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9화 (3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화

39화. 선발전 대비 훈련(4)

용인대.

말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유도 명문대.

종주국인 일본의 명문대들과 비교해도 오히려 우위에 있을 정도로 용인대의 위상은 유도계에서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대한민국 남녀 유도 국가대표 절반 이상을 배출하는 곳으로, 그냥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대학이었다.

유도로 성공하고 싶으면, 용인대로 가라.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처럼, 유도로 성공하고 싶으면 용인대로 가란 말은 이 바닥에선 공식과도 같았다.

고등학교에서 입상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용인대로 몰리고, 그렇기에 용인대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 용인대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용인대는 크고, 넓었다.

정식 경기장이 넓게 퍼져서 여섯 개 정도나 나오니, 최소 백이 넘는 선수들이 연습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런 유도장에 들어서기 무섭게, 시선이 와다다 달려들었다.

그 시선들의 태반은, 무심함이었다.

‘역시…….’

공기가 달랐다.

용인대 선수들의 삼분에 이 이상은 중, 고등학교 때 전부 날렸던 선수들이다. 최소 체급에서 입상 한두 번은 있는 선수들이 수십 명이었다. 그런 선수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역시나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게다가 이 선수들은 전부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와 접점이 없었다.

나이가 최소 세 살 차이라 시합에서 부딪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한결이는 있겠구나.’

너무 오래전 기억이지만, 강한결이 올 초에 선발전에 나가 용인대 선수 두 명과 맞붙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니 강한결을 빼면, 저 선수들과는 접점이 없었다. 그래서 용인대 선수들이 황금세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무심함 반, 신기함 반이었다.

그리고 여자 선수들의 눈빛은 역시 조금 달랐다.

반짝이는 눈빛.

하지만 다들 그런 시선엔 익숙해서 깔끔하게 무시했다.

“와, 분위기 죽이는데?”

토요일날 거의 방전되다시피 했던 이성진은 일요일 하루 만에 다시 체력을 되찾았고, 오늘은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이성진의 말에 지영을 포함한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분위기 하나는 압권이었다.

평범한 선수들이라면,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다.

“까불다가 다치지 말고. 조심들 하자. 용인대 소문 들어봤지? 여기 좀 악질적일 때도 있으니까 그땐 그냥 적당히 받아주고 나와.”

임대성 코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용인대는 유도로 유명하고, 유도로 악명이 높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교다 보니 프라이드가 진짜 장난이 아니었고, 그것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다.

‘선수 괴롭히기.’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선수들끼리 자체적으로 한 선수를 소아다리 시키는, 끔찍한 악명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용인대에 훈련을 가는 건 많은 선수들이 꺼려 했다.

“오면서도 말했지만 전략 탐색이 목적이야. 괜히 무리하다가 다치지 말고, 다들 조심하자.”

이어진 임대성의 말에도 다들 끄덕끄덕.

실제로 지영도 오늘은 무리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 몸도 안 만들어졌고, 빌어먹을 닭가슴살 때문에 몸에 힘이 별로 없었다. 어제 조금 먹긴 했지만 그건 진짜 딱 허기만 치워준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늘은 간만 볼 생각이었다.

3시.

훈련이 시작됐다.

용인대의 준비운동은 빨랐다.

보통은 20분 정도 하는데, 거의 10분이 조금 넘어서 벌써 준비운동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익히기에 들어갔다.

“야.”

성진이와 잡고 하려는데 누가 뒤에서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당연히 모르는 용인대 선수가 서 있었다.

“형이랑 하자.”

“네.”

가만히 다가가서 도복을 잡고, 천천히 익히기를 시작하는 용인대 선수.

업어치기를 할 때 힐끔 보이는 등판에 주호찬이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부르는 게 거칠긴 했지만, 시비를 걸 만한 사람 같진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용인대 선수들은 지영에게 긴장감을 줬다.

긴장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탐색에 들어갔다.

아주 부드럽게 들어오는 업어치기 익히기를 받아주며 드는 생각은 역시.

‘역시 힘이 좋다.’

익히기에도 선수의 힘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가볍게 툭 채는 것 같은데도 상체가 대번에 끌려간다. 제대로 힘을 쓰면, 적어도 임효중 이상으로 힘이 좋을 것 같았다.

10분간의 익히기 끝에, 경량급 자유 연습이 바로 시작됐다.

여섯 개의 경기장을 4대2로 나눠, 4는 남자 선수들이, 2는 여자 선수들이 쓰기로 정하고 곧장 시작된 자유 연습.

지영은 당연히 주호찬과 첫판을 했다.

전형적인 업어치기 선수.

그리고 잡기 싸움에 엄청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잡히면 뜯어내고, 잡히면 뜯어내고, 일부로 잡기 싸움을 해보던 지영은 그냥 포기하고, 가슴 깃을 내줬다.

그러자 잡는 순간 곧장 안 뒤축을 쳐왔다.

열에 아홉은 보통 업어치기 전에 안 뒤축을 치는 편이라 이 정도는 쉽게 막아냈다. 가슴 깃을 내주고, 어깨 깃을 잡은 지영은 상체를 쑥 집어넣으며 외깃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넘기려는 게 목적이 아닌, 상대의 중심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파악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부드럽게 들어가 차올리자 주호찬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이 정도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영이 도로 빠져나오자 그대로 외깃 업어치기.

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지영도 쉽게 방어했다.

어깨 깃을 놓고 안으로 쭉 파고들며 들어가자 예상했는지 주호찬은 곧장 지영의 깃을 놓고 빠져나왔다.

역시 잘한다.

눈치도 좋고, 실력도 좋다.

그래서 여유가 있었다.

‘적당히, 적당히.’

그런 주호찬이 다가오는 걸 보며 지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용인대 선수들과 훈련은 사실 강자와의 대결에 목마른 지영에게는 정말 바라마지않던 일인 건 맞다. 하지만 그것도 컨디션이 정상일 때나 바라는 거지, 지금처럼 몸 상태가 별로일 때는 부상을 조심해야 하니 그냥 조심히 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주호찬과는 그냥 간만 보는 형태로 연습이 끝났다.

툭툭.

“황금세대 황금세대 해서 좀 궁금했는데 잘하네.”

“감사합니다.”

어깨를 두들겨 준 주호찬이 다른 파트너를 잡으러 떠났다.

용인대.

역시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이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주호찬도 몸을 푼다는 개념으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건 아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잡아보면 얼추 감이 잡힌다. 그걸 생각하면 주호찬은 충분히 해볼 만했다.

지영은 그렇게 몸을 풀고, 제대로 훈련에 들어갔다.

청주에서 할 때는 가만히 있어도 먼저 잡아달라고 다들 찾아왔지만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이라 지영은 자신이 먼저 파트너를 잡으러 나섰다. 파트너를 잡는 기준은 간단했다.

체격.

딱 봐도 다부진 체격을 가진 비슷한 체급의 선수를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용인대에는 그런 선수들이 엄청 많았다.

두 번째 판.

세 번째 판.

한 판을 쉬고, 한 판 하고 쉬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벌써 네 시 반. 용인대는 추가로 훈련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딱 정해진 시간만 훈련을 하고, 나머지는 선수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겼다.

그리고 그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시스템을 장착했다.

나름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제 곧 훈련이 끝날 시간이었다.

‘남은 시간은 좀 빡세게 해야겠다.’

좀 설렁설렁했더니 체력이 남았다. 이제 많아야 두 판이니, 지영은 남은 두 판을 최대한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용인대로 훈련을 온 실업팀 선수와 잡았다.

강했다.

남양주시청 소속 선수였는데, 확실히 실력이 장난 아니었다.

국대 선발 3위까지 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선수.

쿵!

버틴다고 버텨봤는데, 뭔 놈에 힘이 그렇게 좋은지 그대로 한판이 날아갔다. 빙글 돌면서 차는 허벅다리였는데, 체중을 실어서 쭉 끌어당기니 이건 뭐,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날아가고 그냥 아, 넘어갔네 할 지영이 아니었다.

넘어갔으면, 한 번은 넘긴다.

용인대에서도 지영은 이 철칙을 지켰다.

거기에 고1이고, 한판 던졌다고 방심까지 해줘서 지영은 똑같이 허벅다리 후리기로 한판을 던져 나름 복수를 해줬다.

그렇게 한판이 날아가고 나자 공세로 나오는 남양주시청 소속 김선호.

하지만 어느 정도 스타일을 파악한 지영은 끝까지 버텼고, 그렇게 시간이 다 지나고 타이머가 울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그래.”

힐끔, 지영의 인사에 그냥 무관심한 표정으로 대답한 김선호가 가고, 지영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 제대로 한판 하고 나면 아귀가 뻑뻑해지는 게, 실력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음을 자각하게 해줬다.

중량급 선수들이 짝지어 들어가는 걸 보며 도복을 고쳐 입은 지영은 친구들은 어디에 있나 찾아봤다. 황석, 강한결, 임효중. 전부 용인대와 잡고 서 있었다.

친구들의 사정도 지영과 비슷했다.

피지컬의 완성되지 않은 몸이라, 기술적인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은데 힘에서 밀려서 확실히 수세에 몰렸다. 황금세대 중에서는 가장 힘이 좋은 황석도 힘이 부족해 버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90㎏을 뛰는 선수인데도,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석이가 힘으로 밀리는 건 진짜 오랜만에 본다. 그치?”

같은 경량급이라, 나란히 서서 쉬던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생이니까. 넌 어때. 할 만해?”

“어후, 말도 마. 죽겠다, 진짜.”

이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등부 66에서는 최강자로 통하는 이성진도 용인대와의 훈련에서는 아주 신나게 날아다녔다. 게다가 요즘 스타일을 바꿨기 때문에 적응을 하지 못해 더욱 신나게 날아다녔다.

“신지혁이랑 붙어봤어?”

“아직. 막판 하기로 했어.”

“무리하지 말고, 탐색전이라고 생각해.”

“에이……. 너라면 그럴 수 있냐?”

피식.

이성진의 되물음에 지영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황금세대는 기본적으로, 승부욕의 화신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절대 지고는 못 사는 성격들. 다섯 중에서는 가장 순댕이라 할 수 있는 황석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에 가까웠다.

일상에서야 헤실헤실하는 거지, 도복을 입는 순간부터는 친구끼리 연습도 안 봐주는 게 황금세대였다.

그러니 이성진에게 자신이 한 말은 실언이 확실했다.

“넌 막판 누구랑 하냐?”

“나? 어, 맞다. 아직 안 잡았다.”

잠깐 황석을 보면서 정신이 팔려, 파트너를 잡지 못했다.

지영이 고개를 돌려 혼자 서 있는 선수를 찾았다. 보통 파트너는 서로 바로 붙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혼자 서 있는 선수들 중에는 아직 파트너가 없는 선수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선수를 찾는데.

“야. 강지영.”

누가 띠꺼운 어조로 부르는 게 들려 고개를 돌렸더니,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상대가 서 있었다.

이호석.

용인대에 왔는데도 굳이 잡고 싶지 않았던 선수.

“네.”

“막판 있냐?”

“아니요, 없습니다.”

“그래? 나랑 하자.”

“네.”

고개를 숙이고 옆에 섰는데 서자마자 하, X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반응하지 않았다.

“야.”

“네.”

“점수 내기하면 알아서 떠라.”

“……네.”

아아.

이런 스타일이었구나.

지영은 솔직히 한정수가 보내준 영상을 보며 미래의 이호석이 어떻게 되는지를 떠올린 뒤, 이틀간 고민했었다. 지영이 아는 미래에서 이호석은 분명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유도계를 은퇴한다.

음주운전이란 것 자체가 지영에게는 거의 역린이나 다름이 없어서 당연히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고민을 한 이유는 실제 성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사연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보네.’

대놓고 져달라는 말을 할 정도의 인성이다.

그리고 자신을 불러놓고, 지영이 걸어가자 눈빛부터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는 인성이 대충 예상이 갔다.

삐이이이! 중량급 연습이 끝났다.

“막판 점수 내기!”

그리고 한국 유도계의 전설, 전기정 교수가 점수 내기라고 크게 외친 뒤에 점수 내기 막판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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