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0화
40화. 선발전 대비 훈련(5)
이호석.
이제 용인대 1학년.
고3 때 용인총장배 1등으로 용인대에 들어간 선수. 갑자기 신장이 크며 근력도 같이 늘었고, 그래서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선수. 그런 이호석은 따지고 보면 대기만성형 선수였다.
하지만 인성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실력의 반만큼만 인성을 갖추고 있었어도, 정말 대단한 선수가 되었을 선수.
그러나 그 인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온갖 욕을 먹은 뒤 유도계에서 퇴출당한 선수.
지영의 기억 속에 있는 이호석은 그런 선수였다.
찾아보니 올해만 1등 한 번, 3등 한 번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이 정도의 실력을 냈으니 용인대에서는 당연히 이호석을 유망주로 생각하고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코치가 바로 근처에서 지영과 이호석이 하는 걸 지켜봤다.
이호석의 신장은 체급에서는 평균이다.
175가 조금 넘는.
오른쪽 자세에, 허벅다리와 업어치기를 동시에 수준급으로 구사할 줄 알고, 체력도 준수하다. 그리고…….
빡.
연습인데도, 매너가 더러웠다.
발등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통증에 지영은 가슴 깃을 잡은 이호석의 손을 쳐냈다.
발목.
또 발목이다.
지영이 연습하면서 가장 보호하는 곳이 바로 발목이다. 발목을 다치기 싫어서 지영은 회귀 이후에 따로 엄청 공을 들여 훈련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놈은 모두걸기와 걷어차기의 중간쯤에 있는 기술로 지영의 발목을 때렸다.
발목을, 하필이면 발목을 말이다.
그리고 그게, 지영의 눈빛에 서늘한 냉기가 들어서게 만들었다.
원래는 그냥 적당히 하다가 넘어가 줄 생각이었다.
임대성도 무리하지 말라고 그랬고, 지영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 적당히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호석은 그냥 대놓고, 지영의 발목을 때렸다.
빡!
그리고 또.
두 번이나 맞고 나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걸 넘어가기에는 지영의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빡!
그래서 갚아줬다.
모두걸기에 맞았으니, 그냥 똑같이 갚아줬다.
그러자 이호석이 인상을 팍 썼다.
그 뒤에 있는 용인대 정승태 코치가 안 보이게 몸을 돌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야.”
“…….”
그래서 지영은 그냥 쌩깠다.
굳이 저 말에 대답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다시 팔을 뜯어내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상체를 폈던 이호석이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자세를 잡고는 다가왔다. 지영은 그런 이호석의 팔을 쳐냈다.
점수 내기에는, 심판이 없다.
시합처럼 하긴 하지만 심판이 없어서 지도를 받아 연습이 끝나는 경우는 없었다. 그걸 잘 아는 지영은 지도의 선에서 연습을 풀어나갔다.
잡기 싸움으로 힘을 빼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게 아닌 지영이 작정하고 움직이자 이호석의 손이 어지럽게 눈앞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긴 리치를 이용해 목깃을 잡고 돌아 나오면서 발목받치기를 툭 걸었다.
원심력이 더해진 발목받치기에 이호석의 몸이 붕 떴다. 3년. 따라잡기 힘든 시간은 아니다. 피지컬에서는 밀려도, 다른 조건에서는 적어도 지영이 위였다.
부웅. 떴던 이호석이 겨우 몸을 비틀어 제대로 나가떨어지는 걸 피했다.
엎어졌다가 일어난 이호석은 지영의 기술에 엎어졌다는 게 꽤 쪽팔린 기색이었다. 입술을 깨문 그는 곧장 기합과 함께 달려들었다.
쿵!
옆에서 매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영은 빠르게 다가오는 이호석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이제 넘어가 주고 싶은 마음은 깨끗이 사라졌다. 오히려 그 반대로, 타이밍을 봐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퍽!
역시 또 거칠게 나왔다.
대놓고 발목을 노렸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지영이 발을 피하자 애꿎은 매트만 치고 말았다. 그게 그렇게 티가 나서, 뒤에서 용인대 정승태 코치의 외침이 들렸다.
“이호석! 니 똑바로 안 하나!”
“네!”
열심히 하라는 게 아니고, 매너 있게 시합하란 뜻이었을 텐데, 이호석은 그걸 고등학생도 못 넘기고 뭐하냐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아주 발이 그냥, 현란하다. 탭댄스라도 추려는 건지 의도적으로 지영의 발을 노려왔다.
그래서 지영은 다시 손을 쳐냈다.
이번엔 그냥, 대놓고 퍽! 소리가 나게 쳐내버렸다. 그러자 이호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 이 X발…….”
“…….”
그 말에도 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기계적으로 쳐내고, 모두걸기나 안다리, 발목받치기 같은 건 그냥 다 피해버렸다. 더러운 게임에 적극적으로 나서줘 봐야 자신의 몸만 상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지영은 그걸 애초에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림이 좀 골 때리게 흘러갔다.
후배를 어떻게 하려는 대학생과 그런 대학생을 가볍게 받아주는 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속속 결과가 나와 사이드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결과 지영과 이호석의 주변이 텅 비면서 시선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이호석도 그걸 인지했는지, 제대로 나왔다.
휘익!
순간적으로 지영의 뒤쪽을 점해 백드롭을 걸어왔지만 지영은 그 순간 앞으로 빠지며 안 뒤축을 툭 걸었다. 그러자 중심이 무너진 이호석이 얼른 도복을 놓고 엎어졌다. 이 정도면 그냥 개쪽이다.
“야 호석아! 너 지금 뭐 하냐? 코미디 하냐? 크크!”
근처에서 쪼그리고 앉아 쉬고 있던 주호찬이 엎어진 이호석을 놀렸고, 그에 이호석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쟤 고1이다. 설마 지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벌떡 일어난 이호석이 다시 자세를 잡고 지영에게 달려들었다.
그사이 이미 두 팀이 더 끝나고 빠져나갔고, 이제 경기장엔 열 팀 정도만 남아서 점수 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팀은 전부 대학생, 대학생 조합이었다.
오직 이호석만 고등학생을 상대로 5분이 다 지나도록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이호석의 동기는 물론 선배들까지 이호석을 놀리고 있었다.
그게 화가 난 표정이지만, 다들 지켜보고 있어 처음처럼 더러운 플레이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영은 느긋하게 이호석을 상대했다.
잘하긴 한다.
갑자기 신장이 크면서 근력도 늘어 실력이 쭉 올라왔지만, 그 이전에 용인대에 올 정도의 실력이 있던 선수였다. 그런 실력자라 분명 잘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구혁 선배한테도 잘못하면 한판 날아가지.’
어마어마한, 압도적인 실력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좀 차분하게 나왔으면 또 모르겠는데, 딱 봐도 흥분한 상태로 어떻게든 지영을 넘기려고 하다 보니, 한없이 차분한 지영에게 계속해서 역공을 당했다. 그래도 한판으로 날아가지 않은 건 박수 쳐줄 만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이었다.
소매를 잡자마자 성급하게 업어치기를 들어와서, 지영은 길게 끌지 않고 그냥 하체와 코어 힘으로 버틴 다음, 목깃을 잡아채 끌어당겨 허벅다리를 걸었다.
후리기가 아닌, 걸기.
상대의 안쪽 오금을 건 다음, 그대로 띄워 던지는 기술.
홱!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닌, 구렁이 담 넘듯이 그냥 슬그머니 몸이 돌아가 쿵! 하고 떨어졌다.
한판.
등짝부터 그냥 제대로 찍혔으니 누가 봐도 이견이 없는 한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영은 일어나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사이드로 빠졌다.
“마, 이호석이. 따라온나.”
그리고 이호석은 정승태 코치한테 끌려갔다.
“오. 역시. 황금세대다운데?”
사이드로 나오는데 주호찬이 손을 내밀고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해서 지영은 그걸 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그런 기색이 보이자 주호찬이 먼저 지영의 손을 쳤다.
짝.
“잘했다. 저 새끼 저거, 요즘 건방 떠는 거 좀 꼴 보기 싫었는데 아주 잘 교육해 줬어.”
“동기세요?”
“아니? 나 4학년. 근데 그거 꼴같잖다고 졸업반이 1학년짜리 두들기기엔 좀 그렇잖아?”
“아. 아하하.”
주호찬의 솔직한 말에 지영은 그냥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요즘 미투 무서워서, 그랬다간 피 본다.”
“…….”
“내일도 오냐?”
“네. 내일까지만 옵니다.”
“그래. 내일은 진짜로 한번 하자.”
“네.”
툭툭.
이호석과는 정반대인 주호찬이 지영의 어깨를 두들겨 줬고, 지영은 인사를 하곤 뻗어 있는 이성진에게 갔다.
“졌냐?”\
“어. 3분 만에 허벅다리 한판.”
역시 신지혁에게 진 이성진.
지영은 주변을 힐끔 둘러본 뒤에 조용히 물었다.
“어때?”
“음, 할 만해.”
“그래? 다행이네.”
“근데 본 실력을 다 내보인 것 같진 않아서, 내일 더 잡아보려고.”
“그래. 고생했다.”
“응. 넌 시원하게 던지더라?”
“…….”
지영은 그 말에 그냥 씩 웃고 말았다.
원래는 대충하려고 했었다. 발목만 걷어차지 않았으면 그냥 대충 상대해 주고 말았을 거다. 어차피 오늘은 탐색 겸 온 거라 무리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마음인 지영을 굳이 건드려서, 코치한테 끌려가서 시원하게 털리고 있었다.
정승태는 이호석을 저 끝으로 가서, 검지로 머리를 툭툭 치면서 신나게 깨고 있었다.
별로 미안한 마음도 안 들었다.
오히려 더 깨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지영은 곧 이호석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오늘 잡아본 결과 실력은 나쁘진 않지만 상성에서 자신이 위고, 실제로 시합을 한다고 해도 실수하거나 자만하지 않는 이상은 크게 밀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 이호석은,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쿵!
매트가 터지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강한결이 용인대 2학년 선수를 시원하게 던진 뒤 일어나고 있었다.
“역시 한결이!”
확실히 강한결은 난 놈이긴 했다.
임효중도 졌고, 황석도 밀리고 있는데 혼자서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시원하게 던지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에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걸어오는 강한결의 모습은 마치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아우라가 있었다.
그래서 여자 선수들의 눈에 아주 하트가 그냥…… 빵빵 터지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으로, 영화 속, 드라마 속 주인공에 가장 어울리는 친구. 빈틈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녀석.
‘저런 놈이 내 친구지.’
그래서 좋았다.
저런 친구가 있다는 게.
“수고했어.”
“어, 지영이 너도. 성진이도.”
“예압. 읏차!”
앉아 있던 이성진이 일어나 지영의 옆으로 섰다. 셋이 나란히 서자 저 끝에서 대학교 선배와 대화 중이던 임효중이 인사 후 옆으로 왔고, 절반을 던졌지만 끝나기 전 한판으로 진 황석도 왔다.
다 같이 모여 있기를 잠시, 용인대 첫날 훈련이 끝났다.
정리운동을 하고, 짐을 챙겨 내려가는데 뒤에서 누가 툭툭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껏 역겨운 표정을 지은 이호석이 있었다.
“내일도 오냐?”
“네.”
“……X발놈, 넌 내일 두고 보자.”
“…….”
그러곤 어깨를 툭 치고 가는데, 세상 뭐 이런 양아치 새끼가 다 있나 싶었다.
“지영아, 저 새끼가 너한테 지금 욕한 거지?”
“X발놈이라고 했다.”
“너한테 져서?”
“그러지 않겠냐?”
저렇게 나와주니 오히려 고마웠다.
내일은 아예, 대차게 깨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다음 날, 연습 중에 발목이 돌아간 이호석이 절룩이면서 훈련장을 이탈했기 때문이었다.
자업자득.
인과응보?
이호석은 선발전 출전도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지영은 좀 아쉬웠다.
연습 말고, 시합 때 깨야 제맛인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용인대 훈련이 끝났다.
나름의 성과가 있었던, 알찬 전지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