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9화
49화. 청소년 선발전(5)
10시부터 12시까지, 네 개의 경기장에서 차례대로 예선이 치러지고,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 1시부터 40분간 다시 선수들이 몸을 풀 시간을 주고, 2시부터 준결승 시작이다. 준결승부터는 다시 2개 경기장으로 줄어들었다.
1경기장은 –55㎏부터 -73㎏까지.
2경기장은 -81㎏부터 +100㎏까지.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출전 티겟을 손에 넣을 선수를 가리는 후반부가 막이 올랐다. 준결승부터는 역시 분위기가 달랐다. 체전 준결, 결승 때 피어났던 기운이 이곳에서도 피어났기 때문이었다.
준결만 되어도, 선수의 실력이 다르다.
체전도 실력자들이지만 선발전엔 대학교 선수도 있고, 무엇보다 실력 면에서는 전원 탑 수준인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선수들이 뿜어내는 투지와 열기는 어마어마하다.
고작 4인.
55, 81체급 선수 4인이 내뿜는 에너지와 투지가 체육관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하고 응원이 난무하는 건 보통 각 학교의 유도부 전원이 출전하는 대회나 그렇다. 그땐 학부형들부터 시작해 경기장에 인원이 가득 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수들이 한정적으로 나오는 대회는, 오히려 차분한 맛이 있다.
그 차분함은 고요함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그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선수들의 에너지가 체육관을 지배한다.
지금이 그랬다.
관중석에는 시합에서 진 선수들과, 그 선수들의 학부형 소수. 학교 관계자들 정도가 전부다. 시합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일반인은 지역 어르신 정도가 전부고. 그 전원이 넷의 에너지에 압도되어 있었다.
으아!
콰앙!
한쪽에서 결말이 먼저 났다.
81체급에서, 용인대 선수가 한체대 선수를 업어치기 한판으로 기가 막히게 내던지고 승자의 특권인 포효를 질렀다.
그 용인대 선수는 임효중이 올라가면 결승전 맞상대였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퇴장했지만 임효중은 들어가지 않았다. 준결승부터는 양쪽 경기가 전부 끝나야 다음 선수들이 입장하기 때문이었다.
55는 치열했다.
이쪽은 81과는 반대로 둘 다 고등학교 선수들이었다.
대구 덕원고와, 대구 계성고.
예전에는 강력한 팀이었지만 지금은 간간이 정상급 선수 몇 명을 배출하는 정도인 학교.
하지만 –55의 이 두 선수는 지영도 기억하는 라이벌이었다.
‘올 한 해, 저 둘이 전국대회는 다 씹어먹었지…….’
아, 한 사람 더 있었다.
부상으로 안 나온 것 같은데, 대구 영신고의 선수까지 합쳐서 대구 선수들 셋이 아주 다 해 드셨다. 둘의 경기는 금방 끝나지 않았다. 지역에서도 체전 티켓을 두고 항상 치열하게 경쟁했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4분 시간이 지나고, 서로 절반 하나, 지도 하나씩을 주고받고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피 터지네, 피 터져.”
이성진의 중얼거림에 주변에 있던 선수들과 지영까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입술이 터지고, 손가락이 터져서 양 선수의 도복은 진짜 말이 아니었다. 특히 흰 도복을 입은 선수의 가슴 깃과 소매 깃은 피로 얼룩져서, 이게 유도인지 상대를 죽이는 데스메치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둘 다, 포기는 없었다.
두 눈에서는 불길이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이런 경기는 절대 심판이 애매한 판정으로 시합을 끝낼 수 없었다. 한쪽의 체력이 말려서 수세에 몰려 반칙을 받거나, 아니면 제대로 기술에 걸려 넘어가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10분, 20분이 지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쿵!
벼락같은 업어치기.
초경량 급 선수라서 업어치기 속도는 진짜 어? 하는 순간 끝났다. 하지만 그런 업어치기에 당한 상대는 허공에서 빙글 돌아 앞으로 떨어졌다. 제대로 도복을 잡지 못해 상대가 도망갈 여유를 줬기 때문이었다.
공격한 선수도 잘했고, 방어한 선수도 잘했다.
그쳐, 다시 시작.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연장전은 언제나 끝나기 마련이다.
한국 야구만 무승부가 있다고 했던가?
그걸 빼면, 무조건 승부가 나야 한다. 축구도, 야구도, 배구도 농구도, 태권도도 복싱도, 무승부는 없다.
유도도 당연히 무승부는 없었다.
둘의 경기도 승부가 났다.
업어치기를 던졌던 선수가, 조금 더 밀어붙이면 지도를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급하게 공세에 나왔고, 제대로 걸리지 않은 업어치기를 그 상대가 뒤로 젖혀 찍어 누르면서 한판. 경기의 승패가 났다.
으아아!
승자가 포효였다.
장장 10분이 훌쩍 넘게 싸워 승리를 따냈으니, 당연히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솟구치는 중일 거다. 지영은 그걸 보며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도…….’
하고 싶다.
저런 피 터지는 경기. 저런 경기를 해보고 싶었다.
‘오늘 할 수 있을까?’
힐끔.
지영은 용인대 팀이 모여있는 쪽을 바라봤다.
거기에 있는 선수 한 명이, 지영의 준결승 상대였다.
작년도 체전 우승자 황영길.
체전 우승으로 용인대 올 장학생 마지막 티켓을 받아 버스에 탑승했고, 올해도 준수한 성적을 내는 중인 실력자. 지영이 용인대에 갔을 때는 선수촌에 파트너로 들어가 있어서 잡아볼 수도, 스타일을 확인할 수도 없었던 선수.
오늘 경기하는 걸 보았을 땐 신장은 지영보다 조금 작지만 지영과는 정반대의 공격적인 유도를 하는 선수였다.
잡기, 발기술, 돌면서 모션, 허벅다리, 업어치기 등, 전체적으로 기술의 밸런스가 아주 좋은 선수였다.
그는 준결까지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그쪽 시드에 있던 선수들이 조금은 약했던 것도 있지만, 분명 그의 실력이 뛰어나서라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런 실력자니 저런 시합이 되기를, 지영은 고대했다.
55와 81의 두 번째 준결 선수가 입장했다. 그리고 거기엔 임효중도 있었다. 임효중도 용인대 선수가 상대였다.
용인대.
한국에서 용인대를 빼놓고는 유도를 논할 수 없다.
그만큼 용인대에는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매년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선발전 준결 전 체급에 용인대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심지어 마백과 플백은 황석과 장대호 빼고 전부 용인대 선수였다.
그만큼 탄탄한 선수진.
이런 선수들이 매년 들어가서, 서로 연습하니 다른 학교와 실력의 차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시합이 시작됐다.
좀 전 경기와는 다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임효중의 상대도 실력자라서, 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역시 시합은 백중세였다. 임효중은 업어치기 주특기 선수에게 특히 강했다.
다행히 상대는 업어치기 선수였는데, 업어치기는 상대를 넘기려면 중심을 무너트려야만 넘기는 게 가능한 기술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상대에게 업어치기를 걸어봐야, 백날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런데 임효중의 밸런스는 황금세대 중에서도 최고였다.
그래서 상대 선수의 업어치기는 걸기도 전에 족족 막혔다. 그리고 허벅다리. 파앙! 빛살처럼 터진 허벅다리 후리기가 업어치기를 실패하고 일어나려던 상대를 그대로 높게 띄웠다. 다만 소매 깃을 차올리면서 놓쳐 완전한 기울이기가 들어가지 않아 빙글 돌아 애매하게 떨어졌다.
한판이었으면 했지만, 와자리! 절반 선언이 났다.
하지만 절반도 점수였다.
4분은 길지만, 매우 짧은 시간이고 이 상태로 버티기만 해도 승자는 임효중이다.
임효중은 대번에 스타일을 수비적으로 바꿨다. 하지만 절대 밀리지 않았다. 수비적으로 바뀐 건 애매한 자세에서 기술을 걸지 않을 뿐이었다.
되치기 방어.
좀 전에 55체급 경기처럼 애매한 자세로 기술을 걸다간 되치기로 무조건 날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분에 절반을 땄는데, 공방을 수 차례 주고받으니 벌써 2분대로 쭉 떨어졌다.
임대성의 사이드와, 용인대 코치의 사이드가 심판이 그쳐한 사이 빠르게 경기장 안으로 날아들었다.
지도!
애매한 타이밍에 들어온 지도다.
게다가 2분이란 시간을 생각하면 낙관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기도 애매한 시간대였다. 하지만 지영은 임효중을 믿었다. 황금세대 전원이 정말 잘하는 게 있다면 바로 시합 운용이었다.
시간, 그리고 반칙에 대한 대처는 그 어느 선수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그런 지영의 믿음처럼 임효중은 절반을 잘 지켰다.
삐이이! 역시나 격렬한 55보다 임효중의 시합이 먼저 끝났다.
“효중이가 한 판 못 던진 시합 오랜만인데?”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잘하긴 했나 보네.”
“그러니까. 역시 용인대다 이건가?”
이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힐끔, 좀 전에 지영처럼 용인대 쪽을 바라봤다. 아마 그곳에 있는 신지혁을 보는 것 같았다. 이성진은 준결이 남았지만, 이미 체전 때도 이겼던 상대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준결에서 이성진이 떨어지는 이변은 없을 거다.
인사를 하고 나온 임효중이 다가왔다.
구슬땀을 뚝뚝 흘리는 임효중에게 황석이 수건과 음료를 내밀었다.
“석이 땡큐. 아, 힘들다. 용인대는 용인대라 이건가? 확실히 시합 때 잡아보니까 다르네.”
이성진이 했던 말을 고대로 읊는 임효중.
하지만 다들 그 말에 웃지 않았다. 임효중이 이 말을 한 이유가 너희들도 조심해. 긴장해라. 이런 뜻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고생했어. 팔 주물러 줄까?”
강한결의 말에 임효중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미쳤냐? 다음에 시합 들어갈 선수한테 무슨? 내가 알아서 풀게.”
임효중이 한쪽에 마련된 의자로 가서, 음료를 마신 뒤 알아서 팔다리를 주물렀다. 4분 게임 빡세게 하고 나오면 근 경련까지 오는 경우도 있어서 제때 안 풀어주면 뭉쳐서 시합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임효중이 빠지고, 55경기도 끝났다.
한 템포 쉬고, 강한결이 들어갔다.
무지막지한 녀석답게 뭐, 이변 없이 한판으로 이기고 나오고 황석과 이성진이 같이 들어갔다. 이성진은 2분 만에 한판으로 이기고 나왔는데, 황석이 오래 걸렸다. 황석의 상대도 용인대다. 작년에 두 번이나 금메달을 딴, 용인대 –100의 차기 에이스 중 한 명이었다.
황석은 지도를 서로 두 개씩 받고 연장전에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연장전이라, 지영을 포함해 다들 긴장한 기색으로 황석의 경기를 지켜봤다. 고요한 경기장.
간간이 심판의 그쳐, 시작 소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중계방송 해설진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걸 빼고는 숨소리조차 멎은 것 같았다.
‘이겨라…….’
초조했다.
괜히 여기서 이상한 판정이 나오는 건 아닌지, 절로 긴장이 됐다.
하지만 카메라가 들어서고, 경기가 중계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심판은 긴장한 게 얼굴에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피 터지는 게임에 편파 판정 한 번 잘못 내리면, 진짜 대대손손 욕먹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편파 판정은 없었다. 연장 3분, 5분.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두 선수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어마어마한 혈전을 펼쳤다.
“어! 어어!”
“버텨!”
황석이 밭다리에 제대로 걸렸다.
하지만 으아아! 기합과 함께 시원하게 되치기로, 한판을 따냈다.
그리고 일어나 참 황석답지 않게, 주먹을 치켜올리며 거칠게 포효했다. 그 모습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뒤, +100과 –73차례가 됐고, 지영은 몸을 풀고 시합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유만만한 얼굴로 서 있는 상대가 보였다.
‘여유라…….’
긴장해도 부족할 판인데 여유가 아주 한가득이시다. 좀 전에 그런 경기를 보고도 지영을 전혀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
왜?
이호석이 어떻게 박살 나는지, 못 봤나?
지영 오빠 파이팅!
승아의 응원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때쯤, 그보다 더 큰 심판의 시작 소리가 들렸다. 건들건들, 지영은 탐색전 없이 가슴 깃을 내주고, 등 깃을 잡았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팔을 안쪽으로 휘감아 넣어, 그대로 목 감아치기를 쳤다. 잔뜩 긴장해도 비슷할 판에 대놓고 설렁설렁, 방심까지 했으니 방어가 될 턱이 있나?
쾅!
제대로 걸려 날아갔다.
“와자리!”
그런데 절반?
피식.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
지영의 눈가에 서늘한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