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5화
55화. 1차 수확기(4)
임스테이.
시작은 배우들이 한 식당에 모여서 시즌 2 논의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시즌 2에 새롭게 합류한 소담이 가장 먼저 도착해서 손 소독제를 쓰고, 자리에 앉아 긴장 가득한 눈망울만 내보인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 그런 소담 뒤로 배우들이 속속 입장했다. 마지막 임윤옥 선생님까지 등장하며 배우들이 전부 모였다.
그리고 간단하게 식사 후, 시즌 2 주요 사항을 나종석 PD에게 전달받았다.
바로 이어지는 메뉴 선정, 여기서 스테이크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고 잠시 뒤 박서진과 이서운이 미국에서 스테이크를 배우는 장면도 나왔다.
어떻게 배웠는지도, 당연히 나왔다. 이서운의 인맥. 그런 것들이 이어진 시즌 2의 스테이 하우스가 소개됐다. 첫날은 메뉴 점검과 숙소 점검. 그리고 그 뒤로는 배우들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하는 장면을 중점으로 다뤘다.
그렇게 본방의 절반쯤이 지나가고, 날이 밝았다.
다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배우들. 편집은 기가 막혔다. 본래라면 저 화면은 5회차다. 하지만 1회차에 쓰일 걸, 교묘하게 이어붙이며 마치 처음인 것처럼 세팅했다.
문제가 되는 건 복장인데, 처음부터 고정 유니폼을 준비해 뒀기에 이 부분도 넘어갈 수 있었다. 애매한 건 그냥 오디오만 따다가 붙였다.
그걸 지켜보면서 지영은.
‘영혼을 갈아 넣었구나, 진짜.’
감탄했다.
감탄이 진짜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툭툭 들어오는 이선영의 메시지 중엔 나종석이 이 1, 2화 때문에 5일을 편집실에서 지새웠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만큼 나종석은 완벽할 정도로 순서를 바꿔치기했다.
“와, 어떻게 티가 하나도 안 나지?”
“감쪽같긴 하다.”
지영에게 순번이 당겨졌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들도 그처럼 감탄했다.
사실, 사소한 내기를 했다. 이성진이 하자고 한 내기인데, 내기 내용은 이상한 부분을 찾는 사람이 찾지 못한 사람 딱밤 한 대씩 때리는 그런 내기였다.
하지만 이미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누가 봐도 이게 1화인지, 착각할 만한 전개였다. 그렇게 중반이 조금 지나, 첫 손님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 첫 손님은 연희고 아이돌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CG로 후광이 그냥…….
“어으…….”
유치함 내성이 상당한 이성진조차 몸을 배배 꼬았을 정도로 좀 오그라드는 장면이었다. 촤르르. 마치 부챗살처럼 퍼지는 후광이 지영과 친구들의 뒤에서 쭉 퍼지는데, 손발이 그냥 절로 꼬여서 오그라든다. 마치 전신에 쥐가 와서 손이 꼬이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다들 어깨를 움츠리고는 TV에 나오는 자신들을 봤다.
짧은 후광 뒤에, 짐을 가지고 임스테이의 하우스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다음은 숙소 체크인이었고, 짐을 놓고 각자 주변을 돌아보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이어지는 와중에.
“지영아, 너 유독 많이 잡힌다?”
“그치? 나도 그 생각 했어!”
임효중의 말에 이성진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영도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지영이 봐도 이상하게 자신이 카메라에 한두 번이면 이해하겠는데, 카메라 중심이 이상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심지어 주변을 스윽 둘러보는 것도 기가 막히게 클로즈업해서 잡았다.
비율로 따지면 친구들 네 명이 5, 지영이 혼자 5 정도였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에게는 개인 카메라맨이 붙지 않았다.
단체로 움직이니 둘당 한 명이 붙었다. 그런데 지영만 전담 카메라맨이 붙었다. 정면, 옆, 지영이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은은하게 웃는 것과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까지 전부 담아서 방송에 내보냈다.
이쯤 되니.
“이거 거의 지영이 띄워주기 방송 같은데?”
강한결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을 정도로 뭔가, 편파적인 느낌이었다. 그게 좀 웃겼다. 시합 때는 불리한 판정을 받았는데, 방송은 오히려 또 유리하다. 뭔가 선후가 바뀐 것 같아서 쓴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손님은 지영의 팀 하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히 지영의 팀에 비해 분량이 적었다. 그렇게 거의 스페셜로 꾸린 것처럼 이어지다가 저녁 식사 시간이 되고, 지영이 소담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까지 나온 뒤, 청소년 선발전 출전 결정, 몇몇 장면이 더 이어진 뒤에 본방이 끝났다.
예고편에서는 나종석 PD 특유의 땡! 땡! 소리가 화면에 가득 채우는 걸로 끝났다.
왜 땡이라고 하는지, 그에 대한 것들이 방송에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아예 화면이 암전된 상태로 뭔가를 했다는 걸 암시할 뿐,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거다.
차분하고, 무난한 게 임스테이의 특징인데 이번 시즌 2는 아예 그 초기부터 달랐다.
하지만.
“재밌네.”
“응, 재밌다. 그리고 되게 신기하네. 지영이 다큐 찍었을 때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른데? 뭔가 막, 진짜 연예인 된 기분이야.”
강한결의 깔끔한 평을 임효중이 이어받았다.
지영도 같은 기분이었다.
연예인도 아닌데, 저걸 보니까 뭔가 진짜 연예인이 된 것처럼 붕 뜬 느낌이었다. 다들 그런 마음도 비슷한지 표정들이 오묘했다.
항상 주변의 시선을 끌어왔긴 했다. 어려서부터, 와 잘생겼다. 어머, 너 정말 잘생겼구나? 와 쟤들 진짜 잘생겼다. 저기, 이거…… 하면서 편지도 주고 가고.
이제는 편지 정도는 웃으며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외모로 인한 시선은 익숙했다.
이선영이 찍은 다큐도 사실 보면서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임스테이는 아니었다. 워낙에 대단한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저기에 출연했고, 저렇게까지 조명해 주니 뭔가 진짜 기분이 이상했다.
괜한 설렘? 들뜸? 그런 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영은 얼른 고개를 저어 그런 마음을 날려버렸다. 신기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의 기분만 느끼는 게 좋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지영.
“오! 우리 반응 나쁘지 않은데?”
고새를 못 참고 인터넷에 들어가 임스테이 평을 확인한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이번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즌 1과는 시작부터 다른 출발. 괜히 프로그램의 취지가 흔들린 건 아닐까 고민했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자, 다들 이제 그만 자자. 성진이 너도 적당히 보고 자고. 그리고 문제 될 말 같은 건 SNS에 올리지 마. 우리 그거 비밀서약 있으니까.”
“어, 알았어! 나 들어간다! 굿밤!”
후다닥!
SNS 하는 걸 좋아하는 이성진은 이제 잠들기 전까지 폰을 잡고 낄낄거릴 거다. 하지만 저렇게 신났으니 강한결도 오늘 하루는 이해해주기로 한 것 같았다.
지영도 잘 자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에 앉아 연식이 제법 된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에 들어가 보는 지영. 확실히 지영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전부가 칭찬은 아니었다.
“얘네는 어디 소속산데 이렇게 빨아주냐고?”
사람이, 사랑만 받을 수는 없다.
아무리 잘생기고, 아름답고, 인성이 어마어마하게 좋아도 안티는 있게 마련이고 이유 없이 그냥 물어뜯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지영을 아이돌인 줄 알고 아주 신나게 까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실드는 지영이 아닌 같은 공간에 있는 네티즌들이 쳐줬다.
‘신기하네.’
그걸 잠시 보던 지영은 노트북을 덮고, 옷을 챙겨 입었다.
뭔가 심장이 쿵쿵거려서, 열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심장은 아직도 평소보다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달아오른 열기를 빼기 위해 가볍게 산책을 할 생각이었다.
* * *
이, 이이! 임수진!
땡!
[아! 아 왜요! 아아! 임수진 맞잖아요!]
화면 속에서 이성진이 절박한 얼굴로 항의를 했다. 그러자 나종석 PD가 3초 지났습니다, 냉정하게 대답을 했다.
[아아! 안 지났어요! 안 지났지? 그치? 얘들아, 그치? 작가 누나! 작가 누나가 보기에도 3초 안 지났잖아요! 아아! 네?]
절박한 이성진의 말에 그 밑으로, ‘뭐지 이 요사한 애교는……?’ 하고 자막이 떠올랐다.
푸흐흐!
이성진은 그걸 보면서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지영도 입가에 잔뜩 웃음을 그러곤 예능을 봤다. 2회에는 나종석 PD가 지영과 친구들을 대상으로 예능을 찍는 게 나왔다. 그 특유의 자막.
이렇게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서.
네, 오랜만에 사고 좀 쳐봤습니다.
본격! 일반인 대상 복불복!
시작합니다!
요런 자막을 넣은 뒤 시작된 게임은 재밌기도 했고, 처절하기도 했다. 지영도 저 때는 정말 진심이었다. 처음 황석이 문제를 맞히고 한우 등심을 가져가는 순간 모두 눈이 돌아버렸고, 조금의 양보도 없는 처절한 승부가 이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치고받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정말 조금의 자비도 없고, 예능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안 하고 문제를 맞히기 위해 혈안이 된 지영과 친구들의 모습은 망가지는 맛까지 곁들어져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시청률은 1회보다 조금 오른 12%. 웬만한 드라마보다도 더 잘 나온 거니까, 그래도 다행이었다.
어마어마한 임팩트로 막 올해 역주행한 걸그룹 정도의 파급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욕은 먹지 않고 잘, 무사히 회차가 지나갔다.
“아 재밌었다. 또 가고 싶다. 그치?”
이성진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이 끄덕임은 이성진의 말에 온전히 공감해서 끄덕인 게 아니었다. 또 가고 싶긴 한데, 그때는 예능도 촬영도 아닌 그냥 평범하게 가고 싶었다.
아무리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포맷이라지만, 사방에 카메라가 따라붙으니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냥 어머니만 모시고 조용히 가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어머니랑 시간을 보내다가 오고 싶었다.
“석이는 잘하고 있을까?”
황석은 오늘 서울에 올라갔다.
정확히는 서울 근교 세트장에 갔다.
저번 주 주말에 신윤호 PD와 미팅을 하고, 오늘 촬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은정과 강한결과 같이 촬영장으로 향했다.
폰을 봤더니 따로 들어온 메시지는 없었지만 지영은 황석이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순수하지만, 그만큼 섬세한 친구.
‘방향만 잘 잡아주면, 분명 잘할 거야.’
대사도 받아서 급하게나마 청주 시내에 있는 연기학원에 가서, 속성으로 빡세게 배우기도 했다. 고작 1주일인데? 하겠지만 지영은 재능이란 게 황석에게 있다면, 몇 줄 안 되는 대사쯤은 충분히 일주일 안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잘하겠지. 석이 섬세한 건 우리 중에 최고잖아.”
“그래도 연기는 처음이잖아.”
“믿어봐. 연기는 그래도 석이가 너보단 나으니까.”
“어, 왜 이래? 나도 하면 한다고!”
“그래그래.”
또 발끈하는 이성진을 임효중이 우쭈쭈 달래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지영은 뒷정리를 한 뒤 체중계에 올라갔다.
73.90.
거의 다 뺐다.
시합은 이제 다음 주다.
시합이 다음 주인데, 오늘 그렇게 가서 고생을 시킨 게 조금 미안해진 지영이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기회를 줬으니, 이쪽에서도 양보를 조금은 하는 게 맞다는 이선영의 말도 있었고, 황석도 하루쯤은 괜찮다며 그냥 웃으며 이해해 줬다.
그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로 2주가 순식간에 지났다.
폰을 열어서 황석에게 파이팅하란 메시지를 하나 넣은 지영은 노트북을 펼쳐, 협회에서 보내준 영상을 틀었다.
영상이 시작되자, 지영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사실은 아까 봤던 임스테이보다, 이게 더 보고 싶었다. 협회에서 보내준 영상은 지영의 관심을 단숨에 빼앗았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있었다.
일단 첫 번째는 중국의 장시옌이었다.
어마어마한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이번 선발전 1등을 한 선수.
나이는 지영보다 두 살 많고, 힘을 베이스로 한 허리기술 정통파 선수였다.
그다음은 대만의 챠이.
생긴 건 장시옌과 비슷했고, 시합 스타일도 거의 비슷했다. 피지컬로 승부하는 타입. 그렇게 경계할 대상은 아닌 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의 미야모토 신지.
신지의 영상이 시작되자, 지영의 눈빛이 전에 없이 빛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예능에 나왔던 것보다 훨씬 더, 고도로 집중하기 시작한 지영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합 영상이지만, 지영은 미야모토 신지의 기술과 표정을 보면서 느끼는 게 있었다.
같은 부류.
아주 시원하게, 멋있게 한판을 던지고도 아쉬워하는 표정, 심드렁한 표정, 종내에는 무표정에 가깝게 변하는 눈빛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 실력도 없는 놈이 저러면 겉멋이나 든 거겠지만, 영상 속 미야모토 신지는 아니었다.
“너는 재밌을까?”
붙어보고 싶었다.
미야모토 신지의 나이는 지영보다 한 살 위다.
아마 지영이 유도를 하는 내내 국제대회에서 맞붙게 될 확률이 높은 선수다.
그래서 지영은 이번 대회가 정말 기대가 됐다.
확실한 건 없으니까, 일단 잡아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주말이 가고, 월요일이 왔다.
월요일 새벽 일찍 숙소에서 나서서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거기서 남자, 여자 대표 선수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1시간 뒤, 홍콩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