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8화
38화. 선발전 대비 훈련(3)
좀 더 강한 상대.
지영은 박성오에 이어 81 한정수와도 붙었다.
효중이와 첫판을 실전처럼 빡세게 한 그는 지영이 바로 잡아달라고 하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쉬고 바로?”
“네, 선배님 힘드시면 다음에 잡아주셔도 됩니다.”
“야 이! 그렇게 말하면 쉴 수 있겠냐?”
연희고 황금세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훈훈한 미남 한정수가 지영의 말에 발끈했다. 그리고 발끈하라고 한 말이라, 지영은 그냥 웃었다. 청주대와는 친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에 네다섯 번은 합동훈련을 하니 안 친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끔 시내 나가면 데이트 중인 선배들을 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슬그머니 가서 용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친했다.
친한 형.
다행히 청주대 선수들은 지영에게 다 그런 느낌을 주는 선배들이었다.
한정수는 그런 청주대 4학년 주장이면서 내년에 졸업하고, 상무 입단이 결정된 실력자이기도
했다.
“이번에 국대 선발전은 안 나가지?”
“네, 다음 달 청소년 선발전만 나가요.”
“그래? 음, 근데 너네는 왜 선발전은 안 나가냐? 너희들 실력이면 대진만 잘 붙으면 순위권까지 갈 것도 같은데.”
도복을 고치면서 한정수가 한 질문에 지영은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재수 없는 말이지만, 한정수라면 이해해 줄 거다.
“선수촌 들어가기 싫어서요.”
“뭐?”
지영의 대답에 한정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들 정도면 급할 것도 없지. 들어가 봐야 개고생만 할 건데. 자, 시작하자.”
“네,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1분 정도 휴식 뒤에 다시 시작된 자유 연습.
이번엔 임효중의 강화판이라 볼 수 있는 한정수였다. 한정수는 전형적인 허벅다리 선수로, 특이하게도 좌우를 동시에 찰 수 있는 선수였다. 보통 유도선수들은 업어치기 정도는 좌우로 할 줄 안다. 하지만 흔히 틀어잡는 선수들은 보통 한쪽으로만 기술을 찬다.
오른쪽이면 오른쪽, 왼쪽이면 왼쪽.
보통은 주력 자세가 있기 마련이었다. 양쪽 다 찰 줄 알아도, 더 찰 차는 한쪽을 보통 고수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한정수는 그런 게 없었다.
자신이 차기가 편하게, 맞잡이가 아니라 항상 짝잡이로 잡았다. 즉, 상대가 오른쪽이면 왼쪽으로 서고, 왼쪽으로 서면 오른쪽으로 서는, 다소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선수였다. 보통 이런 선수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역시나, 지영이 왼쪽으로 서자 한정수는 허리기술을 걸기 편한 오른쪽으로 섰고 별 잡기 싸움 없이 서로 등판 깃을 맞잡은 상태에서, 간을 보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 완성된 대학생은 역시 힘이 고등학생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정수는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상무에 입단할 정도의 실력자다.
묵직한 힘을 느끼며 상대의 중심을 무너트리는 작업이 시작됐다. 툭툭, 모두걸기를 치면서 허리를 툭툭 넣었다.
‘방심하면 한방이다.’
이런 자세에서 한판이 정말 잘 나온다.
게다가 상대는 한정수.
냉정하게 얘기해서 한정수는 임효중보다도 위다. 피지컬은 지영만 완성되지 않은 게 아니었다. 황금세대 전원이 지금 성장 중이었고, 절정기는 아무리 빨라도 고3에서, 대학교쯤에 완성된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임효중도 한정수와 붙으면 한판을 따내긴 해도, 거의 먼저 한판이 날아간다.
시합에선 먼저 넘기는 사람이 승자니 임효중의 패배라고 봐야 했다. 임효중은 힘에서 밀려서 어쩔 수 없다고 가끔씩 푸념을 하곤 했다. 그리고 자기가 대학생이 되면 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밸런스가 그렇게 좋은 임효중도 던지는 게 한정수고, 지영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툭, 끌어당겨서 안 뒤축, 지영의 중심이 가볍게 친 기술에 흔들렸다.
그러자 벼락처럼 목감아 허리채기가 들어왔다. 한정수의 특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영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며 감아챌 때, 지영의 몸은 이미 회전하면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툭, 툭!
그 상태에서 등판 깃을 잡은 손을 짧게 끊어서 당겼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오던 한정수의 몸이 지영의 몸쪽으로 끌려왔다. 한정수의 몸이 끌려오자 지영은 그대로 몸을 누이며 한정수를 왼쪽으로 잡아챘다.
안아 돌리기.
상대의 힘을 이용한 기술의 끝판왕.
강제로 틀어서 돌릴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되치기 형태는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들어가는 기술이다.
쿵!
한정수가 그대로 지영의 왼쪽으로 돌아 빙글 돌아가, 아주 시원하게 날아갔다.
화려하게 날아가는 한정수에게 선수들의 시선이 몰렸다가, 다시금 연습으로 돌아갔다.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보던 한정수가 일어나더니, 민망한 얼굴로 물었다.
“노렸냐?”
“네. 들어올지 알았어요.”
“넌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담은 칭찬이라 지영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진 연습.
한정수는 처음부터 방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더 방심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한정수의 공세는 매서웠다. 좀 잡아줄까? 하는 느낌이, 넌 내가 반드시 한판 던진다로 변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공세로 나선 한정수에게 지영은 버티고, 또 버텼다.
힘의 차이가 있어서 절반은 이미 두 번쯤 날아갔지만, 지영은 그래도 버텼다. 시합이었으면 이미 지도는 두 개쯤 받았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쯤에 되치기로 다시 절반을 던지고 연습을 끝낼 수 있었다.
2판 연속 대학생과 붙었더니, 역시나 체력이 탈탈 털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후, 후우. 후우…….”
숨을 마시고 내뱉으며 지영은 힘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꼈다. 힘이 부족하면 지금처럼 고작 두 판 만에 이렇게 호흡이 거칠어진다. 전에 합동훈련에서 보성고와 소아다리도 별문제 없이 이겨냈는데, 대학생과 제대로 두 판 했다고 팔뚝과 손가락이 후들거렸다.
지영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피지컬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지영이었으니 되치기 한판씩 던진 거지, 아니었으면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을 거다.
그렇게 지영이 탈탈 털리는 와중에, 이성진은 임대성에게 잡혀 더욱 험악하게 구르고 있었다.
“또 또 뺀다! 밀리지 말라니까!”
지영이 첫판에 했던 박성오와 붙은 이성진은 속절없이 밀렸다.
이성진은 만약 운동을 안 했다면 정말 호리호리한 아이돌 스타일의 체형을 가졌을 거다. 초등학교 때도 하얗고, 팔다리가 가늘어서 그때는 지영보다 더 중성적인 매력이 더 넘쳐났던 게 이성진이었다.
그나마 운동을 해서 요즘은 좀 단단한 느낌이 있지만, 타고난 것 자체가 이성진은 근육이 많이 붙을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지영보다도 더 많이 체중을 빼서 그처럼 근력을 만드는 건, 오히려 이성진의 밸런스를 깨트리기 때문에 결국 시합 스타일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오늘 대성이 형 좀 빡센데? 왜 저러시냐?”
같이 휴식을 취하는 중에 한정수가 물어왔다.
“성진이 이번에 신지혁이랑 붙을 것 같거든요.”
“아 신지혁. 성주 깨지는 거 보니까, 걔도 진짜 천재긴 천재더라.”
“어, 성주 형 신지혁이랑 했었어요?”
“했었지. 대학연맹 8강, 4강, 4강. 다 깨졌다.”
헐.
중고연맹처럼 대학연맹도 춘, 하, 추계까지 세 개의 대회가 있는데, 청대 4학년 정성주도 신지혁에게 죄다 깨진 것 같았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한정수가 임대성 코치 지도아래 박성오와 붙는 이성진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네도 천재인데, 걔도 천재는 천재더라. 시합하는 거 보면 완벽해. 틈이 없어.”
“그 정도예요?”
“어. 잘해. 기술은 너네만큼 깔끔하고, 시합 운용은 지영이 너만큼 하고, 체력은 또 무지막지해서 4분 내내 파이팅이 넘쳐. 성주가 그래도 추계에서는 절반 먼저 땄는데, 반칙패로 날아갔어.”
“…….”
오늘은 안 보이는 정성주 선배는 굉장히 계산적인 스타일에다가, 승부욕 또한 넘쳐서 아마 2번이나 지고, 3번째엔 신지혁에 대해서 철저하게 대비하고 나갔을 거다. 절반을 먼저 딴 것도 아마 그 대비에서 나온 결과일 거고. 그런데도 반칙패로 졌다는 건, 신지혁의 실력이 진짜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성진이 긴장해야겠네요.”
“너도 긴장해야 할걸?”
“저도 하고 있죠. 작년 고3 선배들 다 나올 건데.”
만 19살까지 나오는 대회라, 지금 20살인 대학 1학년 선수들은 전부 출전한다고 보면 된다.
“형. 73에 좀 잘하는 선배들 있어요?”
“있지. 용인대에 둘, 한체대에 하나, 경기대에 하나, 동의대에 하나.”
엄청나게 많았다.
“너무 많아서 다 설명해주긴 그렇고, 이따가 숙소 가면 영상 보내줄게. 준결, 결승은 다 찍어서 남겨두거든.”
“넵, 감사합니다.”
역시 고마운 형이다.
쿵!
그런 마음을 가지기 무섭게 이성진이 박성오에게 시원하게 날아갔다. 뒤로 밀리면 안 돼서 앞으로 나오는 순간 기습적인 업어치기에 제대로 당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유도에서 저렇게 무작정 밀고 들어가면 나 넘겨주쇼. 하는 것밖엔 안 된다. 그래서 이성진은 또 임대성 코치에게 신나게 깨졌다.
‘중요한 건 밀리지 않는 거지, 밀고 들어가는 게 아니다. 성진아.’
상대가 밀고 들어오면, 옆으로 돌면 된다.
이성진은 지영처럼 철저하게 밖으로 돌아야 승산이 있었다. 힘에 끌려가고, 힘에 밀려나면 아마 이성진은 신지혁에게 질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새 5분이 지나고, 타이머가 울렸다. 지영은 이성진에게서 시선을 떼고, 미리 잡아뒀던 충북체고 2학년 중량급 선수와 매트로 올라갔다. 강한결의 체급을 뛰는 선수인데도 그럭저럭 버틸만 한걸 보니 역시 고등학교 선수는, 대학교 선수만큼 힘이 없었다.
그렇게 중량급, 헤비급까지 전부 잡고 나서야 연습이 끝났다.
정리운동을 하고 모이자, 임대성은 오랜만에 추가 연습을 지시했다.
“밀어 올리기 이백 개, 로프 10개만 타고 가자.”
“네!”
동그랗게 모여 밀어 올리기 이백 개를 쉬지 않고 하고, 도복 상의만 벗고 밖으로 나가 로프를 탔다. 어깨, 등 근육을 키우는데 직빵인 로프는 사실 지영이 그리 좋아하는 운동이 아니었지만 목표가 있기에 한 번도 발을 꼬지 않고 10회를 채웠다.
5시 40분쯤 오후 운동이 끝났다.
추가 연습까지 끝내고 모이자, 임대성이 새로운 사항을 전달했다.
“다음 주 월화, 용인대 간다. 준비들 해.”
“네!”
용인대.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사실 연희고는 용인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중학교 때야 어차피 실력 면에서 용인대를 가봐야 시원하게 날아만 다닐 테니 가지 않았고, 올해도 비슷한 이유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임대성은 오늘, 용인대에 간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빤했다.
‘전력탐색.’
직접 가서, 미리 맞붙어보겠다는 뜻이다.
이쪽의 실력도 까발려지겠지만 일단은 붙어봐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으니 이 선택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파김치가 된 이성진을 챙겨 숙소로 돌아온 지영은 저녁을 먹고, 잠시 쉬다가 8시부터 바로 다시 웨이트를 시작했다. 상체와 하체를 단련하고 나니 거의 10시가 다 되어 갔다. 천하의 지영도 이때는 녹초가 됐다.
씻고 나오니 다들 방에 있는지 거실은 조용했다.
지영도 조용히 방에 들어가 한정수가 보내준 대학연맹 준결, 결승 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총 일곱 개였다.
그리고 그 일곱 개는 전부 1학년이 나오는 시합이었다.
첫 영상.
춘계 73 준결승.
동의대 1학년 장한준과 용인대 4학년의 시합.
한정수가 말한 동의대 1학년 유망주 장한준은 딱 지영과였다.
‘한판 싸움.’
이 선수와 만약 붙게 된다면, 아무래도 간을 보다가 반칙, 반칙으로 이어진 뒤, 한판 게임이 나올 것 같았다. 스타일이 너무 자신과 비슷해서 오히려 상대할 방법이 머릿속에 확실히 그려졌다.
두 번째 영상.
춘계 73 결승.
장한준과 용인대 1학년 이호석.
1분 만에 한판으로 날아가는 장한준.
지영은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장한준을 1분 만에 운이 아닌, 실력으로 한판을 내던진 선수에 주목했다.
“이호석.”
익숙한 얼굴이고, 익숙한 이름이었다.
다시 한번 빗당겨치기 한판을 던지는 걸 재생해서 본 지영은 그가 누군지 기억해 냈다.
“아 교통사고로 은퇴한 천재.”
자신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끝이 다른 길을 걸었던 천재다.
현재 –73㎏ 국가대표인 안창린 선수처럼 재일교포고, 자신처럼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술 마시고, 무면허로.
유도 실력은 천재였지만 예비살인자, 잘 은퇴했다는 조롱을 받은 선수.
지영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너한테는, 절대 지면 안 되겠다.”
다른 선수한테는 몰라도, 이 새끼한테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영상을 돌려보며 다짐한 지영이었다. 그런 다짐 뒤로도 지영은 계속해서 선수들 시합 영상을 감상했다. 그 결과, 딱 한 선수만 조심하면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호석.
이번 대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는 이호석이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절대, 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까.