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1화
41화. 선발전 대비 훈련(6)
티 없이 맑은 구름이 차분히 흘러가는 것처럼, 용인대에 다녀온 지영의 일상은 구름처럼 큰 굴곡 없이 흘러갔다.
평일이 끝나는 금요일 저녁, 지영은 근육량을 체크했다. 인바디에서 나온 검사지를 보던 임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됐다. 딱 적당하게 올랐어.”
“후우, 감사합니다.”
“감사는. 고생은 네가 다 했는데. 수비드 닭가슴살은 어때. 먹을 만하지?”
“네. 그건 그나마 좀 나아요.”
“다행이네. 이제 염분 조절 조금씩 하면서, 체중 감량하자.”
“네. 코치님.”
“그래, 올라가 봐.”
“네. 쉬세요, 코치님.”
오냐.
임대성에게 인사를 한 지영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왔더니 눈이 오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밤사이 펑펑 내리는 눈을 봤으니 첫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청주는 첫눈이었다.
그런 청주의 첫눈을 뒤로하고 2층 숙소로 올라가자, 다들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뭐 봐?”
“음악방송.”
지영의 물음에 이성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대답한 이성진은 아주 그냥, TV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결과 어때?”
강한결의 물음에 지영은 엄지를 척 내밀면서 옆에 앉았다.
“다행이네. 체중은?”
“지금 78.”
“딱이네. 고생했다, 진짜.”
“고맙다.”
어후.
말이야 이렇게 편하게 하지만, 지영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엊그제부터 닭가슴살을 수비드로 먹으면서 좀 먹는 게 좋아졌는데, 그 이전엔 진짜 억지로 꾸역꾸역 넣는 게 얼마나 곤욕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개고생하며 지방을 태우면서, 근육량을 늘렸다.
지금 지영의 체지방은 거의 7에서 8%를 왔다 갔다 하는 정도로, 이 정도면 전문 보디빌딩 선수와 맞먹는 레벨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냈다. 2주간 정규운동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철저하게 웨이트로 보낸 결과, 딱 2주 만에 원하는 수준으로 근력 상승을 이뤄낸 지영이었다.
솔직히 과정은 진짜 힘들었지만, 딱 원했던 만큼 성공해서 스스로가 뿌듯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수고, 고생했다는 말로 축하를 해줬고, 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과 함께 TV를 보기 시작했다.
금요일 음악방송. 거의 보통 아이돌들이 나와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거나, 인기를 증명하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방송. 사실 지영은 음악방송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 또래의 아이들과 취향은 거의 비슷해서 숙소에 있으면 음악방송은 거의 챙겨보는 편이었다. 신기하게도 이성진이 제일 좋아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강한결과 임효중이 걸그룹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호의는 아니었다.
‘우리랑 비슷하지만 달라서, 불쌍하다고 했던가?’
이런 특이한 이유였다.
당연하지만 아이돌은 아무나 할 수 없었다. 일단은 엔터의 연습생으로 뽑혀야 하고, 연습생으로 뽑히더라도 몇 년에 걸쳐 연습하고 다시 데뷔조에 들어야 했다.
데뷔조에 든다고 해서 전부 데뷔하는 건 아니었다. 회사의 콘셉트, 사정으로 인해 언제든지 튕겨나 갈 수 있는 게 또 데뷔조다.
그런 과정을 거쳐 데뷔를 하게 되면, 그때부턴 이제 다시 대중의 검증을 받는다.
강한결과 임효중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했다는 건 이 부분이었다.
운동선수와 아이돌.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운동선수도 아이돌처럼 연습하지만, 다른 게 하나가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실력을 실제로 검증할 수 있는 순간순간이 해마다 몇 번씩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아이돌은 회사에서 자체적인 평가를 하는 걸 빼면 그런 게 없었다.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한 어둠이고, 기약 없는 연습의 시간이다.
둘은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하는 아이돌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지영은 그 말에 얼추 동의했다.
실제로 지영은 시합에 나가서 자신의 실력을 내보이고, 성적을 내고 있지만 아이돌들은 월말 평가를 빼면 하염없이 연습만 하니까 말이다.
“어! 하쿠나마타타다!”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상념에서 깨어나 TV를 바라봤다.
-네! 이번 무대는 싱글 2집으로 돌아온 하쿠나마타타의 무대입니다!
-하쿠나마타타! 스와힐리어로 문제없다는 뜻이죠? 이번 곡의 제목도 우리 사이 문제없음! 하하! 제목이 재밌어요!
-그만큼 안무도 독특하고 통통 뛰는 매력으로 무장했다고 합니다! 자! 그럼 이제 만나보실까요?
-싱글 2집으로 돌아온 하쿠나마타타의 우리 사이 문제없음! 입니다!
MC들의 소개와 함께 화면이 무대로 변했고, 7인조 걸그룹 하쿠나마타타를 비췄다.
소담은 그중에서 가장 왼쪽에 있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빠졌나 본데? 얼굴이 홀쭉하다.”
“그래도 표정은 살아 있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음악방송을 거의 4년 가까이 보고 있어 나름 전문가들이 다 된 황금세대가 하쿠나마타타를 품평하기 시작했다. 통통 뛰는 매력이 있다고 아까 MC가 그랬나?
MC 말은 띄워주기 멘트 같았다.
노래는 연애 중에 서로 토라진 상황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지영은 사실 솔직히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마법사를 넘어선 시간을 산 지영이라, 연애는 젬병이기 때문이었다.
“지영아. 소담이한테 연락 와?”
이성진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번호만 받아가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왔어.”
“먼저 해봤어?”
“아니.”
그날 임스테이가 끝날 때 소담이 슬쩍 와서 연락처를 주고 갔다.
그 연락처를 폰에 저장했고, 지영도 연락처를 알려줬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번호로 연락을 해본 적은 없었다.
당장 몸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고, 몸을 만드는 작업이 끝난 지금부터는 이제 감량 시작이라 누군가와 연락할 여유가 없었다.
특히 이성이라면 더더욱 자제해야 했다.
“왜? 그래도 아이돌인데?”
“에이 뭔 연락이야. TV나 봐, 그냥.”
지영은 관심 없다는 티를 내자 이성진은 입술을 삐죽이곤 다시 TV로 얼굴을 돌렸다. 그런데 사실 지영만 연락처를 받은 건 아니었다.
황석은 무려 신윤호 감독에게 연락처를 받았고, 이성진은 최유신과 임윤옥의 번호를 받았다.
강한결과 임효중도 이서운, 박서진 등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신기한 건 임윤옥 선생님을 제외하면 다 먼저 번호교환을 원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다들 폰에는 연예인들의 번호가 하나씩은 있었다. 그러니 지영이 번호를 받은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솔직히, 여자로 생각하기에 소담은 너무 어렸다.
정신이 육체와 동기화라도 되는 건지 예전보다 좀 더 어린 사고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소담은 이제 17살. 따지고 본다면 무려 10살 차이다.
‘그것도 내키지 않지만…….’
더 중요한 건, 소담 자체가 지영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지영은 차분하고, 포근한 여성이 이상형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래, 충주에 계시는…… 어머니 같은. 그런 여자라면 먼저 다가설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소담은 그 이상형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성진이 혹시? 하던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다. 그사이 하쿠나마타타는 두 곡을 연달아 부르고는, 화면에서 사라졌다.
“에이, 소담이 얼마 안 나왔네.”
이성진이 아쉬워한 것처럼 소담은 몇 커트 잡히지도 않았다.
애초에 인원이 꽤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파트 자체가 몇 번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쿠나마타타가 퇴장하고, 다른 남자 아이돌 그룹이 나왔다.
그때 지영은 주머니 속에 넣어뒀던 폰이 진동해서 꺼냈다가,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야?”
“이선영 기자님. 통화 좀 하고 올게.”
방으로 들어간 지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강지영입니다.”
-지영아, 나야.
“네, 기자님.”
-지금 쉬는 시간이지?
“네. 애들이랑 TV 보고 있었어요.”
-그래? 내가 시간 잘 맞췄네. 다른 게 아니라 촬영한 거 방송 날짜 알려주려고.
“어? 결정됐어요?”
-응. 다음 주 월화수. 3일 연속이고 6시 40분 방송. 원래대로 20분씩 3회. 이렇게 나갈 거야.
아아.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은 딱, 이번 주 화요일 날 끝났다.
다행히 용인대 측의 협조가 있어서 김선욱과 이선영 둘이 와서 지영이 훈련하는 모습을 담았고, 그걸로 공식적인 촬영은 끝났다. 그러곤 나연석이 바로 편집실로 처박혔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생각보다 편집이 일찍 끝났나 보다.
“고마워요. 덕분에 저 방송에도 나가보고.”
-후후. 넌 내가 아니었어도 방송에 어차피 나갔을 거야. 그 마스크면 어디든 불러주겠지. 그보다 지영아. 너 내일 충주 안 오지?
“네. 시합 얼마 안 남아서 훈련합니다.”
-그래? 그럼 내가 청주로 갈게. 연석이가 마지막 인터뷰 좀 따자고 해서, 잠깐만 시간 내주면 돼.
“네, 알겠습니다.”
인터뷰.
이제는 인터뷰라는 것도 제법 익숙해진 지영이었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갈 때 연락할게!
“네. 누나.”
전화를 끊은 지영은 곧장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려 다음 주 월화수 방송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애들이 당연히 무슨 전화냐고 캐물었다.
“다음 주에 방송 나간대.”
“그거 기자님이 찍은 거?”
“응.”
“오오! 우리 지영이 TV 연예인 데뷔하는 건가?”
이성진의 짓궂은 말에 지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그걸로 데뷔면, 너네도 다 같이 데뷔하는 거 아닌가?”
“어? 그것도 그러네. 우리 그럼 이제 연예인인가?”
“연예인은 무슨.”
이성진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 이제 연예인이요! 하고 장난을 치기 시작하자 임효중이 대번에 진화에 나섰다.
투닥투닥. 이성진의 전담 마크맨 임효중. 이성진이 사고를 칠까 봐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는 둘이었다.
“치킨 시켜 먹을까?”
그런 둘을 보며 지영이 던진 말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데뷔 기념으로 내가 쏠게.”
“헐.”
“잘 먹을게!”
사실은 기쁜 날이었다.
지영이 회귀 후 건드렸던 것들이 하나씩 결과를 보기 시작한 첫날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지영은 자신의 삶이 많이 달라질 거라는 걸 예감했고, 그걸 조금은 기념해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치킨 파티.
훈제로 딱 다섯 마리.
다섯 마리가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딱 20분 남짓이었다.
* * *
감량이다.
운동선수. 특히 투기 종목 선수에게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이…… 체중감량이었다. 선수를 극한의 정신상태로 몰고 가는, 진짜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견디기 힘든 게 바로 체중감량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감량은 사람의 피를 말린다.
그런 감량이 자고 일어난 토요일부터 시작됐다. 식단이야 어차피 먹던 식단이라 크게 거부감이 없어 문제는 없지만,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체중을 빼야 한다는 압박감.
사실 제일 힘든 게 바로 이 압박감과 남들은 다 먹는 아주 기본적인 음식들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짜증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지영은 곧장 체중계에 올라갔다.
77, 40.
4㎏하고 400 오버다.
시합까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후, 제대로 빠지려나.’
평상시라면 이미 이 시기엔 체중을 다 빼서 73을 한번 찍고, 3킬로그램 정도 다시 찌워서 유지하고 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대학부 선수들에 맞추기 위해 지영은 근력을 키워서, 이제부터 4킬로그램 감량에 들어가야 했다.
문제는 근력이다.
체지방량은 거의 전문 보디빌더들만큼이나 빠진 상태다. 정상급 선수들이 체지방 4% 정도라고 하니, 지영의 몸 상태는 지금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그런 상태라 일단 제대로 빠질지, 그게 걱정이 됐다.
그런 걱정을 안고 지영은 땀복을 챙겨 입었다.
새벽 운동.
주말이라 본래 새벽 운동은 없지만, 이 시간에 빼지 않고서는 하루 간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이 심각할 정도로 제한된다.
옷을 입고 나가자 역시 졸린 기색의 친구들이 옷을 입고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잘 잤어?”
“으응…….”
자다 나와 다들 비몽사몽이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 몸을 풀고 천천히 트랙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자 다들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막 뛰기 시작하자 눈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눈이 온다고 신나 하거나, 안으로 들어가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시합 2주 전.
이제는 전에 없이 바짝 스스로를 조여야 할 때였다.
어제와는 다른 아주 비장한 분위기.
피 말리는 감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