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1화
51화. 청소년 선발전(7)
후.
아쉽다.
아쉬웠다.
시합하면 할수록, 갈증이 느껴졌다.
지영은 이런 목마름이, 조금씩 심해지는 걸 느꼈다. 연습할 때야 그나마 괜찮은데, 시합에서는 이런 느낌이 특히 강해졌다.
그래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빠르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깨달았다.
‘이 정도로 목말랐었던 거구나.’
지난 회귀에서 느꼈던 아픔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아프게 하고 있던 거였다. 어떻게 보면, 빼앗겼었던 거다. 아주 평범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누리던 걸 교통사고로 인해 강제로 빼앗겼고, 빼앗기고 나서야 그 소중함에 몸서리를 쳤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그 상실감은 대미지가 되어 정신에 차곡차곡 누적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태에서 회귀하며 다시 찾았다.
상실감은 일정 부분 사라지긴 했지만 시합에 대한 갈증, 강자와의 경기에 대한 목마름은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었다.
‘난감하네.’
이는 지영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장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면 지금 국가대표들과도 붙을 수 있지만 그건 또, 자신과 친구들이 정한 앞으로의 플랜에 정면으로 위배 된다.
지영과 친구들은 이번 아시안 게임은 버렸다.
애초에 지금부터 선발전에 나간다고 해서 점수를 쌓아 국가대표에 탑승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굳이 선발전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지영이 강자와 붙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전지훈련 아니면, 선발전밖에 없었다.
친구들도 그렇지만, 지영도 이미 고등부 레벨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걸 지영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후.
방법이 필요했다.
결승전.
‘이것도 그리…….’
재밌을 것 같진 않았다.
반대쪽 시드에서 결승에 올라온 선수는 이우진이었다. 구혁이 분투하긴 했지만, 30초 남기고 들어간 기술에 제대로 한판을 떠버렸다. 그렇게 결승에 올라온 이우진은…… 분명 잘하지만, 경계해야 할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었다. 지영이 없었다면 분명 천재 소리를 들었겠지만, 아쉽게도 그의 실력은 지영의 근처에 다다르지 못했다.
판정에 대한 문제가 있겠지만 지영은 그쯤은 지금까지 이겨왔던 것처럼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답답하다.’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 그만 생각하라는 것처럼 30분으로 맞추어 놨던 점수판의 타이머가 울었다. 30분 휴식 시간이 지나고, 결승전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55㎏.
시작은 혈투를 벌이고 올라온 계성고 선수와 용인대 선수가 붙었다. 이 경기는 시작부터 화끈했다. 신장이 160도 안 되는 용인대 선수는 가볍기도 가벼웠지만, 진짜 엄청나게 빨랐다. 보통 업어치기는 55 선수가 가장 빠르다.
업어치기 기술의 특성상 가벼울수록 몸을 말아 앉는데 더 빠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용인대 장성준이 계성고 선수보다 훨씬 더 빨랐어도, 속도가 유도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당연히 아니었다. 빠른 만큼, 가볍다는 단점도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작 1분 만에 둘은 절반을 나눠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속도전에, 온갖 기술의 향연이 터지는 경기.
화려하지만 보는 사람은 심장이 조이는 그런 경기였다.
4분 경기, 승자는 용인대 선수였다. 이번엔 심판의 판정이 아닌, 경기 10초 남기고 벼락처럼 들어간 어치기가 제대로 먹혔고, 그 결과 승자는 용인대 선수가 됐다.
그리고 그다음은 -60㎏.
이 경기는 용인대와 용인대의 경기였다.
그래서 승자도 용인대였다.
-66 결승전이 끝나고, 지영은 선수 입장석 쪽으로 이동하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성진 파이팅!”
지영의 큰 외침에 시합에 들어가기 전 몸을 풀던 이성진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지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씩 웃으며 엄지를 척! 올려주곤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신지혁.
용인대의 에이스.
66㎏ 체급의 두 천재 중 한 명.
신지혁은 이미 두각을 드러낸 천재였고, 이성진은 이제 그 뒤를 따르는 후발주자였다. 신지혁은 잘했다. 지영이 보기에도 신지혁의 재능은 아주 특별했다. 용인대에서 2일간 지켜본 결과에 따르면 신지혁은 정말 노력파이기도 했다. 연습 한 게임, 한 게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성실함.
천재가 노력이라는 재능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
황금세대와 같은 조건에 선 선수였다.
하지만 지영은 이성진을 믿었다.
국가대표급 선수도 아니고, 고작 세 살 차이 나는 선수에게 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근, 두근.
다음 경기가 자신이라 뛰는 게 아닌, 이성진의 시합 때문에 심장의 박동수가 조금 올라갔다.
그런 두근거림 속에, 시합이 시작됐다.
신지혁은 이성진보다 작다.
한 4cm정도.
이 정도 신장 차이는 사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리치 싸움에서는 달랐다. 워낙에 팔다리가 훤칠한 이성진은 리치도 정말 길었다. 그래서 시작은 철저한 잡기 싸움이었다. 먼저 잡고, 끈다.
이게 일단 기본 베이스였다.
워낙 업어치기와 허벅다리, 양쪽 다 잘 차는 신지혁이라 일단은 잡기에서 무조건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그리고 전술은 제대로 먹혔다.
‘우리 중에서도 잡기 싸움을 제일 잘하는 건 어차피 성진이었어.’
그런 이성진이 신지혁 저격 전술로 잡기를 철저하게 연습했다.
하지만 맞춤형 전술을 준비한 건 이성진만이 아니었다.
‘대단하네…….’
안 끌려간다.
끌려가면 어떤 자세에서도 업힐 수 있다는 걸 아는지 신지혁은 철저하게 중심 밸런스를 조금은 뒤로 준 채로 버텼다. 게다가 힘도 이성진보다 좋아서 제대로 끌려오지를 않았다. 저런 상태에서는 괜히 안다리나 안뒤축을 잘못 걸면, 시원하게 되치기로 날아갈 수도 있었다.
유도의 모든 기술은 상대를 넘기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기술을, 되치기로 넘기는 방법 또한 선수들은 기본으로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이성진도 섣부르게 기술을 걸진 않았다.
그쳐!
지도! 지도!
40초간 아무런 공격도 없던 둘에게 지도가 들어갔다.
그리고 시작.
시합은 루즈했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나 그렇게 보이는 거고, 지영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보기에는 폭풍 전의 고요였다.
‘한판으로 게임이 끝나겠어.’
이런 시합은 시간을 끌어도, 승부까지 끌지는 않는다.
4분 경기.
어느 순간 서로 승부를 볼 시간이 올 거다.
하나씩 지도를 받고 나서도 경기는 변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쳐내는 이성진. 그리고 먼저 잡고, 엇비슷한 포지션에서 간을 보기 시작했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날 때까지도 둘은 섣부르게 기술을 걸지 않았다.
기술을 걸어도 가볍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의 공격이었다.
그런 상태로 2분이 지났고, 심판은 다시 그쳐를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지도, 지도. 양쪽 다 지도가 두 개가 됐다.
“지혁아! 쇼부봐라!”
쇼부.
승부의 일본어다.
유도가 일본이 종주국이고 해서, 아직 나이가 좀 있는 지도자들은 승부를 보라는 말을 저렇게 쇼부를 보란 말로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도가 들어가자 용인대 코치가 내린 오더처럼, 지영도 이제 이성진이 승부를 볼 때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반칙 하나만 더 받으면 반칙패다.
둘 다 이제 백척간두에 서버렸으니, 물러설 곳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곧장 반칙이 들어갈 거고, 그건 곧 패배를 의미했다. 그런 만큼 공기 자체가 역시 달라져 있었다.
지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시합을 바라봤다.
시작!
심판의 하지메 선언과 함께 뒤바뀐 공기 속에서 두 선수가 맞붙었다. 역시 처음과 다르게 엄청 치열해졌다.
쳐내고, 끊고, 잡고, 뜯어내고, 다시 잡고, 쳐내고의 반복.
자세를 한껏 낮춘 두 선수가 온몸으로 잡기 싸움을 시작했다. 여기서 밀리면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에 물러섬이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잡기 싸움한 끝에, 이성진이 긴 리치를 이용해 가슴 깃을 선점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며 신지혁을 끌었다. 이번엔 간을 보는 게 아니라, 진짜 전신을 이용해 당겼기 때문에 신지혁의 몸도 끌려왔다.
끌려가는 건 곧 업힌다는 뜻이라 신지혁이 반사적으로 중심을 뒤로 두며 이성진의 손을 거칠게 뜯어냈다. 그러자 이성진은 곧장 반대로 물러나는 신지혁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다시 가슴 깃.
잡는 순간 돌아 나오며 발목받치기.
완벽에 가까운 연계에 신지혁의 중심이 앞으로 무너졌다. 이성진이 제일 좋아하는 자세지만, 이성진은 업지 않았다.
신지혁의 경기 영상을 보면 저렇게 중심이 무너진 상태에서 상대가 기술을 들어오면, 그걸 기가 막히게 받아서 되치기를 하는 장면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즉, 저 중심이 무너진 것 자체가 낚시다.
업어치기를 들어오는 순간 받아서 뒤로 찍는 되치기를 하려는 미끼.
모두가 찬스다! 하고 보이게끔 스스로의 중심을 무너트리는 거다.
신지혁의 시합 영상을 보며 지영도 솔직히 많이 참고가 됐다. 특히 미끼를 던져두는 것만큼은 오히려 지영이 배워야 할 게 많은 선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신지혁의 영상을 본 이성진은 그 미끼를 물지 않았다. 오히려 목깃을 잡은 다음 자신의 가슴 쪽에 신지혁을 딱 붙였다. 제대로 끌려왔고, 제대로 잡았다. 여기서 기술을 걸면 좋지만 이성진은 이번에도 기술을 걸지 않고 철저하게 목만 죽여 놓은 다음, 툭툭 발기술을 걸었다.
그러자 신지혁이 다시 거칠게 도복을 뜯어냈다.
힘은 역시 신지혁이 위였다. 저렇게 잡혔는데도 뜯어낸 걸 보면 적어도 이성진이 힘으로는 신지혁을 당해낼 수 없는 수준일 거다.
하지만 유도는 중심 운동.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사람이 이기는 운동이고, 거기에 힘이 좋다는 게 유리하긴 해도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압박에서 벗어나 물러나는 신지혁을 따라간 이성진이 벼락처럼 모두걸기를 쓸었다.
휘청!
발이 빠지는 타이밍에 제대로 걸었기 때문에 신지혁의 중심이 다시 흔들렸다. 여기서 몇 번만 더 공격하면, 신지혁이 수비적인 유도를 한다고 심판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공세는 나쁘지 않았다.
신지혁은 중심을 찾고 물러나려다가, 용인대 코치가 물러나지 말고 덤비란 말에 정신을 차리곤 오히려 접근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이성진이 먼저 소매 깃을 잡았다. 그리곤 위로 받쳐 치켜올리며 이성진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기술을 걸었다.
‘성진아 잘해라!’
이성진이 철저하게 연습했던 것.
저걸 이성진은 신지혁 맞춤 전술로 계속해서 연습했다. 그걸 위해서 지영은 물론 임효중에 강한결까지, 전부 동원해 타이밍을 맞춰줬었다. 이걸 연습한 이유는 하나다. 업어치기 되치기에 아주 능한 게 신지혁이다.
아니나 다를까 신지혁은 이성진이 소매꽂이 형태의 업어치기를 걸자마자 뒤로 물러나며 기술을 방어하고, 그 자세 그대로 밭다리를 찍었다. 하지만 노림수는 이 밭다리에 있었다. 다리가 들어오는 순간 이성진은 팔을 신지혁의 고개 안으로 쭉 집어넣어 잡고는, 밭다리 되치기에 다시 되치기를 먹였다.
이 하나.
정말 이것 하나를 노렸다.
신지혁이 즐겨 사용하는 업어치기 되치기를 다시 되치기하는 것.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업어치기는 당연히 들어가는 척만 한 거다. 중심이 무너져서 오히려 역으로 당하지 않게 철저하게 계산한 업어치기였고, 그 미끼를 신지혁은 물었다.
그리고…….
콰앙!
“으아!”
상체를 숙이다 못해 거의 구르는 식으로 온몸을 던진 되치기에, 신지혁이 제대로 걸렸다. 밭다리 되치기는 거의 99%가 밭다리 되치기고, 이 싸움의 승자는 이 순간만을 노리던 이성진의 승리였다.
지영은 이성진의 승리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 당연히 아시아 청소년 대회도 함께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지영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위험했던 게 이성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성진은 훌륭하게 승리했다.
지영은 인사를 하고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나오는 이성진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는 시합장으로 들어갔다.
‘긴장하자. 괜히 방심하다가 지지 말고.’
스스로를 단속하고, 심판이 새로 들어오자 뺨을 짝 소리나게 쳐서 정신을 일깨웠다.
심판의 사인에 맞춰 인사.
몇 심판을 사이에 두고 적당한 거리에서, 다시 인사.
하지메!
심판이 시작을 외치는 순간, 이우진이 심판을 향해 손가락을 X자로 교차시켰다. 그에 자세를 잡으려던 지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표시는, 시합을 포기하겠다는 사인이었다.
즉, 스스로에게 반칙패를 주겠다는 의미…….
야 우진아!
밖에서 놀란 경민 코치의 외침이 있었지만.
이우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이우진에게 반칙패가 적용됐고, 그런 이우진의 뒤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합장을 빠져나가는 이석도 회장이 보였다.
“아…….”
X발, 진짜…….
더럽게도 찝찝한 우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