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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7화 (5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7화

57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2)

천재와 범재의 차이는 무얼까?

이 부분은 사실 누구도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들 거다.

아마,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가 전부 다를 테니까 말이다.

완벽한 정의가 없는 천재와 범재의 차이.

지영에게 누군가 물어본다면, 타고난 그릇의 차이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여기서 타고난 그릇이란 노력이라는 재능으로 빚어내는 실력을 그릇에 얼마만큼 담을 수 있나,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릇이 큰 사람은 10을 담을 거고, 그릇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5에서 6밖에 담지 못할 거다. 그 이상의 노력은 결국 그릇을 벗어나 밖으로 흘러버릴 테니까.

이런 차이.

지영은 이게 천재와 범재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영의 눈에 신지는, 천재였다.

‘아마, 일본 열도가 좁다고 느껴지겠지.’

미야모토 신지에 대해서는 영상으로 본 게 전부지만 지영은 그가 아마, 일본 고등부의 최강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더 좋았다. 미야모토 신지보다 더 잘하는 선수가 일본에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미야모토 신지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했던 신지의 얼굴에 표정이란 게 생겼다.

희미한 실소.

혹은.

조소.

그 미소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천재란 것들 중에는 꼭 저렇게 오만한 선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영은 그 오만함을 욕할 생각은 없었다.

‘뭐, 그 정도 실력은 있으니까.’

오만해도 될 거다.

저 정도면.

그렇게 시선을 교환하며 스쳐 지나간 미야모토 신지.

“제법 하는데?”

가장 먼저 시합을 끝내고 온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 쟤도 천재 소리 엄청 들었을걸?”

“그래 보인다. 너랑 비슷해.”

“나랑?”

“응. 크, 우리 지영이 드디어 라이벌 생기나요?”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정말 조금의 거짓도 없이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지영은 라이벌의 존재를 지극히 반기는 편이었다. 라이벌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목표가 된다. 라이벌이 있으면 그를 뛰어넘기 위해 실력 향상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동으로 따라온다.

한국 고교 유도계에서는 사실상 적수가 없었다.

이우진이 갑자기 몇 계단, 실력이 확 올라온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우진은 아직 지영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미야모토 신지는 비록 일본 선수지만, 실력은 거의 엇비슷한 느낌이 난다.

그게 지영은 솔직히 미치도록 좋았다.

‘혼자만 치트키를 써서 하는 게임은 재미가 없지.’

그것도 여럿이, 다 같이 하는 게임인데 치트키를 쓰는 건 그 자체로 반칙이다.

그런데 지영은 이미 일종의 치트키 하나를 치고, 유도계란 세상에 던져졌다. 애초에 재능도 재능이었는데 회귀란 것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기분 좋아 보인다?”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하여간 성격 이상해. 후후. 슬슬 준비해라. 너 차례 다 됐다.”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지영은 다시 스트레칭, 그리고 임효중을 잡고 부딪치기로 몸을 풀었다. 5분쯤 지나서 지영의 이름이 호명됐다. 지영은 바로 진행요원을 따라 입장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뒤, 매트에 올랐다.

첫판 상대는 홍콩 선수였다.

홍콩은 개최지라서 2명의 선수를 남자, 여자 체급에 내보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신장은 작고, 엄청나게 재빨라 보이는 선수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인사를 하는 중에 저 멀리, 미야모토 신지가 팔짱을 끼고 자신의 경기를 보는 게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리가 상당한데 신지가 마치 어디 실력 좀 볼까?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주 잘 느껴졌다.

‘재롱 좀 떨어봐라, 이건가?’

오만한 건 좋은데.

건방지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홍콩 선수가 지영의 가슴 깃을 잡았다. 그리고 툭툭 끌었는데, 지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힘이 부족하다. 작은 신장. 뼈대도 굵지 않은 느낌. 이런 선수는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힘이 부족하단 단점을 항상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반대로 손목을 휘감아 돌려 잡은 뒤, 툭 당겼다.

그러자 매가리 없이 쭉 끌려왔다. 그런 선수에게 툭, 안뒤축. 몸이 움찔하자 얼른 발을 뒤로 빠지며 도망가려는 걸 지영은 그 속도 그대로 쫓아갔다. 아니, 오히려 더 빨랐다. 그리고 상대를 몸으로 밀어내면서 모두걸기.

부웅!

쿵!

아예 등부터 그냥 대자로 뚝 떨어지는 모두 걸기.

잇폰!

심판의 한판 선언에 지영은 자리에 가서 섰다.

머쓱한 표정의 홍콩 선수가 일어나서 자신의 자리에 가서 서자, 심판이 손을 지영 쪽으로 향하며 승자 선언을 했다.

꾸벅.

인사 뒤 지영은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서 씩 웃고 있는 친구들과 그 옆쪽으로 일본팀 중간에 미야모토 신지가 흥미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게 보였다.

‘이제 눈빛이 좀 변했네?’

아마 지영의 기술 한 번에 미야모토 신지도 뭔가를 느낀 게 분명했다.

대기실로 돌아오자 친구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리 신지가 신경 쓰여도 빼먹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하이파이브다.

짝, 짝짝, 짝.

“수고했어.”

“응, 고마워. 다음은 효중이지?”

땀도 안 났지만 수건으로 얼굴도 닦고, 물도 마시면서 묻자 임효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금방 내 차례네. 선수들이 없어서 그런가 거의 체전 기분인데?”

실제로 지영보다 앞선 게임에서 이긴 말레이시아 선수를 이기면 바로 준결승이다. 체전만큼 선수가 별로 없어서, 4게임이면 우승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준결은 챠이고, 결승은 신지니까, 지영은 아쉽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뭐 아시아 선수권이니까?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방심은? 여기서 지면 너한테 뭔 욕을 먹으려고. 갔다 올게.”

“응, 파이팅!”

임효중이 이성진한테 응원을 받으며 다시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1회전이 끝나자 순번은 금방금방 돌아왔다. 2회전에서 이변이 있었다면, 55㎏의 용인대 선배가 졌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다 이겨놓고, 10초 남기고 시원하게 업어치기 한판으로 날아가며 전기정 교수가 탄식하게 만들었다.

“야이! 아오! 이 등신!”

게다가 하필이면 상대가 일본 선수였다.

용인대 선수는 지고 나오자마자 전기정 교수한테 꿀밤을 거하게 먹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보통 국제대회는 패자부활전이 있지만 이 대회는 선수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런 것도 없었다.

그러니 지면, 그냥 끝이다.

황금세대는 이번에도 임효중 순으로 시합에 들어갔다.

그리고 줄줄이 거의 바로 들어가서, 이제부터는 웃으며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시합은 지금부터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1회전은 몸풀기, 2회전은 무난하게 지나간다면, 본 게임은 3회전인 준결승부터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임효중이 역시나 시원하게 허벅다리 후리기로 한판을 따내는 걸 시작으로 강한결도 한판, 이성진도, 황석도 전원 한판으로 시원시원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2회전에도 주기술이 아닌 안다리로 한판을 따내고 준결승에 안착했다.

준결승이 시작되기 전 30분 휴식.

이 30분은 공기가 변하는 데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아시아 선수권은 솔직히 큰 대회는 아니었다. 국내에서 선발전을 거치긴 하지만 그래도 큰 대회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시시하다 할 수 있는 대회는 아니었다.

왜.

이변은 계속해서 벌어지니까.

“어!”

쿠웅!

시원하게 날아갔다. 누가? 이성진이.

준결승에서 만난 일본의 다케다 슌스케한테 모두걸기에 제대로 걸려서 그냥 떠버렸다. 지영이 첫판에 던진 모두걸기처럼, 그냥 대자로 뻗어버리는. 이건 뭐 그냥 이견의 여지도 없는, 완벽한 한판이었다.

“아이고…….”

“제대로 노리고 들어왔네.”

결승까지 올라간 임효중과 강한결이 혀를 찼다.

그리고 지영도 안타까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이성진이 방심하거나 잘못한 게 아니었다.

‘아니, 방심은 조금 하긴 했겠지.’

하지만 일본 선수는 모두걸기 한 방 타이밍을 제대로 노렸다.

다른 기술도 아니고 모두걸기로 노렸다는 건 그게 아마 그 선수 주특기 중 하나였을 거고, 이성진은 거기에 제대로 당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성진이 나왔다.

패배.

천재라 불리던 신지혁도 한 방에 날린 이성진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당한 첫 패배가, 가장 선수진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도, 졌다. 그에 이성진은 화가 난 것 같았다. 도복을 챙겨 밖으로 나가는 이성진의 얼굴에 지영은 일단 위로의 말은 던지지 않았다.

‘이게, 세계 대회.’

고작 아시아지만 그래도 세계 대회.

이변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적어도 중국이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고를 논할 만한 나라야.’

상대는 확실히 강했다는 거다.

예전에, 그러니까 정말 예전에는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이 최고를 논했다. 간혹 북한의 계순희 선수 같은 대단한 선수가 나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한국과 일본이 가장 강한 나라임이 확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실력의 평준화가 많이 이루어졌다.

동남아 쪽은 아직 좀 약하지만, 아시아권, 그러니까 중국, 대만, 일본은 확실히 만만히 볼 국가가 아니었다.

‘특히 일본.’

이제는 종주국의 자존심을 찾아가는 게 바로 일본이었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성진의 실수였다.

그리고 준결승 네 번째, 황석 또한 고전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중국 선수.

황석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데, 힘이…… 어마어마했다.

-100㎏이면 유도에서는 초 헤비급이고, 사실 그쯤 되는 선수들의 힘은 +100㎏ 선수들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 체급에서 우승을 계속 차지했던 황석은 선수들보다 평균 힘이 분명 좋았다.

그런데 그런 황석이, 마구 흔들린다.

뭔 행사장 풍선마냥 흔들린다.

“미쳤네…….”

그걸 지켜보던 지영의 입에서, 정말 솔직한 감상평이 나왔다.

처음 봤다.

풀백이랑 붙어도 힘으로 크게 안 밀리는 황석이 힘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으아!

쿵!

와자리!

그러다가 결국 감아치기에 걸려 절반을 빼앗겼다. 조금만 더 돌았어도 그냥 한판을 당했을 만큼 제대로 걸렸다. 지영은 바로 점수판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3분.

“석아! 아직 시간 있어!”

“그래! 차분하게 해! 차분하게!”

지영은 그렇게 외치면서 임대성의 존재가 아쉬웠다.

사이드는 진짜 임대성이 기가 막혔다. 그리고 연희고 선수들의 특징,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게 임대성이라 그가 있었다면 분명 지금 기가 막힌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임대성은 코치진에 합류하지 못했다.

남자팀 선수 다섯이 연희고인데도, 협회는 임대성을 뽑지 않았다. 아마도 이미 내정되어 있던 코치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정말 아쉬웠다.

임대성이 아니면, 그다음은 역시 강한결인데 강한결은 저기로 가지 못한다. 강한결이 가는 건 우리 쪽 코치진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둘이나 떨어질 순 없지.”

하지만 그걸 가장 잘 아는 강한결이 신발을 신고 경기장 쪽으로 접근했다.

“석아! 황석! 하체! 아래쪽 노려!”

지극히 심플한 사이드.

하지만 황석의 실력과 상대의 스타일을 빠르게 분석을 끝낸 강한결의 사이드에 황석이 뒤를 돌아봤다가, 한결 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하지 않은 사이드다. 선수분석은 함께 온 코치들도 끝냈겠지만 그래도 그간 쌓아온 신뢰는 이쪽에 비할 게 아니었다.

다시 시작.

중국 선수, 왕징춘은 이번에도 절반을 땄음에도 여전히 공격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런 공격 포지션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차라리 저게 나았다. 힘까지 좋은 선수가 수비모드로 들어서면, 그건 진짜 까다로워진다. 대놓고 수비를 하면 거의 넘기기 힘들다고 봐야 하고, 무리한 기술을 들어가다가 되치기 한판. 이게 보통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상대는 공격 일변도.

“지지 마! 지면 죽는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이성진이었다.

눈을 벌겋게 변한 채 황석을 응원하는 이성진.

그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이래서 이 친구들이 좋았다.

자신은 졌지만, 진심으로 친구의 승리를 바라는 이 마음.

이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이 친구들이, 이래서 좋았다.

그런 응원이 힘이 된 걸까?

쿵!

“으아아!”

황석이 밭다리를 받아, 그대로 되치기로 한판을 따냈다.

포효하고 밖으로 나온 황석과 터치를 한 지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매트 위로 올라섰다. 매트에 올라 평소의 루틴대로 준비를 하고, 긴장하자는 의미로 뺨을 짝짝 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건너편에, 대만 선수 챠이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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