침대에 누운 지영은, 몸 상태와는 다르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유는 하나.

“재밌었다…….”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정말 뿌듯하고, 가슴이 충만해지는 시합을 했다. 미야모토 신지. 신지는 성격도 괜찮은 친구였다. 그는 시상식이 끝나고 짐을 챙기는 지영에게 와서, 따로 축하도 해주고 연락처도 받아갔다.

한국은 보통 톡을 쓰지만, 일본은 라인을 쓴다면서 라인 아이디도 줬다.

도복을 입었을 때 그는 오만한 천재였다.

하지만 도복을 벗고, 유도장 밖에서는 유쾌한 친구였다. 마지막엔 같이 몇 번이나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그런 미야모토 신지와의 시합은, 지영을 아직도 들뜨게 했다. 기술, 체력, 시합 운용, 그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실력과 아주 비슷한 수준의 선수였다. 이 오만한 천재는 심지어 끈기도 있었다.

시합은 애초에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하다.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지영이 절반을 따고, 미야모토 신지가 절반을 따면서 그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똑같이 흘러갔다. 그러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신지는 아주 끈기 있게, 투지 넘치게 자신에게 맞부딪쳐 왔다.

지영은 그게 좋았다.

그게 정말 더없이 좋아서,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뛸 정도였다. 그래서 지영은 온몸이 쑤시고, 입술은 퉁퉁 부어올라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지만 그냥 마냥 좋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신지와의 생각하던 지영은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새벽 5시쯤이었다.

솔직히 더럽게 피곤했지만 항상 일어나던 시간이라 그런지 눈이 저절로 떠졌다.

좀 더 잘까 하다가, 지영은 그냥 일어났다. 시합이 끝나고는 무조건 휴식을 해주는 게 좋지만 가볍게, 아주 가볍게 몸을 예열해 주는 것도 좋았다.

눈을 비비고 일어난 지영은 폰을 확인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12월 31일.

21년의 마지막 날이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오자, 새벽의 적막함이 지영을 반겼다. 방학을 해서 그런지 더욱 조용한 느낌을 받으며 지영은 삐그덕거리는 관절을 풀었다. 시합의 여파는 아주 강렬하게 지영의 몸에 남았다.

특히 정말 오랜만에 한계까지 체력을 쓰며 시합을 했기 때문에 근육과 인대, 관절 등에 무리가 제법 간 상태였다.

몸을 풀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몸이 제일 엉망인 놈이, 안 쉬고 나오면 어떡해?”

목소리를 들어보니 강한결이다.

자고 일어나서 아주 깊이 잠긴 목소리지만 들으면 그냥 알 수 있었다.

“적당히 풀어두려고.”

지영은 부자연스러운 입술을 움직여 답하면서 스트레칭을 계속했다. 그러자 강한결이 옆으로 와 같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애들은?”

“몰라. 나 일어날 땐 조용했어.”

하긴. 일정이 진짜 빡빡하긴 했다.

시합이 끝나자마자 짐을 챙겼다. 여자부 선수들은 시합이 끝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한국까지 왔을 정도였다. 그렇게 타이트한 일정으로 움직였으니, 피로가 아주 온몸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그건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 상태지만 지영은 그냥 눈이 떠졌다.

“몸은 어때?”

“그냥 시합 통 정도지 뭐. 입술은 이따가 충주 가서 병원 가봐야 알겠고.”

“그래. 다행이다. 크게 찢어져서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강한결의 걱정에 지영은 웃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그러니까. 그런데 너도 참 독하다. 그렇게 강한 선수랑 붙는 게 좋냐?”

“응? 아아, 뭐.”

지영은 그냥 덤덤하게 넘겼다.

좋냐고? 좋고말고.

이상하게도 시합에 목말랐던 지영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신지는 정말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그 이상한 세계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질 수도 있었던 상대다. 승패를 점치기 힘든 상대.

마지막에 들어간 기술이 진짜 아름답게 먹혀들어 갔기에 자신이 이긴 거지, 그런 기술은 신지도 언제고 할 수 있었을 거다.

물론 운이 아니다.

이는 분명 자신의 실력으로 따낸 승리다.

그래서 더욱 좋은 거다.

그렇게 치열한 승부에서, 실력으로 이기기도 했다는 사실이.

“하여간 이상해. 그래도 보기는 좋더라. 너 시합 그렇게 즐겁게 하는 거 진짜 얼마 만에 본 건지 기억도 안 났는데. 이번엔 제대로 즐기는 것 같아서 괜히 내가 기분이 좋더라.”

“오랜만이긴 하지. 진짜 재밌긴 했어.”

지영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지영을 보던 강한결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거, 플랜 바꿔야겠는데?”

“아니, 그러지 말자. 어차피 신지랑은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거야.”

“어, 진짜 그래도 돼?”

“응.”

이 마음은 진짜였다.

플랜을 바꾸면 더 강한 상대와 만날 수 있지만, 지영은 이 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영이 회귀 전 해보지 못했던 것 중에는 평범한 학창 생활도 분명히 있었다. 그때에는 사고 이후, 어쩔 수 없이 자퇴했다.

치료 후 학업을 이어나간 황석과 임효중과는 달리 지영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추억이 많이 깃든 연희고, 이 공간에서 도망쳤다.

그래서 회귀 전 지영의 최종학력은 검정고시로 인한 고졸이었다.

강한 상대랑 붙는 시합도 중요하지만, 지영은 친구들과 지금을 즐기는 것도 중요했다. 지영은 그걸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둘은 트랙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다섯 바퀴를 걷고, 다섯 바퀴를 아주 천천히 조깅했다. 그렇게 몸을 풀며 강한결과 많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느낀 건, 진짜 어떻게 이런 완벽한 놈이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생각이 깊다 못해 아주 이건 뭐, 우물이었다.

절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진짜 넘사벽 천재였다.

그렇게 새벽 운동을 끝내고, 들어가 샤워를 했다.

7시쯤 일어난 친구들과 아침을 먹고, 임대성 코치에게 덕담을 들은 뒤 지영은 숙소를 나섰다. 오늘부터 이주 휴가. 방학이라 가능한 긴 휴가고, 아주 오랜만의 휴가였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고, 다음 주에 보자.”

“엉! 지영이 잘 가고! 결! 석이도 잘 가고!”

강한결과 이성진의 인사에 손을 흔들어준 뒤, 정문에서 불러둔 택시에 올라 터미널로 이동, 거기서 충주행 버스에 올랐다. 후끈하게 히터를 틀어놔서 그런지, 지영은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가기 무섭게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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